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븐틴/이석민] Write Either Direct 01
w. 뿌존뿌존
"세봉이 석민을 껴안았다. 석민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세봉이 말했다. 좋아해 석민..아"
"어때? 키스신 보단 낫지? 나 어제 밤새 고민해서 바꿨어"
"제-발 석민아 이딴 대본 써오지 말라고. 출연진이 나인것도 빡치는데 이럴거야?"
뭐 이런 거지 같은 대본이 다있담. 반짝거리는 이석민의 눈빛을 무시하고 이석민의 눈 앞에서 대본을 바닥에 내팽겨쳤다. 왜 그래! 내 소중한 대본인데! 징징거리는 이석민의 목소리에 골이 울려 소파에 걸터 앉아 이마를 짚었다. 바닥에 떨어져있던 대본을 주워 한참을 읽던 전원우가 대본을 돌돌 말아 이석민의 뒷통수를 소리나게 갈겼다. 왜 때리냐며 빽뺵 소리 질러대는 똘마니새끼 때문에 귀가 아팠지만, 그래도 전원우 나이스 샷.
"왜! 내 로망 하나 못 들어주냐? 그리고, 지훈 선배가 이번 작품은 내 마음대로 하랬어"
"네가 작가인건 알겠는데, 내가 감독이라고. 총 감독이라니까 내가?"
"자자, 그만들 싸우고"
"넌 빠져!!"
"빠져 새꺄!"
지훈 선배한테 무슨 짓을 한건지 지훈 선배는 똘마니한테 네가 하고 싶은 시나리오를 써서 작품을 만들라고 했고, 우리는 지금 그 탓에 죽어나는 중이다. 게다가, 저 말도 안돼는 작가 이석민 X 영화 감독 윤세봉. 이라는 부제는 날 현기증 나게 만들기엔 충분하다. 아, 원우야, 넌 왜 이런 애를 이 동아리에 끌고온거야. 옆에서 계속 징징대는 이석민에 짜증이 나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다섯시 까지만 쉬었다 하자, 나 부승관 만나고 올거야! 벙쪄있는 이석민의 뒷통수를 갈기고 실음과 건물로 뛰어갔다. 시발, 내가 누구 좋자고 저걸 찍어!
-
"저기, 죄송한데 다른 동아리 부원은 없나요?"
아니야, 그 말은 아니었잖아 윤세봉! 아직도 그때의 그 말을 후회한다. 그냥, 저 이 동아리 안 할게요. 죄송합니다 선배님. 이라고 얘기했었어야했다. 퀴퀴한 냄새가 나는 동아리 실 안에서 10분만에 내가 처음 꺼낸 말 치곤 너무 부드러웠다. 내가 이지훈 선배 (지금은 그냥 이지훈이라고 부른다) 를 바라보며 얘기하자 똘마니가 읽고 있던 대본을 내려놓고 흥미롭다는 듯이 웃던 게 기억난다. 그 눈을 찔러버려야했다는 생각도 종종한다.
"어, 내가 회장이자 1기 멤버야"
아무래도 천재는 미치광이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니까, 이지훈 = 영화 연출과 1년 선배 = 16학번 = 대학교 2학년 = 세븐틴 1기 멤버 = 세븐틴 유일한 2학년 = 세븐틴 회장. 되시겠다ㅇㅇ 당황스러워 눈만 끔뻑이고 있자 잠자코 대본을 읽고 있던 전원우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었다. 그럼 이 영화는 다 누가 찍죠? 세븐틴 1기 멤버가 조소를 띄며 전원우를 바라봤다. 전원우가 혼란스럽다는 듯 눈을 꿈벅였다. 누구겠니 원우야. 너랑 나랑, 저 분위기 파악 못하고 실실대는 똘마니 새끼지.
-
그리고 다시 현재, 영화연출동아리라는 이름에 맞게 우리는 한달에 한번씩 영화를 제작해 유튜브에 올리는 프로젝트, 월간 세븐틴, 이라는 말도 안되는 프로젝트를 진행중이고 벌써 4번째 영화를 찍는 중이다. 그 동안 우리는 프랑스 버논에서의 아침/ 파리, 찬란한 FLY / 샤이닝 다이아몬드 라는 영화를 찍었었는데 꽤나 반응이 좋다. (물론 총감독을 맡은 이지훈을 뒤에서 잘 보필한 내 탓이 매우매우 크다) 하지만 배은망덕한 이지훈 선배께서는 자신의 시나리오가 점점 자기복제를 하기 시작한것 같다며 뜬금없이 잠정적인 감독 은퇴를 선언했고, 나는 이지훈 선배를 대신해서 월간 세븐틴의 총감독을 맡을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시나리오는 똘마니와 전원우의 몫. 이지훈은 우리의 유튜브를 관리하는 말 그대로 동아리 장 역할만 묵묵히 해내고 있다. (아마 저번 전공 F맞은 기억이 꽤 뼈아파서 그런 것 같다. 곧 방학 하면 아마 이 그지 같은 총감독 자리를 뺏어가지 않을까?)
벙쪄있는 똘마니와 전원우를 뒤로하고 실음과 건물로 급하게 뛰었다. 지금 시각 3시 반, 승관이 교양이 끝날 시간을 딱 맞췄다. 아, 부승관은 실음과 다니는 내 친구다. 나랑 우연히 교양하나가 겹쳐서 안면을 트게 됬는데, 동아리 초창기때 찍었던 파리, 찬란한 FLY라는 영화에서 파리넬리 역으로 출연하면서 친해졌다. 그때 내가 굴린게 미안해서 요즘도 종종 만나 같이 밥을 먹곤 한다. 그리고 오늘이 그 날이고. 여어-! 실음과 건물 앞 벤치에 앉아 지나가는 커플들 보며 쓴 웃음을 짓고 있었는데 건물 입구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부승관이 날 발견하곤 종종 걸음으로 뛰어와 내 품에 안겼다 (깔고 앉았다) 들고있던 대본으로 머리를 갈길까 생각했지만 그냥 가볍게 팔뚝을 꼬집는걸로 대신했다. 왜냐면, 이게 더 효과가 좋거든.
-
"그래서, 그 포옹신 하나 때문에 질질 끌고 있다고?"
"응, 진짜 좆 같지 않냐?"
카페에 앉아서 (널브러져서) 애꿎은 커피잔만 통통 쳐댔다. 커피잔아 미안, 그 똘마니 새끼 생각만 하면 너무 울화가 치밀어 올라서. 회색이 된 내 얼굴을 보고 맞은 편에 앉아있던 부승관이 이건 찍어야 해, 라며 휴대전화를 꺼내들었다. 평소였다면 주먹이 날아갔겠지만 오늘은 그럴 기운 조차 없었다.
"이석민 걔도 참 대단해. 지 망상을 여기까지 끌어올렸어.
그렇지 않냐? 솔직히 신기해"
"ㅇㅇ 아 빡쳐 진짜,"
"몇시까지 다시 가봐야되는데"
"다섯시. 삼십분 남았다"
"뭐 내가 도와줄건 없고? 나 내일 공강이라서 완전 여유로워"
"공강 아니었어도 도와줬을 거잖아"
"그건 맞지"
역시 부승관, 하며 엄지를 치켜올리자 아니 내가 좀 그래, 하면서 으쓱거리는 부승관이 아니꼬와 다리를 뻗어 정강이를 찼다. 아! 하는 부승관의 비명에 카페 안에 있던 모든 세봉대 학생이 우리를 바라봤다. 씨이- , 말을 삼키며 다리를 문지르는 부승관이 웃겨 테이블에 머리를 대고 끅끅거렸다. 왜 웃는데- ! 징징거리는 부승관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겹쳐들리는 것 같았지만 무시했다. 우리 승관이가 그 똘마니 새끼보다 백배천배 낫지. 암, 그렇고 말고.
-
다섯시, 부승관과 함께 다시 동아리 실로 복귀했다. (도대체 왜 넓은 체육관이나, 무용실 이런데를 안 빌리고 동아리 실에서 촬영해야하는지 모르겠다) 윤세봉! 빨리 와야지! 징징거리는 똘마니 새끼의 목소리가 귀를 아프게 만들었다. 전원우는 동아리 실 한켠에 있는 자그마한 소파에 길다란 몸을 구겨넣어 자고 있었고, 이석민은 연필을 부러뜨릴 기세로 글을 쓰고 있었다. 치, 그러니까 처음 부터 대본을 잘 써왔으면 좀 좋아?
"뭐해?"
"대본 수정. 우리 헤어질거야"
"나이스-"
"좋아?"
"ㅇㅇ 개 좋음"
응, 고개를 끄덕거리며 저를 바라보자 상처받았다는 듯이 들고있던 연필을 책상에 내팽개쳐버리곤 이석민이 책상위로 드러누웠다. 연필이 떼구르르 굴러 바닥으로 떨어져 딸그락, 거리는 소리가 났지만 이석민은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단단히 삐진게 틀림없다. 부승관이 내 배 (뱃살) 를 콕콕 찌르며 속삭였다.
"삐진거지?"
"ㅇㅇㅇ 그런듯"
뭐 익숙했다. 찬란한 파리 찍을때도 그랬고, 프랑스 버논에서의 아침 찍을 때도 그랬다. 그렇지만 커다란 애가 책상에 엎드려서 시무룩해있는 걸 보는건 영 편한 일은 아니었다. 내가 너무했어 승관아? 부승관에게 조용히 묻자 부승관이 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애 표정 보고 말했으면 얼마나 좋아. 눈치 없긴-"
내가 너무 했나? 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올때 쯤 전원우가 경기를 일으키며 잠에서 깨어났다. 일어나면서 만세, 를 하는 바람에 전원우 머리맡에 놓여있던 물컵이 전원우 얼굴로 떨어져버렸다. 첨벙, 하는 소리. 통! 하는 소리. 으아아악! 하는 전원우 비명소리. 화들짝 놀란 부승관이 가방을 내던지고 콜록거리는 전원우에게 뛰어갔다. 이런 난리 중에도 일어나지 않는 이석민. 아무래도 이 새끼, 삐진게 아니라 잠든 게 분명하다. 결국, 나 혼자 괜한 생각을 했다. 걍 잠든 새끼한테 존나 미안해 하고 있었던거다. 이석민 이 나쁜 새끼.
"야- 일어나 봐"
이석민의 등짝을 툭툭, 건드렸다. 이석민이 우음- 하는 별 이상한 소리를 내며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버렸다. 우리 화장실 좀 다녀올게-! 부승관이 쫄딱 젖어 전원우가 아닌 젖은 원우가 된 전원우를 화장실로 끌고갔다. 이 꿉꿉한 동아리 실에 나랑 이석민 둘만 남았다. 멀쩡히 깨어있는 나랑, 대본 쓰다 징징거리곤 대책없이 잠든 이석민. 한참을 툭툭 쳐도 일어나지 않는 이석민에 그냥 그 옆에 가만히 걸터 앉았다. 곤히 잠든건지 규칙적인 이석민의 숨소리가 귀를 간질였다.
"......우리 헤어지자."
대본 속의 내가 이석민에게 이별을 고했다. 그리고 그 옆으로 보이는 수많은 연필 자국과 지우개 자국. 그리고 커피 자국? 어제 밤에 밤새 고쳤다더니 진짠가보다. 괜히 잠든 이석민이 안쓰러워졌다. 미안 석민아. 똘마니라 불러서 미안하고, 나같은 감독 만나서 네 로망을 못 펼치게 한 것도 미안. 대본 속의 내가 이석민한테 이별을 고하자, 대본 속의 이석민은 그 자리에 걸터앉아 엉엉 운다. 윤세봉! 널 사랑해! 라고 말하며, 당장 이 대본을 돌돌 말아 이석민의 뒷통수를 내리치고 싶은 욕구가 강하게 들었지만 잠들어있는 똘마니 새끼를 깨웠다간 어떤 화를 당할지 모르기에 그냥 가만히 있었다. 이석민의 몸이 살짝 뒤척였다.
"등신 새끼, 그러니까 시나리오 혼자 쓰지말고 전원우한테 넘기라니까"
생각해보니까 이번 영화는 이석민 혼자 시나리오를 쓰고, 혼자 출연하고, 혼자 장소 섭외했다. 새끼, 꼴에 지 로망이라고 되게 신경써서 준비했나보다다. 찬란한 파리때도 그랬으면 얼마나 좋아. 그때 나랑 원우랑 얼마나 힘들었는데. 갑자기 치밀어 오르는 울화에 책상에 엎드려 숨을 후, 내뱉었다. 이석민의 잠든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생각 없이 잠든 얼굴이 참 보기 싫었다. 그래도 징징 대는 것 보단 이게 나은가? 하는 생각에 가만히- 그걸 보다 스르르 눈을 감았다. 며칠째 영화작업때문에 잠도 제대로 못 자고 편집해댄 탓이었다.
-
꿈을 하나 꿨다. 이석민이 나한테 이별을 고하는 꿈이었다. 분명히 진짜가 아닌걸 알면서 눈물이 마구 흘러 걷잡을 수 가 없었다. 그러니까, 내 말 들으랬지. 나를 비웃는 이석민 뒤로 카메라를 든 이지훈과 대본을 든 전원우가 차례로 섰다. 그들을 쏘아보자 이지훈이 정색한채로 말했다. 빨리 일어나, 이거 꿈이야. 이지훈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콕콕, 무언가 이질적인 느낌이 들었다. 무언가가 내 얼굴을 찔러대고 있었다. 씨, 꿈도 좆같았는데 자고 있는 누가 날 깨우고 있다. 짜증이 나 눈을 확, 떴다. 누구야, 씨 죽여버릴테다. 그리고 눈 앞에 보이는 건,
"안녕, 잘 잤니 내 여주?"
코 앞에 누워 생글거리고 있는 이석민이었다. 저런 말도 안돼는 개소리만 늘어놓지 않았다면 참 좋았을텐데. 한참을 이석민을 노려보다 그대로 손을 뻗어 이석민의 머리를 쥐어뜯었다. 아악! 하는 이석민의 비명소리가 동아리실을 가득 채웠다. 바깥에서 전원우랑 부승관이 뛰어오는 듯한 발소리가 들렸고, 이석민의 비명소리는 계속 됬지만, 그것보단 내 얼굴이 저딴 똘마니 새끼때문에 빨게졌다는 사실이 더 중요했다. 백마 탄 왕자님을 바랬던 20년 모태솔로의 가슴이 저딴 똘마니 새끼 때문에 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