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 [아무한테도 말 안 했지만, 항상 저건 등대라고 생각했어.]
문이 열리고 나온 인자한 얼굴의 여자는 변백현과 박찬열을 번갈아 보더니 서글서글한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변백현 박사님과 박찬열 박사님 맞으시죠? 일단 날이 추우니 들어오세요."
"실례하겠습니다."
고개를 꾸벅이며 안으로 들어서자 누가 가정집 아니랄까봐 거대한 저택과 다르게 깔끔하게 소소하게 꾸며져 있었다.
"금방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별 거 아닙니다. 누가 언제 죽는지는 저희라고 알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요. 환자분의 따님이신가요?"
"아뇨, 전 그냥 간병인입니다. 아, 그리고 제 아이들 크리스탈과 제시카에요."
고개를 끄덕이던 찬열은 기웃거리는 아이 두 명에게 해맑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물론 그 인사는 단호히 무시당했지만.
"워낙 저택이 숲 속 깊숙이 있어 출퇴근이 가능한 일이 아니니까요, 종인씨께서 저희 보고 여기서 살아도 된다고 하셨어요."
"아, 그 '종인' 이라는 분이 저희에게 의뢰하신 분인가요?"
"네, 지금 위층에서 주치의분이랑 같이 있으세요. 따라오시죠."
위층으로 올라가는 여자를 따라 기계를 들고 계단을 오르는 찬열이 한숨을 푹 쉬며 백현에게 "내 허리 나가면 우리 백현이 홍콩 보내긴 틀렸네." 하자
백현이 "정강이 또 맞고 싶어?" 하며 찬열을 노려봤다.
"그나저나 백현아, 지금 들리는 피아노 소리 꼬마애들이 치는 건가?"
"그런 거 같네, 꼬마애들치곤 실력이 대단한데?"
계단을 다 올라서자 여자가 "여기에요" 하고 한 방으로 들어섰다. 따라 문 안으로 들어서자 의자에 앉아있던 한 남자가 기다렸다는듯 앞으로 다가왔다.
아마도 백현과 찬열의 의뢰인인 '종인' 이라는 분의 주치의인듯했다.
"의식은 없습니다만, 지금 모습을 보면 끈질기게 살아 있으려 하는 게 보입니다. 시간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서둘러 주세요."
찬열과 백현은 서둘러 장비를 설치했다. 주치의의 말이 당황스러울 정도는 아니었다. 늘 찬열과 백현에게 의뢰하는 사람들은 얼마 안 가 영원히 못 보게 될 사람이 되곤 했으니까. 하지만 만에 하나 당황스러운 상황이 생길 수도 있었다. 의뢰가 끝나기도 전에 의뢰인이 떠나버리는 일. 그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 찬열과 백현은 장비 설치를 서두르고 있는 것이었다.
"정말 일반 가정 전력으로 충분한 건가요?"
"걱정하실 거 없습니다. 저흰 전문가니까요. 그나저나 환자의 상태는 어떤가요?"
"좋지 않아요. 기껏해야 이틀이죠."
"이틀, 시간은 충분하네요."
"꼭 종인씨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는 거, 맞으시죠?"
"노력하는 겁니다. 말하자면. 걱정마세요. 지금까진 매번 성공했으니까요. 정확히 이 분의 소원이 뭐였나요?"
"달이요."
"네?"
"달이요, 종인씨는 달에 가고 싶어 하셨어요."
"이 분 분명히 독특하신 분이셨겠네요, 하하."
"글쎄요, 하실 수 있으세요?"
"네, 뭐, 아마도요. 의뢰인에 대해 아시는 대로 다 말씀해주시겠습니까? 도움이 되거든요."
"아, 사실은 저도 많이 알지는 못해요. 종인씨는 괴짜였어요. 제가 여기서 일한 지 2년이나 되었지만, 그가 말하는 건 매우 드물었죠. 2년 전 그와 함께 지내던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고 하더군요. 전 딱 그 시기에 왔기에 자세한 건 잘 알지 못해요. 이게 답니다. 아마 집 주변을 돌아보시면 도움이 되는 걸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음, 그렇겠네요. 좋아, 박찬열 다녀와."
장비를 설치하고 있는 찬열에게 다녀오라고 손을 까딱까딱 흔드는 백현을 보고 찬열은 "참, 귀찮고 어려운 건 다 나 시킨다니까" 하고 투덜거리며 방문을 나섰다.
아래층으로 다시 내려오니 아직 피아노를 치고 있는 아이들이 보였다. 찬열은 그 둘에게 다가가 말을 건넸다.
"애들아, 너희 집 구조에 대해 잘 아니?"
대답 없이 '잘 알고 있지만 그래서 뭐 어쩌라고요?' 라는 표정으로 쳐다보는 애들에게 찬열은 웃으며 백현을 주려고 늘 가지고 다니던 사탕을 꺼내 들었다.
"이거 줄 테니 이곳저곳 안내 좀 해줄 수 있겠니? 아저씨가 급하게 여러 가지를 확인해봐야 하거든."
아이들은 찬열의 손에 들린 사탕에 눈을 반짝이며 "우리가 어디로 안내하면 되나요?" 하고 물어왔다.
찬열은 집을 두리번거리며 어디가 좋을까 고민하다 일단 다 돌아볼 테니 아무 곳이나 안내하라고 하며 사탕을 건넸다.
"그럼 지하로 가요! 지하에 재밌는 곳이 있어요!"
"크리스탈! 난 거기 싫단 말야!"
"얼마 전에 제시카가 서재에서 열쇠를 주었는데 그게 지하 열쇠였거든요! 그게 지금 저한테 있어요!"
"쉿! 우리 지하에 간 거 엄마가 알면 엄청 혼난다고!"
아이들의 순수한 대화 내용에 아빠 미소를 짓던 찬열은 "자, 그럼 지하로 가볼까?" 하고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둘 중 크리스탈이라는 아이는 신이 난듯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지하의 문이 있는 곳으로 찬열의 옷을 잡고 이끌었다.
이윽고 도착한 지하실 문 앞, 익숙한듯 문을 열고 먼저 들어선 크리스탈을 따라 들어간 지하는 '지하'라는 명칭이 안 어울리게 아늑한 곳이었다.
"여기가 지하실이에요! 여기서 제시카랑 저는 술래잡기를 하고 놀아요!"
지하실의 불을 켜고서 이것저것 조잘조잘 설명하는 크리스탈과 제시카를 보고 같이 물건을 뒤적거려보던 찬열은 문을 발견하고 크리스탈과 제시카를 불렀다.
"애들아 이 문은 뭐니?"
"아, 그거! 지하실 문이요!"
"여기가 지하가 아니었니?"
"지하의 지하요. 거긴 저희도 안 들어가 봐서 몰라요."
문을 열고 들어가 보려는 찬열을 보고 기대 가득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크리스탈과 크리스탈 뒤에 숨어 힐끗 쳐다보는 제시카를 뒤로하고 찬열은 지하의 지하라는 방으로 들어섰다.
"동굴에 들어온 거 같네."
안 그래도 동굴 목소리인 자신의 목소리가 울리는 방 안에서 찬열은 벽을 더듬어 불을 켰다.
기괴한 방의 모습이 찬열의 시야에 들어오자 괜스레 오소소 소름이 돋는 게 느껴져 팔을 문지르는 찬열이었다.
그 좁은 공간인 방 안엔 종이로 접은 토끼가 한가득 채워져 있고, 그 가운데 웬 인형이 하나 있었다. 종이 토끼 사이로 들어가 인형을 집어든 찬열은 혹시 모르니 챙겨가 봐야겠단 생각에 그 인형과 종이 토끼 하나를 집고 방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오자 반짝거리는 눈으로 "뭐가 있어요? 괴물이 있었나요?" 하고 물어오는 크리스탈에게 찬열은 "에비!" 하며 종이 토끼를 내밀었다. 깜짝 놀랄 줄 알았던 찬열의 예상가 다르게 시큰둥하게 "에이, 이게 뭐야." 하는 크리스탈에 찬열이 머쓱한듯 웃어 보였다.
"혹시 이 종이 토끼에 대해 아니?"
"그거 엄청 엄청 많은 곳이 있어요."
"맞아! 거기에 엄청 많아!"
"그래서 안 놀랬었구나."
"그건 못 봤어도 안 놀라요. 그냥 종이로 접은 토끼잖아요!"
"그래, 그러네, 이게 더 많은 곳이 있다니, 그게 어디니?"
"버려진 등대 안이요, 절벽 아래에 있어요. 가볼래요?"
"그럴까?"
또 신이 난듯 자신의 옷깃을 잡고 이끄는 크리스탈을 따라 도착한 절벽 아래의 버려진 등대.
'버려진' 이라는 명칭에 맞게 뭔가 싸늘한 분위기를 풍기는 등대에 발길이 꺼려지는 찬열이지만 후에 뭔가 좀 알아왔다고 칭찬하는 백현의 얼굴만 상상하며 등대 안으로 들어섰다. 뭔가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듯 조심조심한 찬열과 다르게 우당탕탕 등대의 꼭대기 층으로 향하는 아이 둘을 따라 꼭대기 층으로 뛰어 올라간 찬열은 아이들 말대로 지하의 지하에 있던 토끼보다 더 많은 엄청난 종이 토끼가 가득한 등대의 꼭대기 모습에 입을 쩍 하고 벌렸다.
"어지간하네, 이걸 다 누가 접은 거야?"
혹시나 종이 토끼를 펴면 유서라던가 무언가 적혀있지 않을까 싶어 하나하나 펴보던 도중 주머니에 진동이 느껴진 찬열이 꺼내 들어 전화를 받았다.
쓸데없이 얼마나 싸돌아다니는 거냐며 빨리 돌아오라는 백현의 잔소리 전화였다.
"그래, 이제 돌아가볼까, 애들아?"
종이 토끼 인형을 하나 집어 주머니에 넣은 찬열은 "빨리 와요, 아저씨!" 하는 아이들을 따라 다시 집으로 향했다.
방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도대체 어딜 그렇게 돌아 다닌 거야?" 하는 백현에 찬열은 "미안, 애들이랑 좀 놀아주느라." 하며 장비로 다가갔다.
"어서 헬멧 써, 바로 시작할 거야."
이미 헬멧은 쓸 체로 장비 작동 버튼 위에 손을 올리고 있는 백현을 보고 서둘러 헬멧을 착용한 찬열은 백현을 향해 헬멧을 톡톡 두드리며 웃어보였다.
찬열이 헬멧을 착용하자마자 장비 버튼을 누르는 백현, 헬멧에 불이 들어오고 백현과 찬열의 눈은 자연스레 감겼다.
백현과 찬열이 눈을 뜨자 똑같지만 분위기가 살짝 다른 방 안이었다.
"일단 의뢰인부터 찾자."
이쪽저쪽 돌며 의뢰인을 찾던 백현과 찬열은 절벽 위에 앉아있는 의뢰인으로 추정되는 남자에게 다가갔다.
"김종인씨?"
"?!"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놀란듯 뒤를 쳐다보는 종인은 묘한 표정을 지으며 둘에게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전 박찬열이고 저쪽은 변백현이라고 합니다. 혹시 엑소 플래닛 인생 형성 사무소란 이름 들어보셨습니까?"
"안 그래도 마침 그쪽에 의뢰를 할 생각이었습니다만 이거 우연이네요."
"정확히는 이미 의뢰를 하셨습니다."
"네?"
"지금 의뢰 수행중이라 할 수 있죠, 저흰 미래에서 조금 전 단계엔 이곳에 들리게 된 겁니다."
좀 놀란듯 했지만 금방 이해를 하고 고개를 끄덕이던 종인은 "절 달로 보내 주실 건가요?" 하고 물어왔다.
"네, 맞습니다. 그런데 왜 달에 가고 싶어 하시는 거죠?"
"그게,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그냥 달에 가고 싶어요."
"괜찮아요, 말씀해 주세요. 저희가 종인씨를 달에 보내기 위해선 그 이유를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정말로 모르겠어요. 그저, 가고싶어요."
종인의 말에 막막해진듯 미간을 찌푸리고 한숨을 쉬는 찬열은 백현에게만 들리게 작게 "일이 귀찮아지겠어." 하고 말했다.
"종인씨, 저흰 종인씨가 달로 가려고 했던 이유인 기억으로 돌아가 조금씩 기억을 수정을 해가며 미래를 바꾸어 최종적으로 종인씨를 달로 보내드리는 겁니다. 하지만 종인씨가 달로 가려고 하는 이유인 기억 조각이 없으면 바로 그 단계로 넘어갈 수가 없어요."
"그럼 안 되는 건가요."
단호하게 "네, 안 됩니다." 라고 말할 생각이었던 백현은 정말 모든 걸 잃은듯한 망연자실한 종인의 표정에 망설이며 찬열을 쳐다봤다.
찬열은 어쩔 수 없다는듯 어깨를 으쓱하며 "야근하지, 뭐." 하고 백현의 귀에 작게 속삭였다.
"그러니까 '잘 모르겠습니다' 말고 다른 걸 말씀해주셔야 된다는 겁니다."
"제가 말씀 드릴 수 있는 건 최대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당신을 기억을 되살릴 만한 중요한 물건이 있나요?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도 가지고 있는 물건이면 됩니다."
종인은 난감한듯 눈을 돌리며 한참을 생각하더니 무언가 생각난듯 주머니를 뒤적거려 꺼내더니 백현에게 건넸다.
"이거면 될까요?"
"네, 그거면 됩니다."
종인이 준 것을 간편한 장비에 연결한 백현은 작동 버튼 위에 손을 올리고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종인을 쳐다봤다.
"저흰 이만 가보겠습니다. 의뢰 성공을 기원해주세요."
그 말의 끝으로 눈을 감는 찬열과 백현을 멍하게 바라보던 종인은 자신이 눈을 감았다가 뜬 사이에 아무것도 없이 텅 빈 자리에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하늘의 달을 쳐다보았다.
어떻게 진행되는 건지 모르겠지만 밑져야 본전인 이 의뢰를 저 둘이 꼭 성사시키길 바라는 종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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