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외과 VS 소아과 :: 01
By. 아리아
내 기억 속의 학창시절은 여느 아이들관 조금 달랐다. 손엔 틴트 대신 샤프가, 잘생긴 남자친구의 무릎에 누워 자는 대신 미적분 문제집을 베게 삼아 잤고 다이어트를 한다며 급식도 제대로 먹지 않는 몇몇 친구들과는 달리 쉬는시간마다 들러야 적성에 차는 덕에 내 외모는 상당히 볼품없었다.
그렇다고 친구가 없는 건 아니였고 나름 같이 붙어 다니는 친구들도 꽤 있었다. 물론 다 나와 비슷한 과였지만.
그 시절부터 제가 얼굴로 먹고 살 외모는 아니라는 걸 알았는지 난 필사적으로 공부에 매달렸다. 고3 땐 일주일에 4시간씩 자며 공부한 적도 있었는데 지금보면 무슨 생각으로 그랬나 싶다.
행동에 걸맞게 성적은 당연스레 오를 수 밖에 없었고 결국 난 수능 만점도 떨어진다는 S대 의예과에서 합격 통지서를 받아낼 수 있었다.
고등학생 땐 대학을 가려고, 대학생 땐 장학금을 놓치지 않으려 미친듯이 공부만 했다. 주변에서 독종이라 수근대도 그저 그러려니 하며 수석을 놓친 적이 없었다. 인턴 때도 각 과에서 서로 데려가려 난리, 레지던트 때도 교수님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근무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어딜 가나 1등과 사랑을 놓지지 않으며 살아간 나에게 큰 걸림돌이 생겨버린 날은 이제 막 교수직을 따고 난 후인 대략 1년 전 쯤이었다.
"야, 신경외과에 교수 새로 온다는데?"
"거기서? 웬일이래. 우리 학교 출신 아니면 교수직 잘 안 내주던데."
"우리 학교 출신이래?"
"아니. 근데 학력 들어보니까 내줄만 하더라."
"왜, 어떤데."
차트를 휙휙 넘기며 인턴들의 자잘한 실수를 짚어내던 내 손길을 멈춘 건 석민의 이어지는 말이었다.
"하버드 의대 출신. 심지어 동양인 최초로 수석졸업이랜다."
"그런 사람이 뭐하러 한국까지 와서 의사 하겠다 그러냐?"
"내말이. 한국인이라 한국에서 일하고 싶다 했다던데."
"그 말에 이사장님이 크게 감동 받으셔서 그냥 단번에 스카웃했대."
"참, 감동 받으실 것도 많아."
"인정. 우리 이사장님 너무 감성이 풍부하셔."
"그건 또 어디서 배워온 이상한 말투야."
"요즘 애들 말투래. 좀 젊어보이지 않냐?"
"아니, 존나 철없어 보여. 시끄러우니까 좀 나가라."
"너 너네과 인턴들 한테도 이러냐?"
"아니, 너라서 그러는거야. 나가."
툴툴거리며 소아과 의국을 빠져나가는 석민의 뒷모습에 피식 웃기도 잠시 이내 차트로 시선을 돌려 하나하나 꼼꼼히 살피기 시작했다. 다행히 약물을 잘못 투여 한다든지 환자를 바꿔 오더를 내린다든지 그런 거지같은 실수는 없어보여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눈을 감고 의자에 편히 기대었다.
오늘따라 푹신한 느낌을 주는 의자에 저도 모르게 얕은 잠에 빠져버렸다.
지잉-
아, 뭐야.
지잉, 지잉, 지ㅇ-
"네, 소아과 김ㅇㅇ입니다."
"교수님, 응급환자요. 빨리요!"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다급한 간호사 선생님의 목소리에 매무새를 정리할 새도 없이 응급실을 향해 뛰었다.
도착하자 익숙하게 보이는 일사분란한 응급실의 상황에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자 어린 아이로 보이는 응급환자와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의료진에 당연스레 그쪽으로 향했지만 피가 튄 흰 셔츠 소매를 걷어올린 남자의 손길에 이미 응급처치가 시작된 뒤였다.
"CT랑 MRI 결과 좀 가져다주세요."
"여깄습니다."
"급성 뇌출혈인 것 같은데 소아과 교수는 언제 내려온답니까?"
"내려왔는데요."
저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쫙 째진 눈에 저도 모르게 살짝 쫄았던 것 같다. 더군다나 화를 참는 듯 숨을 크게 몰아 내쉬는 행동에 더.
"나머진 얘긴 수술 끝나고 하죠."
정신을 차리니 난 어느새 수술대 앞이었고 전광판 속 집도의 칸엔 김ㅇㅇ 그리고 낯선 이름이 나란히 적혀있었다. 권순영.
손가락으로 딱딱 소리를 제 주의를 집중시키는 곳으로 시선을 돌리니 아까 전 저를 노려보던 째진 눈이 여전히 인상을 쓴 채 바라보고있는게 아닌가.
"수술 한 두번 해봅니까? 집중 좀 하죠."
"..아니, 저ㄱ"
초면임에도 불구하고 툭툭 내뱉는 그에 무어라 말을 하려 했지만 마취과 선생님의 목소리에 내 말은 묻혀버리고 말았다.
"김지현, 5세 여아. 마취 완료 되었습니다."
"수술 시작합니다."
***
장장 7시간을 고개를 숙인 채 서 있으니 아려오는 온 몸의 관절에 어깨 부근을 통통 두드리며 수술장을 빠져나가던 도중 누군가의 강한 힘에 의해 난 이상한 소리를 내며 뒤돌수 밖에 없었다.
"으억-"
"...뭡니까?"
"신경외과 교수, 권순영입니다."
"..아, 네."
손을 내밀며 자기소개를 하는 그에 악수라도 하자는 건가 싶어 손을 잡으려던 순간 손을 올려버려 마스크를 벗는 그였다. 그때부터 알아봤어야 된다. 저 개싸가지.
덕분에 갈 곳 잃은 내 손은 잠시 방황하다 괜히 머리를 긁적였고 그런 저를 팔짱을 낀 채 내려보는 그였다.
"할 말 있으세요?"
"......"
"없으시면 먼저 가보겠습니다. 제가 좀 바빠서요."
"교수라는 사람이 잠잔다고 응급콜도 늦게 받고. 참 잘하십니다."
누가봐도 양껏 비꼬는 말투였다.
"네?"
"분명 그래놓고 인턴들이나 레지던트들이 조금이라도 늦게 내려오면 쓸데없는 군기나 잡고, 그러시겠죠?"
"아니 무슨, 저기ㅇ, 아니. 권교수님. 저희 초면인 것 같은데요?"
"초면이고 구면이고 그 쪽 느릿한 행동 덕에 환자 더 위급해질 수 도 있었던 건 신경도 안 쓰이나 봅니다."
"제가 조금 늦게 내려온 건 사실인데, 아니. 저기요! 야!"
슬슬 올라오는 화를 꾹 참고 말을 하려했다. 노력은 했는데, 상대가 따라주지 않으니 뭐 어쩌겠는가. 제 말을 깡그리 무시한 채 의국 쪽으로 향하는 그의 뒷모습에 대고 소리쳤다.
"야! 좆같은 새끼야!"
***
그게 권교수와 나의 첫만남이었다.
참 어떻게 사람이 한결같아도 저런 개같은 방향으로 한결같은지 생각하니 다시 올라오는 화에 고개를 저으며 생각을 떨쳐내려했다.
똑똑-
"들어오세ㅇ, 아 뭐야. 뭔 노크야."
제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문을 확열고 들어오는 분주한 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익숙한 얼굴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너 오늘도 권교수랑 한 판 했다면서."
"또? 그만 좀 싸워라. 초등학생도 아니고."
워낙 이슈긴 한가보다. 권교수와 내 원수같은 사이가. 저 멀리 떨어져 있는 흉부외과와 일반외과 교수들까지 알 정도면 말은 다한 듯 싶다.
한숨을 내쉬는 내 모습에 '이번엔 또 왜 싸웠는데'하며 물어오는 지훈에 하소연하듯 상황을 구구절절 늘어놓았다. 이야기를 하면 할 수록 어째 말이 서두도, 요점도 없는게 점점 산으로 가는 느낌에 됐다며 둘을 데리고 구내식당으로 향했다.
들어서자마자 풍겨오는 맛있는 냄새에 열받았던 건 다 어디로 날아갔는지 절로 나오는 콧노래에 식당 이모들께 애교를 부리며 밥을 받아 자리에 앉았다.
간만에 먹는 제대로 된 밥이라 그런지 술술 넘어가고 있던 내 목을 막히게 만든 건 다름 아닌 권교수였다.
제 앞에 떡하니 서 있는 그에 놀라 사레가 들려버려 먹던 음식의 파편들이 조금 튀었다.
튄 건 문제가 안되는데, 그 종착지가 권교수의 흰 가운과 얼굴이라는 게 문제지. 엄청난.
"헐.."
인상을 쓰며 얼굴에 묻은 파편들을 닦아내다 특유의 화를 참는 듯한 표정으로 저를 내려보았다. 저 표정은 언제봐도 적응이 힘든데다 사실 조금 무섭기도 하다. 워낙 무섭게 생겼어야지.
"김교수는 진짜 호감을 살래야 살 수 없는 타입입니다. 압니까?"
"아니까 좀 꺼져 주세요. 정 기분 나쁘시면 가운은 벗어서 주시던가요. 세탁실에 맡겨드릴게요."
객관적으로 봐도 제가 잘못한 상황에서조차 당당한 내 말투가 기가 찼는지 헛웃음을 짓는 그였다. 식당은 아까 전 병실과 같이 정적이 흘렀고 모두들 권교수의 말이 이어지길 기다렸다. 무슨 드라마 보나.
"피나 좀 닦고 밥을 드시든지 가운을 빠시든지 하세요. 비린내도 안 납니까."
뭐 주먹이라도 날라오나 싶어 잔뜩 긴장하고 있었던 것과 달리 그와 썩 닮은 남색 손수건을 꺼내 식판 옆에 놓는 그였다.
"....ㄴ,네?"
"뭘 그렇게 봅니까. 뭐, 제가 김교수 볼 잡고 닦아 드리기라도 할까요?"
"못 하실거면서 말은 잘 하시네요. 입이 열 몇개라도 되나보죠? "
이 정도 했으면 가겠지-하는 마음에 미소를 지으며 다시 수저를 드려는 찰나 비어있던 오른쪽의 시야가 가려져 고개를 돌리자 제 옆 의자에 앉아 손수건을 물에 적시고 있는 권교수와 그 뒤로 입이 떡 벌어진 많은 의료진들이 있었다.
"미쳤ㅇ,"
"내가 못 할 것 같습니까."
얼굴을 가까이 들이미는 권교수에 헙하고 입술을 앙 다물었다.
"입술에 힘 푸세요."
내가 왜 이 새끼 말을 듣고 있는 건지. 전보다 훨씬 누그러지다 못해 꽤나 다정한 말투와 함께 푸석한 볼을 살짝 잡아 입술부터 시작해 얼굴에 묻은 핏자국을 닦아내는 그에 동공은 갈 곳을 잃어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그리고 내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오는 생각은 저를 혼란스럽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평소 지훈이나 석민이 스킨로션은 좀 바르고 다니라며 여자는 맞나며 타박해 올 때 말 좀 들을걸 싶은 생각은 또 왜 드는지. 왜 볼은 점점 붉어지는지. 성격과는 달리 다정한 손길에 심장 박동은 왜 자꾸만 빨라지는지.
"남의 피 묻은 손수건 내 손으로 빨긴 기분이 뭐 같아서요."
"..뭐, 빨아다드려요?"
대답 대신 어깨를 으쓱이며 가는 권교수의 뒷모습에 한참을 넋을 놓고 바라보다 제 옆에 놓인 손수건으로 눈을 돌리자 그의 다정한 손길이 자꾸 떠올라 남은 밥을 마구 쑤셔 넣었다.
김민규
[야]
[나 내일 너네 병원 가]
[뭐 필요 한 거 있어?]
[우리병원?]
[왜?]
[컨퍼런스 병신아]
[아 그거 내일이였어?]
[바빠서 까먹었네]
[필요한 거 딱히 없는데]
[집에서 뭐 가져다 줄건 없고?]
[집?]
[아]
[있다]
[나 스킨로션 좀 가져다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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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갑자기 달달해졌냐구요?작가가 오늘따라 외로워서 그래요엉엉
장난이구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사실 다 뒷이야기가 있습니다
여주는 설렜지만 순영이는..글쎄요...안가르쳐주지 메롱
그건 나중에 번외로 나올 예정이니 지켜봐주세용!
그리고 여주 사이다는 자주자주 나올거니까 오늘 안나왔다고 실망하지 말기!!!
순영이도 너무 미워하지 말아요... 'ㅅ'
그리고 독자님드류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저 이제부터 울겁니다ㅠㅠㅠㅠ
초록글 1페이지라뇨ㅠㅠㅠㅠㅠㅠㅠㅠㅠ심지어 아직까지 1페이지야ㅠㅠㅠㅠㅠㅠㅠ
내가 진짜 사랑하는 거 알죠?
암호닉은 다음화에 정리해서 올리겠습니당!
암호닉은 항상 최신화에서 받고 있어요!!!
부족한 글 사랑해주셔서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