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son Walker - E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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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사는 세상
#쌍방과실
“강 비서님.”
“......”
“강 비서님, 정신 차려요.”
눈앞을 휘젓던 손이 이내 사라지고 나는 눈을 느리게 깜빡이며 고개를 돌렸다. 전정국이 내게 시커먼 아메리카노가 담긴 잔을 건넸다. 이거 사약 같아요. 사약 맞아요. 그가 웃으며 테이블 맞은편에 앉았다. 나는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들이키고 뻐근한 목을 돌렸다. 나와 전정국은 로펌 근처의 조그만 오피스텔을 하나 빌려 본격적으로 댐 사업과 철거민 관련 자료 조사를 시작했다. 4일 째 되는 날이었다. 오늘은 운 좋으면 2시간은 잘 수 있으려나. 전정국이 거실 러그 위를 차지한 서류 더미를 뒤적거리다가 파일 하나를 내 앞으로 들이밀었다. 뭐에요?
“O사 가습기 살균제 사망자 발생 사건 자료에요.”
“아... 몇 년 전 로펌에서 변호를 맡았었죠?”
내가 기지개를 펴며 물었고 전정국이 고개를 끄덕였다. O사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 O회사에서 15년 전부터 가습기 살균제를 판매하기 시작했는데 제품에는 미국에서 농약으로 사용되는 성분이 들어가 있었다. 정부에서는 이를 허용했고 유통 및 판매를 하면서부터 비극은 시작됐다. 약 5년 전부터 그로 인한 사망자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기 시작한 것이다. 젊은 임산부와 어린 아이들이 죽어나갔고 정부가 조사팀을 꾸려 성분에 문제가 있음을 밝혀냈다. 하지만 O회사는 P로펌의 변호를 받고 겨우 과징금 몇 백으로 죄 값을 치렀다. 그 후 유가족들의 끊임없는 항의와 시정 요구 끝에 최근 들어 재조명을 받고 있는 사건이었다.
“여론이 흉흉해요. P로펌이 그런 기업을 변호해서 몇 백으로 끝낸 건 피해자들 두 번 죽인 거라고. 그래서 로펌에선 당분간 은광 마을 철거민 케이스에서도 대놓고 반대편에는 못 설 거예요. 이미지 신경 많이 쓰니까.”
“다행인 거죠?”
“글쎄요. 이해관계 따지자면 손 놓고 있을 분들이 아니라 문제죠.”
“다른 수를 쓸 거란 뜻인가요?”
“정치 쪽으로도 민감한 사안이라, 제일 만만하게 연예인 루머니까 그걸로 덮지 않을까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치적인 문제가 터질 때 마다 높은 분들의 명령으로 연예인들의 가십거리를 폭로해 대중의 시선을 돌리는 전략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었다. O사의 살균제 사건은 당시의 허술한 법안과 기준 때문에 정부가 비판을 받고 있는 상황이었고, 우리가 조사 중인 철거민 케이스 역시 댐 건설은 국가적 사업이기 때문에...... 쾅. 내가 테이블에 머리를 세게 박아버리자 전정국이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화끈거리는 이마를 문질렀다. 내 인생을 통틀어 0.1초 만에 잠드는 신기록을 세웠다. 박지민의 일만으로 머리가 터질 것 같은데 철거민 일까지 뛰어들어 매일 밤 새며 수명을 단축시키는 건 자살 행위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눈 좀 붙이게 해줄게요. 20분만.”
“감사하네요. 근데 10분 추가해줘요.”
“콜. 잘 자요.”
일에 미쳐있는 것까지 박지민이랑 닮았네. 나는 테이블에 머리를 맡긴 채 무거운 눈꺼풀을 꿈뻑이며 전정국을 바라봤다. 괴물... 중얼거리자 노트북 화면을 심각하게 들여다보던 전정국의 까만 눈이 나를 향했다. 변호사 업무로도 벅찰텐데 이 살인적인 스케줄을 다 소화하다니. 괴물이 틀림 없어.
“괴물? 저요?”
“...전 변호사님.”
“네.”
“괴물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사람이 괴물이라면.”
내가 잠에 취해 느릿한 목소리로 물었다. ‘내가 아버지처럼 괴물로 자랄까봐 두려우셨대.’ 그 날 밤 그 말을 하는 박지민이 자꾸만 떠올라서였다. 그의 기분이 어떨지 아무리 생각해도 전혀 알 수가 없어서 속이 답답해졌다. 하루종일 박지민 생각을 했다. 그가 했던 말, 그의 눈, 그의- 쾅. 나는 스스로 머리를 테이블에 박았다. 이 곳에서 만큼은 그를 떠올리지 말자. 흐릿한 시야로 전정국이 진지하게 고민을 하는 듯한 얼굴이 보였다. 밑도 끝도 없이 괴물이 뭐라고 생각하는지 묻는 상대방을 위해 저리 진지하게 고민해주는 것이 참 친절하다. 팔에 얼굴을 묻으며 점점 몽롱해지는 정신에 눈을 감았다. 잠 들기 직전 전정국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괴물이 별건가요. 잘못된 걸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모두가 괴물이죠.
***
“네. P로펌 박지민 변호사 님 사무실입니다.”
-박 변호사 자리에 있나요? 핸드폰 연락을 안 받네요.
“외근 나가셨습니다만, 누구시고, 무슨 일로 전화 주셨습니까?”
-N신문사 김남준 부국장입니다. 긴 얘기는 아니니까 말 좀 전해주세요.
“네, 말씀하세요.”
-네가 경거망동하는 바람에 우리 쪽에서 준비하던 고발 특집 기사 막혔으니까 철거민들 도와주고 싶으면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거라고요.
“......”
-그럼 이만.
나는 멋대로 끊긴 전화를 한참을 멍하니 내려다봤다. 이걸 있는 그대로 전해, 말어? 안 그래도 저 때문에 일이 커졌다며 자책하는 사람에게 그렇게까지 말 할 필요가 있나싶은 생각이 들었다. 김남준 부국장인지 뭔지 괜히 얄미워졌다. 어떻게 돌려 말해야 박지민이 덜 상처 받을까 고민하던 와중에, 업무용 핸드폰에 박지민이 곧 사무실에 도착한다는 메시지가 떴다. 나는 바로 메모지 위에 펜을 휘갈겼고 그것을 그의 사무실 책상 위에 던져놓고 나왔다.
[고발 특집 기사 취소. 참고 바람. -N신문사 부국장-]
끊임없이 종이를 뱉어내는 프린트기에 멍하니 손을 짚고 서있기를 5분, 10분, 15분이 흘렀다. 어젯 밤에도 그렇고 며칠 동안 박터지게 생각을 해봤는데 그 날의 나는 박지민의 과거로 인해 마음이 잔뜩 약해진 상태였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래서 그의 입술을 받아들인 거라고. 그 또한 남자라서 분위기에 취해 그런 짓을 한 거라고. 그렇다고 박지민이 나를 덮쳤다는 뜻은 아니다. 그 전에 내가 먼저 그를 자극했으니까 말이다. 말하자면 쌍방과실이랄까. 내 마음은 나도 별로 알고 싶지 않다. 상대가 박지민인만큼 내 마음이 어떤지는 그닥 중요한 요소가 아니니까.
“강 비서.”
“......”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심장이 떨어질 것 같은 것을 진정시키며 천천히 몸을 돌렸다. 나는 방금 인쇄 된 뜨끈한 종이 뭉치를 품에 끌어안았다. 박지민이 수트 바지 주머니에 손을 꽂고서 내 앞으로 다가왔다. 프린트룸 곳곳에 있던 변호사나 사무직원들이 우리 쪽을 힐끔힐끔 훔쳐보는 것이 느껴졌다.
“...무슨 일이세요?”
“내 비서 찾는데 이유가 있어야 돼? 오자마자 일 시켜 먹을래도 자리에 없으니까 직접 찾으러 왔지.”
“시키신 일 다 했어요. 부패 방지법 관련 미팅 스케줄 조정했고 보고서도 다 처리한 뒤 올렸구요. 전화 온 거 메모도 남겨놨어요.”
“죄다 종이 쪼가리에 적어서 올려놨잖아. 그리고 시킨 일 다 하면 자리 비워도 돼요? 일은 계속 생기는데?”
우리의 눈치를 보던 사람들이 슬슬 빠져나가기 시작했고 이내 텅텅 빈 프린트룸 안에는 나와 박지민 둘만 남게 되었다.
“그리고 그 날 일은 처리했어? 아직 안 한 것 같은데.”
“무슨 일요?”
“그 날. 그 날 우리가 한 일이 하나밖에 더 있어? 키스-”
경악에 찬 내가 손으로 박지민의 입을 막아버리자 그가 피식 웃었다. 당장 누가 들어올지도 모르는데 이 인간은 미쳤다. 박지민은 내 손을 잡아 내렸고 나는 손을 틀어 그에게서 벗어났다.
“설명 해봐. 왜 며칠 동안 도망 다니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논리정연하게 설명해야 귀찮아지지 않을 거야.”
“...실수가 있었잖아요. 변호사님 얼굴 보기가 좀 그랬어요.”
“아. 그거 실수라고?”
“네. 음주로 인한 심신미약 상태였어요.”
“자발적 음주였잖아. 기각이야.”
“왜 갑자기 재판이에요?”
“불만이면 강 비서가 변호사랑 키스하지 말았어야지.”
또 다시 튀어나온 키스, 그 단어에 나는 한숨을 푹 쉬며 고개를 숙였다. 그 날 이후 박지민은 다시 사무실로 출근을 하기 시작했다. 그에 전정국은 내게 지민이 형 잘 데리고 왔다며 임무 완수 축하 문자를 보내왔지만 나는 기뻐할 수가 없었다. 임무 완수만 하고 온 게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 날의 나는 박지민과 키스 다음 단계로 넘어갈 뻔한 것을 겨우 멈추고 도망치듯 오피스텔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확실한 건, 둘이서 키스를 하든 그 이상을 하든 우리는 비현실적인 관계라는 사실이다. 끝이 뻔한 일은 고민조차 사치라는 것이 내 신조였다.
“저는 끝이 뻔한 일은 안 해요.”
“혹시 내가 이 로펌 대표 아들이라 부담스럽다 뭐 그런 건가.”
“정확히 그런 거에요.”
“너무 구시대적 발상 아니야? 요즘이 어떤 시대인데.”
“네, 저 오스트랄로 피테쿠스구요. 아셨으면 그 날 일은 없던 걸로 해요. 쌍방과실로 치자구요.”
“쌍방과실? 일단 난 과실이 아니야. 그리고 강비서도 분명 좋아서 내 목에 팔 두르고 혀-”
“아, 제발!”
내가 그를 밀치자 한 걸음 물러선 그가 웃음을 터뜨렸다. 재밌냐? 아무리 박지민이 남다르다 하더라도 도련님은 도련님이었고 자신의 의지와 상관 없이 미래의 일부분은 이미 정해져 있을 것이다. 나는 멍청하게 그 앞에 뛰어드는 일을 하고 싶진 않다. 누군가는 그렇게 말 할 수도 있다. 평생 없을 기회인데 한 번 즈음 같이 놀면 어때. 하지만 이 바닥에서 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느낀 내 생각은 달랐다. 사는 세계가 다른 사람들의 연애는 항상 그 끝이 좋지 않았으며 무조건 껄끄러운 뒷얘기를 남겼다. 그리고 나는 내가 그 뒷얘기의 주인공이 되는 건 절대 사절이었다. 심지어 그는 나와 진지한 연애를 하려는 것이 아닌 것이 분명했다. 장난스레 히죽거리는 박지민을 한 대 치고 싶어진 것은 그 이유 때문이었다.
“끝은 가봐야 알지.”
“가보지 않아도 그 끝을 알 수 있는 것들은 많아요.”
“사람들은 그걸 편견이라고 불러.”
갑작스레 진지해진 박지민의 눈을 피하지 않고 마주봤다. 내 얼굴을 구석구석 응시하던 박지민이 해탈한 듯 한숨을 쉬며 머리를 쓸어 넘기는 것에 안도감을 느끼는 것도 잠시, 그는 다시 내게로 한 걸음 다가왔다. 나는 허리가 프린트기에 찍히면서도 최대한 몸을 뒤로 빼야만 했다.
“그 날, 미국에서의 일 미안하다고 했지. 미안하고 불쌍해서 키스를 받아준 거야?”
“......”
“그러니까, 강 비서는 미안하면 보통 키스를 해주는 타입인가 봐요.”
“이봐요.”
“그럼 계속 미안해하던가.”
품에 안고있던 종이들이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흩어졌다. 덜컹, 복사기를 짚는 소리가 요란하게 났다. 내 아랫입술을 삼키던 입술이 떨어져 나감과 동시에 나는 그의 어깨를 밀쳐내고 프린트룸을 뛰쳐나갔다. 복도 끝의 엘레베이터 앞에 다달아 버튼을 급하게 여러 번 누르며 손등으로 입술을 벅벅 문질렀다. 프린트룸을 나오기 직전 봤던 박지민의 얼굴에는 내 마음을 다 안다는 듯한 옅은 미소가 있었다. 그런 예감이 들었다. 조만간 이 바닥 껄끄러운 뒷얘기의 주인공이 내가 될 것 같은 예감. 깔끔하게 드라이한 머리를 손으로 아무렇게나 헝클어버렸다. 그 때 드륵, 하고 눈치 없는 업무용 핸드폰에서 알람이 울렸고 그것을 확인하다가 화들짝 고개를 들었을 때는 복도 반대편으로 걸어가는 박지민의 뒷모습이 보였다.
[성북동 Little House, 8pm]
[멤버 리스트 체크 바람]
[애꿎은 머리카락은 괴롭히지 말고]
바빠졌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너무 늦었네요 죄송합니당8ㅅ8
다음화에는 아직 등장하지 않았던 멤버들이 나올 것 같아옄ㅋㅋ 겁나... 오래 걸렸네요 훗
그리고 암호닉은 3화까지 받았지만, 완결 전 즈음 추가로 받을테니 놓치신 분들 걱정 마세욥!
암호닉은 정리中
정성스레 남겨주시는 모든 댓글 하나하나 꼼꼼히 읽고있고 정말정말 감사하게 생각해요.
여기다 쓰긴 좀 그렇지만(? 감사한 일도 엄청엄청 많아요 모두모두 싸랑해요오오 하뚜하뚜챱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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