♪ 이선희 - 여우비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 OST)
| 내 사랑 바보 04 |
by.팊 “ 무슨 소리에요. ” “ 내가 싫어서 그렇게 피하는거냐고. ” “ 누가 그래요? ” “ 현승이형이 다 말했다며? ” “ … ” “ 듣고 나니까 별로야? ” “ 형, 그만해요. 취했어. ” 지금 이 같은 말을 분명 몇일전에 현승이형한테도 했던거 같은데, 왜 사람은 취하면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하는지 모르겠다. 술잔을 뺏어 멀리 놔두고 술병도 뺏어버렸다. 태환형은 시선을 굴리다가 한숨을 푹 쉬며 테이블에 팔을 올리고 고개를 숙였다. “ 저 내일 중국가요. ” “ 뭐라고? ” “ 중국간다구요. ” “ ‥진짜 싫은가보네. ” “ 그런거아니에요. ” “ 그럼 왜 가는데? 그렇게 말도없이 갑자기? ” “ 지금은‥ 지금은 말못해요. ” “ 왜? ” “ 나도 몰라요. ” “ 뭐? ” “ {‥나도 내 마음이 정리가 안되는데 어떻게 말해. 형이야말로 나 힘들어 죽으라고 이러는거야?} ” “ 중국어 또 쓰네. ” “ {도저히 내 마음을 표현할 한국어가 생각이 안나. 형이 가르쳐줘. 모르겠다고 나도.} ” 태환형은 술에 취해도 다음날이면 다 기억했다. 후에 형이 말하길 그 날 그렇게 중국어를 쏟아내던 내 얼굴이 정말 아파보였다고 했다. 무슨 말을 하는지는 몰랐지만 너무 아파보여서 자신이 더 아팠다고 그렇게 이야기했었다. 그만큼 그때의 나는 애절했었다. “ 쑨양. ” 한참 침묵을 지키다가 결국 취한 태환형을 일으켜서 술집을 나왔다. 데려다주기 위해 집이 어디냐고 물은 뒤 나는 단 한마디도 하지않았다. 울컥울컥 눈물이 올라와서 말을 못한거이기도 했다. “ 쑨- 양- ” 묵묵히 태환형을 붙잡은채 걸었더니 결국 형은 포기하고 따라서 입을 다물었다. 형의 집은 생각보다 엄청 멀었다. 나는 달동네라는 곳을 태환 덕분에 처음 와봤다.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형이 사는곳은 달동네 안쪽은 아니였지만 그 근처로 어느 집 옥탑방이였다. 둘다 덩치가 있다보니 좁은 계단을 올라가기가 힘들어서 먼저 태환형을 올라가게하고 뒷따라서 형이 넘어질까봐 조마조마하며 올라갔다. “ 여기야. ” “ 푹자요. ” “ 쑨양. ” 계단 끝에 도착하자말자 돌아서서 가려는데 손목이 붙잡혔다. 한숨을 쉬고 돌아봤더니 술에 들뜬 얼굴을 한채 눈이 살짝 풀린 형이 보였다. 이런 모습까지도 예뻐보이는걸 보면 내가 정말 형을 좋아하긴 하는거 같았다. 입술을 꾹 깨물며 시선을 돌렸다. “ 쑨양, 대답해. ” “ 왜요. ” “ 가지마. ” “ ? ” “ 중국에 가지마. ” “ ‥표 다 예약했어요. 내일 아침 비행기라서 가봐야해요. 미안해요. ” 취했다. 태환형은 엄청나게 취했다. 그렇게 생각을 하며 손목을 잡은 손을 떼어놓고 돌아서서 계단을 내려가려는데 이번에는 뒤에서 달려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등 뒤로 팔이 쑥 뻗어와 내 몸을 가뒀다. 휘청이다가 벽난간을 붙잡고 똑바로 섰다. “ 놔주세요. ” “ 가지말라니까. ” “ 장난해요? ” “ … ” “ 놔주세요. 힘들어요. ” “ 뭐가 힘든데? ” “ 이러는거 힘들다구요. ” “ 너 나 좋아하는거 아냐? ” “ … ” 태환형의 입에서는 절대 듣고싶지않았던 말이 결국엔 튀어나왔다. 입술이 하얗게 질릴만큼 꽉 깨물었더니 비릿한 피맛이 입안에 느껴지는거 같았다. 손을 떼놓으려하자 나를 안아가둔 단단한 팔이 작게 떨려왔다. “ 나 미워하지마. ” “ … ” “ 갑자기 그렇게 쌀쌀맞게 굴지마. ” “ 그러니까 정리를 하고 돌아올‥ ” “ 정리하지마. ” “ ‥뭐를요. ” “ 그냥 그렇게 좋아해줘. ” “ … ” “ 모른척 해주길 바라면 모른척해줄게. 그냥 그렇게 좋아해줘. ” “ …대체 ” “ 가지마. ” “ 대체 내가 어떻게하길 바라는거에요, 형은? ” 울컥하고 뭔가 올라와서 손을 풀게하고 뒤돌아서서 마주보았다. 형의 눈가도 내 눈가처럼 촉촉히 젖어있었다. 나를 가지고 노는거냐고 나는 화를 내었다. 그냥 화가났다. 나는 감정표현에 서툴렀고, 그런만큼 내 감정이 들어났을때 수치심이 너무나 컸다. 그게 나에게는 상처가 되었는데 정작 형은 아무말도 하지않았었다. 그래서 더 상처가 컸다. 내가 좋아하는걸 알면서도 형은 나에게 친절하게 대해줬었다. 그건 뭘 위한 친절인지 너무 헷갈렸다. 단순히 내가 자신을 좋아하니까 잘해준건지, 아니면 약올리려고 잘해준건지. 머리가 너무 아팠다. 태환의 어깨를 감싸쥐고 형을 좋아하는 내가 너무 싫다고 소리쳤다. “ 형이 싫은게 아니라, 이러는 내가 싫다구요. 알아들어요? ” “ 한국말. ” “ …? ” “ 많이 늘었네. ” 따뜻하고 말캉한 뭔가가 느껴졌다. 눈을 동그랗게 뜨자 태환형의 긴 속눈썹이 보였다. 맞닿은 코 덕분에 숨결이 아주 가깝게 느껴졌다. 아니, 형이 아주 가까이에 있었다. 맞닿은 입술이 떨어지는 시간은 길지않았다. 떨어지는 그 순간이 모두 슬로우 모션처럼 느껴졌다. “ 내가 잘못했어. 그냥‥ 그렇게 순수하게 나를 좋아해주는 니가 좋았어. ” “ … ” “ 이용한거일수도 있어. 사랑받고 싶었으니까. 외로워서, 항상 외로워했으니까. ” “ … ” “ 다만 니 마음이 커지는게 느껴질수록 해줄 수 있는게 없어서, 미안해서. 그게 미안해서‥ ” “ 태환‥ ” “ 현승이형 잘못이 아니야. 내가 그렇게 말해달라고 했어. 니 감정을 솔직하게 말했으면 해서. ” “ … ” “ 니가 이렇게 화 낼줄은 몰랐다‥ 절대로 화나게 하려고 한건 아니였는데. ” 가까이에 있던 형의 얼굴이 푹 땅으로 숙여졌다. 고운 어깨가 떨리는거로 봐서는 우는 모양이였다. 어깨를 잡고 있던 손을 들어서 태환의 턱을 움켜쥐고 고개를 들게해 시선을 마주했다. 울지마. 울지마요. 그렇게 속삭이며 형이 닿았다 떨어진 입술에 이번엔 내가 먼저 입술을 포개었다. 부드러운 태환의 입술이 까칠한 내 입술을 보듬어주는거 같아서 좋았다. 닿은 입술 끝이 따끔거릴만큼 그 순간이 짜릿했다. 고개를 비틀어 입술사이에 숨을 조금 불어넣었더니 금새 입술이 벌어져왔다. 혀를 조금 빼내어 벌어진 입술 사이를 조심스럽게 톡톡 건드렸더니 어깨가 작게 움찔거리는게 느껴졌다. 최후 통보였다. 밀어내지않고 턱을 감싸쥔 내 손을 꽉 잡아오는 느낌에 입술 사이에서 머물던 혀로 아랫입술을 살짝 누르며 안으로 밀고 들어갔다. 입안에서 굳어있는 혀를 옭아매였더니 음- 하는 작은 비음이 귓가를 간지럽혔다. “ … ” “ … ” 느릿하게 부드럽게 그렇게 태환의 입술을 탐했다. 벅차오르는 숨에 천천히 입술을 떼었더니 은색실이 길게 늘어졌다가 끊겼다. 타액에 축축히 젖어 부은 입술이 그렇게 야해보일수 없었다. 천천히 감았다 뜨는 그 눈이 그렇게 야릇해보일수 없었다. 나는 또 그렇게 아무말도 못하고 멍하게 서있었다. 사태파악이 안되서 사고회로가 정지되어있었다. 그렇게 우뚝 서있는 내 손목을 잡아 작은 옥탑방 안으로 이끈건 태환형이였다. 아직 데워지지않아 차가운 방바닥에 앉으니 내 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는게 느껴졌다. “ 쑨양. ” 내가 술을 먹은건가 하고 헷갈릴정도로 정신이 아득했다. 고개를 들어보니 물컵을 손에 쥔 태환형이 보였다. 시선을 마주한채 눈을 깜빡거렸더니 태환형이 예쁘게 웃어왔다. 이젠 울지않는다. 그게 또 안심되어서 긴장되었던 몸이 살짝 풀어졌다. “ 니가 더 그렇게 부끄러워하면 어떻게해. ” “ 에? ” “ 얼굴 터질거같아 너. ” 손을 올려 뺨을 만져보았더니 열병에 앓는 사람마냥 뜨거웠다. 그 사실을 인지하고나서 몰아치는 창피함에 고개를 다시 푸욱 숙였더니 태환형이 다가와 내 모자를 벗겨내고는 머리를 쓸어주었다. 자신의 손에 들고있던 물컵을 건내주었다. 마침 목이 타들어갈거만 같아서 물을 허겁지겁 들이켰더니 형은 웃으며 또 다시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 쑨양, 여자 많이 만나봤구나. ” “ 에? ” 내 앞에 마주앉은 태환형이 재밌다는듯 목소리 톤을 올리며 말을했다. 여전히 나는 고개를 숙인채 들 수 없었다. 어쩐지 태환형이 여태까지 취한척 한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 한두번 해본 실력이 아닌거 같은데. ” “ 으음… ” 아까전의 일이 떠올라서 또다시 열이 올랐다. 이번엔 귀 끝까지 뜨거운걸 보아, 분명 귀도 빨갛게 물들었을거다. 손을 들어 얼굴을 문질거렸더니 앞에 앉은 형이 또 키득거리며 웃었다. “ 헤어졌어. ” “ … ” “ 사실 몇번 봤어, 다른 남자랑 있는거. ” 무릎을 세워 끌어안은 형은 시선을 내려 바닥만 바라봤다. 그런 형의 어깨가 너무 축쳐져서 안쓰러웠다. 그 여자는 어땠는지 몰라도 태환형은 정말 진심을 다해서 그 여자를 사랑했었다. 누구나 다 그 여자가 자신이였으면 할 정도로 사랑에 충실한 사람이였다. “ 그래도 나를 봐줬으니까, 사랑이라 믿었어. 근데 너를 보면서 알았어. ” “ ‥뭘요? ” “ 정말 사랑한다면 한사람밖에 안본다는거, 그게 맞다는거. ” “ … ” “ 그러니까 ” “ ? ” “ 계속 그렇게 나만 봐줘. ” 고개를 드니 어느새 태환형은 내 앞에 다가와있었다. 팔을 뻗어 내 얼굴을 자신의 품에 가져가 꼭 감싸안았다. 귓가에 두근거리는 심장고동소리가 들려왔다. “ 욕심쟁이네요. ” “ 너무 오래 외로워서,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욕심나게 되거든. ” 묵묵히 형의 품에 안겨있다가 팔을 잡아당겨 허벅지에 머리를 뉘어주었더니 형이 고개를 기우리며 눈을 깜빡거렸다. 자고 일어나서, 술깨면. 이라고 말하자 뭐를? 이라고 다시 물어왔고 대답을 해주지않고 작게 웃었다. 그렇게 토닥거려주었더니 형은 금새 잠들었다. 술을 먹으면 사람은 용감해진다. 대신 너무 쓸데없는 말을 많이해서 문제가 될 뿐이지. “ 으음… ” “ … ” 벽에 등을 기대고 있다가 꼼지락 거리는 느낌에 시선을 내려다보았더니 잠에서 깬 태환형이 눈을 비비고 있었다. 손을 올려 헝클어진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주었더니 시선을 도로록 굴려 나를 올려다봤다. 그 눈이 조금 놀랜듯 보였지만 말없이 작게 웃어주었다. “ 잘잤어요? ” “ …쑨양, 밤새 이러고 있었어? ” “ 자고 일어나면 꼭 물어보고 싶은게 있었거든요. ” “ 어? 뭔데? ” 몸을 일으키려는 형의 몸을 살짝 눌러서 다시 눕혔다. 그 행동에 미간을 꿈틀이며 다시 시선만 들어올려다봤다. 고개를 조금 숙이자 얼굴이 금새 가까워졌다. “ 내가‥ ” “ …? ” “ 내가 진짜 ” 울컥울컥 자꾸 속에서 뭔가가 올라와서 마른침을 넘겨삼켰다. “ 내가 진짜 태환형을 계속 사랑해도 돼요? ” 그 말을 뒤로 하고 툭하고 눈물이 떨어졌다. 그냥 감정이 너무 벅차올랐던거 같다. 태환형의 시선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몸을 일으키며 팔을 뻗어 내 눈가를 엄지손가락으로 슥 쓸어주었다. 그리고 눈물이 흘렀던 자리에 입술을 가져다대어 쪽소리를 내어 입을 맞춰주었다. “ 응. ‥응. 그래도돼. 그렇게해줘. ” 술기운이 아닌 맨정신으로 듣고싶었다.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서 밤새 뜬 눈으로 지새우며 차라리 그냥 도망갈까 그렇게 고민하고 있었다. 형의 입에서 나온 허락에 눈은 울면서 입은 웃었다. 그런 나를 형은 다정하게 안아주었다. 안고서 좋아해줘서 고맙다고 그렇게 등을 토닥거려주었다. 사실 매번 너무 미안했다. 같은 남자로서 내가 형을 좋아한다는게 너무 미안했다. 남들이 그걸 다 알고있었다고 할때도 같은 남자가 좋아하는걸 알았을때 얼마나 기분 나빴을까하고 생각이들어 또 미안했었다. 그 모든 걱정들이 형의 고맙다는 한마디에 사르륵 녹아내렸다. 꽁꽁 얼었던 마음이 녹아내리는 기분이였다. “ 중국행 티켓, 날렸으니까 책임져요. ” “ 어? ” “ 책임져요. ” “ ‥뭘 어떻게? ” “ 일단 나 좀 자고. ” 단호한 얼굴로 그렇게 말을 한 나는 쿵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그대로 쓰러져 잠들었다. 당황한 태환형은 몇번 흔들어 깨우다가 새근- 거리는 숨소리에 그 행동을 멈추고 가만히보며 웃다가 이불을 덮어주었다. 그때 나는 절대로 밤새는건 못한다는걸 깨달았다. 사실 나는 아직도 잠들었던 그 순간이 기억나지않는다. 이런걸보면 그때 얼마나 내가 피곤해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렇게 태환형은 그날 내가 일어나기 전까지 분주히 집안을 돌아다녔다고 했다. 눈을 떴을때 바로 먹을 수 있게 밥상을 차려두었다. 눈뜨지말자 무슨 밥이냐며 투덜거리는 내게 형은 몇일새에 너무 말라서 걱정된다고 하나도 남김없이 다 먹으라는 명령아닌 명령을 내렸고, 그 날 나는 정말 한끼를 세끼처럼 먹어야했다. 그래도 맛있었다. ** “ 쑨양, 어디가? ” 냉장고를 열어보다가 외투를 걸치니 방에서 내 휴대폰을 가지고 놀던 태환형이 한걸음에 달려나와 손목을 붙잡았다. 옷을 입다 말고 고개를 돌려 태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장보고 올게요. 라고 말했더니 방으로 들어가 부스럭 거리다 자신도 외투를 입고 나왔다. “ 나도 갈래. ” “ 밖에 추워. 그냥 기다리고 있어요. ” “ 갈래. 아이스크림 사달라고 안할게. ” “ 추운데도? ” “ 갈거야. ” 태환은 예나지금이나 추운걸 굉장히 싫어했다. 그렇게 추운걸 싫어하면서 이 옥탑방에 어떻게 살았냐고 했더니 안그래도 한겨울에 가끔 너무 추워서 집에서 혼자 쭈그리고 누워서 울때가 많았다고 했었다. 지금 밖은 눈이 내려도 이상하지 않을정도로 추웠다. 그래서 태환이 걱정되어 시선만 굴리다가 장농에서 목도리를 하나 꺼냈다. 태환형의 예전 여자친구가 선물해주었던 목도리였다. 마음에 들지않아서 계속 버리라고 했지만 형은 아무리 끝이 안좋았어도 추억은 버리는게 아니라며 매년 겨울 이 목도리를 했었다. “ 목 간질거리는데‥ ” “ 그래도 해야돼요. 추워. ” “ 응‥ ” 빨간색의 고운 목도리를 목에 칭칭 감아주었더니 처음엔 간지럽다며 바둥거리다가 밖으로 나오니 얼굴을 푹 뭍은채 눈만 빼꼼히 내밀고 있었다. 그거 봐요, 추울거라고 했지? 랬더니 시선을 피해버렸다. 작게 웃으며 행여나 놓칠까봐 형의 손을 꼬옥 잡고 마트로 향했다. 처음 마트에 왔을때 나는 굉장히 낯설었다. 요리라고는 할 줄도 모르며, 장은 항상 형이 봐와서 음식을 해줬기 때문에 처음엔 쓸데없는거도 굉장히 많이 샀었다. “ 아이스크림! ” “ 안먹는다면서요? ” “ … ” 입술을 삐죽 내민채 카트를 밀며 태환은 두리번 거렸다. 사실 여전히 나는 요리를 못한다. 이건 타고난건지 분명 예전에 꽤 많은 요리를 형에게 배웠는데, 맛이 형편이 없었다. 그래서 아주 간단하게, 정말 요리를 못해도 할 수 있는 볶음밥 종류만 조금 할 줄 알았다. 다행히 태환은 그런것들만 해주어도 불만 없이 잘 먹었다. 그런 모습은 기억을 잃기전과 같았다. 아무리 요리가 형편없어도 태환은 웃으며 다 먹어주었다. “ 오늘은 집에서 밥할꺼야? ” “ 응. ” “ 뭐할건데? 나 햄 먹고싶어. ” 시선을 굴리며 재료들을 보다가 오늘은 햄야채볶음밥을 해야겠다고 결정했다. 야채 몇가지를 집어서 카트에 담았더니 다시 태환이 빼서 제자리에 올려놓았다. 그걸 모르고 가다가 문득 텅비어있는 카트를 보며 고개를 기우리고 그를 보니 딴청을 피우며 흥얼거리고 있었다. 다시 야채를 담고 가다가 돌아보니 또 카트가 비어있었다. “ 형, 뭐하는거에요. ” “ 내가 뭘? ” “ 왜 자꾸 다시 갖다놔요. ” “ 안그랬어! ” “ …태환. ” 사뭇 진지한 얼굴로 보았더니 금새 표정을 뾰루퉁하게 바꾸며 시선을 내렸다가 가져다 놓았던 야채를 다시 카트에 담았다. 댓발 튀어나오는 입으로는 야채 맛없는데‥라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작게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더니 또 금새 풀어져서 야채 쪼끔만 넣고 햄 많이 넣자! 라며 웃어보였다. 알았다고 말하며 마저 물건을 고르고, 계산을 한 후 한손에 봉지를 들고, 다른 손엔 다시 손을 맞잡았다. “ 쑨양. ” “ 응? ” “ 이젠 안아파? ” 내 손을 꼭 잡은채 고개를 돌려 나를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기억을 잃어도 여전히 다정했다. 그런 모습들이 더 슬프기도 했지만, 다행이기도했다. 너무 변하면 내가 더 힘들어질테니까. 애써 그렇게 자기를 위로했다. 안아파, 라고 대답하자 다행이다. 라며 베시시 웃었다. “ 태환. ” “ 응? ” “ 내가 누구라구요? ” “ 쑨양! ” “ 나이는 기억해요? ” “ 음‥ 이‥ 이… 이십오! ” “ 스물다섯이라고 해야죠. ” “ 아, 맞다. ” 태환은 자신의 머리를 콩때리며 베시시 웃었다. 그래도 잘했다며 칭찬을 해주고 머리맡에 짧게 입맞춰 주었더니 형은 고개를 치켜 들며 입술을 오리주둥이 마냥 삐죽 내밀었다. 고개를 기우리고 바라봤더니 눈을 살짝 감으며 콩콩 뛰었다. “ 뽀뽀- ” “ 응? ‘ “ 뽀뽀! ” “ 왜 갑자기? ” “ 아, 머리에 말고 입술에 해줘! ” 시선만 내려서 보다가 삐죽 내민 입술 위로 짧게 쪽하고 입술을 대었다 땠더니, 금새 또 베실베실 웃으며 태환은 뺨을 붉게 물들였다. 잡은 손이 시려울까 주머니에 넣고서 걸었다. 여전히 기분이 들떠있는 태환을 보다가 작게 웃으며 물었다. “ 좋아요? ” “ 응? ” “ 그렇게 좋아요? ” “ 응. 좋아. ” “ 뭐가 그렇게 좋아요? 뽀뽀? ” “ 아니아니. ” 그럼요? 하고 물었더니 태환은 고개를 돌려 나를 빤히 보다가 쑨양이 좋아요- 하고 작게 말하더니 소리내어 웃으며 손을 놓고 먼저 뛰어서 옥탑방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라갔다. 멀뚱히 마트 봉지를 들고서서 올라간 태환을 바라보다가 괜히 헛웃음이 나와서 뒷목을 긁적이며 따라서 천천히 계단을 올라갔다. 잠시 고장난 머리와는 달리 그 마음만은 그대로였었다. 다행이다. 다행이다. 나는 하루에도 수십번씩 그렇게 생각했다. 그 마음마저 잊는다면 어떻게 될까, 그런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쑨양, 추워 얼른 들어와! 라고 하며 문앞에 서서 재촉하는 태환을 보며 아직 일어나지않은 생각은 하지말자. 라고 다짐한채 따뜻한 우리의 보금 자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 쑨양, 중국이라는데 엄청 커? ” 그렇게 밥을 다먹고 태환은 이불 위에 누운채 발을 까딱거리며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고있었다. 태환이 고개를 슥 돌려서 할 일 없이 벽에 기대 앉아있는 나를 보더니 문득 질문을 던져왔다. “ 중국이요? ” “ 응. TV에서 봤는데 중국은 엄~청 크다고했어. ” “ 음, 여기 입장에서 본다면 크죠. ” “ 그럼 쑨양 집도 커? ” “ 그거랑 그건 좀 다른데… 여기보단 커. ” “ 그래서 쑨양도 커? ” “ 응? ” “ 쑨양도 이만큼 크잖아. ” “ …글쎄요. 중국에도 작은 사람은 많아요. ” “ 나도 이만큼 컸으면 좋겠다. ” “ 형도 작은 키는 아니에요. 내가 유달리 큰거지. ” “ 진짜? ” “ 왜요? ” 게임을 하다가 죽은건지 미간을 찌푸리며 툴툴거리던 태환은 폰을 내려놓고 똑바로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나를 보더니 입꼬리를 올려 웃어보였다. “ 나도 크면 쑨양 아플때 지켜줄 수 있지 않을까? ” “ … ” “ 아프면 죽을 해주면 된데, 근데 나는 못하잖아. 그런거 잘하고싶어. ” “ 잘해요. ” “ 응? ” “ 하는 방법을 잊은거지 잘해요. ” “ 정말? ” “ 내가 아플때 많이 해줬어요, 죽. ” “ 근데 왜 지금은 못해? ” “ 다칠까봐. ” “ 응? ” 곁에 다가가 태환의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주었더니 눈을 천천히 감았다가 떴다. 한번 요리를 한다며 부엌에서 얼쩡거리던 태환은 뜨거운 냄비에 크게 대였던 적이 있었다. 그 후 나는 태환에게 부엌은 절대 가지말라며 신신당부를 했었고, 화를 내는 모습에 겁을 먹은 태환은 부엌에 발을 들이지 않았다. “ 태환이 다치면 내가 아파. ” “ …아파? ” “ 응. ” “ 쑨양 아프면 요리 안할게… ” “ 아무것도 안해도 돼요. ” “ 그치만‥ ” “ 그냥 이렇게 아프지말고 웃어요. 웃는게 예뻐. ” “ 예쁘다는 말은 여자한테 하는건데‥ ” 입술을 삐죽 내밀며 그렇게 말하는 태환을 보다가 문득 옛날 일이 떠올라서 피식 웃었다. 머리를 쓸어주며 내일은 중국에 갈 준비를 해야해서 바쁠테니까 일찍 자라며 토닥여주었더니 응, 한판만 더하고! 라며 폰을 들더니 다시 게임에 집중했다. 태환은 예전부터 뭔가에 한번 빠지면 다 끝날때까지 집착을 하는 타입인지라 그냥 가만히 두었더니 이내 폰을 손에 쥔채 잠이 들어있었다. “ 음‥ 잠이 너무 늘었네. ” 부쩍 약해지는 태환의 체력에 왠지 초조해져서 중국에 갔다오면 매일매일 산책이라도 시켜서 체력을 키워줘야겠다고 느꼈다. 폰을 손에서 빼내고 이불을 푹 덮어주었더니 뒤척이다가 다시 깊게 잠들었다. 내일은 병원에 들려서 혹시나 갑작스레 공황장애가 오면 먹야야할 약들과, 준비해뒀던 여권을 받아야하고, 작지만 짐을 싸야하니 나도 일찍자야겠다 생각이 들어 불을 끄고 옆에 누워 오지않는 잠을 청했다. “ 쑨양, 쑨양. ” “ 응‥, 왜요? ” “ 쑨양, 괜찮아? ” “ 뭐가요‥ ” “ 쑨양, 이마 뜨거워. ” “ 아파요? ” “ 아니, 나 말고 쑨양 이마. ” 떠지지않는 눈을 힘겹게 떴더니 걱정스레 내려다보고 있는 태환의 얼굴이 보였다. 내 이마가 뜨겁다고? 손을 들어 이마를 짚어보니 정말 뜨끈뜨끈한 열기와 축축한 식은땀이 느껴졌다. “ 쑨양 아파? ” “ ‥아니, 안아파요. ” 왜 갑자기 열이 나는지 알 수 없었지만 머리가 띵한거 빼곤 아픈데가 없었다. 몸을 일으켜 앉으니 생각보다 온 몸이 식은땀으로 젖어있었다. 쑨양, 약먹어. 라며 태환은 약통 하나를 내밀었다. 그건 태환이 아플때 먹는 약이라고 말을 해주며 약통을 내려놓았다. “ 이렇게 약이 많은데 쑨양꺼 없어? ” 태환은 내가 자는 사이에 찬장 안에 들어있던 약통을 모두 가져온건지 수많은 약통을 손으로 가리키며 울상을 지었다. 애석하게도 저 약들은 전부 형이 먹어야할 약들이였다.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나는 괜찮다고 형을 달래주었다. “ 병원가‥ 쑨양 아프지마. ” “ 안아프대두요. 어차피 병원갈거니까 걱정하지마요. 잘잤어요? ” 흐트러진 형의 옷가지를 정리해주며 물었더니 또 아프지말라며 징징거려왔다. 요즘들어서 징징거리는 횟수가 잦아들고 있었다. 병원에서는 기억을 잃으며 감정조절에 문제가 생긴거라 했지만 일시적인거라 곧 다시 감정선에는 안정을 찾을거라 했다. 한숨을 쉬며 팔을 뻗어 끌어안아 등을 토닥거려주었다. “ 나때문에 아파? ” “ ‥아니에요. ” “ 내가 바보라서? ” “ … ” “ 그래서 그런거지? ” “ 태환. ” “ 미안해‥ ” 어떻게 기억을 잃어도 미안하단 말은 안 잊는지 궁금했다. 형의 미안하다는 말을 들을때면 가슴이 먹먹해져와서 답답했다. 끌어안은 팔에 힘을 주었더니 태환이 다시 한번 미안하다고 말해왔다. “ 미안해요? ” “ 응‥ ” “ 그럼 나도 뽀뽀해줘요. ” “ 응? ” “ 그러면 안 아플거같아. ” “ 진짜? ” “ 응. ” “ 알았어‥ ” 태환은 고개를 들어 내 입술 위로 쪽소리를 내며 입을 맞춰왔다. 눈을 감으며 작게 웃었더니, 앞으로 아프지말라고 미리해주는 거라더니 참새마냥 쪽쪽쪽 거리며 계속 입을 맞췄다. 키득거리며 허릴 감싸안아 태환의 입가에도 입을 맞춰주었다. 나는 안아픈데? 라며 고개를 뒤로 빼기에 좋아서 그래요. 라며 따라가 다시 입을 맞춰주었다. 그걸 본 태환은 아프면 쑨양 싫어. 라고 하며 툴툴댔다. “ 나 정말 안아파. ” “ 진짜? ” “ 내가 아프면 누가 형 지켜요, 그렇지? ” “ 나 안지켜줘도 되는데‥ ” 말을 하고 아차, 싶어서 시선을 굴렸다. 혹시나 태환의 자존심에 상처받을 까봐 고민을 하다가 그냥 끌어안고 품에 얼굴을 뭍었다. “ 알아요, 안지켜줘도 되는거. 근데 내가 지켜주고싶어서 그래. ” “ 아냐, 나 안지켜줘도 돼. ” “ 그럼? ” “ 그냥 옆에 있어주면 돼. ” 그렇게 말을 한 태환형은 품에 기대있는 나를 꽉 안아주었다. 그 말에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바라보았더니. 예전 그 모습처럼 작게 미소지으며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 형? ” “ 아프지마. ” 놀란듯한 내 얼굴을 부드럽게 쓸어주며 이마에 입을 맞춰주었다. 잠시 그렇게 있다가 차오르는 눈물에 고개를 푹 숙였다. 가끔씩 이렇게 예고없이 찾아오는 예전 모습들은 나를 더 힘들게 했다. 차라리 모든걸 잊었다면 좋을텐데, 그렇게 생각하며 터져나오는 눈물을 막으려 애썼다. “ 쑨양, 울어? ” “ 안울어. ” “ 아파? ” “ 안아파. ” 한참 그렇게 태환의 다정한 손길에 몸을 맡긴채 눈을 감고 있었다. 점심무렵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할 일을 하기위해 씻고 나갈 준비를 끝냈다. 그때 마침 현승이형에게 전화가 왔다. 태환을 힐끗 보다가 화장실로 들어가 전화를 받았다. 삼십분후에 전에 만났던 그곳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다. “ 쑨양, 나도 가? ” “ 어‥ 아니. 오늘은 나 혼자 갔다올게요. ” “ 왜? ” “ 음, 형은 집에서 여기 이가방에 들고가고 싶은거 넣어놔요. ” “ 여기에만? ” “ 응, 꼭 필요한거만 넣어요. ” “ 응. 알았어. ” “ 보일러 버튼 누르지말고 있어요. 이거 누르면 추워져. ” “ 올때 아이스크림 사와. ” “ 감기걸려요. ” “ 아, 먹고싶단 말이야. ” “ ‥알았어요. ” “ 빨리와야돼. ” “ 알았대두요. ” “ 금방 올거지? ” “ 태환. ” “ ‥혼자 있기 싫단말이야. ” 신발을 신고 일어나서 한숨을 쉬며 태환의 머리를 쓸어주었더니 슥 고개를 들어서 시선을 마주쳤다. 빨리 갔다올게요. 저기 시계 보이죠? 라고 했더니 시계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 지금 12시니까 저기 큰 바늘이 2에 가기전에 올게요. 태환이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이랑, 토스트도 사올테니까. 배고파도 기다리고 있어요. ” “ 토스트? ” “ 응, 두개 사올게요. ” “ 세개! ” “ 많이 먹으면 배 아파요. ” “ 아니야, 하나는 쑨양꺼야. ”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을 보다가 웃으며 알았다고 대답하고 집을 나섰다. 빨리 다녀와 라며 계단을 내려가는 순간에도 태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웃으며 집을 나왔지만 현승이형을 만날 생각에 금새 표정이 굳어졌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을 해야할까 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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팊.
이번에 다음편은 조금 빨리! 여태까지 느그적느그적 거렸더니
ㅋㅋㅋ너무 나태해지는거 같아서 오늘은 하루종일 집에 있었던터라
죽죽 써내려갔어요! 3화내내 슬픈 내용 아픈 내용이라 조금 달달하게
써보려고 노력했는데 저는 달달한건 여전히 잘 못쓰네욬ㅋㅋ슬픈거도 못쓰고ㅠㅜ
그래도 여러분들의 응원에 힘입어서 오늘도 한자한자 열심히 써내려갑미다!
항상 응원은 너무 감사합니다 ㅠㅜ 댓글 안다시고 그냥 읽어만 주시는
독자분들게도 감사드립니다 *^^* 추운데 감기 조심하세요! 행쇼!!!!
| 암호닉S2 빠지신분은 말씀해주시면 다시 추가할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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