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내린다.
이렇게 눈이 내리는 날이면 엄마는 항상 내게 말하곤 했다. “같이 죽자 제발.” 그리고 엄마는 정말 그 말처럼 눈이 내리는 날, 그 눈을 빨갛게 물들이며 베란다에서 떨어졌다. 우리 집은 십 오층이었다.
그 뒤로 나는 새 아빠와 단 둘이 살아가야 했다. 새 아빠는 착했지만 나에게 관심이 없었다. 나또한 새 아빠에게 관심이 없었다. 우리는 완벽한 남이였다. 한 집 안에서 같이 밥을 먹으면서도 우리 부녀는 (부녀라고도 할 수 없지만) 흔한 대화 하나 없이 묵묵하게 밥 만 먹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날, 아버지는 내게 엄마가 죽은 후 처음으로 내게 말을 걸었다. “민희야.” 나는 대답하지 않고 묵묵히 밥을 입에 넣었다. “학교는… 잘 다니고 있니?” 말을 건 목적이 그 것이 아닌 걸 난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아버지가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구나.” 밥을 삼키고는 물을 마셨다. 그리고 남은 밥을 개수대에 버리며 아버지에게 말했다. “나가 드릴까요?” 나는 무슨 대답을 원하였을까. 과연 내가 원하는 대답은 무엇이었을까. “집은 준비해 뒀다. 미안하구나.” 그게 우리 부녀의 마지막 대화였다. 밖은 여전히 눈이 내렸다.
눈이 내리던 그 날. 나는 티비를 보며 웃고 있었고, 엄마는 빨래를 넌다는 핑계로 베란다에 있었다. 그리고 눈이 내리는 것을 본 순간 내게 또 그렇게 말했다. “같이 죽자 제발.” 들리지 않은 척 했다. 차라리 평소처럼 소리 지르며 화라도 낼걸. 그러면 또 못이기는 척 거실로 발을 들였을 건데, 차라리 그럴걸. 나는 못 들은 척 했다. 엄마의 마지막 유언을. 엄마는 그렇게 떨어졌다. 티비 소리에 묻혀 들리지도 않게 그렇게 조용하게. 만약 내가 때 맞춰 배가 고프지 않았더라면, 나는 엄마의 죽음을 인식하지 못했을 거다.
눈 쌓인 아파트 정원은 붉었다. 이상하게도 하얗게 돼 있어야할 정원은 핏빛으로 한참이나 붉어있었다. 그게 참 무섭지도, 그렇다고 두렵지도 않고. 그저… 토기가 쏠려올 뿐이었다. 헛구역질이 나왔다. “욱, 욱 우윽…” 그리고 눈물도 비집고 나왔다. 눈물과 헛구역질. 어우러지는 게 환상적이었다.
경찰에 신고할 엄두는 내지도 못했다. 구급차를 부를 생각도 못했다. 모든 게 멈춘 것만 같았다. 엄마가 말한 것처럼 나도 여기서 떨어져야 하는 건가? 눈이 오는 날이니까, 우린 같이 죽어야 하는 건가. 문득 그런 생각만이 들었을 뿐이다.
집에서 나온 날, 나는 나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아니, 사실은 엄마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거울을 보며 엄마와 내가 닮았다 말하던 사람들을 생각했다. 한결같이 웃으며 말했었다. 아빠도 그랬었다. 날 처음 본 날 웃으며 “엄마를 쏙 빼닮았네.” 이렇게 말했었다. 우리 엄만 정말 이렇게 생겼을까, 그러자 엄마가 좋아한 것이 무엇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좋아했던 것들. 그럼 엄마가 싫어했던 것들은? 엄마가 즐겨했던 건? 엄마가… 우리 엄마가… 나는 엄마와 꼭 붙어 십 팔년이라는 시간을 지냈지만 엄마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나는 남들과는 조금 달랐다. 아니 특별했다. 엄마는 내게 그렇게 말하곤 했다. “넌 다른 게 아니라 특별한 거야.” 하고. 그게 무엇이냐 하면, 나는 레즈비언이었다. 열여덟에 깨닫기는 빠른 것 같으면서도 나는 딱히 거부감을 느끼지 못했다. 처음으로 여자에게 두근거림을 느꼈을 때, 울면서 엄마에게 말했었다. “엄마 나는 여자가 좋은가봐, 여자가 좋아.” 하고, 그 때 엄마는 웃지도 울지도 그렇다고 화내지도 않았다. 그저 담담하게 “그러니?” 하고 내 어깨를 토닥여주었을 뿐이다. 그렇다고 엄마가 쉽게 나를 받아드린 것은 아니었다. 엄마는 내가 잠들었다 생각하면 내 곁에 와 내 손을 잡고 울곤 했다. 그리고 한참을 내게 미안하다 말하다 나가곤 했다. 그게 내가 기억하는 엄마의 가장 다정한 모습이었다.
원룸은 좁았다.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좁아 눈물이 자꾸만 비집고 나올 것만 같았다. 나 버림 받은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마저도 부질없게 사라지고 말았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따위의 막막함은 없었다. 그저 살기 싫다. 라는 막연한 바람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밖은 눈이 내리고 있었다. 이래서 같이 죽자고 했던 건가. 원망이 조금씩 머리를 비집고 모습을 내밀었다.
엄마는 아빠를 눈 내릴 때 잃었다. 내가 열여섯 살 때, 아빠는 다른 여자와 바람이 났다. 그것도 내 친구랑. 헛웃음이 나오는 상황이었지만 그게 현실이었다. 친구는 임신을 해버렸고, 엄마는 그런 상황을 지켜보며 의외로 무덤덤하게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었다. 아빠가 짐을 싸서 나간 그 날. 밖은 하얗게 눈이 펑펑 쏟아졌다. 엄마는 내게 그랬다. “같이 죽자 제발.” 나는 처음으로 가족이라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아무것도 아닌 상황이라 그렇게 믿고 싶었다. 모든 것은 꿈이며 허황된 상상이라고 이제 셋하면 나는 깨어나 울면서 엄마 아빠 품에 안길 수 있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며 하루에도 몇 번씩 내 볼이나 팔을 꼬집었다. 하지만 변하는 것은 하나도, 단 하나도 없었다.
침대에 누우니 천장에 엄마가 둥둥 떠다녔다. 일 년 사이에 말 할 수도 없이 늙어버리고, 초라해져 버린 엄마였다. 내가 빈자리를 느낄 거라면서 금세 새 아빠를 들이던 엄마였다. 그런데 어째서 이렇게 나를 두고 떠났을까. 그게 가장 큰 의문이었고 가장 믿기 싫은 현실이었다. 이제 와서야 느낀 거지만, 난 엄마의 죽음에 슬퍼하고 있다. 이제야 엄마의 죽음을 인정했고, 이제야 엄마의 죽음을 받아드렸고, 이제야 엄마의 죽음에 슬퍼했다. 이제야 알았다. 정말 혼자 남은 이제야 모든 걸 받아드려 슬퍼할 수 있었다.
나올 것만 같던 눈물이 이제야 제대로 나왔다. 소리 없이 옆으로 흘러 배게만 적시던 눈물을 만지자 내가 살아있다는 것까지 깨닫게 되었다. 그제야 제대로 울 수 있었다. 입을 꾹 다물며 끅끅 거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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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맛이지만 2편도있네욯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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