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른한 오후,성규는 언제 숨겨놓았던 건지 침대밑에 넣어진 흰종이안에 알록달록한 알갱이들을 한알씩 집어먹고 있었다.우현은 회사에 출근을 했고 성규의손목이 밧줄에 묶여져있었다.한손이 자유로워 밧줄을 풀려했지만 얼마나 단단하게 묶어놨으면 풀어지지 않아 결국 포기했다.성규는 입안에 알갱이들을 오도독 씹어먹자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그리고 몇분정도가 지났을까,테이블위에 올려진 자신의폰이 울리자 성규는 손을 조금 뻗어 폰을 집었다.액정에 떠있는 번호는 꽤 익숙했고 저장된번호의이름 역시 익숙했다.
"여보세요" [뭐하고 있어] "밧줄을 어떻게 풀까,생각하고 있었어" […뭐 먹어] 아차,성규는 씹고있다가 알갱이들을 손바닥에 뱉어냈다.우현의목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성규는 어떡해야할지 고민하고 있었다.그러다 떠오른 생각은 딱 하나뿐이였다.지금 이상황을 모면할 말이라면 이말뿐이다.
"소,손톱 물어뜯었어" [뭐?] "딱딱 소리…났잖아" […손톱 물어뜯지마] "응"
대충 통화를 한뒤 성규는 폰을 침대위에 던져놓고 제손바닥에 뱉어진 알갱이조각들을 쳐다봤다.아까운데,휴지로 돌돌말아 쓰레기통으로 골인시키려고 했으나 빗나가 옆으로 떨어졌다.에이씨,성규는 짧게 탄성을 내뱉으며 남은 알갱이들을 씹어먹었다.먹으면 먹을수록 정신을 놓게 되고 기분이 점점 좋아졌다.이리저리 흩어진 알갱이들이 입안에서 사르르 녹자 성규는 기분좋은 표정을 지으며 숨을 뱉었다.침대에 눕자 몸이 공중에 뜨는 느낌에 묘해지자 성규는 혼자 소리를 내며 웃었다.크큭,하하,으아,이상한 웃음소리를 내며 뭐가 그리 재밌는지 혼자만의상상속에 빠져 마약에 취하고 있었다.
* * * 6시가 되자마자 칼퇴근을 한 우현은 바로 집으로 들어왔다.어두운집안,스위치를 켜 거실을 환하게 한뒤 방문을 열었다.역시나 어두운 방안,스위치를 키자 방안이 밝아지고 성규는 침대위에서 잠들고 있었다.우현은 성규에게 다가가 밧줄을 풀어주려고 하자 제발에 휴지조각이 밟혔다.쓰레기통에 버리려하던 우현은 휴지속을 살펴보자 빨간색,파란색,노란색과하얀색이 섞인 알갱이들의파편들이 휴지속안에 있었다.우현은 바로 알아차렸다.이것은 마약이다.화가 난 우현은 자고있는 성규의어깨를 붙잡고 성규를 깨웠다. "일어나,김성규" "………우현,"
성규가 잠결에 웅얼거리자 우현은 성규의뺨을 때렸다.침대기둥에 머리를 부딪힌 성규는 한손으로 제머리를 감싸며 우현을 쳐다봤다.뭐하는 짓이냐고 소리 치려고 했던 성규는 우현이 다시한번 더 뺨을 때리자 입을 다물고 눈물이 고인채로 우현을 쳐다봤다.가만히 잠자고 있었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성규는 우현이 미쳤다고 생각했을때쯤 우현의손에 들려진 휴지를 보고 눈이 커졌다.
"내가 하지말라고 했지" "…우현아" "김성규 시발,진짜 말 안듣지?" "…" "오냐오냐 곱게 말하면 제대로 들리지도 않지?" "아니…우현아,그게 아니라" "입으로 안되면 손으로 말을 듣게 해야지"
성규의뺨을 네다섯번 연속으로 때린뒤 유리로 되어있는 장식품으로 성규의머리를 쳤다.머리가 띵함과 동시에 성규의갈색머리카락이 붉게 젖어들더니 하얀얼굴이 금새 피범벅이 되버렸다.우현은 성규의머리채를 잡고 고개를 들게 했다.피가 흘러 한쪽 눈이 제대로 떠지지않았고 다른한쪽눈은 눈물이 흐르다 못해 눈에 고여있었다.흰색 침대시트가 핏자국으로 엉망이 되버렸고 우현의손도 성규의피로 뭍혀져있었다.
"마약하다가 죽는것보단 내손에 빨리 죽는게 낫잖아,그치?" "…우현,아…나…피나…" "김성규 골프채로 맞아봤어?"
무릎을 꿇은채로 침대위에서 피를 흘리는 성규는 고개만 저으며 아무말없이 우현의팔을 꽉 잡았다.아직까지 화가 나있는지 우현은 눈을 내리깔아 살벌하게 성규를 쳐다봤다.머리카락의반이 피로 젖었고 얼굴이며,목이며 피가 흘러 티셔츠가 빨갛게 물들여졌다. * * * 언제 기절했었는지 성규는 천천히 눈을 떴다.몸을 일으키자 침대시트는 깨끗했고 덮고있던 이불은 짙은파란색으로 바꿔져있었고 욱씬거렸던 손목은 언제 풀렸는지 붕대로 감겨져있었다.침대에서 일어나 전신거울 앞으로 다가가자 회색반팔티와짧은바지를 입고 있는 제자신을 바라본 성규는 우현이 생각나 방문을 열어 거실로 나갔다.거실로 나가자 소파에 앉아 2~3병의맥주병을 탁자위에 올려놓고 잔에 맥주를 채워넣으며 마시고 있는 우현이 있었다.성규는 조심스럽게 우현의옆으로 다가가 살짝 떨어져 앉았다. "…우현아"
성규의말도 무시한채 맥주만 벌컥벌컥마시고 있는 우현은 잔을 다시 비웠다.머리를 긁적이던 성규는 제머리를 감싸고 있는 붕대를 손으로 더듬거리며 만졌다.이럴땐 무슨말을 해야할까,우현의눈치만 살피고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잔을 가져와 맥주를 같이 마셔줄려던 성규의팔을 붙잡은 우현이 성규를 다시 앉혔다.
"머리…괜찮아?" "괜찮아"
많이 어지럽긴하지만,뒷말을 속으로만 말한 성규가 고개를 옆으로 돌려 우현을 쳐다봤다.우현은 성규를 쳐다보고 있었는지 둘의시선이 마주쳤다.놀란성규가 먼저 시선을 피했지만 우현은 끝까지 성규만 쳐다봤다.움찔하며 성규가 손을 꼼지락 거렸다.
"…미안" "뭐가" "…안…할게" "됐어,안말려 그렇게 죽고싶으면 계속 하던가"
자신이 잘못하긴 했지만 직설적인 우현의말에 성규는 괜히 울컥했다.더이상 말하고 싶지않아 성규가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이자 이번엔 우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인기척이 들리자 성규가 고개를 들어 우현을 올려다봤다.빈 맥주병들을 하나씩 치운뒤 빈잔을 물로 헹군 우현은 TV옆에 놓인 담배갑과라이터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성규도 따라 베란다로 나가 문을 닫았다.
"우현아…나 이제 마약 끊고…" "말이야쉽지"
담배하나를 입에 물고 연기를 내뱉는 우현이 손가락사이에 담배하나를 끼워놓고 말을 했다.마약과담배,말로는 쉽게 끊는다고 해도 그것들의 부작용은 말로 표현 할수없다.이제 모든걸 다 포기하고 체념한듯한 힘없는 우현의목소리에 성규가 얼굴을 찡그리자 억울한 팔자눈썹이 그려졌고 당당하게 우현에게 말했다.
"진짜 끊을…" "그만하자" "…어?" "지친다 니 뒷바라지 하는거"
우현은 손가락으로 담배를 두세번 툭툭 털고 다시 한모금 빨아마셨다.내가 잘못들었나?,멍한 표정으로 성규는 아무말없이 우현을 쳐다봤다.1분의 짧은정적이 길게 느껴지고 성규의손엔 땀이 찼다.우물쭈물하던 성규가 당당하게 다시 말을 하려던 찰나 우현이 먼저 말을 해왔다.
"5년동안 충분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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