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햇빛의 산물인듯 시원한 바람을 쉴 틈 없이 내뿜는 에어컨에도 불구하고 반의 땀으로 가득 찬 악취는 더욱 더 짙어져 갔다. 그 중 유일하게 그 무리에 속하지 않았던 인물이 있느냐 한다면 자철이었다. 흐트러짐이라곤 찾아 보긴 힘든 자철의 모습에 성용은 혀를 내둘렀다. 자철은 제 자신에게 있어서 철저했다.
자철은 알게 모르게 내성적인 면이 많았다. 자철은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진했다. 꽤 많은 날들 자철을 관찰한 끝에 성용이 내린 결론이었다.
자철은 마음의 상처가 있었다. 그리고 성용은 그를 보듬어 주고 싶었다. 어떠한 방식으로든.
요즘 부쩍 청용이 교실에 찾아오는 수가 늘었다. 한창 비가 올 지도 몰라 그런다 성용은 생각했다. 청용은 제 일부와도 같았다. 그 누구보다도 성용에게 청용은 소중한 존재였다. 성용은 최근 구자철이란 석자가 슬그머니 제 마음을 비집고 들어오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성용은 자철에게 내어준 제 마음 속 틈이 어떠한 뜻인지를 알지 못했다. 제 마음을 명확히 알아 내기에는 성용은 아직 더뎠다.
[기구/쌍용] 미도리빛 트라우마 4
w. 각계
청용은 여름철을 제일 싫어했다. 제 덕에 곤혹스러운 청용을 아련지 모르는지 비는 단 하루를 빼놓고 오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야말로 불청객이었다. 눅눅하고 츱츱한 공기가 청용의 주위를 멤돌았고 청용은 물 먹은 솜 마냥 움직일 힘 하나 없이 책상에 엎드려 있었다. 몸이 너무나도 노곤했다. 쉬지 않고 가던 성용의 반이란 명분도 청용의 몸 상태를 호전시켜 주지는 못했다. 그를 보다 못한 주영은 반에 얼굴 하나 내비치지도 않는 성용을 직접 찾아갔다.
"야 기성용."
자철과 노닥거리고 있는 모습을 본 주영은 기가 막혔다. 중학교 축구부 때부터 저희가 알아온 세월이 몇년이건만 그때부터 오로지 성용만 오매불망 쫓아다닌 청용이 나타나지 않음에도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전학생과 이야기를 하는 성용에게 내심 서운했다. 주영은 요즘 부쩍 청용이 더 가라 앉은 원인이 성용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그 몫엔 자철도 더하리라 생각했다.
"오늘 이청용은 아파 너 보러 올 힘도 없다는데 넌 신경도 안 쓰냐?"
"뭐? 청용이 아파? 어디가?"
하, 주영은 헛웃음을 내뱉었다. 비 오잖냐. 말을 덧붙였다.
성용의 동공은 예상치도 못한 소식이었는지 커져 있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지금껏 청용이 한번도 나타 나지 않았던 것을 인지한 모양인지 걱정스런 낯빛이 얼굴에 가득했다. 청용이 어떠냐는 질문은 끊임 없이 들려왔다. 자철은 그런 둘을 흘깃 주시했다. 새로운 인물에게 받는 낯설음보다 저 때문이 아닌 다른 일로 곤혹스러워 하는 성용의 표정이 낯설었다.
"반에 얼굴 하나 내비치지 않았으면서 이제 와 걱정은 들어?"
"야, 말투가 좀 그렇다?"
"매정한 새끼, 너 존나 변한 거 아냐?"
주영은 고갤 돌려 성용의 반을 나갔다. 주영의 뒤를 쫓으려던 성용은 수업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에도 불구하고 뛰쳐 나갔으나 이미 주영의 재빨리 계단을 올라가고 난 뒤였다. 4년간 서로를 알아오고 의지해온 청용과 성용의 곁에 늘 있었으며 청용의 속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주영이었기에 속이 씁쓸했다.
주영이 떠난 지는 한참이었고 수업을 하려 교실에 들어오는 선생의 발자국 소리가 점점 커졌지만 성용은 쉽게 제 자리로 들어가지 못했다. 성용은 늘 청용은 제 곁에 있었기에 무심코 청용을 잊고 있었던 것이었다. 변했다라는 단어마저도 생소했다. 성용은 망치로 뒷통수를 크게 얻어 맞은 기분이었다.
"야"
"…"
성용은 선생님의 잔소리에 제 자리에 앉았다. 반 아이들은 주영과 성용은 작은 다툼에 신경이 쓰이는지 멍하게 앉아 있는 성용을 힐끔 힐끔 주시했다. 덕분에 그 시선들을 같이 맛보는 자철이었다. 자철이 팔꿈치로 성용을 툭 쳐도 성용은 묵묵부답이었다. 자철은 당황했지만 곧 돌아오는 성용의 눈동자 덕에 그것도 잠시였다. 자철은 내밀었던 팔꿈치를 거두고 선생님 쪽을 바라보았다. 제가 성용에게 이러는 것은 다 저한테도 향하는 이 시선 때문이라 자철은 되뇌였다.
"수업 하잖아. 집중 좀 해."
"니가 할 말은 영 아닌 것 같은…, 아니다. 알았다 새꺄."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는데 너가 잘못한 건 맞는 것 같다."
가서 사과하거나 잘 챙겨줘봐.
자철은 그러곤 다시 엎드렸다. 아…, 자철은 갑자기 후회감이 들었다. 자신이 충고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뭔가 찝찝했다. 하지만 자철 역시 제 마음엔 더뎠기에 그 찝찝함과 후회감이 무엇인지 알아채리지 못했다.
"미쳤어, 성용이한테 뭐랬다고?"
"존나 변했다고 매정하다 하고 왔지. 너 아픈데 안 챙겨주냐고."
"씨발아 왜 너가 성용이한테 뭐라 해?!"
그럼 넌 그대로 가만히 냅두리?
주영의 짜증스러운 말에 청용은 조용해졌다.
가니깐 구자철인지 자절인지 걔하고 세상만사 모르고 놀고 있더라.
주영에게 날리려 쥐고 있던 주먹을 청용은 조용히 내렸다.
그런 청용의 모습을 본 주영은 안도하면서도 씁쓸했다. 처음 청용이 성용에게 가진 마음을 눈치채곤 잠시 거리를 가졌었지만 그간 청용과 알아왔던 세월이 그렇게 쉽게 끊을 것은 아니었고 그런 곳에 선입견이 없기에 쉽게 넘어간 주영이었다. 둘이 잘 되길 바라는 건 아니었지만, 친구인 청용이 마음 아파 하는 것을 보면 차라리 성용도 청용에 대한 마음을 받아주면 안 되냔 생각까지 들었다.
청용은 조용하고 묵묵히 제 자리로 걸어갔다. 걸어가는 걸음걸이가 무거웠다. 그렇게 자리에 앉으려던 찰나 성용이 청용의 반에 들어왔다.
"야, 이청용!"
"?"
"너 이 새끼, 아프다면 아프다 말을 할 것이지. 아침에 먼저 가 놓고 그걸 또 김주영 입으로 전해 듣게 해? 걱정 했잖아"
왜 자길 건드리냔 주영의 소리에 성용은 아까의 한이 남았는지 닥치라며 주영에게 쏘아 붙였다. 그에 발끈해 화나려던 주영은 갑작스레 성용에게 손목이 잡힌 청용을 보곤 조용해졌다. 성용은 청용의 손목을 쥐곤 교실 밖으로 나갔다. 어디로 가냐 물을 틈새도 없이 성용의 발걸음은 빨랐다.
성용에게 잡힌 손목이 뜨거웠다. 성용이 자신을 걱정 했다 말했다, 청용은 떨리는 제 심장 소리가 혹여나 성용에게 들리진 않을까 애꿎게 숨을 죽였다.
"서로 얼굴은 알지?"
"…"
손목이 잡힌 채로 끌고 온 청용은 자철과 마주했다. 둘이 친구 먹어라. 같이 다니게.
청용은 기가 막혔고 그것은 자철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서로의 면전 앞에 거절은 할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
입을 연 것은 청용이었다. 먼저 굽히고 들어가야만 했다. 아직 저는 자철에 대해 잘 몰랐다, 자철을 잘 구슬리면 되는 일이었다. 청용의 바람도, 성용의 마음도. 자철은 계속 답이 없었다. 그런 자철을 무시하고 성용은 의자를 끌고 와 청용을 앉혔다. 청용아 얘도 축구 존나 잘해.
성용이 주도하는 대화에 청용은 조금의 추임새와 맞장구를 덧붙였다. 난생 처음 불편하다 청용은 생각했다.
청용이 응시한 자철은 단 한번도 저를 보지 않았다. 비 오는 바깥이 눈에 들어왔다. 제가 아끼던 개가 차에 치여 죽던 날마냥 퍼붓는 비를 보며 청용은 자철을 빗대어 생각했다. 지독한 덫에 갇힌 쥐가 된 것만 같았다. 속이 답답했다.
… … ….
푸르른 녹음이 울긋불긋 물들어 가고 단조로움이 화려함으로 변하며 누구가의 마음도 성숙해질 계절이 이제 다가올 것이다. 한창 장마철이 쏟아지는 기간 청용은 난생 처음으로 제 트라우마를 독하게 이기려 다짐을 했다. 자철이 성용에게 마음을 여는 것이, 성용이 자철에게 마음을 갖는 것이 청용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얘기를 하면서도 계속 자철에게 향하는 성용의 시선, 청용에겐 눈길 하나 없이 흘깃 성용을 주시하며 그를 훑는 자철의 시선.
얽힌 실타래 속 이 미묘한 애정 전선을 차차 자세히 잡아 내기 시작한 청용이었다. 청용이 눈치를 채기 시작한 것은 비단 그것 뿐만이 아니었다, 종국엔 제가 홀로 남게 될 지도 모른다는 사실. 밀려 오는 미래의 상실감이 벌써부터 자신을 옥죄어 왔다.
불안했다. 청용은 자신이 이대로 경각심을 놓치고 있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떠오른 수면 위에 차차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 각계 |
우선 늦은 미도리빛에 죄송합니다 사실 미도리빛 트라우마는 제가 홧김에 즉흥적으로 쓴 소설이라 초반 하겠다는 의지를 다시 점검하고 스토리를 다잡을 부분이 조금 있었습니다ㅠㅠ. 나이가 굉장히(..) 어린 지라 책임감이 부족하지만 미도리빛은 끝까지 들고 나가려고 합니다ㅎㅎ 대략 미도리빛은 외전 포함 15편을 완결로 잡고 있습니다 하지만 요즘 나름 전개가 빨리 나가서 13편으로 확 줄 지도 모르겠네요 암호닉 신청해주신 기구쨔응님 시든나메코님 담님 궤변님 아이린님 냉면님 감사드리고 사랑해요ㅎㅎ!! 님들의 저의 원동력..ㅎㅎS2.. 그리고 지난번에 글잡 글 추천하는 글 덧글에 제 글 초성이 있어서 놀라고 뿌듯..ㅎㅎ정말 감사드려요 독자님들ㅠㅠ..무한 감동 늘 그려내고 싶은 이야기는 많은데 제 많이 부족한 필력으로 그려내지 못해 아쉽네요ㅜ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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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나잇 하는거 천박한거 아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