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여름 바람이 6,7,8월 세 달을 걸쳐 빠르게 지나갔다. 조금은 애매하다 싶은 가을도 그저 애매하게 흘러갔다. 그렇게 어영부영 다가온 초겨울. 대한민국 서남해 쪽에 있는 가장 큰 화산섬인 제주도, 1948년 11월 어느 날 그곳엔 무언가를 선포하는 듯한 높고 반복적인 사이렌이 공격적이게 울려 퍼졌다. 오늘 뭐 영 바람이 하영 불엄시니, 지금 무신 소리 안들렴수광? 이게 무신 소리라…. (오늘 바람이 많이 부네, 지금 무슨 소리 안 들려요? 이게 무슨 소리야….) 바다 쪽을 바라보며 방파제 위에 우두커니 서, 바닷바람을 쐬던 검은 머리칼의 청년이 뒤를 돌아 자신의 집으로 소리쳤다.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어멍은 뭐 하는디 대답이 어시맨… (어머니는 뭐 하시는데 대답이 없으시지…) 혼자서 중얼거리던 청년이 풀쩍 방파제에서 내려와 기지개를 쭉 피며, 어멍!. 몇 번을 더 크게 불러가며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을까. 귀가 따갑도록 울리던 사이렌이 뚝 그치고 방송이 들렸다. 제주 주민들은 잘 들어주시길 바랍니다. 윙윙 울려 퍼지는 목소리지만 그게 꽤나 공격적이게 들려 청년은 걸음을 멈추고 조용히 방송을 들었다. 허수아비 마냥 그 자리에 꿋꿋이 서서 끝까지 방송을 들은 청년은 무엇인가에 쫓기듯 집을 향해 달렸다.
“지금부터 해안선 5km 밖에 위치한 사람들은 모두 폭도로 간주하여 발각 즉시, 사살하도록 하겠습니다.”
어멍신티 아무 일도, 아무 일도 어시게 해줍서. (어머니에게 아무 일도 없게 해주세요.) 청년은 아직 거리가 남아 아른하게 보이는 자신의 집을 똑바로 응시하고서 속으로 수천 번을 되뇌며 뜀박질을 계속했다. 오늘따라 해안에서 집이 멀게만 느껴진다고 생각하며 거의 울음을 터뜨리기 직전인 표정으로 달리던 청년의 눈에, 귓가에 그토록 원하던 모습과 목소리가 다가왔다.
“민석아!”
집을 향해 뛰어오는 아들, 민석을 바라보며 집 앞 정낭이까지 마중을 나와 어서 오라는 손짓을 하고 있었다. 어멍신티 아무 일도 어시게 해줘 그냥 고맙수다. 다치지 않게 해줘 그냥 고맙수다. (어머니에게 아무 일도 없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치지 않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청년, 민석이 쉼 없는 뜀박질을 하며 속으로 생각한 말이었다.
붉은 섬 (Red Island) 1
w.석간장
민석은 거동이 불편하신 어머니를 등에 업고서 마을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논의하는 마을회관으로 향했다. 채 도착하지 않았는데도 주변은 마을 사람들로 인해 북적거렸다. 한 번씩은 안면이 있는 사람들이 저마다 걱정스러운 낯빛으로 회관으로 들어선다. 정신 차리자. 잠시 걸음을 멈춰 멍하니 사람들을 보던 민석은 머리를 이리저리 흔들고서 회관 안으로 들어섰다. 어머니 도착했어요. 회관 바닥에 방석을 깔고 조심스레 어머니를 앉히며 말하는 민석을 보고서 몇몇 사람들의 입에선 칭찬이 쏟아져 나왔다. 그도 그럴만한 것이 평상시의 민석은 어머니에게 지극 정성을 다하는 아들이었다. 아버지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시고 형제, 남매도 없는 외동이기에 더욱 그랬다.
“다들 모였어요?”
부산스레 서로 이야기를 나누던 이웃들도, 홀로 회관에 와 말없이 생각하던 사람들도, 그리고 두 손으로 어머니의 손을 꼭 붙들고 바닥을 응시하던 민석도 말에 집중했다. 옆에서 무슨 일이 생긴 거냐며 조용히 물어오는 어머니에게 조금 뜸을 들이다 아무 일 아닐 거예요. 라고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꽉 붙든 어머니의 손에서 약한 떨림이 전해져 왔다. 그 순간 민석에겐 알게 모르게 책임감이 어깨를 내리 눌렀다. 앞으로 무지막지한 감정을 책임져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 싸하게 다가왔다. 저의 불안함인지 어머니의 불안함인지, 무엇인지 모를 불안함이 만들어낸 긴장감에 민석은 애꿎은 어머니의 작은 어깨만 천천히 쓸어내렸다.
“우리 제주도에 지금 군인들이 들어와 있는 것 같습니다.”
회장의 한마디에 모두들 입을 다물었다. 아까 전 이미 모두 들었을 방송. 해안선 5km 밖에 위치한 사람들은 폭도로 간주하여 즉시 사살한다는 말도 안되고, 화가 솟구치는 내용. 대부분 제 발로 여기 있습니다. 하며 군인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비출 사람들은 없는 듯했다. 물론 민석도 같은 생각이었다. 왜냐, 설령 해안선 5km 안으로 들어가 자기의 모습을 비춰 군인들이 살려준다 해도 결국엔 잡혀가 숨만 붙어있을 뿐,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을 것 같았다. 숨을 거면 숨지 절대 그들에게 먼저 모습을 보일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저희는 피난을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피난을 강요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가실 분들은 가시고 남으실 분들은 남으셔도 좋습니다.”
결국엔 남던지 피난을 떠나던지 알아서 선택하라는 의견에 사람들은 다시 수군거렸다. 지금은 저마다 고민을 하겠지만 안 봐도 뻔했다. 각자 알아서 대충 짐을 챙겨 피난을 떠날 것이다. 민석은 어머니를 등에 업고서 회관을 빠져나왔다. 어서 돌아가 짐을 꾸린 뒤 산속으로 피난을 갈 생각이었다.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져 물어가고 있었다. 길에는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고 좀 더 차가워진 바람이 불었다. 민석은 회관 주위에 있는 의자에 잠시 어머니를 앉히고서 자신의 겉옷을 벗어 어머니에게 걸쳐드렸다. 고맙구나. 다시 업으려던 민석의 손을 잡고서 말해오는 어머니에게 민석은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며 웃어 보이고는 가볍게 등에 업고서 걸음을 바삐 옮기며 내일부터 며칠이 지나면 어머니와 자신, 그리고 동네 사람들 모두가 다시 오늘과 같이 얼굴을 마주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왜냐하면 이 일이 오래가지 않고 길어봐야 2주 안으로 끝날 거라 믿었고, 섬이 섬인 만큼 대충하다 떠날 거라 생각했기에.
*
“형, 같은 동네인데 이웃끼리 같이 가요.”
몇 집을 건너면 보이는 집에 살고 있는 저와 또래인 아이들이 찾아온 건 민석이 어머니를 모시고 집에 돌아온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정낭이 앞에서 누군가가 큰 소리로 부르길래 내다보니 이들이었다. 이웃과 인사는 하지만 사적인 왕래는 하지 않던 민석은 달갑지 않게 그들을 맞이했다. 인사를 하자마자 대뜸 하는 말이 피난을 함께 가자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듣자마자 민석은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런 민석에게 찾아온 네 명의 아이들 중 까무잡잡하고 매섭게 생긴 아이가 말을 걸어왔다. 민석은 주춤했지만 자신에게 붙는 형이라는 호칭에 한시름을 놓았다. 이렇게 저를 찾아온 아이들을 딱 잘라 거절할 만큼 민석의 성격은 단호하지 못 하기에 결국엔 같이 동행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들에게 아직 짐을 챙겨야 하니 안으로 들어와 기다려 달라고 하고서 들어가려는데 문득 거동이 불편하신 어머니가 눈에 들어왔다. 민석은 그 자리에 멈춰 홱 뒤를 돌았다. 뒤따라 주춤주춤 안으로 들어오던 아이들이 흠칫하는게 눈에 보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민석은 조심히 말을 건넸다.
“저기, 얘들아 어쩌지 어머니가 거동이 많이 불편하셔….”
고개를 숙이고 손을 모아 손톱을 딱딱 부딪히며 말하고서 민석은 힐끔 눈치를 살폈다. 이상하게도 아이들은 전혀 개의치 않아 하는 모양이었다. 뒤따라 들어오던 아이들 중 아까 자신에게 먼저 말을 건 매섭게 생긴 아이가 대답했다. 그래서요?. 예상외로 아무렇지 않은 반응에 오히려 민석이 당황하여 말을 더듬었다. ㅍ, 피난 가는데 내가 껴서 짐이 되지 않을까? 그냥 나 혼자서…, 말을 채 끝내지 않았는데 매섭게 생긴 아이의 뒤에 착 달라붙어 있던 아이가 불쑥 튀어나와 매섭게 생긴 아이에게 팔짱을 끼더니 저를 보며 생글생글 웃는다. 쟤는 눈이 엄청 크네. 동생인가?. 민석이 자신을 보며 웃는 아이들 보자마자 느낀 점이었다.
“다 같이 가면 괜찮아요. 형 혼자면 어머니 부축하기에 더 힘들잖아요. 안 그래요?”
“경수 형.”
형?. 저도 모르게 입 밖으로 내뱉은 큰 소리에 민석은 뒤늦게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그만큼 매섭게 생긴 아이가 옆에 팔짱을 낀 아이를 부른 호칭은 꽤나 충격적이었다. 당연하게 눈이 큰 아이가 매섭게 생긴 아이의 동생이라고 생각 했기 때문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종인아 내가 동생인 줄 아셨나 봐. 너 그냥 내 형 하라니까?. 경수가 팔짱을 풀고 종인의 옆구리를 툭 치며 장난스레 말했다. 한편 종인은 머리를 쓸어올리며 애꿎은 땅만 발끝으로 툭툭 찼다. 그런 둘을 보고 있자니 중간에 놓인 민석은 어쩔 줄 몰라 하며 우왕좌왕하는데 뒤에 있던 두 사내가 앞으로 다가와 종인과 경수 사이에 서더니 서로 눈 짓을 주고받고서 각자 다가가 경수와 종인을 어르고 달랜다. 지금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지. 민석은 안 그래도 큰 눈을 더 크게 뜨며 바쁘게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잠깐 동안 그저 바라만 보고 있는데 종인을 맡던 멀대같이 키가 큰 사내가 자신에게 성큼성큼 다가와 우뚝 서더니 손을 내밀었다.
“찬열이에요. 박찬열.”
“으, 응. 난 김민석이야. 편하게 불러.”
“응. 민석이 형.”
바로 말을 놓는 찬열의 손을 잡고 어색하게 웃으며 악수를 했다. 야 백현아, 와서 인사해!. 찬열이 부르는 손짓을 하니 경수의 옆에서 싱글벙글 웃으며 얘기를 하던 백현이란 아이가 쪼르르 달려온다. 마치 강아지를 연상케 하는 백현은 민석을 보며 경수와 얘기할 때처럼 활짝 웃더니 찬열과 마찬가지로 손을 내밀었다. 민석은 악수를 하며 먼저 말을 건넸다. 김민석이야. 편하게 불러. 찬열에게 했던 말과 같이 말을 하니 대답도 같게 돌아왔다. 백현이에요. 변백현!. 민석은 순식간에 네 명의 이름을 모두 알았고 말을 놓는 사람도 생기니 처음의 불편함이 약간은 사라진듯했다. 이제 짐을 챙겨 종인과 경수, 찬열과 백현. 이 네 명과 함께 피난을 가는 일 밖에 남지 않았다.
민석이 무의식으로 한숨을 쉬며 올려다 본 하늘엔 비가 내릴 모양인지 먹구름이 드문드문 보이고 있었다.
| 사담 :] |
안녕하세요! 글잡담에 처음 글을 써보는 석간장 입니다. 첫 글이라 문체나 이런 점이 서툴더라도 ㅇ..양해 부탁드려요..♡ (붉은 섬 (Red Island) 는 메인이 루민, 서브가 카디/찬백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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