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시선이라는 게 있다. 발 끝에서부터 머리끝까지 틈도 없이 옭아매 질식을 종용하는 그런. 내 눈에 들어차는, 그와 똑같은 것을 신은 내 발이 괜스레 부끄러워졌다. 애꿎은 신발 앞 코만 땅바닥에 연신 쳐댔다. 새까매졌다. 집에 가서 깨끗이 닦아야겠다-고, 생각한다. 그의 '시선'을 의식하느라 모든 행동들이 부자연스러워졌다. 오랫동안 작동하지 않아 군데군데 녹이 슬어버린 깡통 로봇마냥 삐걱삐걱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때, 날 바라보던 그의 '시선'이 '목소리'로 변질되어 날 부르던 때. 너무 놀라 숨을 급하게 집어삼켰다.
"여주야. "
낮고 굵은 목소리. 그러나 마냥 듣기 싫은 건 아닌 목소리가.
"집에 같이 갈래? "
내 모든 신경들을 잡아챘다.
내겐 그의 근사한 제안을 거절할 여유 따위는 없었다. 그가 질문을 거둬갈세라 나는 고개를 두어 번 재빠르게 주억거렸다. 굳이 소리 내 대답하지는 않았다. 그러지 않는 편이 더 나을 거라고 판단해버린 탓이었다. 그의 '시선'을 의식하느라 느릿하게 챙기던 가방을 재빠르게 챙기고는 그의 옆으로 다가가 섰다. 그가 작게 소리내어 웃는 것이 느껴졌다. 간지러운 웃음이었다. 가자. 이번엔 목소리가 들려왔다. 발걸음을 뗐다. 똑같은 모양의, 그러나 색깔은 다른 신발을 신은 두 쌍의 발이 나란히 움직여 강의실을 나섰다.
그와 나 사이에는 왠지 모를 적막감만이 맴돌았다. 도시의 소음들 사이로 그와 나 사이의 간극의 고요가 쪼개졌다. 숨이 막혔다. 이런 식의 의도하지 않은 정적은 달갑지 않았다. 어떻게든 불편함을 해소해보려 주먹을 둥글게 말아쥐었다가 펴기를 반복했다. 대 여섯 번쯤 반복했을까, 그 조용한 적막을 깨고 그가 내게 말을 걸었다.
"맨날 여기를 혼자 걸어 다니는 거야? "
"네, 뭐. 아니요. 가끔은 버스 탈 때도 있어요. "
외롭겠다. 작게 중얼거린 그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의 말에 딱히요, 라며 답했다. 무언가 얹혀내려가지 않는듯한 무겁고 탁한 공기가 싫었다. 발걸음은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데도 몸은 빈 강의 실에 정체되어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 익숙하지 못한 느낌에, 느리게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는 대학의 꽤나 유명한 인사였다. 두 손 두 발 멀쩡한 허우대와, 큰 키, 거기에 서글서글하고 잘생긴 외모까지. 그는 여학우들의 가십거리에 씹기 좋은 껌이었다. 그러던 그가 돌연 휴학을 한건, 예상하지 못함은 아니었다. 어느날 부터인가 이상한 소문이 대학내에 돌기 시작했다. 야, 너 그거 들었어? 유교과 잘생긴 선배 있잖아. 왜, 웃을때 보조개 쏙 들어가고 하얘가지구 서글서글하게 생긴, 그래. 그 사람! 게이래. 얼마전에 미연이가 빈 강의실에서 그 선배랑 다른 남자 선배 키스하는걸, 봤다더라.
뜬 소문일것만 같았던 그 소문은 빠르게 퍼져나가 대학내에 파다하게 퍼지기 시작했다. 아무렇지 않은듯 보이던 그는, 몇일을 모습을 보이지 않더니 휴학을 했다는 얘기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는 그렇게 무려 일년을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점점 소문들도 흐려져가고, 그의 존재 여부 또한 무감각해져 갈 즈음, 그는 다시 학교에 나오기 시작했다. 복학생이 된 것이다. 우연치 않게 그와 같은 동아리를 신청해버린 나는, 항상 그가 앉곤 하는 자리의 두칸 정도 떨어진 곳에 앉아 그의 단정한 뒷통수를 바라보곤 했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 그 햇살을 받으며 찬연하게 빛나는 뒷모습. 단정하게 염색된 검정색 머릿결이 햇빛을 받은 쪽 만이 갈색으로 물들어져 있는 모습을 난, 좋아했다. 아니, 좋아한다.
한참을 생각에 빠져있는 내 옆모습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그가, 살풋 웃으며 입을 열었다.
"우리,"
아주 어쩌면, 나는.
"앞으로도 같이, "
그를.
"걸어갈까? "
좋아하는지도, 몰라.
꼬망세 |
첫 글 올린지 얼마나 됐다고... 참지 못하고 새 글 올려 버렸습니다 헤헤ㅔㅎ.... 그냥 맛보기에요 다음 편이 언제 올라올지는 모르겠지만 최대한 빨리 올려보겠습니다!!!! |
암호닉 |
맠맠님, 꾸꾸님, 푸른하늘은하수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