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구/쌍용] 미도리빛 트라우마 0
청용은 어렸을 적 키우던 강아지가 비 오던 날 차사고로 죽는 광경을 직접 목격한 이후로 유독 비 오는 날씨를 싫어했다. 하지만 고등학교의 굴곡이 심했던 청춘기를 겪고 날씨나 계절에 연연할 틈마저 좁혀졌다. 고된 취업란에 헤메다 안정적인 직업을 얻고 쌓인 피로를 푸는 첫 주말임에도 오늘은 여름이 다 가기 전 큰 물세례를 쏟아 부을 예정인지 비가 무척이나 많이 왔다. 예전만큼은 아니었지만 괜히 울적해진 청용은 성용에게 연락을 취했지만 성용에게도 답은 없었다.
성용은 청용이라면 껌뻑 죽는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답이 없는 게 이상하게 여기던 청용은 울리는 문자 소리에 곧장 휴대폰을 쥐곤 암호를 풀었다. 받을 만한 문자는 성용이 자신에게 보낼 답장밖에 없었다. 뭔가 꺼림직한 느낌이 가시질 않았지만, 이게 다 비가 오기 때문이라 짐작했다.
[집 앞이야]
평소의 성용과는 달리 간결한 문장이 담긴 문자였다. 괜히 긴장이 된 청용은 무슨 일인지 생각을 해봐도 딱히 무슨 큰 일이 일어날 일은 없었다. 청용은 그렇기에 하던 고민을 멈추고 곧장 집 앞으로 달려가 문을 열었다. 그 앞에는 우산도 들고 오지 않은 모양인지 흠뻑 젖은 성용의 모습이 있었다.
"지금 비 오는데 우산도 없이 왔어? 얼른 들어…"
"청용아."
"…"
"자철이 자살했대."
무겁게 내려앉은 성용의 목소리가 시끄러운 빗소리들을 가로질러 청용의 귓가에 안착했다. 뭐? 청용은 성용에게 다시 되물었지만 성용은 답 대신 입술을 꽉 깨물곤 바닥만을 내려 보았다. 다시는 들을 일 없으리라 생각했던 그 이름이 겨우 눌러 두었던 옛 기억과 함께 되살아나 돌아왔다. 청용은 순간 자신이 잘못 들은 건지 다시 생각했지만 성용이 자신에게 해 주었던 말은 자철의 소식을 전한 게 확실했다.
그제서야 상황 판단이 다 된 청용은 집 안으로 들어가려던 발걸음을 밖으로 나와 성용의 바로 앞으론 옮기곤 성용의 팔목을 쥐었다. 뭔가 위험했다. 청용은 촉도 눈치도 좋은 인물에 속하지는 않았지만 그동안의 직감들이 모두 성용을 잡으라 신호를 주고 있었다.
"서, 성용아. 우리 우선 들어가서 얘기하자. 응?"
"…"
"비 오잖아. 우선 들어와. 빨리, 어?"
답 대신 성용은 자신의 팔목을 잡은 청용의 손을 조심스레 떼어 놓았다. 제 자신도 입이 열리지 않는 다는듯 차가운 비에 맞아 시퍼래진 입술을 축이곤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 그만하자."
그러곤 성용이 자신이 타고 왔던 차를 향해 뒤돌았다. 청용은 비가 온다는 것도 차마 인식하지 못한 채 차가 떠날 때까지 움직이지 못했다.
자철에 대한 소식도 채 머릿속에서 정리하기 전에 자신이 절대 듣지 말아야 할 말을 들었다. 이게 꿈인가? 그러기엔 내리는 비 감촉이 너무나도 생생했다. 청용은 어릴 적 자신의 개를 잃었던 것처럼 큰 소리를 내며 울지는 못했지만 그 때보다 곱절로 제 심장을 도려낸 느낌이었다. 모든 것은 다 자철 때문이다. 청용은 되뇌였다. 자철이 다시 돌아와 제 모든 것을 가져 가려 하더래도 성용만은 절대 내어줄 수 없었다.
모든 시리즈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최신 글
위/아래글
공지사항

인스티즈앱
혜리 박보검한테 끌려가서 같이 러닝했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