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교사 전원우 x 5살 조카를 둔 대학생 김민규
w. 유치원 선생님은 예뻐요
“야, 한솔이 빨리 데려다 주고 역 앞에 피씨방으로 와라”
“오늘은 치맥 쏘기 콜?”
“오키. 야, 빨랑 오기나 해”
통화를 끊고나니 어제의 기억이 또 새록새록하다. 이석민과의 내기 당구에서 진 대가로 저 놈 주둥아리에서 넣어드린 4만원 어치의 족발을 생각하면 지금까지도 억울하다. 이석민한테 당구 진 건 진짜 김민규 20년 인생에 씻을 수 없는 오점이다. 김민영의 카톡에 나는 큣대를 놓아버릴 수 밖에 없었고 그냥 그 카톡 이후로 쭉 멘붕이었다.
‘나 지금 한솔이랑 너네집이야. 저녁 8시까지 집으로 와’
그 카톡을 보는 순간 내 손에 들려있던 큣대를 떨어뜨릴 수 밖에 없었다. 20살 김민규의 화창한 봄날에 먹구름 하나가 꼈다. 상황을 정리하자면 이렇다. 나보다 7살 많은 우리 누나가 일주일 전 집에 도배를 새로 했다. 귀한 아드님 축농증 때문에 하루종일 틀어놓았던 가습기로 벽지에 습기가 차서 곰팡이가 생겨가지고. 그래서 도배를 새로 했는데 또 귀한 아드님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켰단다. 일종의 새집증후군? 아니 몰라. 어쨌든 그랬단다. 그래서 한 보름정도 당신의 귀한 아드님을 내 자취방에 부탁한다는 게 우리 누나 입에서 나온 말. 일주일에 7번 술 마시는 게 대학교 신입생의 일상인데 어떻게 애를 보냐는 나의 울부짖음에 누나가 말없이 조용히 꺼내든 카드와 수표 5장에 입을 다물었다.
“마마, 나 배고파”
“김민규, 우리 한솔이 밥은 꼭 챙겨먹여”
‘삼촌한테 먹고 싶은 거 다 해달라고 해. 배달 음식은 절대 안되는 거 알지?’ ‘웅, 아라쪄. 마마’. 어휴. 애틋하다,애틋해. 바로 옆단지에 살면서 울먹이며 작별인사하는 모자를 보고 있자니 말이 안 나온다. 그리고 지도 맨날 반찬 사먹이면서 배달음식은 왜 못 먹게 한데. 하긴. 김민영의 요리 솜씨는 우리 착한 매형도 거짓말하게 만드니까.
“조카, 뭐 먹고싶냐”
“보끔밥”
“계란 볶음밥 어때?”
“스팸”
어후,저 싸가지. 1분 전까지만 해도 울먹일 땐 언제고 김민영이 나가자마자, 텔레비전 앞에 자리 잡아서 앉아있다. 저거 완전 몸만 쪼그맣지, 말하는 건 아주 중2 뺨친다니까. 나혼자 있었으면 밖에서 애들만나서 술먹으면서 안주로 대충 때웠을 텐데...그래도 저 쪼그만한 거 굶길 수는 없으니 밥은 해줘야지. 김치썰고 감자썰고 당근썰고 스팸도 썰고...하, 아침 저녁 어떻게 다 챙겨먹여 진짜.
“최한솔- 밥먹어라”
“아,삼촌! 김치 씻어서 넣었어야지!”
'Ha...no manner guy...' 라며 한숨쉬는 저 꼬맹이를 보니 꿀밤 놓고 싶은 충동이 매우 든다. 보름동안 저 미운 5살 시중이나 들면서 살아야 한다니. 이러다 김민규 20살에 화병 생기겠다. 최한솔 밥 먹이고 씻기고 유치원 알림장 확인 해 주고 잠자리에 든 것까지 다 확인한 후에 이석민한테 카톡을 보냈다. 김민영을 만나고 3시간동안 내게 일어난 일들을 말해줬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김민규 과팅 못 나가겠네’
‘ 담주에 무용과 과팅있지 않냐? 하...’
‘이 형님이 대신 나가지ㅋㅋㅋㅋㅋ
‘하.....ㅅㅂ.내일 아침 8시에 유치원 데려다 줘야 함.’
‘얔ㅋㅋㅋ혹시 아냐. 한솔이 유치원에 겁나 예쁜 사람 있을 수도 있잖앜ㅋㅋㅋㅋ’
“아,삼!초온! 빨리와! 늦게써!”
“으이구,다됐다,다됐어-”
이석민의 카톡에 ‘ 헛 소리말고 잠이나 자라’라고 말하려다가 말았다. 생각해 보니 이석민의 말도 일리가 있다. 보름동안 어쨌든 최한솔 등하원 시켜야 하고, 그럴려면 유치원 선생님 얼굴은 뵈야하는 게 당연하고, 뭐 거기다가 그 유치원 선생님이 예쁘기까지 하면 나야 너무나도 땡큐지. ‘최한솔아. 너네 선생님 예쁘냐?’ ‘우리 선생님, 공주님이야. 내꺼야’ 날 표독스럽게 쳐다보는 최한솔을 보고 있자니, 입가에 웃음이 절로 그려진다. 싸 가지 없는 최한솔이 세상에서 젤 못하는 게 거짓말 하는 거거든. 최한솔의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고, 엘사 공주님같다는 말에 거울 앞에서 꽃단장 좀 했다. 전공 실기 수업때문에 트레이닝복밖에 입을 일이 없는 체대생이지만 오늘은 예외다. 정장은 오바고, 간단하게 셔츠에 청바지. 김민규 정도의 핫바디면 이정도만 해도 괜춘하지. 진짜로 예쁘면 유치원 버스말고 직접 데려다 줄 수도 있는거지, 암.
“삼초온! 저어기 애들 벌써 버스 타고 있자나!”
“조카, 원래 주인공은 마지막에 등장하는 거야-”
차마 뛰면 공들인 내 머리가 헝클어질까봐 못 뛰겠다라고 말은 못했다. 오,저 멀리서만 봐도 예쁨이 보이는 것 같은데. 연분홍 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여자치곤 좀 짧은 머리다. 오, 오늘 나랑 거의 커플룩? 음...머리는 커트인가? 긴 머리가 좋긴 한데 그래도 커트가 어울리면 다 잘 어울리는 얼굴이니까 상관없지. 유치원 버스와 가까워질수록 실루엣이 뚜렷해져 간다. 햇빛때문에 얼굴은 잘 안보이지만. ‘선생니임-!’하고 해맑게 달려가는 최한솔을 향해 작고 가냘픈 두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모습이 꽤 여성스러워보인다. 시간 다됐다며 날 재촉한 최한솔 때문에 렌즈를 못 껴서 시야가 뿌옇다. 좀 더 가까이 다가서면 얼굴이 제대로 보일 것 같은데.
“삼촌-가따오께!”
“4시에 하원이에요-”
“....아, 한솔이 잘 부탁..드립니다”
내가 렌즈를 안 껴도 아예 안 보이는 건 아닌데...지금 내가 본 게 맞나? 나의 하나뿐인 조카 최한솔아, 니가 오늘 아침에 얘기한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는 유치원 선생님이....남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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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방에서 글잡으로 옮겨왔습니다!
원래 포인트 안 걸어놓을려고 했는데, 제 글을 몇명이나 읽는지 궁금해서....5포인트 걸게 되었어요 하핳ㅎㅎㅎㅎ
내용은 조~~금 수정했습니다. 읽어보니 매끄럽지 않은 부분이 있어서 두 군데 정도 수정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