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독스에요!
가을 인 듯 조금 쌀쌀해지더니 또 다시 더워지네요.
긴팔들을 꺼내놓고 정작 반팔은 넣지 못하고 있다는 게 함정이에요.
그간 내 사랑들은 잘 지냈나요?
엊그제 저는 제주도를 늦은 휴가 차 다녀왔어요
1700km라는 어마무시간 운전을 감행하면서도 즐거웠던 휴가였답니다.
가을의 제주도, 너무 좋네요.
덥지 않고 걷기 좋은 선선한 날씨에요.
가디건 한 장 걸치고 걸을 수 있는 날씨니,
아직 휴가를 보내지 않은 내사랑들에게도 추천하고 싶은 아름다운 곳이네요
그런 의미로 예쁜 제주도 사진 몇장 올리며 글을 시작하도록 할게요!
이번 화의 탄소는 벨라(트와일라잇 여주)의 탄생을 언질하는 화...랄까요(삐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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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lus - White Avenue
새해의 첫 해가 밝은 그때에 나는 민윤기와 함께 있었다. 목도리를 칭칭 둘러매고 서로의 손을 꼭 포개어 잡은 채 사람이 북적이는 그곳에 함께 있었다. 빨개진 서로의 코를 보며 웃고, 꼭 맞잡은 손을 다시 한 번 고쳐 잡으며 힘든 시절 잘 견뎌냈다 스스로를 칭찬하고 새해에도 우리 이대로 잘 지내게 해달라고도 빌었다. 새해를 기다리는 수많은 사람들과 기자들, 각 방송사로 내보내질 영상을 찍는 카메라들. 그 틈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서있었다. 카운트다운이 시작되고, 입을 모아 숫자를 거꾸로 외치던 사람들은 크게 울리는 종소리에 환호성을 질렀다.
민윤기는 나를 품으로 와락 끌어안고 내려다보았다. ‘사랑해. 올해도 더 열심히 사랑할게.’ 종소리와 섞여 귓가에 나직하게 울리던 목소리가 달콤해서 정신이 아찔해졌다. 그의 말에 웃음으로 화답하던 찰나 내 허리를 끌어안던 민윤기의 손이 올라와 내 코와 입을 덮은 목도리를 살짝 끌어내렸다. 그리고 우린 입을 맞췄다. 첫 키스였다. 살을 에는 겨울바람과 대조되는 데일 듯 뜨거웠던 민윤기의 입술에 깜짝 눈을 뜬것도 잠시. 이내 자연스럽게 눈을 감는 나를 보며 민윤기는 내 허리를 감은 손에 조금 더 힘을 주었다. 그렇게 보신각의 마지막 종소리가 울려 퍼지던 때에 우리는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새해의 축하와 한 해의 행복을 빌었다.
“그래서 민윤기랑은 계속 사귈 거냐?”
“정호석 뭐야, 그런 질문하기 있기냐.”
“떨어지잖아. 서울이랑 부산이 옆 동네도 아니고.”
민윤기는 서울에 있는 대학교로 진학을 하게 되었다. 반면에 나는 부산에 있는 대학에 합격을 했다. 뜻하지 않게 장거리 커플이 되어버린 나와 윤기를 안주거리 삼은 이 자리에 박지민도 있었다. 정호석이 고소하게 잘 구워진 막창 하나를 들어 올려 이리저리 살피다 입으로 쏙 집어넣었다. 고기를 질겅질겅 소리가 날 정도로 씹어대던 정호석이 제 앞에 놓인 소주잔도 들어 입으로 탁 털어 넣었다. 크으― 반사적으로 나오는 소리를 참지 못하고 인상을 찌푸리던 정호석은 또 다른 막창도 입으로 집어넣었다.
“어떤 사람은 장거리 연애가 더 낫다고도 하더라. 자주 못 보니까 그만큼 더 애틋해 진다나. 가까이 있으면 자주 보는 만큼 자주 부딪칠 거고, 그러다보면 자주 싸우게 된다니까. 장거리 연애를 겪어본 사람들 중 그게 맞는 사람들은 그거만큼 좋은 게 없대. 문제가 있다면 너는 장거리 연애를 해본 적이 없어서 그게 너랑 맞는지를 모른다는 거지.”
“……….”
“나도 좀 반신반의 하는 게, 원래 연애는 ‘눈멀맘멀’이라고 하잖아.”
“그게 뭔데.”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 몰라?”
정호석의 말에 한숨이 푹 나왔다. 나도 그냥 서울로 대학을 썼어야 했나. 나도 모르게 흘러나와버린 말에 타가는 막창을 뒤집던 박지민의 손이 딱 멈췄다. 슬쩍 박지민의 눈치를 본 나는 헛기침을 했고, 나처럼 박지민의 눈치를 살피던 정호석은 내 얼굴을 보고는 혀를 쯧―하고 찼다. 그러다 또 다시 막창을 질겅질겅. 비어있는 정호석의 잔을 채워준 나도 내 빈 잔에 술을 따랐다.
“결국엔 너도 잘 모르니까 그냥 겪어 봐야 한다는 소린데. 그 과정이 조금 힘들다는 거지. 쓸데없는 감정 소모를 해야 한다는 거니까.”
“왜 쓸데가 없어?”
“쓸데가 있냐? 어차피 슬픈 결말인데, 감정 낭비를 해야 한다는 게 그냥 계산적인 입장에서는 아깝다 이거지. 힘들어하기도 엄청 힘들어 할 거고 마음은 또 엄청 써야 할 텐데, 그렇다고 얻는 게 좋은 결말도 아니고.”
고개를 끄덕였다. 정호석의 말이 맞는 말 같았다. 서로 싸우게 되더라도 당장 얼굴 보고 꼬인 감정을 풀 수 없는 거리라면 엄청 답답하겠구나 생각은 했었다. 그만큼 더 조심해야 하고, 더 상대의 입장을 헤아려야 하고. 조금 덜 기대해야 하고 가진 것에 행복할 줄 알아야 하고, 지금 하는 것 보다 더 많은 양보를 해야 한다고 정호석은 말했다. 그리고 말끝에 ‘네가 그걸 다 할 수 있겠어? 애인한테 힘들다 말도 못하는데.’ 라고 덧붙였다. 글쎄, 내가 할 수 있을까. 나 혼자 견뎌 낼 수 있을까. 자신은 없었지만 ‘그래도 어쩌겠어.’라고 대답했다.
정호석은 내 대답이 의외인 듯 오오― 하고 나를 가느다란 눈으로 봤다. 어깨를 들썩이는 나를 보던 박지민도 ‘자기 알아서 잘 하겠지.’ 라며 은근 내 편을 들어줬다. 기세가 등등해진 나는 잔을 들어 건배제의를 했다. 눈치껏 정호석과 박지민은 잔을 부딪쳐 주었다.
“장거리 연애가 겁이 난다고 당장 다가오지도 않은 일에 벌써부터 겁먹고 헤어질 순 없는 거잖아. 난 아직 윤기가 너무 좋은데.”
“네, 네.”
“너희라면 안 그래? 너무 좋은데 어떻게 헤어질 생각을 하냐고. 나는 이렇게 지금 생각만으로도 끔직한데.”
“우리한테 물어 뭣 하겠니. 헤어질 애인조차 없는 애들한테.”
“미안.”
나 먼저 들고 있던 잔을 입안으로 털어 넣었다. 나머지 애들도 나를 따라 잔을 비웠고 다들 똑같은 얼굴로 쓴 소리를 뱉었다. 박지민은 물을 삼키며 ‘이 맛없는 걸 어른들은 왜 먹는 거지.’ 하고 말했고 얼굴이 조금 상기된 정호석은 ‘그래도 기분이 좋아지긴 하잖아.’ 라고 대답했다. 나도 정호석의 말에 조금 더 동의를 하는 입장이었고, 살짝 더 달아오르기 시작하는 뺨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박지민이 술을 들어 우리의 잔을 채우려고 보니 병이 비어있었다. ‘여기 이슬 한 병만 더 주세요!’ 머리 위로 술병을 흔드는 박지민을 보고 알바생은 센스있게 술을 들고 왔다. 각자의 잔이 채워지고 박지민은 빈 병들을 옆으로 치웠다.
“야, 첫술에 각 일병이면 아주 막술은 아니지?”
“우린 몰라도 쟤는 꽤 잘 버티는 거 같은데.”
나를 가리키는 박지민을 보며 아직 괜찮다고 어깨를 들썩였다. ‘아냐, 아냐. 쟤 얼굴이 빨간 게 아닌 것 같아.’ 내 얼굴을 보며 키득대던 정호석은 박지민의 어깨를 툭 쳤다. 박지민은 한참 내 얼굴을 보더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 난 그만 먹어야 할 것 같아. 술이 센 편은 아닌가 보네.’ 그리곤 술잔을 조금 앞으로 밀었다.
“그래도 너흰 인마. 같은 대학 가니까 자주 볼 거 아냐. 부럽다.”
“네가 부산에 자주 내려오면 되잖아.”
“자주가 쉽냐. 자주라고 해봐야 한 달에 한번, 두 달에 한번이겠지.”
고개를 끄덕이던 나는 내 입으로 들어오는 막창을 받아먹었다. 헤롱헤롱한 기분과 더불어 온 피부에 전기가 흐르는 것 같았다. 정호석은 내게 잔을 내밀었고, 나는 마다하지 않고 잔을 들어 부딪쳤다. 소주는 언제고 삼키는 느낌이 좋지만은 않았다. 고개가 꺾이고 술잔도 꺾이면서 쓰디쓴 술이 목 뒤로 넘어갔다.
“너희 덕에 고등학교 생활 즐겁게 했다.”
“야, 정호석. 소름 돋으니까 그런 말 하지 마.”
“왜, 지금 아니면 언제 하냐.”
“난 니가 범생이 인줄은 알았는데, 그렇다고 일류대를 갈 줄은 몰랐어.”
“네가 오빠를 너무 과소평가 한 거다.”
헤헤― 웃었다. 웃음이 나도 모르게 나왔다. ‘어어, 저 봐라. 끼 부린다. 취했네.’ 정호석이 눈을 부릅뜨고 쳐다봤다. 기분이 좋아졌다. 알딸딸한 술기운은 기분을 끝도 없이 좋아지게 했다. 후― 하고 긴 숨을 내쉬었더니 박지민이 조금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내 어깨를 붙잡았다. 그만 마셔. 박지민이 그렇게 내 잔을 거둬간 것 같은데 그리고 시야가 흐려졌다. 핑핑 돌던 머리가 한쪽으로 기울어지고는 툭 누군가의 몸으로 쓰려졌다.
“내 이럴 줄 알았다.”
“뭐야, 완전 약해. 한 병이 주량이네.”
“그러게 애한테 술을 왜 그렇게 먹여.”
“너랑 나 있을 때 주량 봐놔야지. 지가 지 주량을 어떻게 알거야.”
지민은 자기의 잔에 채워져 있던 술을 쭉 들이켰다. 그리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호석도 스스로의 잔에 술을 채우고 한 번에 들이켰다. 둘은 각자의 이유대로 복잡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 왜 이렇게 불안할까, 지민아.”
“뭐가.”
“그냥. 너도 김탄소도, 불안해.”
호석은 아랫입술을 깨물며 탄소의 얼굴을 빤히 봤다. 곱게 감은 두 눈이 꿈을 꾸는 듯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그런 탄소를 받친 지민의 팔이 조심스럽게도 어깨를 감싸주고 있었다. 그녀를 내려다보는 지민의 두 눈에서 그의 감정이 너무도 적나라하게 드러나 호석은 모른 척 하기가 힘이 들었다. 다시 잔을 채우고 서둘러 비웠다. 지금은 모르는 척 해야 하는 게 도리라고 생각했다.
“어쩔래. 민윤기한테 전화 할래, 네가 데려다 줄래.”
“……그러게. 어떻게 할까.”
호석은 고민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부분이었다. 그런데도 고민을 하고 있는 지민과 그의 선택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호석은 긴 숨을 내쉬고 자리에서 일어나 탄소의 가방을 뒤졌다. 그런 그를 빤히 보던 지민은 이내 입술을 꾹 다물었다. 호석이 어떤 행동을 취할는지를 지민은 이미 다 알고 있었다. 호석은 탄소의 핸드폰을 꺼내 능숙하게 비밀번호를 눌렀다. 그리고 전화를 걸었다.
“민윤기 부르자. 그래야 돼.”
“……….”
지민은 대꾸를 않았다. 무언의 동의였다. 그리고 스스로 잔을 채우고 비웠다. 이미 불판 위의 막창들은 까맣게 타버린 지 오래였다. 지민은 괜히 불판위의 고기들만 뒤적였다. 먹을 것도 없는 불판위에 새까맣게 타 휘젓는 대로 뒹굴고만 있는 고기들이 꼭 저 같다고 생각했다. 그중 그나마 덜 탄 것을 골라 입에 넣었다. 아무 것도 모르고 제 가슴팍에 기대 잠들어있는 탄소가 미웠다. 제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이내 가게 문으로 윤기가 뛰어 들어오고 앉아있던 호석이 일어났다. 지민의 어깨에 기대 잠들어있는 탄소와 그런 탄소를 받친 지민의 팔을 번갈아보던 윤기는 아무 말 없이 그들에게로 걸어왔다. ‘내가 데리고 갈게.’ 그렇게 탄소를 업어드는 윤기에게 아무 말 못하고 탄소를 내어 줄 수밖에 없는 지민은 입술만 꾹 깨물 뿐이었다. 윤기의 손에 탄소의 가방을 쥐어주고, 업힌 탄소의 등위로 제 점퍼를 덮어준 지민은 한걸음 떨어져 숨을 푹 내쉬었다.
문을 나서 사라지는 그 두 사람을 눈으로 좇으면서도 제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부르튼 입술만 씹어야 했다.
Love Like Sugar
W. 독스
14
지끈한 머리를 짚고 눈을 뜨니 내 방안이었다. 마지막 기억은 분명 박지민, 정호석과 함께 막창집 안에 있었는데 눈을 떠보니 내 방 안인 걸 보니 아마 내가 정신을 놓았겠거니 했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왔다. 고통에 으으―하고 신음을 내뱉으니 쩍쩍 갈라진 목소리가 나왔다. 물이라도 먹어야 살 것 같아서 어렵사리 몸을 일으켰다. 침대에 반쯤 걸터앉아 흐트러진 정신을 모았다. 이러다 넘어질 판이었다.
“아으, 머리야.”
곡소리가 절로 나왔다. 마른 입술을 축이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방 문고리를 잡으려다 문고리에 걸린 내 가방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원래 가방을 놓아두는 곳이 아니었다. 이게 왜 여기에 걸려있어. 엄마가 걸어놨나. 가방을 들어 책상 위로 올렸다. 그러자 보이는 박지민의 점퍼가 상황을 정리하게 만들어줬다. 자식, 그래도 안 버리고 집까지 들쳐 매고 왔나보네. 책상에 아무렇게나 놓인 박지민의 점퍼를 좋게 개켜 의자 위로 걸어두었다. 그리고 방을 나섰다. 거실엔 엄마가 청소기를 돌리고 있었다. ‘엄마, 출근 안했어?’ 물으니 월차를 냈다고 했다.
“술에 떡이 되어서 들어온 딸내미를 두고 일을 나갈 수가 있어야지.”
“왜, 알아서 잘 챙겨 먹을 텐데.”
“수능 끝나고 안 챙겨주니까 아무것도 안 먹고 잠만 자던 사람이 어떻게 잘 챙겨 먹어. 얼굴 핼쑥해진 것 좀 봐라.”
엄마는 청소기를 내려놓고 부엌 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온기가 남은 국을 국그릇에 담고 막 지은 밥을 퍼 담았다. 나는 자연스럽게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내 식탁 위로 올렸고, 식탁 위로 그릇들을 놓은 엄마도 의자를 꺼내 나와 마주 앉았다. 엄마도 아직 식사를 안했다고 했다.
“핼쑥해진 거, 별로야? 난 살 좀 빠져서 만족스러운데.”
“살이 빠지면 뭐해, 피부에 윤기가 하나도 없는데. 푸석 해가지고는, 엄마보다 늙어 보인다.”
“아니, 그거는 폭언이지.”
엄마는 깔깔 웃었다. 엄마가 끓인 된장국은 맛있었다. 불편하고 안 좋았던 속이 개운하게 풀리는 것 같았다. ‘와, 엄마 해장 되는 기분이야. 장이 풀리고 있어.’ 내 말에 엄마는 맞기 싫으면 그런 소리 말고 밥이나 먹으라고 했다. 국물을 두어 번 떠먹다 밥을 말았다. 갑자기 입 안에 군침이 돌았다.
“어제 무슨 술을 그렇게 마셨어.”
“몰라, 이제 정호석 못 본다고 생각하니까 좀 서운해가지고 신나서 마시다 보니까 그랬어.”
“그래도 정신 잃을 정도로 마시는 건 안 돼.”
“에이, 친한 애들 있어서 믿고 그런 거지. 봐, 박지민이 안전하게 집까지 나 데려다줬잖아.”
내 말에 엄마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들었다. ‘지민이?’ 엄마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눈을 깜박이다 혹시 엄마가 지민이를 모르나 싶어 ‘지민이 몰라?’ 하고 물으니 또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알지. 지민이가 맨날 너 데리러 오던 애잖아.”
“응. 걔 맞는데?”
“어제 너 데리고 온 애는 지민이 아니야.”
순간 의자에 걸어놓은 박지민의 점퍼가 떠올랐다. 분명히 박지민의 옷이었는데? 의아한 기분에 인상을 찌푸리니 엄마도 덩달아 인상을 구겼다. 박지민이 아니라면 누구지, 정호석인가. 정호석이 데려다줬다 해도 엄마가 분명히 알 텐데.
“그럼?”
“이름은 모르겠고, 그냥 인사 꾸벅 하면서 네가 너무 취해서 데리고 왔다고 그러던데?”
“엄마가 이름을 모르는 애라고?”
“응. 아, 마저. 네 남자친구라고 했다. 이게 남자친구가 생겨도 엄마한테 말 한마디를 안 했어?”
윤기였다. 민윤기가 나를 집까지 데려다줬구나. 고개를 끄덕이다 엄마가 어깨를 툭 밀어서 히히 하고 웃어버렸다. ‘한 일 년 만났을 때 말하려고 했지.’ 내 변명에 눈을 흘긴 엄마는 꼭 배신자를 보는 얼굴이었다. 무슨 딸을 그런 눈으로 봐! 내가 소리를 바락 지르니 엄마는 젓가락으로 나를 찌르는 시늉을 하면서 ‘어디 하나 잘한 것도 없는 주제에 큰소리치지 마!’ 라며 나보다 더 크게 말했다.
기죽은 척 계속해서 밥을 먹었다. 술을 마시던 자리에는 우리 셋 밖에 없었는데, 아무래도 내가 너무 취해 민윤기를 부른 모양이었다. 누가 부르자고 했을까. 평소 성격 같았으면 그냥 박지민이 나를 들쳐 매고 왔을 텐데. 문득 든 생각에 순간 스쳐지나가 듯 정호석의 눈빛이 떠올라 일순간 사고 회로가 정지 되었다. ‘너도 김탄소도 불안해.’ 뭔가 꿈속에서 들은 것 같은 음성이 떠오르더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맞춰야 할 퍼즐도 없는 데 어디선가 퍼즐 조각 하나가 툭 던져진 기분이었다. 뭐지, 이 기분. 수저를 들고 멍하게 허공을 바라보니 엄마가 국그릇을 수저로 땡땡 소리가 나게 두드렸다. 정신을 차리고 밥을 마저 먹었다. 국에 말은 밥을 거의 마시다 시피 식사를 끝냈다.
“부산에 방은 어떻게 할 거야. 알아봤어?”
엄마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학교 근처로 알아보긴 했어. 내 대답에 뭔가 시원하지 않다는 듯 입술을 내밀던 엄마는 ‘그래도 너무 위험해. 여자 혼자 사는 거.’ 라며 노파심에 걱정을 했다. 나와 박지민이 같은 대학으로 진학을 하게 되었다는 걸 안 순간부터 자꾸만 엄마는 박지민과 같은 빌라에 방을 잡길 원했다. 박지민에게 슬쩍 물어보니 싫은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왜 굳이 내 근처에 붙어 사려고 해.’ 라고 물었다. 거기에 대고 ‘여자 혼자 살기 너무 위험하니까 아는 남자랑 가까이라도 사려고.’ 차마 말은 못하고 엄마가 물어보래― 하고는 대충 둘러댔었다. ‘지민이는 너랑 가까이 살기 싫대?’ 묻는 엄마 말에 몰라― 하고 대답했다.
“싫다는 거 아니면 같은 빌라로 방 잡아. 지민이는 벌써 방 잡았다면서.”
“고등학교 붙어 다녔음 됐지, 대학까지 붙어 다니라고?”
“타지에서 아는 사람 있는 게 얼마나 큰 힘인데?”
“그래도 집까지는 너무 했다. 대학도 박지민 따라서 가는 거란 말이야. 박지민이 귀찮다고 할 걸.”
“아니, 지민이는 착해서 절대 안 그럴 거야. 이유를 알면 그러라 하겠지.”
박지민은 착해서 절대 불편하다 말을 안 할 사람이라는 걸 알면서도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엄연히 내가 살 자취방을 구하는 건데 박지민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같은 대학을 다니며 계속해서 우린 좋은 친구가 되자고 약속은 했지만, 박지민이 지금처럼 나를 챙겨줄까 걱정도 되는 게 사실이었다. 더 넓어지는 세상에 인간관계 또한 더 불어 날 텐데, 이렇게 손 많이 가고 챙김 받아야 하는 나를 행여 귀찮아하지는 않을까― 염려가 되었다.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고 있는데 방안에서 벨소리가 울려 퍼졌다. 내 전화였다. 들어가 전화 받으라 손짓한 엄마는 그릇들을 설거지 통으로 옮겨 담았다. 나는 식탁에서 일어나 내 방으로 들어왔다.
가방을 뒤져 핸드폰을 꺼냈다. 박지민이었다. 전화를 받으니 늘어지게 하품하는 박지민의 목소리에 뭐야― 하고 말했다. 그러자 박지민은 방금 자다 깬 목소리로 ‘일어났네.’ 하고 전화를 받았다.
“무슨 일로 네가 늦잠을 다 자고.”
-눈이 안 떠져서.
“어제 몇 시에 들어갔는데?”
-세시.
“흐엑, 오래도 놀았네.”
고개를 슬슬 젓다 시선이 다시 박지민의 점퍼로 돌아갔다. 내게 저 옷을 벗어주고 집에 가는 길이 춥진 않았을까 걱정이 되었다. 그러고 보니 어쩐지 박지민의 목소리가 코맹맹이 소리인 것도 같아서 괜히 께름칙했다.
“나는 어제 몇 시에 데려다줬는데.”
-너는 열두시도 못 되서 뻗었지.
“아니, 집에 몇 시에 데려다줬냐고.”
-내가 어떻게 알아. 내가 안 데려다줬는데.
역시나 민윤기가 데려다 준 게 맞았나 보다. 그렇구나 싶어 고개를 끄덕이는데 전화 건너편에서 긴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콜록― 기침 소리도 연달아 났다.
-내가 물어보려고 전화 한 건데.
“뭘?”
-너 집에 몇 시에 들어갔냐고.
“몰라.”
-바로 들어갔냐.
“모른다고.”
-바로 들어갔겠지. 민윤기가 데리고 갔는데.
그리고 말이 없었다. 나도 박지민도. 박지민이 어떤 걱정을 하고 있을지 생각이 읽히는 가운데 박지민은 속이 좀 답답한지 한숨을 연거푸 내쉬었다. 그리고는 쩝― 하고 입맛을 다셨다.
-그냥 걱정돼서 전화 해 봤어. 물론 민윤기가 잘 데려다줬겠지만 그래도 혹시나 해서.
“……….”
-무슨 마음인지 알잖아. 내가 데려다줬으면 집에 들어가는 거 봤으니까 안심하고 푹 잤겠지만, 어제는 내가 너를 데려다 준 게 아니어서.
“……….”
-내 말은……. 알지, 내말. 무슨 말인지.
“응.”
박지민은 횡설수설했다. ‘으아, 술이 덜 깼나보다. 형이 항상 그러더라. 다신 술 안 마셔야지. 그래놓고 또 마시게 된다고. 나도 오늘 기분으로는 다신 술 안 먹고 싶은데, 형과 같아질까.’ 박지민답지 않은 모습에 푸흐 웃음이 나왔다. 갑자기 무슨 헛소리야. 내 말에 박지민도 ‘그렇지. 그런 것 같다.’ 라며 큭큭 웃었다.
-알았어. 잘 들어간 거 확인했으니까 나는 조금 더 자야겠다.
“그래. 일어나면 연락해.”
-어, 먼저 끊어.
내가 먼저 통화종료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침대에 털썩 걸터앉았다. 자꾸만 박지민이 영역을 침범해오는 기분이었다. 통화가 종료된 화면 위로 민윤기에게서 문자가 와 있는 게 보였다. 문자를 확인했다.
[일어나면 전화 해줘.]
그 문자에 또 한숨이 푹 나왔다. 이유를 모르게 속이 또 답답해졌다. 침대 위로 벌러덩 드러누워 윤기에게 답장을 했다. 이제 일어났어. 핸드폰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답장은 곧 바로 오지 않았다. 핸드폰을 내려놓고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불안해.’ 꿈속에서 들은 것 같던 정호석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불안해, 불안해. 코를 막은 베개에 숨을 쉬기가 답답해졌다. 편하지 못한 속이 정호석의 목소리 때문인지 코를 막은 솜 베개 때문인지 분간이 어려웠다.
“딸, 나와서 과일 먹을래?”
“응.”
거실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민윤기에게서 답장이 오지 않았지만, 핸드폰을 두고 일어났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감정이 복잡해진 기분. 유난히도 박지민의 점퍼가 시선에 걸렸다. 나도 내 생각을 알 수가 없었다. 옆머리가 지끈하게 아파오기 시작했다. 그냥 아무것도 생각 하지 않기로 했다. 차라리 그러는 편이 더 낫겠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민윤기고 박지민이고. 내 감정의 흐름을 뒤집은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아무 생각도 않기로 했다.
지금은 왠지 그러고 싶은 기분이었다.
*
“어제 기억은 나?”
“잘 안나.”
“얼마나 마셨는데.”
“얼마 안 마셨어.”
내 대답에 민윤기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는 답답했는지 목 끝까지 올렸던 겉옷의 지퍼를 살짝 내렸다. 민윤기와 마주보고 앉은 나는 꼭 죄인이 된 사람마냥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줄곧 화난 표정이던 민윤기는 앞에 놓인 에이드만 홀짝였다. 나도 나름대로 민윤기의 눈치만 보며 잔을 들었다 내리기를 반복했다. 민윤기가 시켜준 화이트 모카가 처음보다는 많이 식어있었다.
“혹시 화났어?”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시선을 잠깐 들던 민윤기는 다시 고개를 푹 숙이며 내저었다. 화가 나지 않은 사람치고는 표정이 너무 무서웠다. 입술을 삐죽 내민 나를 흘끔 보더니 민윤기는 피식 웃었다. ‘화난 거 아니야.’ 다정하게 말했지만 별로 와 닿지는 않았다. 잔뜩 구겨진 민윤기의 미간이 그가 온전히 괜찮지는 않음을 말해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뭣 때문에 화가 난건지 말해주면 좋겠어.”
꽤 당돌한 목소리가 나왔다. 그래서 민윤기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눈을 두어 번 깜박이고 ‘아니, 그렇게 화난 표정으로 앉아만 있으면 내가 너무 답답하잖아.’ 하고 말했더니 이내 민윤기도 고개를 끄덕였다. 내 말에 어느 정도 동의를 하는 건지, 금방이라도 입을 열 사람처럼 오물거렸다. 민윤기의 대답을 기다렸다. 보채지 않아야 그가 충분히 할 말을 정리하겠지 생각했다. 몇 번 입술을 달싹이던 민윤기는 긴 숨으로 말문을 열었다. ‘그냥 조금 복잡했어.’ 한숨 섞인 그 첫 마디에 나는 귀를 쫑긋이 세웠다.
“우리 떨어지게 되잖아. 너 부산 가버리고 나서 행여 어제 같은 일이 또 생기게 되면,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을 것 같아서. 좀 답답했었어. 불안하기도 하고.”
말이 끝난 민윤기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어댔다. 그제야 민윤기의 무거웠던 표정이 이해가 된 나는 입술을 일자로 늘어뜨렸다. 그래, 내가 부산에 가버리면 취한 나를 데리러 와줄 너는 없겠지. 민윤기가 한 말을 곱씹고 났더니 새삼 우리의 현실이 와 닿았다. 그깟 물리적 거리가 뭐라고― 생각하고 싶었지만 현실은 현실이었다. 서울과 부산은 옆 동네 같은 거리가 아니었기에.
연거푸 한숨을 푹푹 내쉬는 민윤기를 빤히 보다 그의 옆으로 가서 앉았다. 옆으로 온 나를 보던 민윤기는 어설프게 웃었지만, 살짝 올라간 입 꼬리가 파르르 떨리더니 금방 내려와 버렸다. 그의 무릎에 얹어진 손을 살며시 잡았다. 달라지는 건 거리일 뿐 우리 사이는 그대로일 테니 불안해하지 말라고 해주고 싶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완벽하게 자신은 없었다. 그냥 민윤기의 손을 잡고 그의 체온을 느끼며 말없이 눈을 맞추었다. 민윤기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생각인 듯 아무 말 없이 내 손만 잡고 있었다.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에 벌써부터 겁먹고 두려워하지 말자.’ 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민윤기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 역시 대답을 기다리지는 않았다.
“다음부터는 절대 그렇게 취할 정도로 마시지 마.”
“응, 주의 할 게.”
민윤기는 그제야 좀 웃었다. 그러다 두 볼 가득 빵빵하게 공기를 넣더니 입술을 부르르 하고 떨었다. ‘얼굴 좀 풀어야지. 계속 표정 굳히고 있었잖아.’ 민윤기의 말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 무서웠어.
“어디 갈래? 데이트 해야지.”
“오늘은 너 가고 싶은데 갈래.”
“그래? 그럼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좋아.”
지갑을 챙겨 일어나 트레이 위로 잔들을 옮겨 담는 민윤기의 큰 손에 눈이 머물렀다. 그 큰손은 트레이를 받쳐 들고 컵을 반납했다. 묻은 물을 티슈에 닦으며 젖은 티슈는 쓰레기통으로 던져 넣었다. 며칠 후면 저 손을 마음껏 잡지도 못하게 되겠지. 갑자기 슬퍼지려던 찰나 시선이 머물던 그 손이 내게 다가오더니 그의 다정한 음성이 들려왔다.
“손.”
“……….”
“잡아야지.”
여느 때와 다름없이 다정하게 나를 바라보며 웃는 얼굴이었다. 봉긋 솟은 광대와 휘어 올라간 입 꼬리에 마음이 녹아내렸다. 손을 뻗어 그의 큰 손을 맞잡았다. 그의 손 안으로 쏙 들어가는 내 작은 손을 보니 절로 미소가 나왔다.
앞선 걱정도, 오지 않은 불안도 하지 말자. 머리를 비워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의 허튼 생각이 우리의 행복을 방해할 수 없도록.
*
내 옆에 앉은 민윤기는 자꾸만 내 손을 만지작거렸다. 내일이면 부산으로 내려가는 날이었다. 그 말인 즉, 내일부터 본격적인 장거리 연애가 시작된다는 말이었다.
“몇 시 차야?”
“두시.”
“짐은 다 챙겼어?”
“대충은.”
나보다도 민윤기가 더 불안한 모양이었다. 내 손을 주무르던 민윤기는 후우― 숨을 내쉬며 ‘보내기 싫다.’ 하고 작게 말했다. 그 말에 민윤기의 손을 꼭 잡았더니 민윤기는 꼭 애처럼 나를 바라보다 고개를 툭 떨어트렸다.
“뭐야, 강아지 같은 그 얼굴.”
“몰라. 떼라도 쓰고 싶은 심정이야.”
“맨날 오빠처럼 굴더니?”
“남자는 원래 죽기 전까지 애래.”
머리 위로 귀가 달려있었다면, 아마 축 늘어진 모양이었겠다― 생각했다. 웃음이 푹 하고 터져 나와서 입을 가렸다. 내가 저를 비웃는 줄 알았던 모양인지 민윤기는 나를 흘겨보았다.
헤어지기 직전까지 실컷 보기나 해놓자던 민윤기는 거의 매일 나를 보러 왔다. 끊임없이 만나다 시피 했는데도 헤어지면 보고 싶은 마음은 어쩔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실컷 봐놓기는 무리인가 봐. 실컷 본다 해도 양에 차지가 않아.’ 엊그제 전화로 툴툴대던 민윤기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많이 본다고 내일 안보고 싶을까― 날마다 데이트를 나가던 내 뒤꽁무니에 대고 엄마가 했던 말이었다. 틀린 소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오늘 이렇게 봐놓고 내일이면 또 보고 싶을 게 분명했으니까.
“보고 싶으면 영상통화 하자.”
“만질 수가 없잖아.”
“시간 날 때 마다 만나면 되지.”
“매일 보고 싶을 텐데?”
말끝마다 서운한 마음을 드러내는 민윤기가 얼핏 귀여웠다. 볼을 잡아 주욱 늘렸더니 하지 말라며 인상을 팍 구겼다. 손을 들어 구겨진 미간을 톡톡톡 두드렸다. 점점 미간사이의 주름이 펴졌다. 그런 내 손을 끌어내린 민윤기는 제 입술로 내 손등을 가져다 대고 쪽 소리나 나도록 입을 맞췄다. 손 등이 축축했다. 두툼한 입술이 닿았다 떨어진 곳으로 신경이 예민해졌다. 내가 입술을 꾹 다무니 민윤기는 그런 내 입술을 톡 건드렸다. 눈을 느리게 감았다 떴다. 민윤기는 그새 또 한숨을 내쉬었다.
“손잡고 싶으면 어떡해.”
“……….”
“안고 싶으면?”
“……….”
“뽀뽀 하고 싶으면?”
해줄 수 있는 대답이 없었다. 입술을 잘근 깨물었더니 민윤기는 내 고개를 끌어 당겨 살짝 입을 맞추고 떨어졌다. 들린 내 고개를 받친 민윤기의 손이 내 목을 훑고 내려왔다. 그리곤 내 손을 꼭 잡았다.
“아무리 해도 채워지지 않는 거잖아, 이런 건.”
민윤기가 잡은 손에 뜨끈하게 열이 올랐다. 눈앞의 민윤기를 내일부터 당장 볼 수 없다 생각하면 가슴이 또 콱 막히는 것 같았다. ‘애틋하게 만나자.’ 힘겹게 입을 열었다. 여기서 나까지 어리게 굴면 정말 떨어지지 못할 것 같았다.
“자주 못 만나는 만큼 더 소중히 애틋하게 만나자, 우리.”
내 말에 민윤기는 싫다는 말은 못하고 그냥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그런 그의 등에 손을 얹고 가만히 두드리니 민윤기는 내 어깨로 턱을 괴고 길게 호흡했다. 진짜 많이 보고 싶을 거야. 낮은 민윤기의 목소리가 귓가를 타고 들어왔다. 가끔 보고 싶으면 수업 다 제치고 보러 갈지도 몰라. 약간은 툴툴 대는 것도 같은 그의 목소리에 미소가 지어졌다.
나도 그럴게. 대답했다. 나도 가끔 견디기 힘들게 보고 싶으면, 무작정 서울 올라와버릴 테니까 그땐 너도 열 일 제치고 나 만나줘야 해. 민윤기가 고개를 끄덕이는 게 느껴졌다. 무겁게 내려앉은 겨울 공기가 차가웠지만 바람은 불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여섯시도 채 안되었는데 해가 떨어지고 있었다. 부쩍 짧아진 해의 길이에 우린 아쉬워했다. 볼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내일 배웅 나갈게.”
“무리해서 안와도 돼. 엄마가 배웅 해주실 거야.”
“마지막까지 보고 싶어서 그래.”
“알았어.”
배웅까지도 마다하는 건 떨어질 연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고개를 끄덕였더니 민윤기는 으레 내가 반했던 그 미소를 지으며 나를 내려다보았다. 설레는 웃음을 감추지 못하고 그와 시선을 맞추니 민윤기는 더 깊은 눈으로 나를 담았다.
“사랑해, 진짜.”
“나도.”
“많이 좋아해. 다른 말로는 표현을 못 하겠어, 미안해.”
“이미 충분히 표현해주고 있어.”
방긋 웃었더니 민윤기는 나를 다시 품으로 끌어안았다. 따뜻하고 넓은 그의 품이 좋았다. 앞으로는 자주 안기지 못할 품이라 생각이 드니 그 품이 더 따뜻하고 간절하게 느껴졌다. 고개를 부비며 민윤기의 품으로 파고들었더니 민윤기도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것처럼 나를 더욱 더 꼭 안아주었다.
겨울의 끝자락은 서늘했지만, 부디 우리의 마음만큼은 식지 않기를.
*
“어, 엄마. 걱정 하지 마. 박지민 있잖아. 응, 응. 알아서 잘 할게. 걱정 하지 마.”
본의 아니게 출가를 하게 된 나는 여러모로 엄마의 걱정을 사고 있었다. 엄마의 노심초사로 박지민과 같은 빌라에 살게 된 나는 매일 걸려오는 엄마의 전화에 한숨을 폭 내쉬었다. 결국엔 밥 잘 챙겨먹어라, 무슨 일이 생기게 되면 엄마한테 전화 말고 가까이 있는 박지민에게 먼저 연락해라, 아프지 말고 잘 지내라―로 마무리되는 전화들이었다. 한결같은 통화의 끝에 헛웃음이 픽 나왔다. 전화를 끊으니 바탕화면으로 보이는 민윤기의 얼굴이 한눈에 들어왔다. 아, 보고 싶다. 못 본지 일주일 째였다.
침대로 벌러덩 드러누워 핸드폰 화면을 열심히 두드렸다. 아무 연락 없이 찾아온 내가 불쾌했는지, 박지민은 미간을 팍 구긴 채 아직도 현관 앞에 서있었다. 개의치 않고 말려 올라간 반바지를 쭉 펴 내렸다. 허벅지를 채 가리지 못할 정도 길이의 트레이닝 반바지는 내 하체에 겨우 걸쳐져 있는 모습이었다. 내 차림새를 훑어보고 더 얼굴을 구기던 박지민은 의자위에 걸쳐져 있던 담요를 집어 내게로 던졌다. 담요는 내 배와 허벅지를 가리며 펼쳐졌다.
“말은 하고 오라고.”
“그래서 초인종 눌렀잖아.”
“아니, 전화정도는 해야지. 내가 누구랑 있을 줄 알고 이렇게 불쑥불쑥 찾아와?”
“친구도 나밖에 없으면서 협박은.”
비웃으며 박지민의 침대 안으로 쏙 들어갔다. 따끈하게 올라온 전기장판의 열기에 온 몸이 노곤하게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아직 내방은 전기장판 안 깔아서 춥단 말이야.’ 변명 같지도 않은 핑계에 박지민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었지만 뭐라 더 말은 않았다. 지잉― 짧게 진동을 울린 핸드폰 화면 위로 민윤기의 문자가 환하게 펼쳐졌다.
[어떡해, 벌써 보고 싶은데.]
나도 진짜 보고 싶어. 답장을 보내고 키득거렸더니 박지민은 또 미간을 구기며 내 몸을 덮은 이불을 걷어냈다.
“연애질 할 거면 네 방가서 하라고.”
“아, 왜. 좀만 있다 갈게. 너무 춥단 말이야.”
“보일러 틀면 되잖아.”
“틀어 놓고 왔어. 따뜻해질 때까지 좀 만, 응?”
똥강아지 같은 내 표정에 박지민은 잡고 있던 이불을 더 세게 쥐다 내 쪽으로 던졌다. 그리고는 너털거리는 걸음으로 소파까지 걸어가 주저앉듯 앉았다. 그런 박지민의 눈치를 슬슬 보다 히히 거리며 이불을 덮었다.
이불에서 박지민의 냄새가 났다. 핸드폰을 두드리다 연달아 오는 단체 대화방 메시지에 얼굴을 구겼다. 나와 박지민을 비롯한 같은 과 동기들이 초대되어있는 대화방이었다. 대화의 주제는 신입생 환영회에 대한 내용이었다. 박지민도 같은 메시지를 읽고 있는지 아무 말이 없었다.
“봤어? 신환회.”
“응.”
“아, 가기 싫다. 안 가면 안 되는 건가?”
“네가 신입생인데 안가면 어떡해.”
“가서 뭘 할지 물 보듯 뻔 하니까 하는 소리지.”
카톡, 카톡. 핸드폰은 열심히도 울어대고 있었다. 그 소리가 듣기가 싫어 알림 기능을 꺼버렸다. 핸드폰을 머리 옆으로 던져두고 대자로 뻗어 누웠다. ‘나 사실 입학하는 것도 좀 무섭다.’ 조용조용하게 말했더니 박지민은 나를 흘끔 쳐다봤다.
“뭔가, 겁이 나고 무서워. 넌 안 그래?”
“별로.”
“넌 형이 있어서 그래. 나는 없잖아.”
고개를 젓는 박지민을 노려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대학생의 생활을 눈으로라도 봤던 사람과 전혀 접해본 적 없는 사람은 달라도 조금은 다르겠지― 생각했다. 며칠 후면 본격적으로 대학생의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설렘 반 두려움 반이었다. 아무래도 고등학생 때 보다 내가 책임지고 행동해야 할 일들이 조금 더 늘어나겠지.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발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동기들과 어떻게 친해져야 하나 고민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침대 옆이 푹 꺼지면서 박지민이 내 옆으로 와 앉았다. 그리고는 엉덩이로 나를 저만치 밀어 내더니 이불 속으로 들어왔다.
“뭐, 뭐야.”
“나 자려고 했는데 네가 쳐들어 온 거야.”
“근데 왜 이쪽으로 오냐고.”
“잠을 침대에서 자야지 어디서 자는데.”
자연스럽게 베개를 베고 눕는 박지민에 당황해 상체를 일으켰다. 좁은 싱글 사이즈 침대는 두 사람이 있기엔 너무 비좁았다. 딱 붙은 박지민의 엉덩이에 몸을 조금 더 옆으로 뺐다. 박지민은 아랑곳도 않고 베개를 고쳐 베며 눈을 감았다. ‘야, 그렇다고 진짜 자면 어떡해!’ 팔로 어깨를 툭툭 밀어도 꿈쩍도 안했다.
옆에서 잘 거면 자던지, 나갈 거면 빨리 나가든지. 입을 크게 벌리지 않고 말했다. 괜히 박지민이 내게 심술을 부리는 것 같아서 일부러 더 대자로 누우며 ‘안 나갈 거야.’ 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박지민은 내 쪽으로 돌아누우며 ‘그럼 그러든지.’ 라고 대답했다. 반듯하게 감은 눈이 나를 향하고 있었다. 박지민은 눈을 뜨고 있지도 않았는데 눈을 마주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갑자기 얼굴이 확 하고 달아올라서 벌떡 일어났다. 그제야 박지민은 눈을 뜨고 나를 쳐다봤다.
“비, 비켜줘. 방에 갈래.”
박지민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내가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을 만들어줬다. 허둥지둥 내려와 신발을 신은 나는 획 뒤를 돌아 박지민을 째려보았다. 박지민은 문제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고, 그 모습이 더 얄미워서 입술을 삐죽이다 문을 열고 나왔다.
심장이 쿵쾅쿵쾅 뛰며 얼굴로 피가 몰리는 느낌. 박지민을 만난 이후로 처음 느껴보는 기분이었다. 내 쪽으로 돌아누우며 내쉬었던 박지민의 숨결이 아직도 코앞에서 생생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손끝이 파르르 떨리고 귀가 멍해졌다.
“미쳤어. 심장 미쳤어.”
요동치는 가슴을 쿵쿵 내려쳤다. 목까지 둥둥 울리는 기분이었다. 계단을 쿵쾅거리며 내려와 방으로 도망치듯 들어왔다. 아직 채 따뜻해지지 못한 방 안에 들어서고 나서야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래, 아무리 박지민이었어도, 남자 방에 들어가 그의 침대로 뛰어 들었으니. 아주 잘못이 없는 건 아니네― 생각이 들었다. 차가운 침대에 누워 이불을 목 끝까지 끌어 올렸다. 그러다 두고 온 핸드폰이 생각났다.
“아, 씨.”
당장 얼굴을 보기는 조금 힘들 것 같은데. 발을 동동 구르다 그냥 잠을 자버리기로 했다. 자고 일어나면 좀 나아지겠지. 그동안 윤기에게 올 문자는 한 번에 몰아서 답 해줘야겠거니 생각했다. 눈을 감았다. 잡생각들이 많아지기 전에 잠에 들어버리자. 그 생각 하나로 양들을 세기 시작했다. 양 한 마리, 쿵. 양 두 마리, 쾅. 양 세 마리, 쿵. 양 네 마리, 쾅. 한숨이 푹 나왔다.
양들을 세는 건지, 내 심장 소리를 세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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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었나
어쩔 수 없었다
너와 나, 우리는
어쩔 수 없었다
* 암호닉이 점점 불어나고 있어요. 이 사랑스러운 내 사랑들에게 어떤 보답이 마땅할까요(근심)
* 제주도에서 찍어온 예쁜 사진들이 많아요. 궁금하시단 사랑들 많아지면 댓글로 몇 개 올려드릴게요!
물론 반은 음식사진↖^0^↗(찡긋)
* 오늘도 사랑한다는 말로 글을 마무리 지으려고 해요.
내 사랑들에게 하는 사랑한단 말은 아무리 해도 양에 차지 않아서, 마치 뽀뽀 같은 걸까요.
이왕 하는 김에 뽀뽀도 같이 해줘야겠어요.(쪽)(와락)(부둥부둥)
*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 사랑합니다 (쪽) 오타나 탈자는 애교로(찡긋) 댓글로 알려주시면 더욱 좋아요
* 작가님이라는 호칭보다는 독스님이라는 호칭이 더 좋아요(쪽)
* 암호닉 신청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말고 연재된 글의 가장 마지막글에 해주세요.
신청 방법은 따로 없어요. 구분하기 쉽게 [네모괄호] 안에 그냥 던지고 도망가시면 쫓아가서 뽀뽀해드립니다. 지구 끝까지(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