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 전, 형이 내게 사랑한다고 말하고는 강제적으로 옷을 벗기며 몸을 섞으려했던 기억이 난다. 푹푹 찌는 듯한 날씨에 어두운 방안에서 숨소리가 달 뜬 형을 보며,
형의 발목을 붙잡고 빌었다. 하지 말라고. 제발, 살려 달라고. 성욕이라는 본성이 이성을 짓누른 형에게는 어린 나에 대한 동정조차 없었다.
끝까지, 형은 나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했다. 사랑하니깐 한 번만 하자고. 형인 내가 너를 사랑하니깐 한 번 만 같이 자자며 식은 땀에 젖은 내 머리칼을 쓸어 넘겨주었다.
가슴에 키스마크를 남기고 삽입하려하자 싫다며 발버둥치는 나를 짓밟았다. 얼굴이며, 다리며, 모든 곳을 구타당하고 나는 힘없이 쓰러졌다.
눈의 초점이 흐릿해지고, 손을 뻗을 힘마저 사라졌다. 그 형이라는 남자는 마지막으로 발길질을 하려고 발을 뒤로 빼다가 쓰러진체 나체의 몸으로 우는 나를 보고
나즉하게 귓가에 속삭이며 뺨에 혐오스러울 정도로 다정하게 키스해주었다.
"사랑해, 민석아."
사랑, 그것을 믿지 않는다.
***
여름의 마지막 더위가 맹렬한 기세로 쏟아졌다. 커피숍에는 아무도 없었다. 하기야, 번화가의 구석에 위치한 이런 좁고 외관상으로 보기에도 형편없는
커피숍은자신이 손님이라도 오지 않을 것이다. 방학때 아르바이트를 해서 학비를 벌기 위해 여러가지 일자리를 알아보았지만
여전히 사람을 대해야하는 일에는 소질이 없었다. 예전에 숨기고 있던 트라우마로 남자를 대하기엔 마음 한구석이 불안했었고,
그나마 여자들이 많이 찾는 카페를 선택한 것이 내 최후의 보루였다. 트라우마가 떠오르자 괴로운듯 길게 한숨을 쉬고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3시 15분.
시간이 꽤 흘렀구나. 민석이 헐렁한 앞치마를 벗자 그 찰나에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숨이 턱 끝까지 달아올라 답답한 듯이 숨을 내뱉는 남자가
나를 보고 서투르게 웃었다. 루한, 작게 입술을 오물거리며 그의 이름을 되내었지만 시선을 그에게 두지 않았다.
진한 커피향이 느껴지는 카운터에서 테이크아웃 용 커피 받침대를 들고있다가 받침대를 내려두고 내 겉옷을 주섬주섬 챙겨입었다.
철부지같이 그를 대하기 싫었다. 루한의 반가움과 설렘이 가득한 눈동자를 보면 낯설고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아는 남자의 눈빛은 그렇지 않다. 나는 오직 어렸을때 형의 눈빛밖에 기억해내지 못한다. 애석하게도.
"아메리카노."
"나 아르바이트 시간 끝났어. 좀 있다 다른 아르바이트생 오면 그때 주문해."
"뭐...바쁜 일이라도 있어?"
살짝 실망한듯 풀이죽은 목소리에 대답없이 고개를 가로 저었다. 루한이 약간 복잡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 아무 말이 없어서,
먼저 커피숍을 나섰다. 내 일은 끝났으니깐. 그것이 겉으로 표출 할 수 있는 이유의 전부였고 또 다른 이유는 그가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나보다 넓은 보폭으로 걷는 루한은 또 금방 내게 발걸음을 맞췄고 그는 머뭇거리며 내 팔을 붙잡았다. 그 순간 소름이 끼쳤다.
내 팔을 붙잡은 루한의 손을 거칠게 뿌리쳐봤지만 루한의 손아귀힘은 강했고 나는 그를 뿌리칠 수 없었다.
루한은 여전히 애틋한 눈을 하고 있었다, 어린 날의 트라우마에 또 다시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했다.
그가 내 팔을 놓지 않자 그대로 주저 앉아 소리를 지르며 울었다. 아이처럼 펑펑 울었다. 그제서야 루한은 나를 놓아주고 당황한듯 어쩔 줄 몰라했다.
그의 잘못이 아닌데, 루한이 자꾸 내게 다가올때 마다 트라우마가 회억되어 그가 혐오스러워 졌다. 그것이 일상의 순환이었다.
몸을 웅크려서 귀를 틀어막은채 눈을 질끈 감은채 울었다.
"민석아,"
"하지마...,.형, 제발 하지마.."
울음이 섞여 뭉개진 발음으로 힘겹게 루한에게 매달렸다. 아니 형에게 매달렸다. 자꾸 루한에게서 형의 모습이 겹쳐졌다.
과거의 나락에 떨어지는 나를 루한이 일으켰다. 어느새 온몸이 식은 땀으로 젖어있었다.
"제발...형........"
"나 좀 봐, 민석아."
"저리가.........."
"민석아."
숨소리가 고르게 될때까지 루한이 내등을 천천히 토닥여주었다. 루한은 내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내가 왜 병적으로 자신을 혐오하는지 알지 못했다.
"형은 겪어본적 없잖아! 이렇게 맑은 날이 혐오스러워!형이 나를...날..."
"그냥 난 루한이야."
"......."
"난 네 형이 아니야."
어쩌면 알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하루에도 몇번 씩 형과 루한을 착각하는 나를 두고도 곁에 있어준, 타인이 본다면 경외심이 드는 남자니깐.
자신의 품에 나를 안고 내 어깨에 고개를 파묻은채 루한은 옅은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그 옅은 목소리는 공백감으로 가득 물든
인적없는 거리에 흩뿌려졌고, 루한의 목소리가 물든 거리에 나는 온전하게 서있었다.
"이제 나 좀 받아 주면 안 될까,민석아."
"....."
"너를 이렇게 사랑하는데."
나는 루한에게서 또다시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서글픈 거리는 잠잠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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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놓친 김에 왔다는 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