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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븐틴/전원우] 평행선공리
W. 러트
아픔에 몸서리치던 네 등을 얼마나 안고 있었을까, 넌 몸에 잔뜩 들어갔던 힘을 풀고 내게 기댔다. 하고 싶은 말, 묻고 싶은 말은 무수히 많았지만 지금의 네게 가장 힘이 되는 건 내 체온일 것 같았다. 둘 다 이틀을 차가운 바닥 위에서 물 한 방울 없이 버텼던터라 몸상태는 말 할 것도 없이 최악이었고, 서로가 서로의 상태와 감정을 너무나도 잘 알았기에 말없이 자신의 위태롭고 불안정한 마음을 추스르며 조용히 상대방을 위로했다. 이틀 새에 확연하게 살이 빠진 너에게 뭐라도 먹여야겠다싶어 널 감싸안고있던 팔을 풀어 바닥을 짚었다.
“원우야,”
너는 겨우겨우 식탁을 짚고 일어난 나를 발갛게 부은 눈으로 올려다보았고 그런 네게 원우야, 너 열 나. 들어가서 누워 있어. 라고 말 하려다 널 닮아 모난 곳 없이 둥글둥글한, 그래서 더 아픈 네 이름을 부르자마자 눈물이 차올랐다. 말없이 한참동안을 입술을 깨물고, 있는 힘을 다해 싱크대를 붙잡고, 이를 세게 악물어 터져나오려는 눈물을 삼켰다.
“... 너 열 나, 방에 들어가서 누워있어. 죽 끓여갈게.”
넌 네게 등진 상태로 싱크대를 부서져라 잡고 있는 나를 몇 초간 응시하더니 말을 하려다 말고는 누워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조용히 방으로 향했다. 평소 같으면 -여기 앉아 있을래, 너 앞치마 입은 거 예뻐. 라며 식탁 의자를 빼어 앉아 날 보며 웃었을 너지만 아무 말 없이 들어가는 걸 보면 내 눈치를 보는 건가 싶다.
다 끓인 죽을 그릇에 옮겨 담아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이틀간 아무 것도 먹지 못해 푸석푸석해진 네 얼굴을 보니 주책맞게 또 눈물이 나 입술을 깨물었다. 침대 옆에 식탁 의자를 가져다놓고 앉아 죽을 한 술 떠 호호 분 후 네게 건넸다.
“.. 이렇게까지 안 해 줘도 괜찮은데”
“이틀 동안 아무것도 안 먹었다며.. 얼른 먹어, 몸 상해.”
“굳이… 굳이 내 옆에 안 있어도 돼. 너 힘들면 가. 나 다 이해해.”
“어딜 가 내가.”
“내 옆에 있으면 불행할거야.”
“나 가면, 너는?”
“너 행복한거면 족해, 진심이야.”
네 말에 대답할 필요를 못 느껴 말 없이 죽을 한 술 더 떠 네 입에 가져가니 넌 날 빤히 쳐다보다 입을 열어 한 숟갈, 두 숟갈씩 받아먹었다. 한참을 그렇게 죽을 먹였을까, 네게 하고싶었던 말들을 모두 각설하고 가장 중요한 말을 무겁게 꺼냈다.
“원우야, 입원 언제 할까,"
“안 할 거야.”
“병원 가야지. 안 가면 더 아프잖아.”
“아니, 병원 안 갈래”
“가야 해. 조금이라도 덜 아파야 할 거 아니야..”
“안 가, 나 안 아파.”
“.. 그게 무슨,”
몇 번을 말해도 제 고집을 꺾지 않는 원우에 죽을 뜨던 숟가락을 멈추고 널 올려다봤다.
“아직 참을 만 해. 나 그런데서 썩어 들어가기 싫어.”
“그래도 병원가야 니가 덜 아픈ㄷ,”
“나 환자 취급 하지 마.”
“...”
“나 그렇게 약한 애 아니야.”
“.. 원우야”
“의사선생님이 나 힘들다고 했어. 치료 받아봤자 수명 연장에 의의를 두는거지 완치가 목적이 아니래.”
“...”
“병원복 입고 너한테 아픈 모습 다 보여주면서 약한 티 내는거 죽기보다 싫어."
"..."
“막말로,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골골대면서 하루 더 살려고 발버둥치는것도 싫어.”
“전원우.”
죽음이란 단어 앞에서 아무렇지않아 보이는것을 뛰어넘어 초연해보이기까지하는 너의 태도에 화가났다. 난 상상만해도 온 몸이 벌벌 떨리는데, 숨막히는 외로움과 그리움에 질식해 죽어버릴것만같은데.
“가지 말라고 붙잡는 것 같아서 말 안 하려고 했는데”
"..."
“너 보고만 있는데도 시간이 너무 빨라서 가끔씩은 눈물이 나.”
"..."
“너 때문에 삶에 미련이 남아.”
덤덤하게 자신의 마음을 읊조리듯 말하는 너에 갑자기 마음이 아려서, 나보다 몇 배는 더 힘들 널 앞에 두고 엉엉 울어버릴것만 같아서 침대시트에 얼굴을 깊이 파묻었다.
“이름아,”
"..."
“죽을 힘을 다해 견딜게.”
"..."
“나 버틸수있어”
버틸수있다는 너의 그 한마디에 울지않겠다는 내 다짐이 다시 한 번 무너져내렸다. 홀로 아파했던 지난 9개월동안 많은 생각과 인고의 시간을 거쳤을 네 목소리엔 흔들림이 없었다. 터져나오려는 울음소리를 참으려 끅끅대며 몸을 떠는 날 지탱해주려는듯 내 손을 굳게 붙잡아오는 네게 기대고싶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아프다는건 힘든 것도 맞지만 생각보다 훨씬 더 외로운 싸움이었다. 누구보다 든든하고 날 지탱해주는 나무같던 네가 한 순간에 약해졌다는것과 네가 겪는 고통을 함께 나눌 수 없다는것은, 절벽에 파도치듯 범람해오는 통각을 홀로 감당하는 널 옆에서 바라만 보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라는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무력감을 불러왔다.
그래, 비참했다. 네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정말 아무것도 없어서, 네가 내게 의지할 수 있게 흔들리지 않아야 할 지금 상황에서까지도 네게 위로받는것만같아서.
***
다음 날, 원우는 -정한이형 한국 들어와서 친구들이랑 잠깐 모이기로했어, 라며 아침 일찍 나갈 채비를 했고 집에 홀로 남은 난 원우를 진찰해 준 고등학교 선배인 권순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선배, 저 이름인데 기억하세요?”
“어? 야, 이게 몇 년 만이야. 잘 지내?”
“저야 뭐.. 지금 전화 할 시간 있어요? 의사되셨다는 소식 들었는데.”
의외라는듯 반가워하며 잘 지내냐 묻는 선배의 목소리에 어떻게 대답해야할지몰라서 말을 얼버무렸다.
“책상에 명패 하나 놓으려고 고생 좀 했다. 지금은 시간 널널해서 통화 할 수 있는데 왜, 어디 아프냐?”
“그건 아니구요. 선배, 제 부탁 하나만 들어주세요.”
“살다살다 별 일을 다 겪겠네, 니가 부탁을 다 하고. 뭔데?”
“선배 진료차트에 전원우라는 사람 있죠, 그 사람 진찰기록 좀 읽어주세요.”
“전원우? 안 보이는데.. 언제쯤 우리 병원 온지 알아?”
“아마 올해 2월쯤 갔을거에요. 없어요?”
“아아, 있어. 근데 이거 본인 동의없이는 말해주면 안 되는데,”
“... 뇌종양인거 알아요. 중추 신경계 질환 단계라고 적혀있는데 그걸 몰라서 전화했어요. 그 옆에 MRI는 뭐에요?”
수천번을 머릿속으로 생각만 했던 네 병명을 말하려니 입이 떨어지질않아 한참을 애쓰다 겨우 목소리를 냈다.
“중추 신경계 질환 단계는 종양이 발생한 곳에서 그 쪽 주변으로 퍼진거야. 원격 전이 단계까진 안 갔는데 이 분은 퍼진 범위가 좀 넓어. MRI랑 SPECT는 뇌종양 진단 방법이야. 건강검진 받으러 오셨다가 MRI찍고 SPECT까지 찍으신 것 같은데? 많이 놀라셨겠다, 근데 너 이 분이랑 무슨 사이야?”
“남자친구에요. 뇌종양 증상은 어떻게 되는데요?”
“남자친구라고?.. 음, 두통이랑 구토증세가 있을거야. 종양이 커지면 커질수록 시력도 급격히 안 좋아질거고 안면신경이랑 팔다리에 마비증상 올 수도 있어. 심하면 간질발작 일어날수도있고.. 여튼 그래. 아마 지금쯤이면 남자친구분 스스로도 몸상태가 악화되었다는걸 많이 느낄텐데, 입원 안 시킬거야?”
남자친구라는 말에 순영선배는 말하기를 주저하다 내게 뇌종양의 증상을 하나하나 설명했고, 그 중에서도 시력이 급격히 안좋아질거라는 말에 몇 달 전부터 안경을 바꿔야겠다고 말하던 네가 생각났다.
“선배가 입원하는거 수명 연장하는 것밖에 안 된다고, 완치 어렵다고 했다면서요.”
“아… 미안하다. 그래도 집에 있는 것보단 진행속도가 훨씬 더뎌질거야. 조금이라도 덜 아프고 하루라도 더 사는게 낫지 않나?”
“나도 그랬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생각하는데... 싫대요.”
나보다 몇 백배는 힘들 원우에게 차마 말하지 못하고 늘 혼자 삭혀왔던 내 속마음과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자 눈물이 차올랐다. 결코 세고 강한 주장이 아니었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라는 소박한 바램이었음에도 굳게 잠긴 마음의 빗장들이 하나하나씩 풀어지는 기분이었다.
“성이름, 울어?”
“.. 선배, 나 너무 무서워요. 애가 얼마나 아프면 손톱을 바닥에 막 긁어요. 손톱이 다 부러져서 손에 피가 철철 흘러요. 입술도 있는대로 깨물어서 다 터져있고, 온몸이 피범벅인데 자기는 그걸 몰라.”
“...”
“감당하기가 힘든지 몸이 덜덜 떨려요, 그 와중에 나한테 약한 모습 보여주기 싫어서 이불을 입 안에 구겨넣고 있더라고. 내가 뒤에서 자길 안아도 몰라. 내가 원우 손잡고 막 우니까 그제서야 내가 옆에 온 걸 알더라고요. 애가 말없이 울기만 해요, 내 손 꽉 붙들고”
선배에게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내 숨통을 짓누르던 마음의 짐들을 엉엉 울면서 내려놓았다. 위태위태하게 쌓아왔던 모래사장위의 돌탑이 와르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순영선배는 가만히 내 말을 듣다 자신이 위로 해줄 수 있는 말이 없다는듯 깊고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옆에서 보는 것밖에 내가 할 수 있는게 없는거에요, 그게 너무 비참하고 괴로운거야.”
"..."
“더 무서운게 뭐냐면”
"..."
“내가 원우 아파하는걸 한 번 봤다는거에요, 딱 한 번.”
"..."
“이제 시작인데,"
나 어떡해요, 선배.
그렇게 한참을 전화기를 붙잡고 울다 수술이 잡혀서 나가야 한다며 언제든 전화하고싶을때 전화하라는 선배의 말로 전화가 끊겼고, 그 자리에서 한참을 더 울다 휴대폰을 켜 밖에 있을 원우에게 카톡을 보냈다.
원우야, 우리 여행가자.
-
독자님들, 안녕하세요 ! 러트입니다.
이렇게 부족하고 비루한 글을 초록글에 올려주시다니.. 정말 영광이에요ㅠㅠㅠㅠㅠ
아참, 저 독방 가끔씩 들리는데 제 글 추천해주시는거 봤어요ㅠㅠ 눈물이 줄줄.. 정말 감사합니다.
사실 이번주동안 몸이 많이 안좋았는데, 독자님들이 달아주시는 댓글 하나하나가 정말 큰 힘이 됐어요 :)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쓴 글이라 감정선 표현도 많이 부족하고 두서없이 쓴 것도 맞는데 빨리 독자님들 만나 봬고 싶었어요.
신청해주시는분들이 계셔서 암호닉 신청을 받아보려고해요 !
암호닉신청공지글을 따로 올릴테니 그 글에서 신청해주시면 되겠습니다♥
독자님들의 과분한 사랑이 있었기에 이렇게 비루한 글이 초록글에도 올라가보고 저같은 사람이 암호닉신청도 받아보네요ㅠㅠ
늘 큰 힘이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래오래 함께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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