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눈을 떠보니 아침이었다. 창문을 보니 눈은 그쳐있었다. 하얗기만 한 길이 붉게 물들어 가는 것만 같아 퉁퉁 부어버린 눈을 느리게 감았다 떴지만 날 놀리듯 그 환상은 더욱 현실과 같이 짙어져만 갔다. 엄마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붉게 물든 눈 위에 한 것 뒤틀어져 누워있던 엄마의 마지막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리며 내게 손 짓 했다. “같이 죽자 제발.”하면서…
옆에 아무도 없다는 것이 무서웠고, 엄마의 환상이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는 것 또한 무서웠고, 내가 살아있다는 것이 무서웠다. 하나씩 깨닫고 나니 그만큼, 딱 그만큼 무서운 것이 늘어났다. 엄마가 보고 싶었다.
핸드폰을 열어 사진첩을 한참이나 찾아봤지만 엄마 사진은 없었다, 지갑에도 다이어리에도 그 어디에도 엄마의 사진은 없었고, 엄마의 향기가 날 만한 물건도 없었다. 옷도 없었고, 집에 엄마의 손길이 닿은 곳이라곤 단 한군데도 없었다. 집에서 괜히 나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그 집을 달라 할 걸, 우리 엄마가 있는 곳이라 우기며 그 집을 받을 걸. 차라리 그럴 걸. 눈물이 펑펑 쏟아져 나왔다. 이렇게 보고 싶은데, 항상 내 옆에 있었는데. 어째서 이렇게 보고 싶을 땐 없는 건지… 원망스러웠다.
친 아빠에게 연락이 왔다. “네 엄마가 죽었다는 소식은 들었다.” 무덤덤한 목소리에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꾹 눌러 담았다. “집에 들어오렴, 엄마가 네가 보고 싶다 그런다.” 엄마? 웃음이 나왔다. 우리 엄마는 이미 빨갛게 물들어져서 하얀 눈 속으로 사라졌는데, 지금 무슨 엄마를 말하는 거야 당신은? “지금 유윤서 말하는 거야?” 잠시 침묵, 나도 아빠도 말이 없었다. 그러다 아빠가 화가 난 목소리로 내게 말을 했다. “어머니에게 그게 무슨 말 버릇이야.” 화가 치밀어 올라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었다. “우리 엄만 이미 죽었어, 죽었다고! 그런데 지금 누구보고 엄마라는 거야? 지금 그 딴 쓰레기 년을 엄마라고 부르라는 거야? 당신은 미쳤어. 미친 거야!” 뒤에서 여자 우는 소리가 들렸고 전화가 끊겼다.
나는 윤서가 좋았다. 엄마 아빠 다음으로는 윤서가 가장 좋았다. 내 첫사랑 또한 윤서였다. 정말 내 모든 걸 줄 만큼 윤서를 좋아했다. 윤서가 남자친구를 사귀는 것도 상관이 없었고, 그와 섹스를 하는 것 또한 내겐 상관없었다. 그저 순수한 그 마음으로 윤서를 좋아하는 것뿐 더 이상의 욕심은 없었으니까. 그런데 그 남자친구가 우리 아빠라는 말을 했을 때, 나는 처음으로 그렇게 깨끗하고 순수했던 윤서가 더러워 보였다. 아니 더러웠다. 내 옆으로 오는 그 자체가 싫었다. 열여섯 순수하기만 했던 그 첫사랑은 그렇게 허무하게, 돌이 킬 수 없게. 끝나버렸다.
모르는 번호로 집주소가 적혀있는 문자가 왔다. 그리고 아래에는 짤막하게 덧붙이는 말도 있었다. ‘마음이 바뀐다면 언제든 찾아오렴. - 윤서’ 윤서, 윤서, 윤서! 대체 뭐하는 년일까, 정신이 제대로 박혀있기는 할까? 제대로 사고하는 게 맞긴 할까? 그렇게 예쁘게만 보였는데, 그렇게 좋아했는데, 모든 감정이 이렇게 바뀌어버렸다. 화를 억누를 수가 없어 핸드폰을 던져버렸다.
엄마는 어떻게 버텼을 까, 아빠가 새파랗게 어린년과 바람이 났다고 말했을 때, 그리고 그 년이 임신을 했다고 말했을 때. 엄마는 제 정신으로 버틴 걸까 과연? 새삼 엄마에 대한 존경심이 솟아 올라왔다. 아니 존경심이라기 보단, 그 대단한 미련함에 대한 찬양이.
바닥에 떨어진 핸드폰을 주워 그 번호로 다시 전화를 걸었다. 몇 번 신호음이 울리더니 눈물이 가득한 여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민희야…” 날 부르는 목소리가 듣기 싫어 짜증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친년, 내 이름 부르고 싶냐?” 윤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뒤에서 뭐라 말하는 아빠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윤서가 말리는 듯 이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한 때 내가 좋아했던 그녀는 내 앞에서 한없이 작아져만 갔다. “너 때문에 우리 엄마가 죽었어, 넌 평생 그 죄책감 떠안고 살아.” 그리고 전화를 끊었다. 윤서의 탓일까 정말? 그런 건 상관없었다. 그녀가 그녀의 남자친구와 무엇을 하던 간에 나와 상관없었던 것과 같이. 엄마의 죽음이 정말 누구의 탓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그저 원망할 누군가가 필요할 뿐이었다. 그리고 재수 없게도 타이밍을 딱 맞춰 전화한 것이 윤서였을 뿐이었다.
나는 윤서의 임신 소식을 안 가장 첫 번째 사람이었다. 조금 긴 단발머리였던 윤서는 그 머리를 하나로 묶으며 내게 말했다. “나 임신했어!” 그것도 아주 해맑게 웃으며. 우리 나이 열여섯. 나는 웃어야하는 지 아니면 어린 나이에 임신한 윤서를 동정해야하는 지, 그 것도 아니라면 화를 내야하는 지 그걸 몰라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윤서는 내가 좋아하던 그 미소를 머금으며 내가 덧붙여 말했다. “네 동생이야 민희야.” 잠시 정적. 뭐라 답해야 좋을 지, 아니 지금 윤서가 뭐라 말하는 건지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뭐라구?” 잠깐의 정적에 생각한 말은 되묻는 것밖엔 없었다. “네 동생이야, 내 남자친구 네 아버지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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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 사람들이 글을 쓰지 말라는 이유는 늘상 내 글에 녹아있다.
병맛같은 전개와 하나같이 싸이코같은 캐릭터ㅋㅋㅋ 나름 내 글의 매력인데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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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소 정샘물 파데 되게 괜찮은듯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