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성]비밀 2화
-
“흐응....”
성열은 마주앉은 성종의 얼굴을 뚱하니 쳐다보았다. 야, 왜 그래. 호원이 성열의 옆구리를 찔렀다.
“야, 쫑. 너는 왜 공부하냐?”
“응?”
열심히 수학을 풀던 성종이 고개를 들며 어리벙하게 대답했다. 왜 하냐구? 글쎄... 성종은 손에 쥐고 있던 연필을 내려놓으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성열은 그런 성종을 계속해서 뚫어져라 쳐다보았고, 이내 호원도 성종의 입을 계속 쳐다보았다.
“음... 솔직히 공부 못 하는 것보단 낫잖아?”
“헐.”
성열이 짧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호원은 풋. 하고 성열을 쳐다보며 웃었다. 성종은 개의치않고 계속해셔 말을 이었다.
“사실이 그렇잖아. 공부 못 하는 애가 사고치는 것보단 공부 잘 하는 애가 사고치면 선생들도 다 대충은 넘어가고, 내가 아무리 예체능을 해도 공부를 이만큼 해낸다. 하면 선생들이 내가 수업시간에 자도 ‘재, 예체능이냐?’ 라고 말 안 하지, 솔직히 수업시간에 잔다고 다 예체능이라고 무시하는 거, 너무 잘못됬잖아. 안 그래? 그리구...”
“쌓인게 많냐?”
성열이 질린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성종은 여전히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솔직히 공부 잘하면 부모님이 나 터치 안 하잖아? 안 그래, 호야?”
호원이 그건 맞는 말 같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성열은 여전히 뚱하게 말했다. 그건 니들이 이쁘니깐 하는거고.
“그래두, 성열아. 니가 이번에는 성적을 올린다면, 부모님께서 아주 좋아하실껄?”
성종은 다시 문제를 풀며 말했다. 그래, 임마. 공부 좀 해라. 호원도 성열에게 핀잔을 주며 다시 읽고 있던 화학책으로 눈길을 돌렸다.
-
“형, 여기에 이 문제 잘 모르겠어요.”
“그래? 줘 봐.”
명수는 성규에게 문제집을 건네주었다. 성규는 문제를 눈으로 훑어보며 말했다. 여기. 여기 니가 풀이과정을 틀렸네. 지우고 다시 해 봐. 명수는 성규가 짚어준 곳을 지우고 다시 성규를 바라봤다. 형.
“응?”
“형, 사촌동생..”
“응, 걔는 왜?”
“걔는 공부 잘 해요..?”
성규는 다시금 명수의 머리위에 솟아난 귀를 보며 속으로 큭큭 거렸다. 역시, 아직 학생이라서 성적에 많이 민감하구나.
“쫌 하는 것 같던데? 난 기회 봐서 걔가 어느 정도 하면 일본으로 데리고 갈라구”
“일본이요?”
“응, 아무래도 한국보다는 일본이 낫지 않나? 나도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서 걔하나는 어떻게 할 수는 있어. 솔직히 걔네 부모님은 시골 좋아하셔서 걔가 뭐 하려고 하기에는 내 밑이 낫더라고. 근데 걔 성적은 왜?”
“그냥요.. 형도 저랑 동갑인 사촌동생 있다고 하니깐……. 비교할 수 도 있잖아요..”
머뭇머뭇 말하는 명수를 보던 성규는 결국 웃음을 참지 못했다. 푸하하하하
“걱정 마. 난 비교 안 하니깐. 넌 그런 거 생각할 시간에 문제나 하나 더 풀어, 임마.”
조용히 네.. 하는 명수의 숙여진 고개로 강아지 귀가 쫑긋쫑긋 거렸다.
-
“야!! 이쫑!!!”
성종은 뒤에서 누군가 크게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얼마 안 남은 피아노 콩쿨때문에 음악실로 가던 길이였다. 이번에는 농사때문에 떨어져 살던 부모님도 오시는 콩쿨이라 평소보다 더 연습에 매진하던 성종이었다. 성종은 자신을 부른 사람이 자기네반 반장 우현인 걸 알자, 환하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왜? 나 지금 연습하러 가야되는데?”
“담임이 너 불러. 그나저나. 김명수 어딧는지 암? 이 새끼는 아무리 찾아도 안보여.”
우현이 짜증을 내며 머리를 흩뜨렸다. 에이씨, 빨리 찾고 매점 가야되는데.
“그나저나, 쫑. 어때, 피아노콩쿠르 잘 되 감?”
“음..그럭저럭. 근데 지금 빨리 가야되는 거야?”
“뭐, 담임한테? 몰라. 그냥 너랑 호원이랑 명수랑 재수랑 기원이랑 이렇게 같이 오랬는데. 아놔. 재수 이 자식은 잔다고 꺼지라 그러지, 김명수는 코빼기도 안 보이지. 이호원은 태권도 얼마 안 남았다고 담임한테 전하라 그러지. 졸라게들 바쁘셔!!! 내가 지들 딸랑이로 보이나!”
우현은 투덜투덜 거렸다. 성종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저.. 우현아. 그럼 내가 명수 찾아서 같이 갈게. 너 매점 간다며..”
“오, 야. 진짜? 역시 우리 5반의 천사, 이쫑!!”
우현은 화색을 하면서 성종의 머리통을 끌어안고 마구 부볐다. 곧이어 이마에도 쪽 하니 뽀뽀를 하고 냉큼 매점으로 달려갔다. 이쫑! 내가 너한테 핫바 쏜다!!
성종은 우현이 뽀뽀를 한 이마를 슬쩍 문지르며, 슬며시 웃었다. 지금 우현이 저에게 뽀뽀한 것은 문제가 아니였다. 드디어 명수랑 말을 할 수 있는 기회다.
-
창문으로 안을 들여다 본 성종은 역시. 하고 혼잣말을 했다. 성종이 명수를 찾아간 곳은 새로 지은 음악실 때문에 아무도 안 쓰는 폐 음악실이었다. 명수가 여기서 혼자 공부한다는 것은 성종이 예전에 우연히 지나치다가 발견한 것이었다. 성종은 조심스레 음악실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으흠!”
성종이 어색하게 헛기침을 해보았지만, 명수는 들리지 않는지, 미동도 없었다. 성종은 조심스레 까치발을 들며 명수의 뒤로 다가갔다. 슬쩍 건네 본 명수의 앞에는 영어 문제집이 있었다. 성종이 척보기 에도 엄청 어려운 문제 집이였다. 으에……. 성종은 혀를 내두르며 음악실내부를 휘휘 둘러보았다. 낡아 보이는 그랜드 피아노가 하나 있었고, 그 옆에는 쓰레기들이 잔뜩 쌓여있었다. 에비……. 성종은 피아노로 다가가 옆에 널브러져있는 커튼자락을 들고 조심스레 피아노 건반들을 닦았다.
딩-
조심스레 건반 하나를 눌러보자 맑은 소리가 났다. 낡긴 했어도 조율은 제대로 되어있었나 보다. 성종은 피아노의자 위에 쌓인 먼지들을 훌훌 털어버리고 그 위에 앉았다. 딩- 다시 한 번 건반을 누른 성종은 괜히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성종은 살며시 건반 위에 열손가락을 얹었다. 칠까..? 명수가 뒤에서 이어폰을 끼고 공부를 하는데, 쳐도 될까? 성종은 건반위에서 춤을 추고 싶다며 간질간질거리는 손가락들을 바라보았다. 성종은 다시 명수 쪽을 슬쩍 보고는 슬며시 주먹을 쥐었다가 풀었다. 어떤 음악 콩쿠르 대회 때보다 심장이 두근두근 거렸다. 성종은 뎅-. 하고 건반하나를 슬쩍 누른 후 명수 쪽을 다시 쳐다보았다. 명수에게는 잘 안 들리나 보다. 성종은 이내 숨을 훅 하고 들이셨다.
명수는 자신의 이어폰이 아닌 다른 곳에서 음악소리가 들려오자, 이어폰을 빼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누군가 있었다. 익숙한 등. 모르는 노래였지만 선율이 아름다웠다. 피아노를 치던 손이 멈추고 조용하게 이어져 피아노 소리도 멈췄다. 명수는 피아노를 치던 아이가 누군지 궁금해졌다.
성종은 명수가 저의 뒤에 서 있는 게 느껴지자 연주하던 손을 멈췄다. 심장이 화끈 화끈거렸다. 손도 막 덜덜덜 떨렸다. 피아노를 못 칠 것만 같았던 성종은 조심스레 명수를 향해 몸을 돌렸다. 어..저...
“네가 친 노래, 좋다.”
성종은 명수의 한마디에 심장이 덜컥 떨어지는 것 같았다, 어...어...그... 성종은 무슨 말이라도 해야 될 거 같아서 말을 꺼냈지만, 나오는 건 더듬더듬 거리는 말들뿐이었다.
“노래 제목이 뭐야?”
“저…….쇼팽의 lullaby... 자장가라는 노래야…….”
성종은 고개를 푹 숙이고 말했다. 부끄러워!! 성종은 얼굴이 타들어 가는 것만 같았다. 처음으로 명수와 대화하는 건데 이렇게 멍청하게 굴다니!! 게다가 자신의 연주를 명수가 들었다는 것이 더욱 더 부끄러웠다. 제대론 친 것도 아니고, 연습 삼아 대충대충 친 건데.. 어떡해!! 성종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려버렸다.
명수는 숙인 고개를 멀뚱히 쳐다보았다. 단지 이 아이가 치는 노래가 좋아서 좋다고 한 건데……. 저기……. 명수는 뭘 해야 될지 몰라서 짝짝짝. 박수를 쳤다. 명수의 박수소리에 성종은 안 그래도 화끈화끈한 얼굴이 터져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종은 이내 벌떡 일어섰다. 여전히 고개는 푹 숙인 채로.
“담임이! 너랑 나랑 교무실로 오랬어!!”
좀 전, 우현이 한 말과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말이지만, 성종은 더 이상 명수와 같이 서있는 것도, 명수의 목소리를 듣는 것도 할 수가 없이 심장이 쿵쿵거려, 자신이 해야 할 말만 후다닥 하고 음악실을 뛰쳐나갔다.
타다닥, 명수는 그저, 피아노 치던 아이가 하는 말만 되풀이했다. 우리 반인 거 같은데, 얼굴도 모르고……. 어떻게 담임한테 같이 가라는 거지. 명수는 다시 피아노를 바라보았다. 전혀 소리가 안 날 줄 알았던 저 먼지 쌓인 피아노에서 저 아이의 손으로 달콤한 멜로디를 연주했다. 명수는 아직도 쇼팽의 lullaby 가 귓가에 아른아른 거렸다.
“lullaby...."
명수는 조용히 피아노 치던 아이가 친 노래의 제목을 읖조렸다.
-----
읽기만 하고 댓글도 안달아주는 그대들.. 슬퍼요...ㅠㅜ 조회수만 멍하니 바라보게 하지마용...ㅠㅜㅠㅜ 못쓰면 못쓴다고 머라고도 해죠바여...ㅜㅠㅜ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최신 글
위/아래글
공지사항
없음

인스티즈앱
자칭여신 박규리 실물느낌 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