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PIN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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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였어
윗집은 며칠 째 공사중이었다. 하루 이틀이면 끝나는 공사라고, 양해 부탁합니다 ^^ 하는 안내문을 일주일 전에 본 것 같은데. 끝날 기미는 커녕, 집 안에 시계가 없는 건지 공사하는 아저씨들은 아홉 시가 다 되어가는 이 시간에도 쿵쾅거리고 있다. 윗 댁에 시계 하나 놔 드려야겠어요. 빡치는 마음을 다스리며 귀에 꽂은 이어폰 소리를 크게 키워봐도... 이 놈의 공사는, 시간은 봐 가면서 해야 할 거 아니야. 하지만 윗 집을 찾아가봤자 얼굴 팔리기밖에 더 할까 싶고. 할 수 없이 모자만 푹 눌러쓰고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공동 현관을 나와서야 갈 데가 없다는 게 떠올랐다. 매니저 언니는 해외 출장을 갔고, 코디 언닌 오랜만에 남친을 만난댔고... 김태형은 보나마나 연습실에 있을 거고. 아, 씨. 김탄소 왜 이렇게 인간 관계 넓냐, 진짜. 그나마 갈 데는 회사 한 곳 뿐이었다.
아파트 단지를 조금 걸었는데도 괜히 신경이 쓰인다. 방금 지나간 학생에게서 찰칵, 하는 소리가 난 것 같기도 하고. 좀 떨어져 앞에 걷던 남자가 계속 뒤를 힐끔대는 것 같기도 하고. 이미 어두컴컴한 밤이지만, 너무 무방비 상태로 나온 것 같아 땅만 보고 걷는데 왠 핑크색 스니커즈가 보인다.
앞에 왠 남자가 불쑥 서 있다. 경계 가득한 눈으로 힐끔 올려다보니 빙그레 웃는다.
"저, 그 김탄소 아니에요? 맞죠?"
“아, 예... 아니고요. 사람 잘못 보셨습니다.”
화장은 고사하고, 입술 색도 없을 내 몰골에 고개를 푹 숙였다. 아이, 진짜. 인터넷에 또 퍼지겠지.
나 쌩얼 김탄소 봄!!! 존못!! 하고. 힛맨뱅한테 또 한소리 듣겠다.
“아닌데? 맞는데? 그, 탄소 씨 맞잖아요, 그쵸?”
“아, 아니라고요.”
근데 좀 이상한 사람 같다. 이 저녁에 무슨 선글라스를 끼고 있어. 얼굴 다 팔린 나도 밤에는 안 쓰는 걸.
“아니 저는요, 탄소씨. 그 뭐 사생팬 이런 게 아니고요. 그, 이번에 그 회사에...”
“예, 예! 저 김탄소 맞고요! 맞는데요, 제가 좀 바쁘네요~”
“그럼 이만~~~ 아디오스~~~!”
주차장 앞에서 옥신각신하는 게 지겨워서 코트 주머니 안에 넣었던 두 손을 쏜살같이 빼 큰 길 쪽으로 달렸다. 으하. 내가 이래봬도 아육대 50m 달리기 일등한 몸이라고. 혹시 쫓아올까 싶어서 뒤를 돌아보니 아, 저거 미친놈 아냐? 나를 쫓아 우다다 뛰어오는 게 너무 소름끼쳐서 차도 쪽을 봤다. 마침 빨간 빈 차 글씨를 걸고 저 멀리 달려오는 택시가 보인다. 아싸. 급하게 택시 뒷문을 열어 몸을 집어 던지곤 문을 팡 닫았다.
아저씨, 큰침 엔터 사옥 가주세요~!
진짜 별 이상한 놈이 다 있다. 차창 너머로 멀어지는 남자가 보인다. 꼴도 이상해. 무슨 모자부터 신발까지 핑크로 도배를 하냐. 지가 무슨 핑크 공주야?
*
아, 씨. 망했다. 너무 급하게 집을 나섰나. 분명히 챙긴 기억이 나는데... 핸드폰을 안 가져왔다. 그리고 핸드폰 케이스에 끼워 둔 내 카드도 함께...
“아가씨, 다 왔는데 안 내리고 뭐 해?”
“아, 저 기사님... 그게요... 제가 카드를 안 가지고 와서. ㅎㅎ;;;“
푹 눌러 쓴 모자를 슬며시 벗으며 웃었다.
“기사님, 저 아시죠~? 저 탄소에요 탄소~ 여기가 저희 사무실이거든요! 얼른 가서 카드 가지고 올게요! 죄송해요, 헤헤...”
“어~ 탄소! 탄소 알지! 우리 아들이 얼마나 환장하고 좋아하는데~! 어쩐지, 기획사 가달라는 게, 연예인인가 싶었지! 아가씨 싸인 한 장만 해 줄 수 있을까? 아니, 두 장! 두 장마안~!”
운전 내내 침묵을 고수하던 무뚝뚝한 택시 아저씨는 내 얼굴을 보곤 방언이 터진 것처럼 쏜살같이 말을 막, 내뿜기 시작했다. 아저씨. 되게 싸이퍼 잘 부르실 것 같네요, 허허.
“어유, 네. 네. 당연하죠.”
“한 장은 차에 붙여놓고, 한장은 아들내미 줘야지! 탄소 씨, 특별히 연예인 할인, 그냥 가!”
“아유, 아녜요! 아니 제가 올라갔다 올게요! 아뇨, 그래도 택시비는 내야죠~!”
아, 김탄소 자존심이 있지, 진짜. 어떻게 그냥 가냐. 돈은 내야지.
*
감사합니다, 기사님~! 복 받으실 거예요!
"그래~ 탄소 씨 파이팅!"
인심 좋게 웃어보이는 아저씨 얼굴.
이면지에 번창하세요! 와 함께 하트 열 개를 그리고 고개를 꾸벅 숙였다.
코트를 벗어 둔 채 진짜 사옥에 올라갔다 오려는 결심을 한 순간 생각났다. 카드랑 사원증이 같이 끼워져 있다는 거. 어디에? 폰 케이스에... 젠장. 젠장.
연예인 자존심 다 필요 없다.
간신히 택시비는 해결을 했는데, 이제 회사 들어가는 게 문제다. 사원증이 없으면 회사 출입문을 통과할 수가 없다. 그러게 평소에 사원증 좀 잘 챙기지 그랬냐는 매니저 언니 잔소리가 웅웅대는 것 같았다. 경비 아저씨는 퇴근하셨을 시간이고, 분명히 안에는 야근하시는 직원분이 계시겠지만...
나는 핸드폰이 없고... 전화를 할 수가 없고...
아. 어떡하지. 손톱만 잘근거리는데 길을 지나가던 사람들이 모여 수군거리는 소리가 커진다.
“야, 저거 김탄소 아니야? 그지, 김탄소. 김탄소 같은데?”
“사진 찍어달라 그럴까? 완전 쌩얼 아님?”
“그래도 찍어 줄 거 같음! 야, 가 보자!”
아, 진짜. 오늘 왜 이렇게 풀리는 일이 없냐. 뎬댱...
안 찍어줄 거임, 안 찍어줄 거임! 쌩얼임! 안 됨! 놉!
그 때였다. 주차장에 차 한대가 들어선 건. 깔끔하게 주차를 마친 차. 곧 운전석에서 익숙한 남자가 나온다.
어, 아까 그 핑크 공주!
뭐야, 여기 직원인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출입문 쪽으로 다가오는 남자는 날 아직 못 본 듯 했다.
“저, 저기요!”
“아, 저 진 아닙니다.”
“아뇨, 저...”
“아니라니까요. 죄송합니다. 저 바빠요.”
“아 뭐라는 거야. 저기요, 저 김탄소예요~ 아까 그 쪽이 그렇게 찾으셨던~!“
코트 주머니를 뒤적이던 남자는 잠시 멈칫 하더니 그제서야 나를 바라본다.
“어, 어! 탄소씨!”
“예, 안녕하세요... 우리 회사 직원이신 줄 몰랐네요.”
“아, 저요... 하하. 직원. 직원이죠, 뭐. 네.”
“빨리 들어가죠? 사람들이 많이 몰려서요.”
“아, 예... 저... 탄소 씨 혹시,”
“네...?”
“그, 사원증 있으세요? 제가 안 가지고 왔네요. 허허.”
미치겠다. 정말. 환장의 연속이다.
*
아, 쉬 마려.
눈을 뜨니 진짜 가관이었다. 어제 자기 전에 한 젓가락 먹고 남긴 컵라면, 굴러다니는 맥주캔, 악취를 풍기는 과자 봉지들. 발 딛을 틈도 없이 더러운 작업실에 화장실을 갈 수도 없었다.
그렇지만 제일 가관인 건, 옆에서 눈 감고 주무시는 민윤기.
것도 지 혼자만 담요 덮고 있는... (부들부들)
재수 없어, 진짜.
차마 민윤기를 깨워서 같이 치우지는 못하고 (무서움) 주섬주섬 쓰레기를 줍기 시작했다. 일어나자마자 눈곱도 못 떼고 이래야 하냐. 도저히 내 삶=인간의 삶...? 괜히 어제 일만 떠오른다.
나도 사원증이 없다고 멋쩍게 말하자, 핑크공주는 잠시 고민의 시간을 가졌다. 이윽고 선글라스를 벗은 핑크공주는 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스킬을 시전했다. 어느 부서이신지는 모르겠지만, 선글라스를 벗으니 오, 좀 잘생겼네. 하는 생각을 0.01초 정도 했다. 차가 있는 걸 보니 연습생은 아닌 것 같은데. 새로 들어온 직원 분이신가. 아무튼, 회사 들어서자마자 뒤로 돌아 벽을 본 채로 안녕히 가세요, 하곤 도망 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 핑크 공주를 만나고 나서 일이 다 꼬이는 것 같아. 다신 보고 싶지 않다, 흥.
하지만, 핑크 공주의 저주는 아직 안 끝났나 봐. 연습실 구석에 담요를 덮고 자고 있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새벽에 민윤기가 대뜸 찾아왔다.
졸려 죽겠는데 작업실에 끌고 와서는, 비몽사몽 코드만 대충 짚다가 컵라면을 끓이고... 한 젓가락 먹고 잠든 것 같다. 아까워.
사실 지금 일부러 좀 시끄럽게 굴고 있는데. 쿵쾅쿵쾅 걸어다니고, 비운 쓰레기통을 탁, 내려 놓고. 근데 부스럭 대는 소리에도 잠만보 민윤기는 곤히 자고 있다.
아무튼, 난 오늘 스케줄이 없는 몸이니, 작업실에 하루 종일 눌러붙어 있을 계획이다. 민윤기가 하루 종일 자기 좀 도와 보라고 쿡쿡 찔러댈 게 훤하지만, 스케줄 가는 것 보다는 백 배 천 배 낫지! 야호. 신난다. 눈물난다. 행복해. 흥얼거리며 콧노래를 부르니 그제서야 눈을 뜬 민윤기가 잠긴 목소리로 말한다.
야, 물...
저걸 죽여 말아, 진짜. (부글부글)
손이 없냐 발이 없냐. 속으론 온갖 욕을 하면서도 입가에는 잔잔한 미소를 걸친 채 종이컵 하나를 뽑아 복도로 나가는 나다. (김탄소, 24세, 싱어송라이터 민윤기 시다바리)
그리고 복도에서 마주친 사람은,
어, 탄소씨! 좋은 아침입니닷!
아, 안녕하세요...
그, 핑크 공주였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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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였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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