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디 ] 아스피린소년
w. 혜림
bgm Aria ( 구텐베르크 변주곡 )
내가 6학년이 되던 해 2월 끝말에, 그 애는 급하게 부산 어디메선가 이사를 왔다.
뭐, 아버지가 갑자기 전근을 가게 됬다나. 그런 뻔한 이유로 급하게 옆집으로 들어온 그네는 팥이 고슬고슬 바스라진 팥시루떡을 집집마다 돌렸다. 우리집 초인종을 누르고 아무 말 없이 그 시루떡만 팍 건낸 그 애의 첫 인상은 날카로왔다. 시루떡을 받고 아무말도 못한 채, 건낼 틈 새도 없이 그 애는 그냥 쫑쫑 저거 집으로 들어갈 뿐 이었다. 어디서 알아온건지 2살어린 여동생이 간단한 신상정보를 알려주었다. 그때는 그냥 아무 생각없이 하라는 공부는 안한다, 며 여동생 머리만 콕 쥐박았다.
그저 그 애는 그냥 부산에서 온 12살 남자애 였고, 나는 서울에 살던 13살 남자애였다.
3월이 되서, 학교엘 오가는 때, 내 앞에는 항상 그 애가 먼저 걸어가고 있었다. 유명한 스포츠 웨어 브랜드가 구석에 박힌 내 가방과는 다르게 그 애의 가방은 어디 건지 알 수 도 없었고, 상표명도 보이지도 않았다. 그저 그 애처럼 날카롭게 검은색일 뿐 이었다. 점심시간에 애들이랑 공차러 운동장엘 일찍 나갈 때 마다, 그 애는 물을 먹고 있었다. 나는 누군지 뻔히 알면서도 아는척 하나 없이, 괜히 모르는 척, 다른 애들이랑 이야기를 나누다 어떤 애 하나가 말했다.
저거 거지야?
나는 얼굴이 굳어올 것 같았음에도 아무렇지도 않은 척 웃으면서 애들이랑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고, 그 애는 그 날카로운 눈을 착 내리깔고 그냥 교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날, 처음으로 그 애가 내 앞에 먼저 걸어가지 않았다.
6월이 되서 장마가 어렴풋, 시작될 무렵에도 그 애는 물을 먹었다. 동생한테 물어보니 엄마랑 아빠가 맞벌이랜다. 맞벌이 부모의 수입은 높았고, 아이에 대한 관심은 낮았다.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되면서 하루종일 어둡게 비가 떨어졌다. 그 애는 비를 맞으면서도 물을 먹었고, 나는 가끔씩 비를 맞으면서도 축구를 했다.
도경수, 점심에 축구?
응, 너희 40분까지 나와.
35분까지 나와서 혼자 공을 차며 열심히 기다렸지만, 애들은 안오고 운동장에 떨어지는 비는 점점더 무거워졌다. 그 때, 정문에서 인기척이 느껴져 뒤돌아봤더니 그 애였다. 그 날도 그 애는 물을 먹으러 나왔다. 일주일 전엔가, 교장선생님이 학교 수돗물에는 기생충이 많다고 먹지 말라고 했던 훈화가 떠올랐다. 곧장, 물마시는 애에게로 다가가 옆에서 물었다.
너 거지야?
......
이 물 더러운데, 마시지마.
......
도시락 없어?
......
그 애는 끝끝내 말이 없었고, 그 다음날 날이 개었지만 내 앞길에 그 애는 나오지 않았다.
이틀 후에, 그 애는 다시 물을 먹으러 나왔다. 이번에는 물을 먹으려던 그 애를 내가 손목을 붙잡고 끌고와서 도시락을 건냈다.
물 먹지말고, 이거 먹어.
거지 아이다, 니나 많이 먹어라.
나를 매섭게 노려보던 그 애는 짙은 부산사투리로 대답하고 내가 준 도시락을 그냥 두고 떠났다. 눈빛이 억세던 깡마른 애는 마음에 자존심이 두껍게 깔려있었다. 괜히 오기가 생겨, 그 애에게 소리쳤다.
밥도 없어서 물이나 먹는데 니가 거지아니냐, 거지지.
그 애는 그런 말에도 꿈쩍도 안하고 얼른 정문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는 쌩하니 들어간 그 애를 노려보다 거절당한 도시락을 혼자 운동장에서 꾸역꾸역 밀어넣었다.
그날 저녁에 집에서 혼자 놀고 있었는데, 엄마 핸드폰으로 문자가 도착했다. 플립을 열어보니 (옆집)하고 저장된 이름이 뜨면서 문자가 쏟아졌다.
[옆집사람인데종인이가아프다네요약좀가져다주실수있으세요??]
늦저녁시간에 아빠,엄마도 없고, 동생도 잠들어 갈 사람이라곤 나 뿐이었다. 그저 무시해야지 하고, 다시 소파에 앉아 게임을 킬 때, 문자가 다시 한 통 왔다.
[열쇠는우편함에있어요제가오늘야근이라서집에못들어갈거같아요부탁드립니다]
집 구석에 처박혀있던 약통에서 타이레놀, 아스피린 같은 감기약, 진통제는 다 챙겨 후드집업의 주머니에 우겨 넣고 그리 먼 거리도 아닌데 뛰어 갔다. 우편함 속의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가자, 그 애는 이불을 둘둘말아 그 속에서 오돌오돌 떨고있었다. 침대시트와 베개는 온통 식은땀으로 범벅이었다. 나는 잔뜩 열이 올라 울긋불긋해진 그 애를 흔들어 깨웠다.
야… 일어나봐…
으, 춥다..뭐야..
깨우기 무섭게 내가 걷어낸 이불을 다시 끌어당기며 쌕쌕 숨을 몰아쉬던 그 애는 한참이 지나 겨우 실눈을 떴다. 그 날카로운 눈매로 나를 풀린 눈동자로 보다가 잔뜩 갈라진 목소리로 내게 되물었다.
..너 뭐야..
일어났으며 약 먹어.
약 먹으란 내 말에도 그 애는 코웃음을 치며 대꾸했다.
나 거지 아닌데.
알겠으니깐 약먹어. 너 아파서 죽고싶어?
걱정이 되서 말하는데도 자꾸만 말이 삐뚤게 나갔다. 분명 이번에도 삐뚤어진 질문에 엇나간 대답을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그 애는 고분고분하게 일어나
앉아서 내가 주는 약들을 삼켰다. 삼키고 나서도 몇 분 가량을 가만히 앉아있었다. 푸르게 어두운 방안에서 침대에 눈을 감고 앉아있던 그 애에게 내가 물었다.
이제 안아프지.
그 애는 인제서야 목울대가 생기려하는 얇은 목을 울려 나직하게 웃었다.
어, 안아프다.
++)
예전에 그냥 구상해뒀던건데 완전 짧은 조각
그때는 이름을 그냥 아무이름이나 넣었어요 타가수는 아니구~
5월달에 쓴거여서 장마철 얘기나오고 하는데 원래는 上 / 下 단편물이지만 下편이 너무 산으로가서 fail...
지금 적어둔 거만 보니까 이게 어딜봐서 카디..() 싶지만
살짝 말하자면 종인이가 쎈캐고 경수한테 고마운거 느끼면서 되게 틱틱대지만 사실은 되게 많이 고마워하고 좋아하는 거
다음거도 나중에 괜찮아지면 올릴까 생각도 해보는중이에요!
어휴 감기때매 죽겠네요ㅠㅠ 독자님들도 감기죠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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