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치피스님
V, Vernon, and SEVENTEEN
...부디 행복하십시오.
너의 마지막 말이었다.
조직명 : 세븐틴(SEVENTEEN)
3년 전 새롭게 등장하여 놀라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중.
잘 짜여진 위계와 상당한 실력의 조직원들이 세븐틴 성장에 한 몫 하고 있음.
21 : ~ 4년 전
인적이 드문 산길을 따라 2시간가량 걸어 올라가다 보면 다 떨어져가는 낡은 간판을 간신히 매달고 있는 고아원이 하나 나온다. 간신히 매달려 있는 간판에는 '행복고아원'이라고 적혀있었다. 주변에 인가가 하나도 없는 행복고아원은 인적이 드문 탓에 고아들을 주워다가 인신매매 하는 곳으로 유명하기도 했다. '행복'고아원이란 이름과는 정말 어울리지 않는, 한마디로 더러운 곳이었다.
팔려 나가는 아이들은 남녀 불문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탈출을 시도 했는지 탈출을 성공 했는지, 고아원을 나가게 되어서 행복한지 불행한지 따위는 남은 아이들의 관심 밖이었다. 오랜 학대로 인해 그게 자신의 숙명인 듯 인형처럼 지내고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아이들 중에서도 여자 아이들은 특히 더했다. 돈만 주면 방과 여자아이들을 빌려주는 원장 덕에 충격을 받을 대로 받아 여자아이들 모두가 정신병을 앓고 있을 지경이었다. 자폐 증상은 기본이요 자살을 시도 때도 없이 했다. 이렇게 상처가 나거나 정신이 온전치 않아 팔지 못하게 된 아이들은 바로 뒤에 있는 야산에 버리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고아원에는 단 하나의 아이만 남게 된 것이 현재의 상황이었다.
이러한 행복고아원의 역사상 단 한 사람이, 무려 7년 만에 다시 돌아온 사건이 일어났다. 그것도 한 손에 총을 쥔 채.
"......"
"왜 이렇게 애들이 없어졌죠, 원장님? 오면서 딱 한 명의 남자 애만 봤네요."
"...윤정한, 너..! 여길 어떻게..!"
"정이 하나도 없으신 줄 알았더니, 얼굴이랑 이름을 다 기억하시네요? 하긴, 내가 곱상하긴 하죠. 쉬이 잊힐 얼굴은 아니야."
"그딴 장난감 총으로 날 위협할 수..!"
대놓고 비웃은 정한이 조준하고 총을 쐈다. 그 탄환이 그대로 날아가 원장의 귀를 절묘하게 스쳤다. 타오르듯 뜨거워지는 귀와 무언가 흐르는 느낌에 원장은 급하게 한 손으로 귀를 감싸 보았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에 한가득 묻어나오는 피를 확인한 원장이 그제야 고통이 느껴지는지 두려운 얼굴을 하며 듣기 싫을 정도로 소리를 질러댔다. 정한은 그런 원장을 마음껏 비웃었다. 그의 예상대로 밖에선 그 누구도 반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미 정한과 함께 왔던 사내가 그의 기준으로 어른 되는 사람들을 다 죽였으니 그의 소리침을 들을 리가 만무하지. 정한은 여유롭게 책상에 기대며 탄창을 빼곤 그 안에 다시 탄환을 채웠다. 원장은 그런 정한의 모습에 급하게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물었다.
"워, 원하는 게, 뭡니까..?"
원장의 태세변환에 정한이 소리 내어 웃었다. 곧 웃음을 뚝 끊더니 탄창을 끼고 장전을 하며 말했다.
"7년 전 여기 있던 아이들 다 어디로 보냈어요?"
"저, 저도 모릅,"
어김없이 정한의 탄환은 원장의 반대쪽 귀를 스쳤다. 정한은 여태껏 그래왔다. 대답을 안 하거나 대답이 마음에 안 들면 자신의 마음에 들 때까지 그 버르장머리를 고쳐야 했다. 찢어지는 비명소리가 원장실을 가득 메웠다. 정한은 그 큰 소리에 귀를 살짝 막으며 인상을 썼다. 곧 구겨진 얼굴과는 다른, 상당히 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곤란해요. 난 아이들을 찾고 싶거든요. 내가 팔려갈 당시에 여기 있던 20명 가까이 되는 아이들이요."
"죄, 죄송, 하지만, 그때 장부는, 이미.. 컥,"
"뭐야.. 그거 가지고 안 죽어요. 그래서 일부러 귀 쏜 건데, 숨 넘어 가는 척은 좀 오바지 않나."
정한은 즐거워 보였다. 고통을 호소하는 그를 보며 맑게도 웃었다. 소름끼치도록 무서운 그 모습에 그대로 기절해버리는 원장이었다. 정한은 그런 원장을 확인하곤 웃음을 거뒀다. '나약해 빠져가지곤, 재미없게..' 차분히 중얼거린 정한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발로 원장의 등을 힘주어 밟았다. 그거로는 부족한지 아예 위로 올라가 쿵쿵 뛰기까지 했다. 그러던 그때 모두를 처리한 정한의 사람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 또한 손에 총을 들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자연스러워 총기 소지가 불가한 대한민국인데도 이질감이 들지 않을 정도였다. 남자는 문지방에 삐딱하게 기대서서는 정한을 보며 물었다.
"뭐하냐?"
"나 어릴 때 이 새끼가 나한테 했던 짓 좀 해봤어."
"너무 했네."
"더한 짓도 많이 했지.. 아, 조쉬. 한 명은 살려뒀냐?"
"몰라, 방마다 들어가서 일단 다 죽였는데."
"하여간 홍지수. 도움이 안돼요."
"네가 죽이라며."
지수가 인상을 쓰며 이랬다저랬다 하는 정한을 보았다. 그 눈빛을 그대로 받던 정한은 상관없는지 어깨를 으쓱하더니 지수를 지나쳐 문을 나섰다. 곧 지수는 여전히 기절해 있는 원장을 힐끔 보더니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마음에 안 든다는 게 그를 죽인 이유였다. 크게 동요했던 원장은 곧 주변을 붉게 물들이며 식어갔다. 일말의 죄책감 따위도 없어 보이는 지수도 정한을 따라 문을 나섰다. 그 모습이 선한 그의 인상과는 괴리감이 들 정도였다.
건물 밖으로 나온 지수의 눈엔 차트를 안고 있는 한 소년이 보였다. 운동장이라 부르기도 애매한 아주 좁은 공터 한 가운데에 자신을 막아서고 있는 그 소년은 아까 정한과 들어올 때 보았던 고아원에 하나 남은 소년이었다.
"음, 곤란하네.."
지수는 머리를 긁적였다. 딱 봐도 어려보이고 그렇다고 이곳에 남겨두기엔 이미 저 안은 생기가 없었다. 자신을 두고 고민하는 지수를 아는지 소년이 대뜸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이찬이라고 합니다. 저도 데려가주세요. 나이는 16살이고요, A형입니다. 또오,"
"찬이라고? 따라와. 안 그래도 데려갈 거였어."
별안간 별관이라 치던 컨테이너에서 나온 정한의 말에 찬이가 웃어보였다.
조직 세븐틴(SEVENTEEN)은 이날을 기점으로 생겨나게 된다.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났다.
해가 바뀌는 동안 점점 추워지던 날씨는 어느새 조금씩 녹고 있었다. 그만큼 6개월은 꽤나 긴 시간이었다. 세븐틴이란 조직은 그간 여러 조직을 거쳤던 정한에 의해 나름 빠르게 안정되어 갔다. 제일 구하기 어려웠던 무기 같은 경우도 지수의 인맥으로 인해 공급원까지 뚫어놓아 무기에 대한 걱정도 없었다. 그럴수록 조직은 점점 단단해지고 점점 커져갔다. 이렇게 기쁜 일의 연속인데 정한은 죽상을 한 채 사무실에 앉아 있었다.
어느 조직의 우두머리 사무실이라 치기엔 조금 부족한, 그냥 일반적인 사무실이었다. 그 흔한 소파 하나 없었다. 책상은 다 낡아 언제 부러져도 이상할 것 없었고, 등받이도 없고잘 굴러가지도 않는 바퀴가 달린 동그란 의자뿐인 그런 사무실이었다. 비록 세븐틴이 초반보단 커졌다만 아직 안정적이진 않다는 증거였다.
"아 그렇게 안정적이고 싶으면 해커 같은 걸 구해."
"......"
"보안 같은 거 하면 좀 괜찮을 거 아니냐고."
지수가 짜증내듯 말했지만 정한에게는 그것보다 더 큰 걱정이 있었다. 행복고아원에 다녀온지 6개월이나 지났는데 아직 아이들에 관한 정보를 조금도 얻지 못했다는 거다.
"어떻게 해야 할까.."
"내일 생각해라. 너 오늘은 그 날이잖아."
"...벌써 몇 년이나 지난 건데. 상관없어."
"아, 보스는 기쁘겠어요!!"
"어떤 점이?"
"가까스로 도망쳐서 살았으니까!"
정한이 고개를 갸웃했다. 오늘은 자신이 팔려갔을 때 처음으로 몸담았던 조직이 다른 조직에 의해 먹히던 날이다. 한마디로 첫 동료들의 기일이었다. 모두가 죽는 광경을 두 눈으로 목격했고 조직 내에서 그나마 제일 친하다고 여기던 친구가 자신을 구하고 죽었다. 가까스로 도망친 것은 맞지만 기쁘진 않은 것이 정한의 심정이었다. 물론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날의 악몽은 계속 자신을 괴롭히고 있으니까. 곁에 앉아있던 지수가 보고 있던 책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 고아원에 10살 때부터 있었다는데, 이럴 만하지 뭐."
"네? 제가 이상한가요?"
"찬아. 넌 책을 읽자. 감정적인 책을 잔뜩 읽자."
억지로 미소를 지은 정한은 급하게 찬이에게 돈을 쥐어줬다. 가서 네가 좋아하는 책을 사오라고. 찬이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이곤 신이 나서 나갔다. 그런 찬이를 확인한 정한이 이마를 짚었다.
"뭐가 문제인데? 해커를 고용하라니까?"
"그것 때문이 아니야. 아이들을 못 찼겠어. 찬이가 쥐고 있던 차트도 나에겐 필요 없는 거였으니까."
"뭐였는데?"
"뭔 연구소에서 실험에 필요한 실험체를 찾는다는 내용의 보고서? 뭐 그런 거였어."
"일단 거기라도 가보자, 그럼."
"...넌 여기 있어. 나 혼자 다녀올게."
겉옷을 입은 정한은 테이블 위에 있던 차키를 챙기며 일어났다. 그 모습을 보던 지수도 따라 일어났다. 매년 봐왔던 지수였다. 이 날만 되면 정한은 다른 때완 조금 달라졌다. 더 피곤해하고 더 힘들어했다. 수습하기 힘든 사고도 많이 치고, 예상외의 행동도 많이 했다. 차라리 자기가 가서 정한이 사고를 치지 않게 막는 것이 좋겠다고 지수는 생각했다. 역시나 그런 지수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정한이 인상을 썼다. 지수는 그런 정한을 확인하곤 슬쩍 웃으며 말했다.
"이봐. 또 다혈질 나오지. 가자. 운전은 내가 할게."
정한의 손에 들린 차키를 뺏어든 지수가 먼저 문을 나서니 정한도 군소리 없이 따라나섰다. 그러나 채 몇 걸음 떼기도 전에 다시 사무실로 들어갔다. 곧 책상 서랍을 뒤적여 찾은 작은 쪽지에 [찬아 책 읽고 있어]라고 적은 후 테이블 위에 대충 올려놓곤 지수를 따라 나섰다.
1층짜리 작은 건물이었다. 연구소라 치기엔 간판도 없었으나 주소는 정확히 이곳이었다. 보기엔 그냥 하얀색 네모난 모양이었다. 별다른 무늬, 창문도 없이 달랑 문만 있는 모습이 연구소 같지는 않았다. 정한이 먼저 차에서 내려 그 건물에 다가섰다. 의아해하며 노크를 하니 안에서 어떻게 오셨나 묻는 거였다. 따라온 지수가 대답했다.
"행복고아원에서 왔는데요."
"......"
"실험체 필요하다고 하신 보고서보고 데려왔습니다."
사실 지수도 이 방법이 통할까 싶었다. 행복고아원은 벌써 6개월 전에 없어졌는데, 과연 이 사람들이 믿을까. 역시 안 통했나 싶은 그때 문이 열렸다. 안쪽에선 인상이 좋은 남자가 그들을, 아니 지수를 반갑게 맞이했다. 곧 정한을 힐끔 보더니 차트를 뒤적이며 말했다.
"신체 멀쩡하죠?"
"...네, 그럼요."
"어디 특별히 아픈 곳이라던가?"
"없어요."
"알레르기는요?"
"당연히 없죠."
"역시 완벽하네요. 들어오세요. 차라도,"
소음기를 단 총소리에 말을 채 끝마치지 못한 남자가 쓰러졌다. 그의 주위로 퍼지는 붉은 피는 정한이 쏜 탄환 때문이었다. 지수가 한숨을 내쉬었다.
"CCTV있으면 어쩌려고 그래."
"짜증나게 쥐 취급이잖아."
"총 압수야, 너. 내놔."
지수에게 총을 반납한 정한은 그럴 거면 네가 보스 하라며 툴툴댔지만 지수는 단호했다. '그건 귀찮아.' 어이가 없다는 듯 지수를 보던 정한은 인기척에 앞을 보았다. 안경을 쓴 여자가 쓰러진 제 동료를 보며 소리를 지를 참인지 입을 벌리고 있었다. 그러나 지수가 빨랐다. 큰 소리가 나기 전에 그녀를 처리했다.
"너나 지랄 마세요."
"닥쳐 좀."
둘 다 이런 면에서 비슷한 성격이라 그런지 가는 길마다 만난 연구원들은 죄다 죽이고 있었다. 곧 복도의 끝에 다다랐다. 다른 문들과 다른 것으로 보아 책임자가 있는 방인 것 같았다. 지수가 망설임 없이 문을 여니 그 안엔 나이가 지긋이 든 것 같은 할아버지가 있었다. 하얀 가운 왼쪽 가슴 위에 있는 명찰이 그가 총책임자라고 알려주었다. 확인한 지수가 안으로 들어서자 책임자는 안경을 고쳐 쓰며 정한과 지수를 번갈아 보았다. 곧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누구십니까."
그의 물음에 대답하는 건 지수였다.
"아, 뭐, 별 건 아니고. 혹시 여기 행복고아원에서 온 애들 있나요?"
"아.. 네. 있습니다. 무슨 일로 오신 겁니까?"
"그 아이들을 좀 데려갈까 하는데요."
시종일관 관심 없다는 듯이 연구실을 둘러보던 정한은 아이들이 있다는 말에 곧바로 책임자를 보며 말했다. 책임자는 곤란하다는 듯이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당겨 웃었다. 역시나 심기가 불편해진 정한이 총을 들었지만 지수에 의해 막혔다. 억지로라도 웃던 책임자의 표정이 굳었다. 총에 시선을 고정했지만 떨리는 두 눈동자는 두려움을 내비쳤다.
"잠깐 만나는 건 괜찮죠?"
"무슨 사이십니까..?"
"같은 고아원 출신입니다. 그나저나 말 계속 돌리시면 곤란해요."
"...그 여자아이라면 지하에 있습니다. 제 2연구실 C번방입니다."
"분명 4명으로 봤는데요."
"...2명은 실험 도중 죽었습니다. 1명은 자살했,"
정한이 쏜 탄환이 아슬아슬하게 책임자를 비껴갔다. 아마 정한이 손을 떨지만 않았어도 정확하게 머리를 맞혔을 거였다. 지수가 다시 정한에게서 총을 뺐었다. 탄창을 빼서 분리시킨 지수는 뒤춤에 잘 넣으며 주저앉아 부들부들 떠는 책임자에게 말했다.
"신고하면 어떻게든 죽일 겁니다. 협박 맞아요. 가보자, 보스."
정신을 차린 정한은 빠르게 그 사무실을 나섰다. 비틀거리며 위태롭게 하지만 빠르게 걷는 정한은 속으로 여러 가지 인사말을 생각했다. 반가워. 안녕. 진부한 인사말들뿐이었다. 그러나 가장 하고 싶던 말이었다. 그나마 서로 의지했던 아이들이었는데, 이제야 그 실마리를 잡은 기분이었다. 비록 3명은 이 세상에 없지만, 그 한 명이라면 충분했다.
제 2연구실. 큰 쇠문에 심심하게도 적혀있었다. 그 문을 열고 한 걸음 내딛으니 코를 찌르는 이상한 냄새가 났다. 이상하다기 보단 역한 냄새였다. 지수 역시도 맡았는지 소매로 코를 막으며 물었다.
"여기 뭐 이딴 냄새가 나냐?"
"...섞은 냄새지. 사람이."
"뭐?"
"내가 알아. 이런 냄새였어."
차갑게 굳은 그는 어느새 차분해져 있었다. 걸을수록 역해진 냄새는 C번방에서 나는 것 같았다. 정한이 심호흡을 하며 문손잡이를 잡아 돌렸다. 잠긴 것 같았다. 열쇠도 없는데, 라는 생각을 하려던 찰나 지수가 탄창을 낀 총을 장전하더니 문손잡이를 향해 난사했다. 어느 정도 망가졌다 싶을 때 발로 문을 찼다. 큰 소리를 내며 문이 열리고 역한 냄새가 밀려왔다. 헛구역질이 나오는 그 냄새에 지수는 뒤로 물러났고 정한은 안으로 들어갔다.
드디어 마주했다. 첫 번째였다. 그러나 상황이 말이 아닌 것 같았다. 그냥 시멘트 바닥과 벽, 창문 하나 없고 침대라곤 매트릭스 뿐. 그마저도 청결하지 못했다. 정한이 인상을 구겼다. 그 위에 웅크리고 있는 저 아이가, 내가 그리도 찾던 아이인가. 이런, 처참한 몰골로 마주할 줄은 몰랐다. 심지어 자신이 찾던 그 아이가 아닌 것 같았다. 지수가 다시 들어왔으나 역시나 역한지 헛구역질을 하며 나갔다. 그 소란에 아이가 깼나보다. 천천히 일어나 텅 빈 눈으로 정한을 보았다.
"...어려 보이는데, 몇 살?"
안녕. 반가워. 이딴 진부한 말이 아니었다. 우선 자신이 찾던 그녀가 맞는지 확인부터 해야 했다. 그녀가 맞다면, 21살 쯤 됐겠지. 그러나 그녀는 대답이 없었다. 그저 텅 비어버린 눈으로 정한을 볼 뿐이었다.
"......"
"대답 안하는 거 싫어해. 대답해줄래?"
"대답할 수 없어요."
"왜? 마땅한 이유가 있으면 살려줄게."
아, 너무 버릇이 나왔나.. 조직원들 교육할 때 쓰던 말버릇이라 정한이 혹시나 그녀가 상처를 받았을까 눈치를 보았다. 대답이 없는 것을 보니 겁을 먹은 것 같았다. 그러나 그녀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나이를 모르니까."
자신이 찾던 그녀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그녀이길 바라는 것이 정한의 심정이었다. 이토록 애타다 찾은 첫 번째인데, 아니더라도 맞는 것이라 그렇게 자신을 세뇌시키며 애써 침착하게 말하는 정한이었다.
"너는 특별히 살려줄게. 대신, 날 좀 도와줬으면 해."
"...무슨 일인데요? 거기도, 연구소인가요..?"
"적어도 널 실험에 쓰진 않을 거야. 그리고 연구에는 별로 취미가 없거든."
사실이었다. 취미도 없었는데 이 꼴을 보고나니 더 싫어진 것 같기도 했다. 문득 든 생각에 정한은 머리를 긁적였다. 찬이는 연구에 관심이 많을 거였다. 지금 말해봤자 설득하는데 방해만 될 뿐이니 딱히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생각하는 것을 멈추고 다시 그녀를 빤히 보았다. 어릴 때 모습이 언뜻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자신을 못 알아보는 거 보면 확실히 아닌 것 같지만, 남은 3명을 대신하는 셈 치기로 했다.
"해커가 필요해. 근데 딱히 똑똑하진 않아도 돼. 너 손가락은 다 있지?"
"네? 네.."
"그거면 돼. 목소리도 잘 나오니까 괜찮을 거야."
"......"
"돈도 주고 자유도 줄 거야. 너 맘대로 활개 쳐도 돼. 사람을 죽여도 수습해 줄 수 있어. 어때?"
대답은 듣지 못했다. 갑자기 그녀가 머리를 짚더니 쓰러졌기 때문이었다. 곧 정한은 밖으로 나왔다. 아직도 속이 안 좋은지 계속 가슴을 두드리던 지수가 그런 정한을 보았다. 정한은 지수에게 명령했다.
"그 책임자 좀 데려와. 나머진 다 죽여 버리고."
대부분의 정한은 명령조보단 부탁하는 어조였다. 물론 일반 조직원에겐 잘도 하는 명령조였지만 적어도 지수와 찬에게는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 처음으로 내린 명령조에 지수는 당황했지만 그만큼 급한 일이구나 직감했다. 일단 메스꺼운 속 때문에 대답도 못하겠는지 고개만 끄덕인 지수가 서둘러 이곳을 나갔다.
정한이 불안하게 돌아다니길 3분. 책임자가 마스크를 끼고 내려왔다. 지금 저 안에 있는 저 아이는 어딘지도 모르겠지만 살이 썩어서 고통스러울 텐데 자기는 당연하다는 듯이 자신을 보호하는 모습에 정한은 눈알이 돌아가도록 화가 났지만 참으며 물었다.
"왜 갑자기 쓰러진 거예요? 어디 아파요?"
"어, 편두통도 심하고 빈혈도 좀 있고,"
"아니 얼마나 애를 굴렸으면 상태가 그따위입니까?! 대체 실험하던 게 뭔데요?!"
"...정확한 명은 아직 붙이지 못했지만, 재생시키는 겁니다. 그게 무엇이든, 세포조직이면 전부."
"그걸 나보고 믿으라고?"
"...네. 원하시면 자료도 보여드릴 수 있습니다. 딱 한 명이지만 성공사례도 있어요. 그러니 제발 목숨만은.."
다 처리 했는지 지수가 내려왔다. 정한이 그런 지수를 확인하더니 책임자를 가리켰다. 지수가 총을 겨누니 정한이 고개를 끄덕였고 곧바로 책임자가 앞으로 고꾸라졌다. 무심하게 그 모습을 내려다보던 정한은 굳이 컥컥 거리는 책임자를 발로 굴려 바르게 눕게 만들었다. 곧 위로 올라온 책임자의 얼굴에 씌여져 있는 마스크를 뺐다. 들고 있기도 더러운지 책임자의 옆으로 마스크를 집어 던지곤 떨어진 마스크를 발로 짓밟았다. 그렇게 짓밟는 것으로 어느 정도 화를 풀었지만 그래도 풀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숨을 크게 내어쉬더니 C번방으로 들어가 그녀를 안고 나왔다. 그녀가 가까이 오니 지수가 다시 소매로 코를 막으며 물었다.
"맞아?"
"확실히는 몰라. 근데, 맞는 것 같아. 맞았으면 좋겠어."
"어쩌게?"
"일단 넌 여기 남아서 정보 좀 얻어줘. 애들 더 보낼게."
고개를 끄덕인 지수가 그녀를 다시 보았다. 금방 죽을 듯 위태로워 보였다. 데려갔는데 죽는 것 보단 지금 죽는 게 나을 것 같긴 한데, 정한을 보니 그럴 수 없었다. 시종일관 눈에서는 따뜻함이 느껴지지 않던 그인데, 눈에서 감정이 흘렀다. 그가, 눈물을 흘린다.
2개월이 더 흘렀다. 그녀는 어느 정도 세븐틴에 적응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에게도 나름 실험을 했었는지 놀라울 정도의 회복력을 보여 등에 있는 심한 흉터 말고는 예전의 그녀인지 전혀 몰라보게 좋아지는 중이었다. 해커로써의 자질도 충분해보였다. 원래 머리가 좋은 건지 아님 정한의 혹독한 훈련 때문인지 그간 실수한 번 없는 완벽한 일처리 중이었다. 그런데도 정한은 괜히 그녀에게 틱틱거렸다. 아직도 확신이 안 선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래서인지 남들 한번 혼날 때 두 번은 혼났고 남들 한번 물건 던질 때 세 번은 던졌다. 그래서 그런지 그녀는 누구보다 빠르게 해탈 하는 것 같았다.
"네, 시정하겠습니다."
"...하, 짜증나 죽겠네."
유난히도 그녀에게 지랄하는 자신에 정한도 찔리는지 한숨을 내 쉬었다. 알리가 없는 그녀는 다시 한번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와 동시에 그녀를 구원해 줄 찬이 들어왔다.
"보스! 저 왔, 어? 누나 안녕~"
"응, 찬이 안녕. 찬이가 왔으니 가보도록,"
"어디가! 아직 안 끝났어!!!!"
"...네."
둘을 번갈아 보던 찬이가 절망하는 그녀를 보며 매번 같은 모습이라는 생각에 슬쩍 웃다가 정신을 차린 듯 정한에게 보고서를 건네줬다. 보고서를 살펴보던 정한이 말했다.
"가봐, C."
"네."
짧게 대답을 하며 그녀가 나가니 정한이 의자에 바로 앉으며 다시 보고서를 살펴보았다. 정말로 성공사례가 있었다. 그것도 부작용 하나 없는 완벽한 성공사례가. 계속 서 있기 다리 아픈지 찬이는 정한의 맞은편으로 의자를 굴려와 앉으며 말했다.
"이름은 최한솔이에요. 보스가 쳐 들어가기 이틀 전에 연구소에서 탈출했대요."
"...걔는 왜 이름이 있냐?"
"누나는 행복고아원 출신이잖아요~ 알다시피 거긴 까딱 잘못하면 이름은 그냥 잊어먹죠 뭐. 항상 불리는 게 야, 너, 이 새끼, 저 새끼니까. 더군다나 그딴 실험을 받았는데, 제정신일리가."
관자놀이 옆으로 손가락을 빙글빙글 돌리던 찬이는 곧 뭔가가 생각났는지 덧붙였다.
"아! 다른 자료 읽어보니까, 누나가 검증 안 된 1차 실험이면 한솔은 2차 실험이었대요."
"흠, 그러니까 C로 실험을 해서 약물을 만들고 저 놈으로 확인을 한다? 근데 그게 성공을 했다?"
"네. 자료상으론 그래요. 누나에게 정확하게 물으려 해도 그때 기억 꺼내려면 기절하니까.. 더 물어봤다간 진짜 정신 나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누나에게 더 이상의 자극은 좋지 않아요."
복잡한지 머리를 헝큰 정한이 상체를 숙였다. 곧 번쩍 고개를 들더니 보고가 끝났으니 나가려던 찬이에게 물었다.
"의학 공부는? 잘 돼가?"
"글쎄요, 장담은 못하겠는데.. 아! 보스! 저희 이사 가요! 호시형이랑 에스쿱스형 들어오고 나서부터는 돈 많이 벌었잖아요~ 연구팀 사무실 너무 좁아요.. 실험할 것도 많은데.."
찬이의 애교어린 말에 정한은 잠시 생각했다. 인맥 넓은 지수가 물어물어 알아보다 보니 행복고아원을 아는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때 당시에 있던 순영과 승철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확실히 그 둘이 들어오고 나서부터는 돈을 꽤 당기긴 했다. 승철 또한 여러 방면으로 찾으려고 노력한 탓에 이지훈이라는 아이와도 연락이 닿은 상태였다. 슬슬 모이는 것 같아 슬쩍 웃음을 짓던 정한이 대답했다.
"그래. 이사 가자. 멋있는 곳으로."
***
우리 세븐틴 간부들은 같은 고아원 출신으로
그 중에서도 보스인 정한이가 진짜 미친 듯이 찾아 헤매어서 모은 것이라 합니다.
거의 드레곤볼^0^/
오늘은 과거 중에서도 엄청난 과거다 보니까 정리할 게 많을 것 같네요..!
다 이해하셨다면 안 봐도 될 것 같아요~
1. 행복고아원에서 팔려 나가는 곳은 다양합니다.
여자들은 주로 사창가로, 남자들은 조직이나 호스트바라고 하죠? 뭐 이런 곳으로 팔려갑니다.
대부분의 경우엔 못 버티고 자살합니다. 조직 같은 경우엔 1회용으로 쓰이는 경우도 허다하고요.
정한이가 운 좋게 좋은 조직을 만난 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사스가 운정한)
2. 정한과 지수는 마지막으로 있었던 조직에서 만난 사이입니다.
정한이 처음 발을 들였던 조직이 무너지고 갈 곳이 또 조직뿐이었죠. 그렇게 무너지고 살아남고 하다 보니 벌써 4번째 조직이었다고 합니다.
그 조직에서 만난 게 운명공동체 조소ㅑ헝~
3. 이건 쿠키 같은 건데요, 정한이가 찬이에게 우쭈쭈 우리 찬이 나가서 책 사와~(절대 이런 말투 아니었음)라고 했잖아요?
정한이의 계획은 막 감수성 있고, 인간의 긍정적인 감정을 다룬 막 그런 책을 읽는 거였는데,
찬이가 사온 책은 인체실험, 의학서적, 의학 관련 전공 책 막 이딴 거여서 이마 짚었다고 합니다^0^/
4. 지수는 언변이 화려해서(첩보팀인 이유.txt) 인맥이 넓은 편입니다.
5. "...어려 보이는데, 몇 살?"부터
"돈도 주고 자유도 줄 거야. 너 맘대로 활개 쳐도 돼. 사람을 죽여도 수습해 줄 수 있어. 어때?"까지.
많이 보던 말이죠? 어디에 나오더라.. 9화? 8화? 그쯤이었던 것 같아요~
6. 한솔이가 꽤나 뜻밖의 곳에서 등장했죠?
(이게 아직도 한솔이가 간부가 아닌 이유입니다. 암묵적인 공식으로 간부는 행복고아원 출신이었으니까.)
이건 나중에 한솔이 시점으로 다시 풀 예정입니다! 절절할 예정..8ㅁ8
7. 2개월이라는 생각보다 짧은 시간 내에 C가 적응을 끝냈습니다. 연구소는 인권이 없는 곳이었는데 말이죠.
놀라울 정도의 사회성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기억상실 때문이에요. 도피성 기억상실이죠!
너무 큰 충격을 받으면 걍 잊어먹는 거예요. 싹 다. 그래서 C의 과거는 뻥뻥 구멍 뚫린 것이죠. 많이 왜곡되기도 했고!
끝끝~ 생각나는 것은 여기까지네요!
혹시 더 물어 볼 거 있으시면 물어보세요! 스포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라면 친절히 답변해드립니다^0^/
저 매우 친절한 여자인 거 아시죠?^0^/(개뻔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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