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영이 양아치인 경우
백 일도 안 남은 수능 날, 나는 더 이상 권순영을 데리러 가도 되지 않았다. 권순영은 그런대로 학교에 잘 나왔다.
말썽을 부리지도, 눈에 딱히 띄지도 않았던 아이였던 만큼, 권순영은 조용히 맨 뒷자리에서 교과서를 펴 놓고 잘 뿐이었다.
아, 권순영 존재감이 꽤 묵직해서 조용해도 조용한게 아니라는 게 문제지만.
"너 왜 이렇게 꼬박꼬박 학교 나오고 그러냐."
"......."
"왜, 와야 할 이유라도 있나 보지?"
"닥쳐, 새끼야."
권순영의 '묵직함'은 괜히 생긴 게 아니었다. 권순영 이름을 대면 모르는 애가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학교에선 조용한 편이어서 뭔가 했더니, 이제는 그렇게는 안 논다는 답변이 들려 왔다.
모두가 알고 있는데 쉬쉬하는 게 권순영의 과거였다. 아무도 그것에 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소문이 느린 나로서는 알 방도도 없었고, 알 이유도 없었기 때문에 물어본 적도 없었다.
그래서일까. 가끔 권순영을 잘 모르는 애들은 권순영에게 시비를 걸곤 했다.
그 때마다 무시하는 권순영이었지만, 오늘은 좀 다른 것 같았다.
"너 다리 병신 된...."
"시끄럽다고 했다."
"......."
순식간에 주변이 싸해졌다. 다리, 라는 단어가 나오자마자 권순영 표정이 매섭게 변했다.
이윽고 다시 전처럼 무표정으로 변했지만, 나는 권순영 표정에서 살기라는 걸 느꼈다.
내가 매일 귀찮게 현관문을 두드려도 짓지 않았었던 표정. 입을 꾹 다물었다.
내가 왜 신경을 쓰고 있는 거야. 정신 차려.
"쌤, 막차 끊겼을 텐데요...."
"어머니가 안 데리러 오셔?"
"제사 가셨는데...."
우리 집에서 지하철 한 정거장 거리인 학원가에 혼자 덩그러니 남겨지게 생겼다.
이럴 때 내가 데려다 줄게, 라고 하셔도 되지 않나요. 길치인 나에게 집까지 교통수단 없이 가기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 어떡해..... 노숙해야 하나. 곧 비까지 쏟아지려는 모양인지, 천둥 소리가 들렸다.
어떡하지. 진짜 모르겠어.
"너 여기서 뭐 하냐."
"어.... 순영아. 안녕, 하하하."
"열두시 반이야."
결국엔 학원 근처를 배회하게 되었다. 집에는 어떻게 가지.... 나 독서실 가야 되는데, 집에도 못 가게 생겼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비까지 세차게 내려왔다. 비를 피하기도 전에 내 머리속까지 차갑게 젖어들어가는 빗물이었다.
한숨을 쉬며 스스로를 탓하고 있을 때 쯤. 익숙한 그림자가 보여 고개를 들자 우산을 들고 서 있는 권순영이 보였다.
건조한 말투에 어색하게 인사를 해 보았다.
"집 왜 안 들어가."
"어.... 막차 끊겼어. 그래가지고, 지금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 중이었...."
"집 어떻게 가는 지 모르냐, 설마?"
"응.... 나 길치거든."
"........"
권순영이 세상에서 가장 한심한 사람을 보듯 나를 훑었다. 기가 차단 듯 한숨까지 허, 하고 쉬었다.
아, 나 진짜 어떡하지. 택시는 어렸을 때 안 좋은 기억이 있어서 타지도 못하고. 한숨을 푹 푹 쉬며 신발코만 바라보았다.
"갈 데 없어?"
"어...."
"......아씨."
"......."
"그럼 우리 집 가던지."
엄마가 남자 혼자 사는 집에 가면 안 된다고 그랬었는데, 별 다른 방법이 없었던지라 그냥 고개를 끄덕이고는 권순영 집으로 걸어갔다.
이러면 안 되는데..... 집에 가야 되는데. 괜히 피해를 끼친 것 같아 민망하고 미안했다.
"순영아, 나 그냥 집에 갈게.... 뭐 어떻게든 되겠지! 그냥 우산만 빌려...."
"그냥 재워준다고 하면 고맙다 하고 자고 가라."
"......아니, 민폐 같아서."
"그럼 길도 모르는 애한테 우산 하나 쥐어주고 한밤중에 알아서 집 찾아가라 그러냐?"
도어락을 여는 소리가 경쾌했다. 아, 그러고 보니까.... 나 비에 젖었네. 민폐다, 완전 민폐.
내 꼴을 훑어 본 권순영이 한숨을 쉬더니 여기 서 있어, 하고는 옷장을 뒤져서 티셔츠 한 벌과 반바지 한 벌을 건네 주었다.
"안 씻으면 감기 걸린다."
"진짜 미안......."
"아, 물 떨어지니까 빨리 들어가서 씻어. 여기 옷."
욕실에 들어가서 옷을 벗었다. 느낌이 이상했다. 우리 집도 아닌 곳에서 목욕을 하고 있는다는 건.
찬물을 끼얹었다. 눈 앞이 뿌옇게 변해서, 샴푸가 뭔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눈에 보이는 걸 대충 짜서 머리를 감았다.
몸에서 비 냄새가 날 것 같아서, 바디워시를 써야 할 것 같긴 한데 샤워볼을 쓰면 안 될 것 같아서 대충 거품을 내서 몸에 문질렀다.
"으아, 엄마!"
바디워시를 짜다가 조금 바닥에 흘렸더니, 금새 바닥이 미끄러워졌다. 넘어질 뻔 했네, 아이고. 욕실에서 넘어지면 뇌진탕 걸린다고 그랬는데, 엄마가.
재빨리 몸을 헹구고,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욕실에서 나왔다. 오래도 씻는다. 건조한 말을 내뱉은 권순영의 시선은 다시 티비를 향했다.
아, 맞다. 요새 올림픽 하지.... 공부가 뭐 대수라고. 올림픽도 못 챙겨보고.... 인생아. 채널을 열심히 돌리던 권순영의 옆(이라고 하기엔 좀 먼)에 털썩 앉았다.
올림픽 보자, 순영아. 오늘 공부는 영 글러먹은 것 같아서. 마음속으로는 열심히 올림픽을 보자고 pr을 하고 있었지만, 권순영한테 차마 말을 걸 수가 없었다.
"보고 싶은 거 봐."
"어.... 아니야! 너가 보고 싶은 거 봐야지."
"올림픽 보고 싶다며."
"아하하...."
또 무심코 속마음을 입 밖으로 꺼내 버린 게 분명했다. 너 왜 사냐, 김너봉. 한숨을 푹 쉬며 권순영이 내민 리모콘을 그대로 받았다.
어, 태권도 하네. 우리나라가 우승하겠지? 하하하. 흥미로운 표정으로 경기를 보았다. 정말 아무 말도 없는 권순영이 신경 쓰여 옆을 돌아보니,
복잡한 표정의 권순영이 보였다. 괜히 내가 바꿨나 봐.... 눈치 없이. 괜히 머쓱해져서 채널을 돌리자, 권순영이 그냥 보라며 짧게 말했다.
"너도 내 얘기 아냐?"
"......어?"
"알면 그냥 안다고 해도 되는데."
"아니...... 모르는데. 몰라, 정말로.... 내가 다른 애들한테 왜 네 얘기를 듣고 다니겠어."
"아, 너 친구 없지."
"......원래 고3때는 독고다이로 사는 거래. 그리고 맨날 선생님이 너 데리고 오라고 시키는데 애들하고 친해질 시간이 있겠어?"
푸하하. 권순영이 저렇게 웃는 건 또 처음 본다. 미치겠네, 하며 머리를 연신 쓸어넘긴 권순영이 무덤덤하게 자기 얘기를 꺼냈다.
나, 원래 저기 있었어야 돼.
".......너?"
"너 나랑 같은 중학교 나왔으면서 그걸 모르냐. 나 유명했었는데."
"......다른 걸로 유명한 건 알았었는데."
"어렸을 때부터 태권도 했었어. 다들 나보고 국가대표감이라고 그러고. 우쭐했지. 좋았어. 당연히 국가대표 될 줄 알았어."
"........."
"대표 선발전 일주일 전이었나. 그냥 집 들어가서 쉬려고 했는데. 친구가 누구랑 시비가 붙었다 그래서 말리려고 거기로 갔어."
"........"
"거기에 나랑 같이 선수 준비하던 애가 있었어. 걔가 쇠파이프였나. 각목이었나. 웃기네, 생각하니까.
내가 싫었나 보지, 뭐. 난 그냥 가만히 서 있었는데 그걸로 내 다리를 쳤어. 다섯 번인가. 미친놈인 줄 알았어. 신 들린 것처럼 치길래."
"........"
"그래서 나는 다리 부러지고, 재활 치료 받았어야 했는데 내가 안 받겠다고 했어. 수술이 잘 돼서 그렇지 원래는 못 걸어 다닌다고 했었어.
아, 그리고 지금 걔는 아마 저기 나가 있겠다."
"......."
"너 우냐? 왜 울어, 너가. 누가 보면 너가 다리 부러진 줄 알겠다. 내가 잘못한 거야. 그런 데 왜 끼어가지고."
"......."
"진짜 올림픽 나가보고 싶었는데."
무덤덤하게 내뱉어진 말들이 내 마음을 콕콕 찌르는 것 같았다. 나 안 울어, 내가 왜 울어....
"학교 요즘은 잘 나오네."
내가 할 수 있는 건, 동문서답하는 것 뿐이었다. 내가 위로해봤자일 거다. 그냥 그런 대로, 나도 넘기기로 했다.
학교 잘 나오네, 라는 말에 권순영이 허, 하며 한숨을 쉬었다.
"학생이 학교를 나와야지."
".......그럼 너 그동안 학생 아니었던 걸로 칠래?"
"그동안은 학생, 지금은 모범생...정도."
".......낯설다, 너."
"빨리 잠이나 자라. 저, 기. 올라가서 자."
".......아니야! 내가 바닥에서 잘게. 너가 위에서 자!"
손사레까지 치며 절대 안 된다고 말하자, 권순영이 눈썹을 꿈틀거리더니 그냥 올라가서 자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야, 나 맨날 침대에서 굴러서 바닥에서 자고 그래. 나 진짜 괜찮다니까. 소파에 있던 베개를 하나 가져와서 바닥에 놓고, 자는 척을 했다.
아, 내 마음이 진짜 불편해서 그래. 편하게 자라니까, 제발!!
어이없다는 듯 웃은 권순영이 불을 껐다. 그래, 넌 침대에서 편히 자렴. 난 바닥도 편하니까.... 바닥에서 자고 내일 아침 일찍 나가도록 할게.
근데 바닥이.... 너 청소기 안 돌렸구나. 먼지가 코에 들어갈 것 같네. 그래도 나는 자겠어.... 코-자야지. 그렇게 한참을 눈을 붙이고 있었을까.
위로 번쩍 들리는 기분이 들어 실눈을 뜨니 권순영 얼굴이 너무 가까이 보였다, 으아....너 뭐야!
갑자기 심박수가 증가하는 것 같았다. 뭐야, 왜. 너 팔 부러진다고! 내려 줘, 제발....
"미련하기는."
"........"
"와, 진짜 자나보네. 여자애가 무슨 바닥...."
"........"
"착한 거야, 바보인 거야."
너 내 욕하는 거 맞지. 궁시렁 궁시렁 내 험담인지 아닌지 모를 말들을 늘어놓은 권순영이 안 그래도 더워 죽겠는데....
이불을 목 끝까지 올려 덮어 주고는 자기가 바닥에 누웠다. 자야 되는데, 눈이 자꾸 번쩍 번쩍 떠지는데 이럴 땐 어떻게 해야 돼?
권순영도 계속 뒤척거리는 걸 보니 잠자리가 편한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아, 가시방석이야. 민폐녀.... 넌 정말 민폐 덩어리다.
"김너봉. 너 안 자는 거 다 알아."
"........헙."
"바닥에서 잔다더니, 원래 침대에서 자고 싶었지?"
"........"
"그냥 자라, 빨리. 기분 이상하다. 빨리 자."
"......."
"빨리."
하편으로는 끝낼 수 없었던 양아치 순영.......
결국 中-1 편을 들고 와씀미다 헤헤...
이런 양아치 처으메야..?!....... 권순영과 결혼할 파티원을 구합니다. (1/1) 파티가 끝났습니다!
헤헤.... 저 곧 있으면 새학기 시작이어요ㅠㅠㅠ 그러니 빨리 달려 놔야 해....
여러분 사랑합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