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익-,
경기 재개를 알리는 호루라기 소리가 한 번도 공중에 울렸다 흩어졌다. 평소 이동혁과 소연이에게 운동 신경이 없는 편이라는 소리를 자주 듣곤 했던 나였기에 이민형의 허리를 껴안은 손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허리를 껴안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간게 느껴졌는지, 내 손 위에 올라가 있던 이민형의 손가락이 두어번 정도 톡톡, 내 손등을 건드렸다. 그리고 뒤이어 들리는, 들을 때 마다 듣기 좋다고 느꼈던 이민형의 목소리가 들렸다.
"잘하고 있네. 끝날 때 까지 놓지마. "
고개를 끄덕이고 이민형의 어깨 옆으로 고개를 쭈욱 빼 상대팀을 살펴 봤다. 공을 우리 쪽으로 던질 것 같지 않아 안도하며 살짝 뒷걸음질 치며 구석으로 향했다. 내 발걸음을 따라 같이 뒷걸음질치던 이민형이 별안간 웃음을 터뜨렸다.
"ㅇ,왜 웃어?"
"그냥, 귀여워서."
그런 말 좀 하지마. 라는 말이 목구멍 끝까지 차올랐다가 겨우 겨우 다시 삼켰다. 이민형은 아무 생각 없이 하는 말일수도 있지만 난 그게 아니라서. 이민형의 한 마디 한 마디에 시도때도 없이 반응하는 심장소리가 바로 앞에 있는 이민형에게 들릴까 손에 살짝 힘을 푼 순간 상대편에 있던 공이 바로 내 뒤쪽 수비를 향해 날아왔다. 공을 붙잡은 남자애는 내가 자각할 틈도 없이 공을 던지려는 자세를 취했고, 나에게 공이 날아오는 순간 이민형이 자신의 팔을 뻗어 내 팔 께를 붙잡아 자신의 뒤로 재빠르게 숨겼다. 나를 비켜간 공은 내 바로 뒤에 있던 여자애의 손에 맞았고 이민형은 고개를 돌려 내 상태를 확인했다. 괜찮아? 팔 안 아파? 토끼처럼 동그래진 눈을 하고 있는 이민형의 눈을 보고 있자니 또 얼굴이 붉어질 거 같아 고개를 두어번 끄덕였다. 내게 다가오는 이민형의 행동 하나 하나, 말투 하나 하나가 다 너무 다정해서. 혼자 착각하고 그 다정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할까 문득 두려워졌다.
경기는 예상보다 오래 지속 됐다. 피 튀길만큼 접전은 아니었지만, 뒤 쪽에 있는 각자의 팀 수비에게 공을 던져주려고 하면 상대 팀이 공을 다시 잡아 던지는 식의 경기가 계속 됐다. 운동에 소질이 없던 내가 미처 피하지 못해 공에 맞을 뻔 하면 이민형이 귀신 같이 몸을 틀거나, 손을 뻗어 공을 쳐내는 게 반복이 됐다. 운동을 잘 하지 않아 기본적인 체력이 바닥이었던 난 금세 지쳐 호흡이 거칠어졌고, 이민형은 그런 나를 보며 금방 끝날 거라며 다독여줬다. 이민형의 말을 듣고 호흡을 고르며 상대팀과 우리팀을 번갈아 바라보자 두 팀 다 머릿수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우리팀엔 이민형과 나를 포함한 한 쌍의 아이가 남아있었고 상대팀도 우리쪽 머릿수와 똑같았다. 공은 상대팀에게 가있었다. 공이 우리쪽으로 빠르게 날아와 나와 이민형 바로 앞에 있던 여자아이를 맞췄고, 떨어진 공이 뒤쪽 수비에게 가지 않게 주운 이민형이 다시 상대팀을 향해 던졌다. 삐익. 또 다시 호루라기 소리가 울렸다. 각 팀에 한 쌍씩만 남은 상황이 됐다.
체력이 다 떨어져 머리가 띵했다. 머리 위에서 내리 쬐는 조명도 거슬렸다. 지쳐 행동이 눈에 띄게 느려진 나를 발견한 상대팀이 내 뒤에 있던 수비에게 또다시 공을 던졌고, 그 공을 피하려다 발을 헛디뎌 이민형의 허리를 붙잡은 손이 풀리며 그대로 넘어졌다. 목재 바닥에 쿵, 하는 소리가 울렸다. 바닥에 무릎을 찧은 난 이민형의 교복 조끼 끝을 겨우 겨우 붙잡고 있었고 이민형은 내 머리를 향해 날아오는 공을 탁 소리가 나게 붙잡았다. 이민형의 조끼를 부여 잡은 손이 덜덜 떨리는 게 느껴져 눈을 질끈 감았고, 눈을 감았다 느리게 뜸과 동시에 팡, 하는 맞는 소리가 들렸다. 뒤이어 호루라기 소리가 울렸다. 와아아, 아이들의 함성을 질렀고 경기는 우리팀의 승리로 끝났다.
"괜찮아?"
제 조끼를 부여잡은 손이 금방이라도 바닥으로 추락할 것 처럼 덜덜 떨고 있는 것을 본 이민형이 내 손을 붙잡으며 나와 시선을 맞추며 주저 앉았다. 넘어진 나를 보고 경기가 끝나자마자 달려온 소연이와 이동혁이 잔뜩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애써 웃으며 괜찮다고 말을 하고 일어나려 바닥에 손을 짚고 무릎을 세웠지만, 발목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이내 곧 다시 주저 앉았다. 아, 아파. 울상을 지으며 체육복 바지를 걷어 발목을 확인하자, 빨갛게 부어올라 있었다. 부어오른 발목을 눈으로 직접 보자 통증이 더 심해지는 기분이었다. 울상을 짓고 일어나지 못하는 나를 본 이동혁이 이민형의 손이 잡혀있지 않는 내 오른 쪽 팔을 들어올려 자신의 목에 걸쳤다. 김여주 일어나. 보건실 가게. 심각해진 이동혁의 얼굴에 고개를 끄덕이고 체중을 이동혁에게 실어 일어나려고 하자, 내 왼손을 세게 붙잡는 손길이 있었다. 손길을 따라가 고개를 돌리자 살짝 굳은 표정을 한 이민형이 보였다.
"내가 데려갈게."
"뭐?"
"여주. 보건실 내가 데려간다고."
잡힌 내 손을 자신의 쪽으로 끌어당기는 이민형의 행동에 이동혁이 기가 차다는 듯이 웃었다. 뭐라는 거야. 이동혁의 말을 들은 이민형이 다시 내 손을 끌어 당기며 말했다.
"내가 여주 상태 잘 확인 못하고 무리하게 움직여서 넘어진거니까 내가 같이 간다고."
"야,"
"이동혁 나 괜찮아. 민형이랑 갈게. "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가는 것 같아 다급하게 이동혁의 말을 끊었다. 이동혁의 목에서 팔을 풀어낸 나는 이민형을 향해 웃으며 가자고 했고, 이동혁은 그런 이민형을 노려 보다 한숨을 쉬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종치기 전까지 들어와."
"알았어. 빨리 갈게."
이동혁과의 대화가 끝나자 이민형이 잡은 손을 놓지 않고 내 허리에 손을 둘러 천천히 일으켜 줬다. 발이 땅에 살짝 닿기만 해도 누가 발목에 전기 충격을 가한 것처럼 찌르르 울렸다. 내가 끙끙대며 앓는 소리를 내자 이민형이 고개를 숙여 눈을 맞췄다. 갑자기 훅 들어오는 이민형의 얼굴에 놀란 내가 고개를 살짝 뒤로 빼자 이민형이 머쓱한 듯 웃으며 미안, 놀랐지. 하고 말을 뱉었다. 이게 아닌데.
싫어서 그런게 아니라,
네가 너무 잘생겨서 그런 거라고 어떻게 말을 해...
벚꽃이 떨어지는 속도
이민형의 손을 부여잡고 겨우 보건실 문 앞까지 도착했다. 계단을 올라오는 동안 너무 아파서 나도 모르게 이민형의 손을 부여잡은 손에 힘이 꽉 들어갔다. 이민형도 그걸 느꼈는지 아무 말 없이 내 허리를 자신 쪽으로 더 가깝게 끌어 당겨 내 체중이 자신 쪽으로 더 쏠리게 만들었다. 도착한 보건실 문 앞에 서서 문을 똑똑 두드리고 문을 열고 들어갔다. 선생님, 하며 보건실 안까지 들어갔지만 아무도 없이 휑한 보건실이 우리를 반겼다.
"선생님 안 계신다. 어떡하지. "
당황한 표정을 한 이민형이 내 눈치를 살폈다. 그러게... 선생님이 안 계실 거란 걸 예상하지 못해 나도 당황한 표정을 지었고, 그런 내 얼굴을 본 이민형이 머뭇거리며 입을 뗐다.
"여주야."
"응?"
내 이름을 부르는 이민형의 목소리에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돌렸고, 고개를 돌리자 바로 앞에 가깝게 위치한 이민형의 얼굴에 놀라 급하게 숨을 멈췄다. 이런 내 상황을 알리가 없는 이민형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너만 괜찮으면, 발목."
"......"
"내가 치료해줘도 돼?"
눈썹이 축 처진 표정을 한 이민형이 내게 물었다. 그 얼굴로, 그런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면, 난 이민형 네가 돌팔이 의사여도 된다고 할 거야...
자신 없는 표정을 하고 있어 살짝 못 미더웠지만, 나를 보건실 침대에 앉히고 신발과 양말을 벗기고 체육복 바짓단을 걷어 올리는 손길이 꽤나 능숙해 마음을 놓았다. 내 신발을 벗기며 보건실 바닥에 한 쪽 무릎을 꿇고 앉는 이민형의 행동에 놀라 그애의 어깨를 다급하게 쳤다.
"야, 교복 바지 더러워지는데..."
"괜찮은데 난."
"그래도,"
"이렇게 해야 더 잘보이거든."
네 발목도, 얼굴도. 뒤이어 이어지는 말에 당황해 이민형을 쳐다보자 이민형이 입꼬리를 예쁘게 끌어당겨 웃으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얼굴 빨개졌다."
"네가 이상한 소리해서 그렇잖아. "
부끄러워 손을 들어 얼굴을 가리자 이민형이 소리내어 웃으며 내 손을 잡아 내렸다. 이상한 소리 아닌데. 야. 손을 들어 이민형의 어깨를 툭 치자 이민형이 또 다시 웃었다.
"알겠어. 장난, 장난. "
말을 하며 내 발목을 살펴보던 이민형이 많이 부었네, 하고 중얼거리며 구급 박스에서 꺼내온 스프레이 파스를 발목 위에 뿌렸다. 순간 전해지는 차갑고 화한 느낌에 으, 하며 옆에 놓인 이불을 쥐어 잡았다. 아프냐며 다정스레 물어오는 이민형에 괜찮다고 대답했다. 자신의 옆에 둔 구급 박스를 뒤적이며 붕대를 꺼내 내 발목에 두르는 이민형의 행동은 한 두번 해 본 솜씨가 아니었다. 보고 있으니 신기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해 이민형의 이름을 불렀다.
"민형아. "
내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이민형이 어깨를 흠칫하는 게 보였다.
"이름 부르는 거 처음이다. "
"어? 그랬었나. "
이민형의 말에 괜히 머쓱해져 기억을 더듬었다(기억이라고 해 봤자 한 달도 채 안되는 시간이지만 말이다). 생각해보니, 그런것도 같네. 한 번도 이민형의 이름을 제대로 부른적이 없었다. 항상 이민형이 나에게 먼저 말을 걸었고, 눈을 마주치거나, 이민형이 내 이름을 부르는 일이 잦았다. 정말, 그렇네. 이름을 한 번도 불러준 적이 없구나.
생각을 하다보니 이민형의 이름을 부른게 낯간지러워 졌다. 이상한 기분을 떨치기 위해 이민형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혹시 발목 다친 적 많았어? 치료하는 게 능숙하다."
"캐나다 있을 때 농구하는 거 좋아했어서. 자주 하다 보니까 자주 다치더라. "
그래서 내 발목 혼자 치료하다 보니까, 웬만한 보건쌤 저리가라야. 말을 마친 이민형이 어깨를 으쓱하며 붕대를 마저 다 감았다. 이민형이 붕대를 다 감자마자, 6교시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이 쳤다. 조금 늦겠네. 중얼거린 이민형이 감은 붕대의 끝부분에 테이프를 꼼꼼하게 붙였다.
"다 됐다. "
붕대로 쌓여진 내 발목을 아프지 않게 건드리던 이민형이 발목을 쳐다보던 내 얼굴에 시선을 뒀다. 느껴지는 시선에 나도 이민형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이민형의 짙은 인디고 색 눈동자가 오롯이 나를 바라봤다. 나 잘했지. 재롱을 부리고 칭찬을 바라는 강아지의 표정과 같은 얼굴을 하는 이민형의 얼굴이 귀여워 입 밖으로 귀엽다는 단어가 튀어나올뻔 한 걸 겨우 참고 응. 하고 대답했다.
내 대답을 들은 이민형이 참, 예쁘게도 웃었다. 문학시간에 열린 창문 틈을 타고 내 교과서 위로 떨어진 연분홍빛 벚꽃잎처럼 웃는다.
톡, 톡.
창문을 두드리는 작은 소리에 보건실 창문을 바라봤다. 아까부터 하늘이 흐리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한 거였다. 조금씩 내리던 빗방울이 몇 초 지나지 않아 쏴아아, 하는 소리를 내며 세차게 내렸고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는 더욱 커졌다.
"비 많이 온다."
"그러니까. 다 눅눅해지겠다."
체육복 바짓단을 내려주고, 내 신발 안에 양말을 넣고 자리에서 무릎을 툭툭 털고 일어났다. 나도 일어날 채비를 하며 이민형의 손에 들린 내 신발을 받아들기 위해 손을 뻗었다.
"신발 내가 들게 이리 ㅈ,"
자리에서 일어나다 바보 같이 삔 발을 바닥에 디뎠고 순간적인 고통에 휘청였다. 이민형은 그런 내 팔을 잡아채 자신의 몸 쪽으로 빠르게 끌어 당겼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당황하며 눈만 깜박이다 이민형의 품에 안겨있다 싶이 한 내 모습을 보고 벗어나려 몸을 뒤로 뺐지만 다시금 내 팔을 아프지 않게 제 쪽으로 잡아 당기는 이민형의 손길이 있었다.
"또 넘어지면 어쩌려고."
"......"
"잡아줄게 내가."
꼬망세 입니다. 이번편은 가져오는데 좀 오래 걸렸네요...(눈물
제가 쓰면서도 재미가 없다고 느껴서 읽으시는 독자님들은 얼마나 더 노잼일지 상상도 안 갑니다...
분량 조절이 자꾸 안돼서 마지막 하편에서 다 끝낼 수 있을지도 걱정이 됩니다ㅠㅠㅠㅠ
그래도 재밌게 예쁜 민형이 보면서 잘 읽어주시구, 좋은 밤 되세요8ㅅ8
암호닉 : 고딩마크님, 바나나님, 맠맠님, 꾸꾸님, 푸른하늘은하수님, 우주님, 우리재현이님,
꿀돼지님, 연우님, 난다스님, 미뇽님, 갈맹이님, 트레이드마크님, 무민님,
햇살맨이마크님, 하리보님, 스트로니님, 마꾸라지님
암호닉이 늘어갈 때 마다 기분이 너무 좋고 자꾸 눈물이 나려고 합니다 ㅠㅅ ㅠ
힘이 되는 댓글들 잘 읽고 있어요
예쁜 말씀들 다 너무 감사합니다 덕분에 별 거 없는 글 이어가는데 힘이 돼요 사랑합니다 8ㅅ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