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숙제
오늘 있었던 많은 일들로 혹시 기분이 안 좋은 이삐들은,
이 노래 한 번만 듣고 글 보기.
남자친구가 반존대를 써요 시즌2 w. 채셔
09. 눈 위에 서리가 덮히면 2
'……….'
'……야, 너….'
지민이 화난 얼굴로 나가버린 뒤에, 집안에 도저히 있을 수가 없어서 친구 집에서 밤을 새웠다. 취한 몸으로 택시에 탄다는 게 꽤나 위험한 일인 건 알았지만, 그런 기분으로 집에 있을 자신이 도저히 없어서. 친구에게 지민의 얘기를 하면서도 밤새 휴대폰만 바라보았지만, 연락은 없었다. 한 번, 친구에게 지민의 문자가 왔다는 말을 제외하고는, 어느 순간에도 지민은 연락을 해주지 않았다. 술에 취한 몸을 친구의 침대에 겨우 뉘였음에도 사실 정신은 취하지 않았었다. 퀭한 얼굴로 아침을 맞고 나서야 겨우 잠들어서는 치열하게 잠을 잤다. 일어났을 때 다음 날 저녁이었을 정도로. 친구가 죽을 사오고, 나를 먹이는 동안에도 내 눈은 휴대폰에 가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연락은 없었다.
'야, 사실.'
'……….'
'…지민 씨가 말하지 말라고는 했는데.'
'…….'
'너 여기 있는지도 물어보고, 너 옷도 챙겨다 줬어.'
죽도 지민 씨가 사준 거고. 차마 집에 들어갈 용기는 나지 않고, 그렇다고 회사에 집에서나 입는 차림을 입고 가기는 좀 그래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을 때, 친구가 옷을 건네주며 말했었다. 그게 왜 그렇게 눈물이 나는지, 주저앉아 왈칵 울어버렸다. 그렇게 화가 나놓고는, 그래서 집까지 나와놓고는 내 생각을 하는 게 너무 고맙고 또 미워서. 너무 미안한데 또 그게 너무 서러워서. 냅다 울어버리는 나를 두고, 친구는 한참을 토닥여줬다. 그렇게 전 날보다는 조금은 마음을 놓고, 울다 지쳐 잠이 들었었다. 예전에 지민이 맞춰주었던 모닝 콜로 잠을 물리치고, 지민이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샤워를 하고 친구의 집을 나섰다. 택시를 타면서, 대뜸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꾹 참았다. 한결 마음은 가벼워져서.
"저, 여주 씨. ……진짜, 아, 진짜 미안한데."
"……네?"
"아, 진짜 미안한데 내가 진짜 급하게 외근이 잡혀서."
"…네."
"근데 지금 대신 해줄 사람이 없더라고."
"……네."
"아마, 진짜 빨리 끝날 거거든."
여 선배가 내민 종이를 한참이나 내려다보았다. 데뷔조 인터뷰 용지였다. 이번에 언론에 내보낼 기사 보충 자료라고. 한참을 미안한 얼굴로 부탁하는 선배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또 얼굴을 봐야 한다니, 고역이다. 안 그래도 지민이 화난 것만으로도 오늘 집에 어떻게 가야 할지 고역인데. 아니, 원래 지민과 점심을 먹어왔던 터라 당장 그것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머리가 아픈데. 일단은 윤기 선배에게 연락을 했다. 지민의 안부도 좀 물어볼 겸, 윤기 선배와 있으면 항상 고민이 해결되는 기분이니까. 선배에게 '뭐햐나.'는 톡이 오자마자, 불만을 토로하듯 여자의 인터뷰를 해야 한다 말해주었다. 어디서, 라고 묻기에 답을 해준 뒤 한숨을 내쉬었다. 가야 하는데,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인터뷰 용지를 받아들고 한참을 서 있다가, 회의실로 자리를 옮겼다. 회의실로 들어서자마자, 여자와 멤버들이 눈에 들어왔다. 문득 등이 서늘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셋, 둘, 하나. 안녕하세요, Mayday! 걸스 힛입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여자의 말에 맞춰 구호를 외치던 멤버들이 꾸벅 인사를 해 왔다. 아, 하고 어색하게 같이 인사를 하곤 테이블에 앉았다. 여자는 나를 계속 해서 빤히 바라봤지만 나는 차마 여자를 바라볼 수 없었다. 여자에게 질문을 하면서도, 그 목소리가 듣기 싫어서 꾸역꾸역 입술을 깨물면서 메모를 해야 했다. 이내 인터뷰를 계속 진행하는데, 한 멤버의 첫사랑 얘기가 문득 튀어 나왔다. 첫사랑 얘기에 괜히 마음이 불안해져 질문을 넘기려고 하는데, 여자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귀에 꽂혀들었다.
"저도 영화 같은 사랑 했었는데."
"………."
"언니도 아시죠?"
여자의 말에 애써 여자를 무시하려고 했으나, 여자가 굳이 내 손을 잡으며 물어왔다. 여자에게서 손을 빼내고 싶었지만, 여자는 빼내면 빼낼수록 더 잡아왔다. 저번엔 미안해요. 솔직히 제 첫사랑, 놓치고 싶은 사람이 아니거든요. 여자의 말에 듣다 심장이 떨려서 일어서버렸다. 갑작스레 일어서자 소란스러운 공기가 갑작스럽게 조용해졌다. 나를 따라 여자도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고, 이 세상에는 둘만 존재할 것 같은 느낌까지 들었다.
"저랑. …저랑 얘기 좀 해요."
"………그러죠, 뭐."
여자가 뭐가 무섭다고, 목소리까지 덜덜 떨면서 말을 했는지. 순간 자괴감과 함께 비참함이 몰려 왔다. 멤버들은 이게 무슨 일인지 자각도 하지 못한 채 두리번거리는 상태였고, 여자는 팔짱을 낀 뒤 나를 바라보다 회의실을 나섰다. 뭐가 그렇게 떨리는 건지, 이제는 손까지 덜덜 떨렸다. 도대체, 뭐가 무서운 걸까. 나는…. 회의실 옆, 복도에 서서 여자는 나를 내려다보았다. 오늘 힐까지 신어서 그런지 한참은 커보였다. 나는 여자를 올려다보았다가 바닥을 쳐다보았다.
"왜요, 그만해달라고요?"
"…네. 제가 지민 씨 지금 여자친구잖아요."
여자는 오히려 내 말에 빙긋 웃음을 지었다. 갑작스레 미친듯이 불안해서 나는 창문 틀을 꼭 잡고 내 몸을 지탱했다. 사귀고 있는 거면, 언니도 알잖아요. 지민이 오빠 진짜 놓치기 싫은 사람이라는 거. 여자의 말에 나는 다시 여자를 바라보았다가 이번에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왜인지, 여자를 도무지 바라볼 수가 없었다. 성격이 불 같은 건 아니었지만, 이렇게 답답하지도 않았는데. …여자의 말에 한 템포 늦게 대답했다. 그래도 지금은 제 남자친군데, 너무 예의에 어긋난 것 같아요. 나름 강단 있게 말하려고 노력했지만, 끝이 떨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언니."
"………."
"언니, 왜 이렇게 떨어요?"
제가 잡아먹기라도 해요? 여자는 내가 만만한 듯이 웃으며 살짝 내 어깨를 쥐었다. 작은 터치에도 흠칫 놀라며 떨자 여자는 웃음을 터뜨렸다. 약한 척 하시는 건가? 여자의 말에 입술을 깨물었다. 그냥, 미친듯이 불안했다. 그 원인을 모르겠는 게, 더 불안했다. 여자가 도대체 뭐가 무섭다고. 이 상황이 뭐가 두렵다고. 여자는 다시 팔짱을 끼며 나를 내려다보았다. 여자는, 이내 무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오빠 지금 태도 보면, 솔직히 넘어올 것 같지는 않거든요. 여자는 말을 이어나가며 간간히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근데, 언니 보면 가능성 있을 것 같아요. 언니가 못 버틸 것 같아요. 여자는 아주 착한 말투로 내게 말했다. 남들이 멀리서 보면, 꽤나 훈훈한 장면이라고 생각할 법 했다.
"전 솔직히."
"……."
"언니는 이길 자신 있거든요."
여자의 말에 울컥해서 말을 하려는데 눈물이 차올랐다. 진짜 최악이다. 어린 여자 애에게 지고 있는 게 분하다가도 뭐가 그렇게 두려운 건지, 자꾸만 식은땀이 나서 입술을 깨물었다. 차마 울고 싶지는 않았는데. 여자가 '그러니까 저, 포기 안 하려구요.'하고 슬며시 입 꼬리를 올려 웃는데도 대꾸를 할 수가 없었다. 그냥 여기에서, 누가 날 구해줬으면 하고 생각했다. 누가 인형 뽑기를 하듯 나를 그대로 집어들어 이 자리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면, 하고 한참을 생각했다. 뭐라도 말하기 위해 입술을 떼는 순간, 울음이 울컥 밀려나왔다. 눈물을 닦는데, 그게 왜 그렇게 창피하고 자존심이 상하는지, 마음이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언니, 대답 못하는 거 인정한 걸………."
안쓰럽게 나를 바라보던 여자가 말을 멈췄다. 이내 입술을 깨물더니 눈물이 담긴 눈으로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의문스럽게 여자를 바라보는데, 갑작스럽게 누군가에게 손목이 잡혀 돌려 세워졌다. …지민이었다. 그토록 보고 싶었던. 또, 그토록 그 빈자리가 미웠던. 이내 눈물로 가득한 내 얼굴을 보고 눈 꼬리를 내리던 지민은 차가운 얼굴로 여자를 바라보았다. 여자는 어느새 울고 있었다. 내 손목을 잡고 있지만, 여자를 보는 지민. 그래, 맞아. 이제 뭐가 두려웠는지 알 것 같았다. 여자에게 왜 한 마디도 할 수가 없었는지, 이제야 알 수 있었다.
"너, 진짜 미친 것 같아."
"………오빠."
"너 지금 당장 안 가면 내가 너한테 욕할 것 같거든."
"……오빠, 그게 아니라."
"내 앞에서 꺼져. 제발."
지민의 말에 여자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술을 깨물었다. 둘 다 울고 있었지만, 이내 지민은 나를 끌어당겨 안았다. 그래, 이게 무서웠던 거다. 내가 아닌 여자를 안아줄까 봐. 여자에게 미안하다고 할까 봐. 여자가 주먹을 꽉 쥐고 울음을 참아내자, 지민은 고개를 삐딱하게 내려 여자를 바라보았다. 왜, 욕해줄까? 지민은 아주 날카롭고 차분한 목소리로 여자를 내려다보았다. 욕도 순하게 말한 거야, 솔직히 말해줘? 지민은 여자에게 차가운 말을 내뱉으면서도, 나를 달래는 손길은 다정했다. 그 행동이, 너무 안심이 되고 서러워서 더 울음이 났다. 너 진짜 죽이고 싶어. 지금도 엄청 참고 있는데, 나. 화가 많이 난 건지, 지민의 몸 전체가 다 뜨거웠다. 그러면서도 지민은 표정 관리를 꽤나 잘하는 듯 했다. 차가운 목소리, 딱딱한 말투. 무서웠다, 지민이.
"네가 안 갈 거면, 내가 가야겠다."
"………."
"진짜 너 좆 같아서 못 있겠어."
지민의 말에서 결국 거친 욕이 터져나온 뒤, 지민이 내 손목을 끌고 어딘가로 향했다. 어딘가로 향하는지 모르겠지만, 지민은 거친 발걸음으로 나를 이끌었다. 눈물을 채 닦지도 못하고 지민에게 끌려온 곳은 비상구였다. 우리가, 처음으로 사랑한다고 말한 곳이었다. …더 울음이 나서 꾸역꾸역 삼켰다. 지민은 뭔가 할 말을 하려고 입을 달싹이더니, 이내 입을 꾹 닫았다. 지민을 감싸는 공기가 한순간 무서워서, 고개를 내렸는데. 지민은 내 손을 잡고 다시 제 품으로 끌어당겼다. 지민의 가슴팍에 얼굴이 닿았다. 며칠동안, 며칠동안 그렇게 원하던 지민의 품이었다. 지민의 몸이 너무 따스해서 눈물이 더 나는 기분이었다.
"사랑해."
그 모든 시간 끝에, 지민에게 들려온 첫 말이었다. '울지 마.'도 '미안해.'도, '괜찮아.'도 아닌, 사랑해. 그 말에 모든 응어리가 다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여자가 아닌 나에게만 해주는 말이라서 더, 울음이 났다. 지민의 손길에 모든 게 무너져내리는 기분이었지만 이제 무섭지 않았다. 슬프지 않았다. 정말 많이 힘든데, 몸도 많이 아픈데. ………행복했다.
덧붙임
제가 사이다 씬을 잘 썼는지 모르겠어요.
연애해본 경험으로 쓰고는 있지만, 잘 쓰는지는 모르겠네요.
그래도 우리 떡커플이 긴 터널을 잘 통과한 것 같아서, 한편으로는 마음이 편해요.
오늘도 고마워요, 만나서 고마웠어요.
오늘 유난히 기분 곡선이 왔다갔다 하네요.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죠? 글쓰느라 많이 늦어졌지만, 오늘 이 글 보면서 조금은 기분이 나아졌으면 좋겠어요.
제가 해줄 수 있는 위로가 이것밖에는 없네요.
힘내요, 우리!
p.s 암호닉 분들은 꼭 암호닉 달고 댓 달아주셔야 제가 확인이 가능합니다.
나중에 물갈이할 때 그래야 체크가 되니까, 꼭 암호닉 달기.
p.p.s 지민이 반존대 누가 뭐라 합니까, 그게 너무 발려서 제가 글까지 쓰고 있는데...
우리 지민이 건들지 말아라. T-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