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영이 양아치인 경우
난 권순영이 나쁜 애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모든 사람이 그렇게 권순영을 생각했다면 좋았을 텐데,
모두에게 예쁨 받을 수 있는 성격은 아니더라도 권순영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시선은 늘 거기서 거기였다.
오늘도 어김없이 맨 뒷자리 창가에서 엎드려 잠을 청하고 있는 권순영을, 모두 마음에 들어하지 않아 했다.
"쟤, 다 베끼는 거 아니야?"
"그럴지도. 솔직히 어떻게 저렇게 자면서 맨날 111을 찍냐."
"집안이 빵빵한가. 존나 재수 없어, 진짜로."
권순영은 지나치게 똑똑했다. 남들처럼 밤낮으로 잠 줄여가며 공부하지 않아도 될 만큼, 태어나길 천재로 태어났다.
다들 예민해져 있는 만큼, 권순영에 대한 말들이 전혀 좋게 나오진 않았다. 질투라는 감정만큼 무서운 건 없나 보다.
결국 애들 눈초리를 참다 못한 권순영은 다음 날부터 문제집을 사 가지고 와서 이어폰을 꼽고 풀기 시작했다.
"너 이제 공부도 해? 대단하다."
"지들이 못 믿겠다는데 보여줘야지, 그럼 어떡하냐."
"근데 너 수학 진짜..... 잘한다. 배운 적 없잖아."
"타고 난 거지."
쉬운 책은 아니었는데. 사흘 만에 문제집 한 권을 다 해치운 권순영은 다시 한 권을 더 가지고 와서 미친듯이 풀었다.
늘 그랬듯, 아무 말도 없었고, 혹 채점을 하는 날이면 동그라미의 연속만 이어질 뿐이었다.
이제 다들 권순영을 질린 듯 바라봤다. 암묵적으로 인정한다, 이 뜻이겠지. 권순영은 그만큼 조용했고, 말썽을 부리지 않았다.
튀기 싫었다, 라는 말이 더 맞을지도.
"너 왜 이렇게 열심히 해!"
"열심히 하라며."
"아...니. 그래도 네 의지가 있으니까 그만큼 하는거지."
언젠가부터 권순영과 하굣길을 같이 하기 시작했다. 권순영은 생각보다 그렇게 무서운 애는 아니었다.
눈이 좀 찢어졌을 뿐이지, 사납지도 않았다. 오히려 순한 편이었다. 길 가다 길 잃은 강아지를 보면 눈을 떼지 못했고, 계속 그 자리에서 맴돌았다.
걸음이 빨랐던 아이었는데, 어느새 걸음이 느린 나에게 맞춰서 걸어 주고 있었다.
굳이 안 그래도 된다고 말하면, 존나 답답해서 그런다, 하고 답했고.
"큰 길은 없어?"
"여기가 제일 빨라."
"맨날 내가 여기까지 붙어서 가 줄 것 같냐고. 돌아서 다녀."
"우리 동네 되게 안전하고, 범죄자 없고! 그런 동네거든."
"내 말 듣지."
"......."
"아니면 일찍 일찍 집에 들어가시든가. 한 시가 뭐야."
아,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하하하. 멋쩍게 웃어 보이자 권순영도 살풋 웃었다.
가로등 밑, 제법 쌀쌀해진 날씨였다. 풀벌레 소리도 잦아들 무렵, 권순영이 운을 띄웠다.
그러니까,
"약속 지켜."
"무슨 약속?"
"난 별 생각 없었는데,"
"......."
"대학 가면 너가 놀자며."
"......."
"노는 건 뭔가 안 맞아서 잘 못 놀 것 같고."
"......어련하시겠어요."
"그냥 옆에는 있어 줄게. 너 친구 없으니까."
비가 오는 날이었다. 비가 좀 세차게 왔다. 그날따라 권순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하루 종일 엎드려 있기만 했다.
세상 다 잃은 사람처럼 계속 잠만 잤다. 시계 몇 번 보는가 싶더니 금세 잠에 들어 버렸다. 그런 권순영을 신경쓰는 건 아무도 없었고.
자면 못 들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수근거리는 소리들이 하나 둘 씩 들려왔다.
"오늘 권순영 부모님 기일일걸. 쟤 맨날 기일마다 자. 하루 종일."
"돌아가셨어?"
"어. 애들이 그러던데. 사고 나셔서. 그래도 돈 많잖냐. 그럼 된 거지."
"하긴 누가 그렇게 망나니 짓하고 돌아다니겠냐. 부모가 제대로 있으면. 없는 티 , 가정교육 못 받은 티 내는 거지, 뭐."
"말 좀 함부로 하지 마."
무슨 용기였는지, 말이 막 튀어나왔다. 도저히 그 대화들을 들을 수가 없어서.
갑자기 내뱉어진 내 말에 당황한 건지, 아이들은 어이 없다는 표정으로 일제히 나를 바라봤다.
그렇게 보면 어쩔건데. 어쩔 거냐고. 위압감이 들긴 했지만....
이윽고 권순영이 눈을 비비며 책상에서 일어났다.
"얼씨구. 기일은 너네가 어떻게 아냐. 나한테 그렇게 관심들이 많아?"
"아, 아니.... 나도 들은 거."
"잘 알고 있으면 국화라도 한 송이씩 사오지 그랬어."
"......아니, 나는."
"우리 엄마 아빠 그래도 나 열심히 키우셨는데."
"......."
"내 잘못인데. 나 망나니 같은 거."
안 나서도 돼. 너가. 속삭인 권순영이 비릿하게 웃더니 다시 책상에 엎드렸다.
묵직했던 한 마디에, 다들 자리로 돌아갔다.
"야, 권순영. 오랜만이다."
"......."
"왜, 나 안 반가워?"
권순영이 그때 말한 사람이었다. 귀국한 건지, 금의환향의 현장이 따로 없다.
개미 떼처럼 모여있는 애들 사이에 그렇게 권순영이 눈에 띄었던지, 얼굴 두껍게도 인사를 건넸다.
우리 학교도 아닌 것 같은데, 뭐하러 여기까지 온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권순영 옆에 있는 나를 발견한 건지, 흥미롭다는 표정이었다.
이 자리에 있으면 안 될 것만 같아서 몸을 피했다.
"여기가 어디라고 너가 와."
"아, 왜 그래."
"그냥 가라. 어?"
"너 요새 공부 한다며?"
어느새 모여 있던 아이들은 흩어지고, 그 둘만의 대화가 이어질 뿐이었다.
복도는 조용해졌고, 그 남자는 계속 권순영을 보고 웃었다.
어떻게 저렇게 뻔뻔할 수가 있을까. 내가 다 기가 찼다.
어느새 뒤를 돌아 그 아이를 지나쳐 가는 권순영이었다. 그에도 굴하지 않고, 계속 따라붙는 그 사람이었다.
"올림픽 봤냐?"
"......."
"아, 하긴 네가 봤을 리가 없지. 그래."
"......아니, 봤는데."
"......."
"너가 이러고 나타나면 내가 존나 배 아파 할 줄 알았냐?"
"......."
"내 다리 분질러 놓은 값은 하더라. 그 정도는 해야 한이 없지, 안 그러냐."
"......."
"뭐가 당당해서 날 보러 와."
"......."
"좆같네."
어느새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좆같네. 그 한 마디가 복도에 울려 퍼졌다,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교실 문 주변에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둘의 대화를 구경했다.
아, 쟤가 권순영 다리 부러뜨린 거야? 설마.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주변을 메웠고, 난 더 이상 둘을 지켜볼 수 없을 것 같아서 자리에 돌아가려고 했다.
"너 담배는 끊었냐?"
"어."
"아, 예전처럼 놀지도 않고?"
"어."
"네 옆에 있던 여자애는 누구냐. 신기해서."
"......"
순간, 억, 하는 비명소리와 함께 주변이 시끄러워졌다. 밖에 나가 보니, 내 눈 앞에 보이는 풍경은, 차마 믿을 수 없는 광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바닥에 엎어진 그 사람과, 이성을 잃은 것 같은 권순영의 눈빛. 난생 처음 보는 권순영의 모습이었다. 눈빛은 사나웠고, 입은 앙 다물어진 채였다.
미친 것처럼 주먹을 날리는 권순영이었다. 주변에 있는 아이들은, 본성이 나왔다면서 권순영을 주제로 수근댔다.
둘을 말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냥 흥미롭게 지켜볼 뿐. 아니야, 이러면 안 돼, 순영아.
내가 끼어봤자 좋을 게 없다는 걸 알면서, 나는 그들 가까이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를 본 그 사람은, 터진 입술을 손등으로 닦으며 피식 웃었다.
"이제 너 어떤 앤지 쟤가 다 알았는데 어떡해?"
"......."
"아닌 척, 얌전한 척, 숨기고 살면 너 이런 앤 줄 아무도 모를 줄 알았지."
"......."
"병신이, 순진해서 다리 하나 날려먹고, 치료비 대 주겠다니까, 받지도 않고."
"......."
"될 놈은 되고, 안 될 놈은 뭘 해도 안 돼."
나를 바라보는 초점 없는 눈빛이 텅 비어 보인 적은 처음이었다.
아까 전의 모습은 온데 간데 없고, 얼빠진 사람처럼 서 있는 권순영의 다리를 걷어찬 그 사람은,
복도를 지나 유유히 사라져 버렸다. 선생님들이 오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미친 놈, 권순영에 대해 수근거리는 말소리들이 점점 커졌다. 한참을 그렇게 멍하니 서 있던 권순영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학교에서 빠져나갔다.
"순영아, 순영아. 문 좀 열어 봐."
"......."
"가방은 들고 가야,"
"......."
무작정 문을 두드렸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열린 문 틈 사이로 보이는 건 눈시울이 붉어져 있는 권순영이었다.
가방은 들고 가야지, 순영아. 책가방을 건네주자 권순영이 뺏어가듯 가방을 받았다.
"순영아, 아까는."
"이제 여기 찾아올 필요 없어."
"......."
"너도 봤지, 아까 전에."
"......."
"나 그런 애야. 나한테 공 들일 필요 없어. 앞으로 오지 마라."
"......순영,"
"가, 늦었다."
"......."
"앞으로 못 데려다 줘. 그러니까,"
권순영이 살풋 웃었다. 머리를 두 어번 쓸어 넘긴 권순영은,
끝까지 나에게 한 방을 먹였다.
"앞으로 일찍 일찍 다녀."
그리고, 나는 수능을 앞 둔 그 날까지도, 권순영을 보지 못했다.
늦어서 미안해요ㅜㅜㅜㅜㅜㅜㅜㅜ울 아가 다리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다 죽여 버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