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빅.'
경수의 손목시계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맞춰놓은 시간을 알렸다. 7시.
창밖으론 이제서야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지금 학교엔 지금 순찰을 돌고있는 경비아저씨와 경수뿐이었다.
세상이 이렇게도 고요할수 있을까. 교실엔 시계의 초침소리만이 울렸다.
경수는 자신의 알람을 끄고 지우개 가루로 엉망이 된 책상위를 손으로 쓸었다.
그러다 그는 교실 바닥으로 우수수 떨어지는 지우개 가루들을 정처 없이 바라보다 아차 싶었다.
그리곤 얼른 몸을 일으켜 교실 뒤편으로 달려가 청소용구함을 열었다. 청소용구함에는 여러개의 빗자루들과 쓰레받기들이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그중 젤 위에 올려진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하나씩 들고와 자신이 바닥에 버린 지우개가루를 쓸어 담았다.
경수가 열심히 쓸어 담는 와중에도 오렌지색의 푸근한 햇살은 교실이곳 저곳을 비추었다.
여러 분필이 얽혀 제대로 닦이지 않아 흐릿한 칠판 또한 빛에 반사되어 반짝 거렸다.
그 칠판 구석엔 삐뚤삐뚤한 글씨로 무엇가 쓰여있었다.
'교실 청소 당번: 변백현'
밖으로 나오자 아까보다 해는 더 지고 있었다.
여름이 다와가지만 경수는 휑하니 드러난 자신의 팔에 선선한 바람이 부니 으슬으슬 추워졌다.
가디건을 들고 올걸 그랬나. 그러나 자신의 농장 한켠에 구겨져 먼지와 밖혀있는 가디건을 떠올리던 경수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무도 없는 학교의 텅빈 운동장을 가르지르는 일은 언제나 쓸쓸하다.
남자아이들의 북적거리는 소리. 여자아이들의 수다소리. 학교 종소리가 울리던 운동장은 이제 쓸쓸히 홀로 남아 경수를 배웅해주고 있었다.
터덜터덜 모래바람을 일으키며 걷다보니 어느 새 교문에 도착해있었다.
여기 쯤에 서있었겠지. 백현이 보고 싶어 교문까지 올라 왔다는 예리를 떠올렸다.
역겨운 년. 가식적인 년. 조용히 욕을 읊조리던 경수는 고갤들어 자신의 교실 창가를 올려다 보았다.
새까만 크레파스로 칠해놓은듯 어두운 창속은 씁쓸하니 굳게 닫혀있었다.
여기서 손을 흔들며 밀애를 주고 받았겠지. 바람빠진 풍선처럼 경수의 마음은 푸욱 꺼지고 꺼졌다.
경수는 그녀가 했던 것 처럼 자신의 교실 창가를 바라보며 손을 흔들었다. 돌아오는 회답은 없었다. 당연하게도.
언젠간 네가 나를 그녀처럼 대하는 날이 있을까. 경수는 쓰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무얼 고민하는가.
경수는 그런일은 제게있어서 절대 없을 일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 속으로 매일 자문을 하는 자신이 한심했다.
이제 경수는 뒤를 돌아 집으로 향하기 위해 발을 떼었다.
경수가 떠나간 자리엔 침을 뱉은 흔적이 있었다. 그녀에 대한 소심한 복수. 이렇게라도 해야 직성이 풀리는 경수였다.
"아 미친...."
오늘 따라 빨리 오지않는 버스에 경수는 미쳐버릴것 같았다. 지지리 운도 없는 날이다.
결국 그는 폰을 꺼내 버스시간을 검색하였다. 79번...대기 시간 30분....
"씨발."
대기 시간을 확인하자 결국 그의 입에선 욕이 튀어나왔다. 제기랄 액땜을 해야하나.
그는 땅이 꺼지게 한숨을 쉬며 쪼그려 앉고 말았다.
걸어서 갈까....얼마고민 하던 경수는 벌떡일어나 자신이 기다리던 버스정류장을 지나쳐 걸었다.
그리곤 분식점 뒤로있는 골목길을 향해 걸었다.
이 길은 자신의 집으로 가는 지름길중 하나였다. 하지만 가끔 가다 여기서 맞담배를 하고 있는 학생들을 보고 다시 되돌아가기가
일수였다. 경수는 오늘은 제발 아무도 없길 바라며 그 좁고 어두운 골목길에 발을 들였다.
구불구불 주택과 주택의 틈으로 만들어진 길은 생각보다 험난했다.
게다가 점점더 어두어지고 있는 덕택에 골목길은 더욱 음산한 분위기를 내며 경수를 조여왔다.
오싹해지는 기분에 그는 걸음을 더욱 빨리 하였다. 얼른 여길 지나쳐 자신의 집으로 가고 싶었다.
그러나 걸음을 재촉하던 경수의 발이 땅에 접착제로 붙여진것 처럼 딱 멈추고 말았다.
직각으로 꺽여진 길의 안쪽에서 들리는 젊은 남녀의 숨소리.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 소리는 신음에 가까웠다.
"흐읏...백현아..."
"쉿..예리야 들리겠어.."
아니겠지...아니겠지.. 부정하는 경수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듯 그때 들리는 익숙한 이름.
경수의 심박수는 점차 증가하고 식은땀이 흘렀다.
그리고 속에선 이루어 말할수 없는 분노와 슬픔이 소용돌이 쳤다.
백현아...아니지 백현아? 계속해서 부정하는 경수를 비웃듯 그들의 입에서 입으로 옮겨지는 숨소리는 더욱 커졌다.
아니야... 경수는 두눈을 질끈 감고 귀를 꽉 틀어 막았다. 꽉 감은 눈커플에서 작은 경련이 일었다.
제발 이상황이 모두 꿈이길. 거짓이길. 그 짧은 시간 경수는 그곳에 서서 속으로 울부짖었다.
그러나 경수가 슬며시 손을 귀에서 뗐을때에도 그 역겨운 소리들은 멈추지 않았다.
하..씨발.. 그의 두눈에선 뜨거운 그 무언가가 흘러내렸다.
차갑고 삭막한 회색 아스팔트 바닥에 그것들이 한방울 두방울 떨어지자 경수는 부정할수 없는 현실을 깨달았다.
역겨운 것들.
경수는 몸을 돌려 달음박질을 해 그곳을 빠져나왔다.
자신의 몸을 삼킬것만 같은 어둠에서 빠져나오자 그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엉엉 울고 말았다. 그 누가 쳐다보든 말든 상관하지 않은채.
요란스럽게 쿵쾅거리는 자신의 심장을 떼어버렸으면 좋겠다.
이 와중에도 백현이 키스를 해주는 상대가 자신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자신이 역겨워 죽어 버리고 싶었다.
지금 상황을 어떻게 이어나가야 할까. 경수는 심히 초조했다.
경수는 울어 눈이 퉁퉁부운채 엄지 손톱을 뜯으며 자신의 앞에 굳게 닫혀있는 쇠문을 응시했다.
어쩌자고 여길 찾아온거지..경수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자신이 한참 앉아 울고 있을때 자신에게서 문자가 한통왔다. 내일 만날수 있냐는 내용의 문자.
그 문자를 보자마자 경수는 엉덩이를 턴뒤 그 자릴 박차고 일어나 자신에게 문자를 보낸 크리스의 아파트로 향했다.
크리스에게로 향하는 내내 경수는 속으로 백현을 곱씹었다. 씨발새끼 그년이랑 평생 빠구리나 뜨면서 살든지.
그렇게 홧김에 그의 집을 찾아오긴 했지만 집에 그가 있는지 없는지 조차 아직 알지 못한다.
폰 화면에 나란히 입력되어있는 그의 번호를 보며 문자를 해볼까 하던 찰나에 잠금이 해제되는 소리를 내며 현관문이 열렸다.
경수도 문을 연 크리스도 적잖이 놀랐다.
크리스는 마침 커피가 떨어져 집주변 편의점에서 사러가려고 문을 열었을때 경수가 예고없이 덩그러니 서있어서 순간 잘못본것이 아닌가 잠깐 고민도 했다.
"도경수?"
"아..아저씨.."
"니가 왜 여기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경수를 훑어보던 크리스는 퉁퉁부운 그의 눈을 발견하자 미간을 구겼다.
누가 했는지 알만하다고 생각한 크리스는 일단 경수를 집안으로 들였다.
그러나 경수는 현관앞에서 신발도 벗지도 않은채 우물쭈물 거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 모습에 혀를 차던 크리스는 그를 품에 안아들어 거실로 향했다.
갑작스런 그의 행동에 경수는 당황하여 어찌할바 모르고 굳은 채 그가 하는데로 가만히 있을수 밖에 없었다.
크리스는 거실에 놓여진 고급스러운 검은가죽 쇼파위에 그를 앉혔다.
그리곤 경수의 발에 곱게 신겨있는 낡은 캠퍼스화를 조심스럽게 벗겨내기 시작했다.
경수는 마치 자신을 작은 새싹 대하듯 조심스러운 크리스의 행동에 실소를 터트렸다. 경수가 실소를 터트리자 크리스가 신발을 벗겨주던 행동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경수와 눈을 맞췄다.
경수는 뚫어져라 자신을 쳐다보는 그에 지지 않고 끝까지 그와 눈을 맞췄다.
티를 내진 않았지만 경수는 속으로 감탄을 자아내고 있었다. 그의 외모는 여느 연예인 보다 수려하였다.
"잘생겼지?"
"웃기고 있네요."
다알고 있다는듯 묻는 그에 한심하다는듯 대답하는 경수를 보는 크리스의 안면에는 웃음이 완연하게 비췄다.
웃는 그의 얼굴을 보면서 경수또한 입꼬리를 올렸다.
그런 경수의 얼굴을 한참 들여다보던 크리스는 경수의 신발을 완전히 벗겨 들곤, 현관으로 향했다.
고풍스러운 대리석으로 인테리어 된 현관엔 자신의 구두하나와 슬리퍼 하나만이 놓여있었다.
크리스는 자신의 구두 옆에 경수의 캠퍼스화를 나란히 내려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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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영 아직 2환데 벌써 필력이 바닥을 보이네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하지만 완결은 꼭 내겠습니다ㅠㅠㅠㅠ
내일 쯤에 올리는 3화엔 수위가 쪼금 포함되어있을 예정이에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보잘것 없는 글 봐주시고 덧글 달아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참고로 전 쭉 구독료를 받지않을 생각입니다! 봐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한데..ㅠㅠㅠㅠㅠㅠㅠㅠㅠ
사랑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