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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기온이라던가 떠들어대는 텔레비전의 소식이 틀리진 않았는지 여름이 끝나고 살랑살랑 기분좋은 바람이 불던 짧은 가을도 훨씬 지나고 추워져야 적당한 시기에 며칠 째 흐리더니 결국 오늘 아침부터 계속 비가 내리고 있었다. 루한은 비가 울려 더 습한 지하연습실에서 습하게 울리는 음악을 끄고 바닥에 대자로 뻗어 누워버렸다. 음악이 습하게 울리던, 바깥 날씨가 좋던 나쁘던 어느샌가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이번에도 데뷔팀이 깨져버렸다. 속상해하던 것도 한 두번. 정확히 이번이 여섯번째였다.

루한이 대자로 뻗어있던 손을 올려 뜨끈한 눈가로 가져가 얹었다.손목에 의해서 가려진 눈에 이어 바르게 뻗은 코와 굳게 다문 입술이 아직은 너무나 맑았다.

조금 익숙해졌을 뿐이지 아무렇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하며 루한이 실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인간이란 욕심이 많은 동물인지, 아니 자신이 욕심이 많은 인간인지 어찌됐든 신기하게도 하고자하는 일에 가능성이조금 있을때보다 조금 모자르다고 생각할 때 더욱 더 매달리게 되는 것이었다.자신이 바보같다는 것을 알았지만 6년 째 나오고 있는 익숙한 이 지하연습실이 그리고 그 안에서 울려퍼지는 음악이 옭아매고 있었다. 끈질기게도 달라붙는 습한 음악소리를 떼어내고 싶었지만, 힘이 없었다. 아니 힘은 넘치는데 떼어버려야 할 것은 그것이 아니라고, 그렇게, 그렇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정한 연습시간이라도 꼭 지키던 루한이 축 늘어져 누워있던 몸을 일으켜 연습실 문을 열고 나갔다. 짙게 깔린 흐림에 어울리게 바람이 나름 파랬다. 짙은 청색.

비가 내리는 것을 보고 우산을 챙겨 발걸음을 옮기는 루한의 발에 무엇인가가 채였다.

동백꽃. 붉다기 보다는 부드럽고 분홍빛을 띄고있다고만은 할 수 없게 강한 색채를 띄고 있는 듯한 꽃. 오랜만에 보는, 한 때 너무나 자신이 좋아하던 꽃이었다. 그리고 작은 동백꽃 한 송이 밑에 분홍색 포스트잇이 함께 놓여있었다.

'매우 닮았어요. 이 꽃하고 당신하고'

알 수 없는 기분에 루한이 쪼그려 한참이나 꽃과 포스트잇을 쳐다보고 있었다. 자신에게 하는 말일까. 자신에게 갖다준 꽃인걸까. 루한이 쓰는 지하연습실을 쓰는 연습생은 몇 명이 되지않았다. 왠지 자꾸만 자신에게 온 것이라고 믿고 싶은 루한이 고개를 도리질 치며 일어나 앞으로 걸어갔다. 흐린 파란색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하던 루한이 뒤를 돌아 동백꽃을 다시 바라보았다. 그 밑에 인공적으로 만든 분홍색이 입혀진 정사각형의 종이조각도 함께. 그리고 그 곳에 예쁘게만은 아닌 조금은 거친 글씨로 쓰여져 있는 글씨도 함께.

결국, 종이와 꽃을 집어들어 주머니로 넣은 루한이 다시 연습실로 되돌아왔다.

 

 

오후 수업을 위해 신사옥으로 돌아오니 루한의 회사의 소속 연예인이 왔는지 복도가 조금 시끄러웠다. 익숙한 광경인듯 아무런 표정을 짓지 않은 루한이 6번 방을 찾아들어갔다. 연기 준비까지 해보자는 회사의 권유의 일주일에 한 번 있는 연기 수업이었다.

 

"어…?"

평소 선생님보다 삼십분은 일찍 도착해 미리 연습을 했기 때문에, 당연히 연습실에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누군가가 있었다. 루한과 연기 선생님이 앉아서 수업을 할 때의 구조 그대로에 누군가가 들어서있었다. 의아함으로 인해 내뱉어진 루한의 음성을 들었는지 움직임이 생겼다. 작은 얼굴을 반 쯤은 가리고 있던 모자를 쓴데다가 고개까지 숙이고 있어 얼굴이 보이지 않던 사람이 고개를 들어 루한을 쳐다보았다.

차갑게 생겼다. 루한이 생각한 그 사람의 첫인상이었다.

 

"아…안녕하세요. 세훈입니다"

뜬금없이 소개를 해오는 세훈에 루한이 의아함을 느끼며 얼떨결에 덩달아 자신을 소개했다. 안녕하세요.루한이라고 합니다. 상당히 먼 거리에서 서로를 소개하고선 루한의 음성을 끝으로 침묵을 지키는 상황이 되버렸다. 루한이 어쩔 줄 몰라하자 남자가 웃으며 자신의 맞은 편 자리를 손가락질했다.

"오늘 제가 특별 선생님이예요."

"네?"

"오늘 연주 선생님 아프시다고, 못 나온다고 연락드렸는데 루한씨께서 연락이 안된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저보고 오늘 하루만 맡아달라고…"

상황설명을 들은 루한이 그제서야 자신의 후드 집업 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바보처럼 아무것도 못 느끼고 있었다. 하루종일 흐린 날씨에 왠지 넋을 잃고 오다보니 발생한 상황이었다. 만약 무대의 대타가 필요해 회사에서 경험차 내보내려고 전화를 했었다면 아주 바보같은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을 일이었다.

"아…죄송해요."

"괜찮습니다. 덕분에 뭐…"

세훈이 뒷말을 잇지않으며 어깨를 으쓱이며 웃어보였다. 덕분에 뭐… 긍정인지 부정인지 알 수 없는 애매한 말꼬리였다. 그러고보니 세훈이라고하면 올해 초 자신의 기획사에서 야심차게 내보낸 신인이었다. 그래서 복도가 좀 어수선했구나 생각한 루한이 어느샌가 세훈의 맞은편 자리에 앉아있었다.

"사실,저도 급하게 와서 수업으로 준비한게 없어요. 이거라도 가져왔거든요."

세훈이 어딘가 세훈을 닮은 검은색의 단정한 백팩 안에서 작은 수첩을 꺼냈다. 루한이 물끄럼 세훈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으니 세훈이 그냥 평소 이쁘다고 생각하거나 인상깊었던 문구를 적어놓은 수첩이라고 부가설명을 해주었다.

 

"그럼 오늘은, 루한씨가 여기서 맘에 드는 문구 한가지만 읽어주세요. 제일 마음에 가는 걸로. 제일 루한씨를 잘 표현할 수 있는 것으로요."

"잠시만요…"

세훈이 건네는 수첩을 받아들고 하나하나 읽어가던 루한을 세훈은 말없이 기다려주었다.

 

"…그대라는 꽃이 피는 계절은 따로있다. 아직 그 때가 되지 않았을 뿐이다.그대,…언젠가는 꽃을 피울 것이다."

밑에 그 문구가 쓰여져 있던 책의 이름이 적혀져 있는 것까지 루한의 머릿속으로 박히는 듯 했다. 아침부터 루한을 괴롭히던 무엇인가의 마음이 터지지 못하고 혀 끝에서 간질거렸다. 그대, 언젠가는 꽃을 피울 것이다. 마치 누군가가 자신을 위로하는 것 같아 루한은 부끄럽게 눈물이 나올뻔한 것을 참았다. 평소 때와 같은 수업방식이었다면 눈물을 흘렸겠지만 초면인 세훈의 앞에서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자신을 위로하고싶지 않았다. 더욱 더, 열심히 해야만 했다.

"분명히,꼭. 그럴 날이 올거예요."

세훈이 루한의 눈을 마주하고 분명한 목소리로 대답해주었다.

"이거 다음에 이어지는 글에 뭐라고 나오는 줄 알아요? 기다려봐요. 읽어줄게요."

꼬박꼬박 존댓말을 쓰는 세훈이 다시 자신의 수첩을 받아들어 적어놓은 것을 찾는듯 뒤적거리더니 곧 자세를 잡고 읽어주기 시작했다. 목소리가 생긴 것과는 다르게 살짝 귀여운 느낌이 있는 것 같았다. 아침에 봤던 동백꽃의 색과 많이 닮아있는. 그런 목소리.

 

"다소 늦더라도,그대의 계절이 오면 여느 꽃 못지않은 화려한 기개를 뽐내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고개를 들라. 그대의 계절을 준비하라."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읽던 세훈의 음성이 마침표를 찍고 세훈이 고개를 들어 루한을 보며 웃었다. 오늘 수업은 그럼 이만할게요. 준비해온게 없어서…말끝을 흐리며 웃는 세훈에 루한이 가만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고 감사하다고 대답했다. 비교적 작품을 쉬고 있는 때라 덜 바쁜 시기여도 세훈은 여러가지 할 일이 많은지 백팩을 챙기며 나갈 준비를 했다.

"집중 안되실까봐 저는 갈게요."

괜찮다고 말하려다가 괜히 바쁜 사람 발목 붙잡는 것 같아서 그냥 간단히 안녕히 가세요. 인사만한 루한을 남기고 세훈이 웃어보이고서는 연습실 문을 열고나갔다. 텅 빈 연습실에 혼자 있으니 다시 습한 공기가 루한의 발목을 잡아끄는 것 같았다.

 

 

연습실에 혼자 남은 루한은 매일 밥먹듯이 다니는 아니, 밥먹는 것보다 더 많이 밟은 연습실 바닥을 밟고 있는 것이 갑자기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자꾸 무엇인가로부터 벗어나고싶은 생각이 들었다. 자꾸만 피어오르는 생각들을 누르며 연습이 제대로 될리 없는 루한은 몰래 옥상이라도 올라갈까 싶어 걸음을 옮겼다.

 

 

"…어?"

또다. 연습실에서 나와 옥상으로 갔는데, 옥상 문 앞에 또 아침에 보았던 동백꽃이 놓여있었다. 분홍색의 정사각형 종이도 역시나 빠지지 않았다.

 

'동백꽃의 꽃말을 알아요?'

동백꽃의 꽃말. 그런건 모른다. 그저 이 꽃이 가지고 있는 분위기와 색체가 좋아 평소에 좋아하던 것뿐이었다. 루한이 추리닝바지 주머니에서 느릿하게 핸드폰을 꺼내 동백꽃의 꽃말을 검색해보았다. 겸손한 마음,기다림…. '기다림의 꽃 동백꽃'이라고 쓰여져 있는 게시물에서 한참이나 눈을 떼지 못하던 루한이 허리를 숙여 꽃과 포스트잇을 다시 집어들었다. 아까는 보지못했는데 포스트잇 구석에 오른쪽 옆으로 화살표 모양을 그려놓았다. '뒷장'. 뒷장을 보라는 뜻인가…

 

 

'기다림의 꽃. 닮았죠 당신하고?'

역시나 정갈하지만은 못한 글씨체가 한 눈에 들어왔다.그 옆에 웃는 모양의 이모티콘은 그래도 나름 단정하게 그려져있었다. 이상하다. 

루한은 이제 이것이 자신을 향한 메시지라는 것을 확신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본사로 옮겨왔는데도 이렇게 자신을 따라다니는 것처럼 눈 앞에 꽃이 놓여져 있을리는 없었다. 한 손에 동백꽃과 포스트잇을 쥐고 루한은 옥상문을 열었다.

 

공기가 꽤 상쾌했다. 비는 잠시 그친듯 하늘은 먹구름만 잔뜩 품고 해를 숨기고 있었다. 덕분에 하루종일 어두운 날씨에 루한이 잠시 인상을 찌푸렸다. 비가 오는게 좋은 날도, 싫은 날도 있다. 오늘은 아마도 싫은 날인 것 같았다. 자꾸만 가슴 속 깊은 곳 어디에선가 무언가가 치고 올라올 것 같은 느낌에 속까지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비가 와 대기 중의 먼지를 쓸어가고 덕분에 공기는 평소보다 상쾌해진 것 같았지만 자꾸 턱턱 막히는 숨의 이유는 찾지 못했다.

옥상까지도 비가 다 들이쳐서 기댈 곳을 찾지 못해 한 가운데에 서있던 루한의 손에 들려있는 핸드폰에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다. 연습생 담당 실장님의 이름을 뜨는 것을 보고 루한이 급하게 핸드폰을 받았다.

"네 실장님"

"루한아,너 지금 회사냐?"

"네. 저 지금…4층이예요."

하마터면 옥상이라고 말할뻔한 루한이 조심스레 자리를 옮겨 바로 4층에 있다고 대답했다.

"아 다행이네. 잠깐 나랑 만나서 만나봐야 할 분이 있어."

"어디로 가요?"

"일단 연습실로 내려와. 너 춤 레슨 받는 연습실. 서두르진 말고"

 

짧은 통화를 끝내고 옥상에서 나와 내려가려다가 아침부터 자꾸만 정신이 빠져있는 것 같은 생각에 화장실에 들러서 세수라도 할 겸 루한이 발걸음을 돌려 화장실로 갔다. 화장실 바로 옆 샤워실에서 들려오는 작은 목소리에 루한이 저절로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두 명이서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안 들렸다면 그냥 갔겠지만 자꾸만 소근소근 들리는 소리에 루한이 멈춰서서 말소리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이번에도 똑같아진거야? 그런거지 뭐. 그 형은 뭘 모르는 것 같지 않냐? 어.몰라도 한참 모르는 것 같다.이 쪽 세계사람답지않게. 한마디씩 주고받는 소리에 루한은 그저 연습생들 사이에서 오가는 말이겠거니하고 다시 화장실쪽으로 발을 돌리려고 했다.

 

그래도 이번에 제의 들어왔다며 루한 형.

갑자기 불리는 자신의 이름에 돌린 몸의 방향을 다시 바꿀 생각도 못하고 잠시 멍을 때리던 루한이 진동하며 도착한 문자를 보고 급히 정신을 차리고 내려갔다.

'루한아.생각보다 늦네.서둘러'

 

 

 

 

늘 오는 연습실 앞에서 루한은 답지않게 긴장했다. 왠지모르게 긴장해야할 것 같았다. 자신의 심장에게 머리에게 뭔가 준비를 하고 있으라고 말해야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까 들었던 소리가 설마 다 저를 말한 것이었을까 하나도 이해되지 않는데… 복잡한 머릿속에 두어번 머리를 흔들어보인 루한이 문고리를 돌려 연습실 안으로 들어갔다. 낯선 사람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과 다르게 연습생 담당 실장님 한 분과 회사에서 많이 보던 한 분만이 더 계셨을 뿐이었다. 루한이 다가가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둘이 뭘 그렇게 심각하게 이야기하는지 루한이 다가오는 것도 모르고 있다가는 루한이 건네는 인사에 화들짝 놀라며 실장님이 그제서야 루한을 반겼다.

"루한아.인사해. 여기는 세훈이 매니저분이야."

"안녕하세요.루한입니다."

오늘따라 이상하게 그 사람과 많이 엮이는 것 같았다. 보니까 꽤 유명하다던데 작품을 잠시 쉬고 있다고해서 직접 자신의 수업까지 해주는 것도 이상하고, 여기에 또 그의 매니저가 와 있는 것도 이상했다. 

"어,그래. 반가워요.그냥 본론으로 바로 이야기할게요."

"네"

"루한은 이 쪽 세계 어디까지 알고있어요?"

"…네?"

아까 얼굴 모르는 사람이 나누었던 대화와 미묘하게 비슷하다고 느낀 루한이 도대체 어디까지 알고있냐는 말이 무슨뜻인지를 몰라 멍청하게 되물었다.

"루한은…데뷔하려면 뭐든지, 할 수 있어요?"

 

처음으로 두려움을 느꼈다. 세훈의 매니저라는 사람이 직접적으로 무엇을 이야기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주위에서 짙은 남색이 퍼져나가는 것 같았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아까 옥상문을 열어 처음으로 루한을 반긴 먹구름 가득한 무거운 구름들도… 급하게 자신을 호출한 실장님도, 자신의 이야기를 하던 사람들의 목소리도, 앞에 서 있는 이 사람도 너무나도 두려웠다. 발 끝에서 벌레가 한 마리 기어올라오는 것 같았다. 

 

 

사실,단편으로 간단하게 한 편 내고 끝내려고 했지만, 역시나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의 진리죠. 예 펄풱...그게 인생의 진리ㅈ.........

아무튼 그래도 짧게 끝낼 예정입니다. 저번에 글은 실수로 잘못 올려서 삭제했어요. 그 뒤로 더 많이 이어 쓰지 못한건 안자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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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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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와 집중하면서 봤어요 담편두 얼른 써주세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작가님 사랑합니다
13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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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2
끄앙 내용이 더 추가됐네요!!!!!!! 빨리 다음 보고싶어요ㅠㅠㅠㅠㅠ
13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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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3
아하!어디서본내용인것같더니!!!다음편이궁금해요~ㅠㅠㅠㅠㅠㅠㅠ
13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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