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2년 10월 17일 수요일 날씨 맑음
오늘 우리 앞집에 새로운 사람이 이사왔다. 큰 키에 검은 머리카락 그리고 어딘가 퀭해보이는 눈을 가진 남자였다.
저녁에 이사기념 떡이라고 우리집을 찾아온 그의 눈빛은 어딘가 위험해보여서 통성명도 하지 못하고 쫓아내듯이
떡만 받고 되돌려보내버렸다. 그가 기분이 많이 상했을까? 쫓아낼 때 슬쩍 본 얼굴에선 불쾌하다는 표정이 가득
이였는데.. 내가 괜한 오해를 한 것일까? 내일 답례 겸 과일이나 사들고 화해를 청해봐야겠다. ]
[ 2012년 10월 18일 목요일 날씨 흐림
어제의 실례를 사과할 겸 그의 집으로 찾아갔다. 생각보다 살갑게 나를 맞아주는 그의 모습에 조금 안도감을 느꼈다.
그의 집 안은 그의 외향과는 다르게 무척이나 깔끔하고 밝았다. 그는 나의 방문을 썩 기분좋아 하는 것 같아 보였다.
그와 난 굉장히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의 이름이 '정준영' 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아, 물론 나의 이름도 알려
주었다. 그는 나의 이름을 듣고 굉장히 수줍어하는 표정을 지었다. 정말 알면 알수록 신기한 사람이다.. ]
[2012년 10월 20일 토요일 날씨 맑음
드디어 기다리던 주말이다. 평일동안 쌓였던 피로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오랜만에 사우나를 가기로 했다. 근처 동
네 사우나를 들어가니 이른 시간이여서 그랬는지 사람이 별로 없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난 따뜻한 욕탕에 몸을 담구
고 피로를 풀 생각을 하며 기분이 좋았었다. 그래 그 때까지는.. 마치 나를 쫓아온 것 마냥 바로 곧이어 그가 들어왔다.
그, '정준영'. 나는 그를 보고 굉장히 놀랐지만 그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그저 웃어보였을 뿐이였다. 그 때 무
언가 꺼림칙한 기분에 몸을 사렸다. 괜히 신경이 그 쪽으로 쏠려 옷을 벗을때도 무언가 부끄러웠다. 내가 우물쭈물 하는
사이 그는 이미 전라가 되어 사우나에 들어갈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마치 나를 기다려
주는 듯한 제스쳐를 취하였다. 같은 남자 사이에 이런 불순한 기분을 느끼는 내가 뭔가 한심하게 보여 일부러 더 당당히
그와 같이 욕탕으로 들어갔다. 지금 일기를 쓰면서 생각해보니 왜 그랬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가 자꾸 나를 쳐다보는 느
낌이 들어 야릇한 기분이 들었다. 오랜시간 여자를 안 만난 탓일까.. 아무튼 오늘은 이래저래 이상야릇한 날이였다. ]
[2012년 10월 26일 금요일 날씨 비옴
요즘따라 자꾸 누군가가 나를 쳐다보는 듯한 기분이 든다. 집에 와서 쇼파에 앉아있을 때도, 옷을 갈아입을 때도, 샤워
를 끝내고 나와도, 밥을 먹고 있어도.. 처음엔 그저 신경이 날카로워져서 그런 줄 알았지만 점점 날이 가면 갈수록 그
시선은 좀 더 노골적으로 변하고 질척거리게 변해갔다. 이 일기를 쓰고 있는 지금 이 시간에도 누군가 자꾸 날 쳐다보
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누가? 도대체 왜? 어째서? 온갖 수십가지 의문들이 머리를 뒤덮어버려 요즘 일도 손에 안
잡힌다.. 일에도 지장이 생기고 밤에 잠도 제대로 못 자니 지금 상태가 말이 아니다.. 하지만 더 나에게 충격과 공포를
주는 사실은 날이 가면 갈수록 점점 내가 그 시선에 잠식당한다는 것이다. 그 시선을 즐기고 심취하게 된다. 좀 더 그
시선이 나에게 닿았으면 좋겠고 나를 옭아맸으면 좋겠다. 내가 점점 미쳐가는 것일까? 이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점점 그 시선이 좋아지고 있다. ]
[2012년 11월 3일 토요일 날씨 쌀쌀
드디어 그 시선의 정체를 찾아냈다. 어딘가 음침하고 어두운 그 시선. 그 시선은 분명히 그의 시선이다. '정준영'. 분명
그가 시선의 주인공인게 틀림없다. 오늘 아침에도 날 보며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분명 그의 시선은 내가 최근에 받
아왔던 그 시선이였다. 하지만 어째서? 그는 관음증이라도 있는 것일까? 아니면 혹시 나를 좋아해서..? 그렇다 분명 그
런 것이다. 그런게 아니라면 나를 그런 끈적한 시선으로 볼 수 없다. 분명히 그는 나를 좋아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았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기분이 그닥 나쁘진 않다. 아니, 오히려 좋다고 해야할까..? 내 이런 감정이 혹시
사랑은 아닐까..? ]
[2012년 11월 5일 월요일 날씨 어두움
오늘 드디어 그에게 나의 마음도 전하기로 결심했다. 나도 당신을 좋아한다고 말하면 그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기쁜 표정?
당황한 표정? 행복한 표정? 아니면 혹시 울까..? 그가 어떤 반응이던 우린 분명 연인이 될 것이다. 그도 날 사랑하고 나도 그
를 사랑하고 있으니깐.. 이게 그의 집 문 앞에서 쓰는 나의 마지막 일기일지도 모른다. 이제 이 일기는 더 이상 쓰지 않을 것
이다. 왜냐하면 이제 곧 나는 그의 문에 노크를 할 것이고 그는 집 문을 열 것이다. 그리고 난 그에게 고백을 할 것이고 그가
웃으며 날 받아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니깐… ]
뀽 만나서 반갑습니다ㅎㅎ 첫 연재라 부담없는 일기 식으로 써봤습니다..
하 편에는 정준영 시점으로 쓸 예정이구요 재밌게 봐주세요~
사실 이게 준로인지 로준인지 작가도 모른다는 건 안비밀 ㅋㅋㅋ 하지만 제가 준로를 더 좋아해서 걍 준로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