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 탈 수 있는 군대물인데다, 배경설정 역시 현대가 아닙니다.
이 점 고려하셔서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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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바쁘지않은 시기라고는 하지만, 다른 군영의 사람이 '답사'랍시고 거의 한달에 가깝게 머문다는 것이 편치만은 않은 일일 것이었다. 더군다나하루가 멀다하고 교전이 벌어지는 ‘그’ 남부지구에서, 모든 기계류의 관리를 책임지는 치프 메카닉을 뜬금없이 떠나보냈다는 사실도 어딘가 수상해보였을거고. 모두 이해는 하고 있지만, 그래도 당사자를 앞에 두고 이런 태도는조금 너무하지 않나.
백현의 깍듯한인사를 받은 동방사령관은 그닥 탐탁치 않아하는 표정을 노골적으로 내보였다. 앞으로 4주를 머물러야 하는데 시작부터 밉보인 것인가 싶어, 백현이 보이지않게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백현을 사령관실로 안내한 찬열은 문 근처에 아무런 말 없이 서 있는 중이었다.
"최 사령관은 대체 뭘 보고 오라고, 여기로 자넬 보낸건가?"
"아, 그것이……"
"우리 군영이 한가하다고 비웃는건가? 할 일 많은 자기들은 바쁘니까 귀찮은 덤 하나 맡으라고?"
백현은 본격적으로군생활을 시작했을 때부터 계속 남부지구의 정비반이었고, 정비반에서 중대한 포지션을 맡게 되면서부터 지금까지상관으로 모신 사령관은 민호 하나 뿐이었다. 민호는 사람을 어떻게 부리고, 어떻게 제 사람으로 만드는지 아는 자였다. 백현이 민호와 독대할때에 그렇게 자유로운 말투를 구사하는 것도, 그러면서도 민호를 상관으로서 존경하고 결정적인 순간에 복종하는것도 모두 민호의 이런 품성 때문이었으리라. 유능한 자를 좋아하여 실컷 부려먹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더없이아껴 이렇게 '억지 휴가'까지 보내는 사령관만을 보아온 백현에게, 눈 앞에서 불쾌한 표정으로 말을 뱉는 동방사령관의 태도는 더없이 껄끄러웠다.
사실 자신을 '귀찮은 덤' 취급한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이 사령관이 저를 어떻게 생각하든, 자신은 어차피 이 곳의 메카닉이아닌 남부지구의 메카닉이니까. 문제는 그가 민호를 향해 노골적으로 비꼬는 말투를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반감을 숨길 생각조차 없다는 듯한 태도. 그 예의없는 말투가 자신의상관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훨씬 더 백현의 심기를 상하게 하고 있었다. '나의 건강을 위해그런 것이다'라고 이 자에게 솔직하게 말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그냥 왠지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민호가 백현을 애써 전선에서제외하여 다른 곳으로 떠나보낸 그 소중한 이유를, 눈앞의 이 사령관은 분명히 코웃음으로 무시해버리고말 테니까.
아직도 연신투덜거리는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기만 하던 백현은, 이내 사령관을 향해 생긋- 소리가 날 듯이 웃어 보였다. 예상치못한 그 반응에, 사령관의 시선이 백현에게 다시 닿았다.
"그렇지 않습니다. 동부지구에는박찬열 치프가 있지 않습니까. 그는 사관학교 시절부터 개발분야에 능숙했기 때문에, 저희 군영에서도 동부지구의 그 높은 기술력을 조금이라도 배우고자 절 보내신 겁니다."
"하! 쓰지도 못 할그 머신들 말인가? 도움도 안 되는 걸 만들어서 뭘 어쩌겠다는건지. 참할 일도 없지."
못마땅한 사령관의표정이 백현의 뒷쪽에 슬쩍 닿았다가 떨어졌다. 찬열이 듣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꺼낸 말.
백현의 미소가 조금 더 짙어졌다.
“저도 박찬열치프와는 오랫동안 교류가 끊겼었기 때문에 뭐라 말씀드리긴 어렵습니다만, 박찬열 치프는 사관학교에서도월등했던 동기였습니다. 훌륭한 인재를 아끼시는 동부사령관님이라면 분명 박찬열 치프의 능력을 귀이 여기시어개발분야에 힘쓰고 계실거라는 남부사령관님의 추천이 있으셨던 겁니다.”
“뭐… 남부지구에서꼭 배우고 싶다면야, 어쩔 수 없지.”
“더군다나 다른메카닉이 아니라 치프인 저를 보내시는 것도 모두, 변방에서 갖은 희생을 마다하지 않으시는 사령관님에대한 예우의 표현이라 하셨습니다. 바쁘신 업무에 폐가 되지 않도록, 잘보고 듣고 배워 가겠습니다."
"허허… 최 사령관이그랬단 말이지? 새파랗게 젊은 놈이 건방진 줄만 알았더니 사람구실은 하는 모양이군."
정중하게 고개를숙이며 늘어놓는 백현의 미사여구에, 사령관은 꽤 기분이 좋아진듯 처음으로 표정을 누그러뜨렸다. 그러더니 백현의 뒤에 서 있던 찬열을 손 끝으로 불렀다.
남부지구로 돌아갈때까지, 자네가 알아서 살펴주게.
이제는 불쾌했던마음이 사라져, 백현에 대한 관심 역시 한풀 꺾였다는 것이 한 눈에 보였다. 찬열에게 마치 짐이라도 떠맡기듯 백현을 부탁한 후 휘휘 손을 흔들어 축객령을 내리는 사령관의 몸짓에, 백현과 찬열은 다시 한번 경례를 붙이곤 사령관실을 나섰다. 육중한문이 둔탁하게 탕하고 소리를 내며 닫히자, 그제서야 백현이 슬쩍 고개를 돌려 찬열을 바라보았다. 동부사령관에게 담뿍 지어보이던 영업용 미소는 이미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 후였다. 백현의 시선을 눈치챈듯이 찬열 역시 백현을 돌아 보았다. 아까 백현을마중나왔을 때처럼 장난기 섞인 표정이었다. 백현의 미간이 다시 구겨졌다.
“웃음이 나오냐, 넌?”
“안 될 건뭔데?”
인정하긴 싫지만아까 했던 말은 사실이었다. 0부터 100까지 서로 맞지않아 아웅다웅했던 것과는 상관없이, 찬열은 사관학교에서도 매우 촉망받는 인재였다. 그런 찬열이 동부지구에 와 있다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않을 일인데, 거기에사령관의 저 노골적인 반감이라니. 따져묻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묻기 어려운 일이라는 것도 안다. 더는 아무런 말도 못 한 채 입을 꾹 다문 백현의 모습에, 찬열이씩 웃어 보였다.
"먼 길 오느라 지쳤을텐데, 차라도한 잔 할래?"
“……니 맘대로."
오케이.
찬열이 가볍게발걸음을 떼어 복도를 걷기 시작했고, 백현이 그 뒤를 자연스레 따라 붙으며 찬열의 뒷통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자신은 알고 있다. 아마 사령관과 만나지 않았더라면, 찬열과 둘이 있게 된 시점에서부터 으르렁거렸을 거라는걸. 하지만왠지, 지금만큼은 독기를 세우고 싶지 않았다.
◈
지금으로부터수 백년 전 인류가 지구를 떠나 이 행성에 정착했을 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최대 과제는 언제나 '생존'이었다. 우주는그 끝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넓었지만 인류에게 적합한 새로운 터전은 한정되어 있었고, 그 곳에는이미 '선객'들이 자리잡은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수 천년 전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던 새로운 종족들과의 크고 작은 싸움이 오랫동안 이어져 오는 중이었고, 그 과정에서 중요성이 극대화된 군부를 중심으로 인류는 다시 한번 황제집권체제를 선택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와같은 역사의 흐름과 백현의 진로는 관련되어 있지 않았다. 어렸을 때부터 기계를 뜯어보거나 조립하면서시간을 보내는 것은 좋아했지만, 전쟁이니 이종족이니 하는 것은 백현에겐 먼 얘기였기 때문이었다. 백현의 마을은 교전지역과는 동떨어진 곳이었다. 뉴스에서는 하루가멀다 하고 외종족이 국경을 침범했다는 소식이 실렸지만 그다지 현실감없는 내용일 정도였고, 어린 백현은그저 숲 사이를 청량하게 뛰어다니거나 아버지가 지하실에 만들어준 아지트에서 기계를 뜯어보는 일로 하루하루를 보내곤 했다.
그러한 일상은정말로 단 한순간에 초토화되었다. 그날도 백현은 크러스테이션 ―척박한환경에서 살아남기에 최적화된, 절지류에서 진화한 종족― 의신체구조를 바이크에 도입할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으로, 반나절동안 아지트에 틀어박혀 있는 중이었다. 어느 순간 1층에서, 아니, 마을 전체에서 찢어지는 소리가 점점 크게 퍼지고 있었다. 처음에는저게 무슨 소리인가 싶어 겁에 질린 채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있던 백현은 그게 비명소리임을 금세 알 수 있었고,급히 지하실 계단을 올라가 문을 확 열어 젖혔다. 문 앞에는 어머니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마침 지하실 문을 열려고 했던 듯 손을 엉거주춤하게 올린 채 서 있었다. 어머니의이런 표정은 처음이었다. 백현이 엄마- 라고 채 부르기도전에, 그녀는 어린 아들을 지하실로 확 떠밀더니 문을 굳게 닫아 잠갔다. 당황해서 손 끝도 움직이지 못 하는 백현에게 어머니는 문 너머에서 심하게 떨리는 목소리로 더듬더듬 얘기했다.
백현아, 나오지 마. 거기에 있어야 돼. 엄마아빠올 때까지, 다른 사람이 열어 달래도 열어 주지 마. 절대안 돼. 알겠지?!
엄마엄마 하고높은 목소리로 불러 봤지만 이미 자리를 뜬 듯 대답이 없었고, 백현은 겁에 질린 채 지하실 가장 구석에쪼그리고 앉아 귀를 막았다. 아무리 손바닥을 쫙 펴고 귀를 꽉 덮어도,찢어지는 듯한 비명이며 울부짖는 소리가 여과없이 귀를 파고 들었다. 백현이 쪼그리고 앉은지하실 바닥에는 눈물자국이 흥건하게 고여 둥그런 웅덩이를 만들었다.
이렇게 오랜시간 한 자리에 앉아 있어 본 것은 처음이었다. 체감조차 할 수 없는 시간이 흘렀고 밖은 이미 오래전부터 쥐죽은 듯이 고요해진 상태였지만, 백현은 여전히 조금도 움직이지 않은 채 그 자리에 주저 앉은채였다. 어린 아이의 몸이 지하실의 냉기에 차게 굳었고, 쪼그린다리에 감각이 없었다. 그러나 여기 이 자세에서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울 기운도 없을 정도로 지쳐 눈물은 멎었고, 얼굴에 잔뜩 말라붙은눈물자국만 아이의 오열을 알려주고 있었다.
숨막힐 것 같은몇 시간이 더 흐른 후에, 오래된 긴장상태로 곧 쓰러질 듯한 백현이 문득 예민하게 청각을 세웠다. 발자국 소리. 여러 개의 발자국 소리였다. 엄마랑 아빠인걸까? 문득 머릿속을 채우는 엄마아빠의 생각에 어린아이는 가물거리던 정신을 퍼뜩 바로 잡았다. 자세히 들으면 두개가 아닌 다수의 발자국 소리였지만, 백현은 그저 엄마아빠가 데리러 왔다는 생각에 다시 터질 것 같은 눈물을 꾹 참았다. 마치 심장소리처럼 마룻바닥을 두드리던 발자국이 어느덧 지하실 문 앞에서 멈추었다. 여러 사람이 무어라 중얼중얼거리는 소리. 그리고 또 몇 발자국들이요란스레 움직이는 소리. 문의 걸쇠를 억지로 여는 쇳소리를 마지막으로,절대 열리지 않을 것 같던 문이 서서히 열린다. 너무 오래 어둠에 익숙해진 눈에 햇살이눈부셔 백현은 지하실의 문을 연 사람을 똑바로 보지 못 했지만, 문을 연 사람들은 백현을 발견한 듯이 ‘아이가 있습니다!’라고 소리쳤다.분명히 엄마나 아빠는 아니었다. 이윽고 누군가가 지하실 계단을 천천히 걸어내려오는 소리가들렸다. 발자국소리는 어느새 백현의 앞에서 멈추었고, 억지로 눈을 뜨며 누군지 확인하려 하는 백현의 머리에 가만히 손을 얹었다. 몇 시간만에 느끼는 사람의 손길에 저도 모르게 안심해버린 백현의 눈에 다시 눈물이 그렁그렁 차올랐고, 남자는 눈 앞의 어린아이를 보며 슬픈 어조로 기쁘다는 듯이 말했다.
"…다행이구나. 이참사를 기억할 자가 남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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