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재는 제법 예의가 밴 식사예절을 가지고 있었다. 음식을 꼭꼭 씹어 먹으먀 절대 입을 벌리지 않는 것은, 음식만 있으면 허겁지겁 해치우는 동갑인 대현과는 참으로 다른 성향이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그 둘은 참으로 잘 맞았다. 늦게 들어와 3년 내내 좀처럼 긴장을 풀지 못하고 살작 것도는 듯 했던 대현이나 나이차가 많이 나는 형들과 동생들 사이에서 어른스러워 져야 했던 영재는 희안하게 만나면 딱 그 나이에 아이들처럼 유치해 졌다. 솔직히 형들의 입장에서는 그런 아이들이 보기 좋았다. 서로를 숨기지 않고 편하게 들어 낼수 있는, 의지할 수 친구가 생긴 거니까.
"대현이는 요새 어떻게 지내?"
그래서 인지 부산에 있는 대현과 그나마 연락을 하는 것은 영재 밖에 없었다. 다른 멤버들은 솔직히 먼저 전화 걸기도 어색했고, 힘찬이니 용국이 전화를 걸어도 "네...응...알겠어요."이런 말들 밖에는 하지 않았는데, 그나마 영재랑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듯 했다.
"몰라."
"..."
그래서, 이런 반응을 보면 누구든지 알수 있었다. 힘찬은 작게 한숨을 쉬며 영재에게 말했다.
"왜, 뭐가 불만이야?"
"뭐."
"뭐가 그래 불만인 표정이야? 대현이랑 또 싸웠어?"
"..."
"싸웠구만."
싸움에 있어서 동갑내기 남자들은 어린애가 된다. 힘찬은 그런 그들을 보며 예전의 자신들을 따올렸다. 8년을 친구로 만나는 동안 어찌 싸움한번 없었겠는가? 아마 남들은 화내는 용국을 상상하기도 힘들겠지만, 힘찬은 제법 그의 화내는 얼굴이 익숙했다. 참으로 싸우기도 드럽게 싸웠다. 사소한 것, 씻는 것부터 시작해서 음악취향까지 맞는게 없었으니 싸울만도 했다만... 이 부분에 있어서는 형이라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힘찬은 대충 일을 끝내고 영재의 앞에 앉았다.
"싸우는 건 문제가 아니야. 아니, 나는 오히려 자주 싸우라고 권하고 싶다. 문제는 그 다음 화해 하는 방법을 배우는 거지."
영재는 힘찬이 준 물에 바람을 불며 뾰루퉁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한참 억울한 표정을 짓고 있던 영재가 조금 뒤,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녀석 노래하고 싶데. 하다 못해 버스킹이라도 돌아다니면서 말이야."
아아. 대충 이해가 됬다. 노래에 미쳐사는 놈이다. 천상 노래쟁이가 노래를 하지말라고 입을 꼬매놨으니 미치고 팔짝 뛰겠지. 힘찬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이런 일을 접할 때 마다 자신의 선택을 후회해야 되는 게 아닌가, 자신이 옳지 않았던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지금 아이들의 시간을 뺏고 있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에, 힘찬은 할 말을 잃었다. 할말이 없었다.
"그럼해."
"같이 음악을 연습했던 애들이랑 한데."
지금 BAP활동을 하는 것도, 멤버로서 활동하는 것도, 음악을 부르는 것도 금지 당했다. 그건 당연히 같은 멤버들끼리 활동하는 것도 금지됬다는 것. 적어도 우리 멤버들끼리는 노래를 할 수 없다는 말이다. 대현은 그런 상황에서 다른 팀 아이들이랑 이라도 노래를 하고 싶다고 말하고 있었고, 영재는 그런 대현에게 내심 섭섭해 하고 있었다.
"같이 음악을 했던 친구들이랑 버스킹을 하는게 그렇게 마음에 안들어. 그녀석들이랑 팀이 아니잖아. 우리랑 팀인데 그녀석 혼자만 활동하는 것 같아서 기분 나빠."
영재도 노래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었다. 아니 가수 인데 왜 없겠는가? 그런 것을 자신은 참으며 견디고 있는데 대현은 다른팀을 꾸린단다. 그것에 영재는 뾰루퉁해 지는 것이 당연한 것일지도 몰랐다.
"그녀석은 비에이피라는 팀을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 그냥 단순히 음악을 하고 싶어서 이용한 수단?"
"...그거 굉장히 위험한 발언이라는 거 알지?"
순간 정도를 모르는 것 같은 영재의 발언에 힘찬은 얼굴을 굳혔다. 차갑게 내려앉은 얼굴은 힘찬에게서 좀 처럼 볼 수 없는 모습이었고, 순간 영재는 자신의 도 넘은 행동에 곧바로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네. 죄송합니다."
"그 사과는 나중에 대현에게 하는 걸로 하고."
힘찬은 금새 얼굴을 풀고, 영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덧붙였다.
"몇일 뒤에 시간쫌 비워놔라. 용국이 2개월 정도 뒤에 유럽일주에 프라하 찍고 돌아온다고 하더라. 마침 재판도 있고 끝나고 좀 모일려고 하니까. 일단 서울에 있는 애들끼리 모여서 같이가자."
"...아, 그래요."
하지만 영재는 어째서 인지 용국한테 같이 가자는 말에 대현의 일보다 더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힘찬은 다시 영재를 째려보았다.
"...너희들 한번도 용국이 집에 안갔지?"
"-와하하하, 형 안본 사이에 예지력이라도 키우셨나..."
"말 돌리지 말고, 시선피하지 마시고~ 빨리 말하세요."
"그,그치만 혼자 가기는 뭔가 어색하고 용국이형은!"
용국은 든든한 기둥이었고 힘찬은 하찮은 형이었다. 하지만 다르게 말하면 용국은 대하기 불편한 형이었고, 힘찬은 마음을 터놓고 말 할 수 있는 편안 형이었다. 그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시간을 두니 생각보다 문제가 큰것 같았다. 같은 팀으로 평생을 가기 위해선, 한명이라도 불편한 사람이 있으면 안됀다.
"...아이고."
바빠서 다들 신경쓰지 못했던 것들이 하나둘 들어나기 시작했다. 서로가 뭉쳐야 되는 상황에서 더욱 명확하게 보이는 것들. 우리들 중 가장 늦개 합류한 대현이가 아직 우리에게 완전히 마음을 열지 않았다는 것과 용국이를 여전히 어려운 형으로 생각한다는 것.
"하아..."
아무래도, 우리가 끝까지 가기 위해서는 해결 해야 될게 회사만은 아닌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
그렇게 다시 시간이 지났다. 그때,소송을 시작했던 것이 11월 초였는데, 벌써 다음년도 3월이 되었다. 제법 많은 일이 있었다. 회사가 우리를 역 고소한것은 물론이고 재판도 한차례를 지나갔다. 역시나 결판 난 것도 없었고 의견도 전혀 좁혀지지 않았다. 회사는 전혀 잘못한 것 없다고 주장했으며 오히려 시간이 지날 수록 불리해 지는 것은 우리라며 당당해 했다. 우리는 억울해 했고 분을 참지 멋해 부들부들 떨었지만 반박할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잊혀지는 것도, 제기 가능성이 멀어지는 것도 우리였으까 말이다. 당랑거철. 말 그대로 우리는 거대한 바퀴에 맞서고 있는 한낫 사마귀였을 뿐이니까.
"하... 일단 오랜만이네. 다들."
재판장, 법원을 나오고 나서야 우리는 서로를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그제야 우리는 오랜만에 다시 모였었다는 것을, 그리고 어색해져 버렸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힘찬은 서로 대면대면한 아이들을 보고 어색하게 웃으며 다 같이 밥이라도 먹으러 가자고 했다. 그때 용국이 조용히 손을 들어 거절 의사를 밝혔다.
"미안, 나 약속이 있어서..."
"어?"
"선약인데... 좀 급한 일이라서."
용국이 말끝을 흐리며 그의 낮은 목소리가 사방을 울린다. 멤버들은 여전히 용국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전보다 더욱 용국을 어려워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힘찬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혹시라도 약속이 빨리 끝나면 오시오."
"알았어."
그렇게 다른 아이들을 힘찬에게 맞기고, 용국은 약속을 잡은 형을 만나러 갔다. 사실 용국 자신도 오랜만에 만난 동생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하지만 우선순위가 있다. 지금은 적어도 왠지 이것이 조금더 중요한 것 같았다. 오늘 만나는 친한 형, 비슷한 시기에 데뷔했던 그는 지금 자신들과 다른 식으로 풍파를 격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원하지 않는 결말을 가장 잘 알고, 가장 가까워져 있는 사람이었다.
"야, 빵. 여기."
용국이 카페에 들어서자 누군가 용국을 불렀다. 용국은 모자를 푹 눌러쓴 그 남자를 확인하자마자 밝게 웃으며 그 남자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인사의 표시로 가볍게 주먹을 부딧혔다.
"오랜만이예요. 병희형."
"그러게. 서로 활동을 안하니, 만날일이 있어야지."
용국은 그의 앞자리에 편하게 앉았다. 그는 미리 용국의 아메리카로를 시켜 놓은 상황이었다.
"오늘 1차 공판이 끝났지?"
"네."
"오랜만에 만난 멤버들 만나러 가야겠구만."
병희는 시간을 뺏어서 미안하다 말했고, 용국은 괜찮다며 손사례를 쳤다. 병희는 자신의 앞에 놓인 아메리카노를 다 마시고는 중얼거렸다.
"있을때 잘해줘. 일 때문에 틀어지면 그런 마음도 다 부질없어 지는 기분이니까."
"..."
그들이 속한 팀중 2명의 계약 기간이 끝이났고, 그들은 팀이아닌 미래를 선택했다. 그리고 그 2명중 한명은 연기자로서 엄청난 잠재력이 있는 사람이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를 응원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 심지어 회사 마저도 그의 계약 해지에 긍적적이었다. 그의 팀 탈퇴에 충격을 받은 것은 같은 팀에 있던 멤버들 밖에 없었다.
"자, 여기 유용할지는 모르겠다만."
"감사합니다."
병희는 용국에게 갈색 봉투에 담신 서류들을 건내주었다. 비에이피 처럼 소송으로 가지않고 회사에서 끝난 계약 해지였지만, 병희는 용국의 부탁으로 특별히 법무자와 의논해 계약서에 적힌 세부사항들을 꼼꼼히 살펴보았고, 그것에서 소송에서 위험이 될만한 것들을 알아보았고, 이런저런 이득이 되는 정보들을 뽑아 지금 용국에게 전해주고 있었다. 용국은 이렇게 도움을 받으면서도 마음이 편지 않았다. 그의 사정을 자신이 이용하는 것이니까. 용국은 조심스레 물었다.
"괜찮아요?"
병희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안 괜찮아. 가족이라 믿고 있던 관계가 사라진 거니까."
"...죄송합니다."
갑자기 차에 빈자리가 생겼다고 한다. 숙소가 넓어지고, 밥의 가격대가 갑자기 올라가고, 아침에 준비도 빨라졌다고 한다. 대신 허전해 졌다. 고개를 돌아보면 있던 사람이 사라지고, 같이 음악을 준비하던 사람이 사라지고, 춤을 출때 동성을 맞춰야 되는 사람들이 사라졌다. 그렇게 허전함을 느끼고 갑자기 어른이 된 기분이었다.
"갑자기 자각하게 되더라. 우린 결국 회사에서 철저하게 만들어진 이익 집단이라는거."
"..."
지금이나 떨어질수 없는 절대 불변의 법칙이 있다.
팬,
멤버,
음악.
이 세개의 연결고리 중에 하나라도 떨어진다면 그 팀은 철저하게 무너져 내린다. 그 사이를 무너트리는 것은 많은 요인이 있다. 세개중 하나가 스스로 무너지는 경우도 있고, 회사나 주변의 영향으로 무너져 버리는 경우가 있다. 웃기는 건, 그렇게 강해보이는 저 3개가, 조금의 영향으로도 너무나 쉽게 무너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아이돌 팀의 근본적인 전제조건은 타인에의해 만들어진 이익집단이라는 것. 겉보기에 아무리 우정이니 뭐니 떠들어대도 절대 바꿀 수 없는 전제조건이다.
"물론 팀에 소속되어 있는 멤버들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평생을 같이 할 친구들이라고 든든하게 생각하는 환상 속에 갇혀 살아가겠지. 하지만 팀에 있던 멤버중 어느 한명이 이 정의를 깨닫게 되는 순간, 팀워크라는 단어는 산산조각이나고 난다. 서로에게서 화목한 모습을 보이며 이익을 취하는 존재. 그게 어떻게 보면 아이돌 팀의 가장 이성적인 관계니까... 누구가 그러더라고."
"..."
모두 알고 있는 내용, 또는 경험 했던, 잔인하리만치 지금 경험하고 있는 내용. 너무 생생하고 잔인하여 깊이 박혀 있을 만큼 말이다. 용국은 살작 가슴이 어두워지는 것 같았다. 죽음을 생각할 때 가슴에 스며드는 말로 할 수 없는 공포 덩어리였다.
"그렇게 변해버린 서로를 이성적으로는 이해하면서 감성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해 계속 그 모순을 반복하는 거야."
병희는 두 집게 손가락을 빙빙돌리며 끝없이 맛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를 연상했다. 항상 이성이랑 감정은 엇박자가 났다. 이성으로는 멤버들을 위해서, 그 사람의 미래를 위해서 그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면서도 감정은 버려짐의 충격을 잊지 못한다. 그렇게 몇 년을 힘들여 찾은 팀인데도 불구하고 이 팀이 그 만큼 유지되는 경우는 몇이나 있을까? 어쩌면 내가 그 말도 안되는 정의에 휘둘리진 않을까? 그렇게 자신의 가족이라는 것이, 가족이라는 팀이 이익집단을 자각해 버린것에 그는 좌절하고 있었다.
"...적어도 너희들은 우리처럼 허전해 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끝으로 그는 가볍게 용국의 어깨를 툭툭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용국은 그런 그에게 짧게 묵례를 했다. 용국은 그 남자를 제법 잘 알고 있었다. 실력도 있고 노래도 손가락안에 뽑히는 실력자였다. 그리고 보기와 다르게 정이 많았고, 그 정이라는 것 때문에 상항 피해를 보는 남자였다. 그리고 그 남자는 용국에게서 자신의 모습이 보인다고 종종 말하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용국이 더욱 잘되기를 바라고 있었고, 용국은 그 사실에 가슴이 저려오면서도 고마움을 느끼는 자신이 참 한심하게 느껴졌다.
"..."
용국은 시계를 보았다. 생각보다 일이 일찍 끝났다. 용국은 핸드폰을 만지작 거렸다. 전화를 할까 말까 한참을 망설이고 있는 중이었다.
우리를 지키고 싶은건 6명 밖에 없다. 우리를 부수고 싶은 사람들은 수도 없이 많다. 이런 이들중에 우리들중 한명도 변하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을까.
분열은 내부에서도 일어날 수 있었고 용국은 그것이 두려웠다. 지금은 이렇게 서로를 보며 웃고 있지만, 한명이라도 현실을 자각하게 될까봐. 그리고 그 현실에 우리모두가 같이 할 수 없다고, 그렇게 알아버릴까봐, 우리가 부서질까봐 두려웠다.
뚜르르르
그래도 두려움애 현재를 잃는 것 만큼 미련한 것이 없다는 것을, 용국은 알고 있었다. 그것을 알 고 있기에 두려워 하면서도 버틴다. 그런 안된다는 말은 수도 없이 들었다. 이상과 현실은 다르다고, 한 회사에 소송을 내고 나간 아이돌 중에, 원년멤버 온전히 활동하는 팀은 현재 없다고, 아마 주변에서 많이 들을 거야. 지금 이 상황이 불가능이라고. 주변에서 수도 없이 말했다. 너무 많이 들어서, 그런 말로는 무너지지 않을 만큼 단단해져 버렸다. 전 멤버 온전히 소송에 이기는 경우도 없었지만, 모든 멤버들이 같이 합심해서 단체 소송을 낸 경우도 없었다. 그런 것이 이상에 존재하는 꿈이라면, 그것을 현실로 만드는 것이 우리면 되는 것이다.
"여보세요? 끝났냐?"
"응. 어디야?"
다른 멤버들이 무너지면 잡아주면 된다. 자신이 흔들리지 않으면 된다. 그렇게 생각하며 용국은 다시 자신을 다독였다. 불가능한 꿈을 꾸자. 그리고 그것을 현실로 바꾸는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리고 몇일뒤, 엠블랙 3인조 컴백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용국은 조용히 응원한다는 메시지를 지오에게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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