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외과 VS 소아과 :: 12
By. 아리아
어느덧 추워진 날씨를 간과하지 못하곤 얇은 가운만 걸친 채 봉사활동을 가기로 예정되어 있는 선생님들을 기다리고있었다. 응급상황만 터지면 우사인볼트마냥 달려오시는 분들은 다들 어디가신건지 두꺼운 패딩에 몸을 감싸 어기적어기적 걸어나오는 선생님들을 바라보다 가운을 여몄다.
툭-
따뜻해진 어깨와 익숙한 향기에 고개를 돌리자 그의 패딩으로 추정되는 검은색의 긴 패딩과 인상을 찌푸린 채 저를 바라보는 그가 있었다.
"누가봐도 한겨울 날씬데 가운 하나가 뭡니까. 가운 하나가."
"한겨울은 더 춥거든요?"
괜히 툴툴대는 그에 장단을 맞춰 살짝 흘겨보며 패딩을 팔에 끼워넣으려 바둥거리니 자연스레 옷을 입혀주는 그에 배시시 웃어보였다.
"김교수님!"
마주보며 미소를 머금고있다 저를 부르는 목소리에 누가 먼저라할 새도 없이 서로를 등지며 뒤돌아섰다. 다정한 관계로 발전하기 전의 우리처럼.
"다 도착하셨죠? 버스 타겠습니다."
직원분의 말에 일사분란하게 줄을 서 관광버스에 올라탔다. 오랜만에 맡아보는 관광버스 특유의 향에 기분은 괜시리 들떠 콧노래를 자아냈다. 앞쪽에서 탄 덕에 비어있는 많은 자리 중 대충 창가 쪽에 있는 자리에 앉아 이어폰을 꽂았다.
나른한 피아노 선율이 제 귀를 맴돌며 가을아침의 따스한 햇살이 창을 통해 저를 비추자 어느새 노곤노곤해진 눈꺼풀을 살며시 감겨주었다.
"..많이 피곤한가보네."
달달한 노랫소리보다 더 달달한 그의 목소리가 들렸던 것 같기도 하고.
***
"어제 공지했던대로 자기 파트 맡아주시면 되고, 점심은 열두시 반부터 마을회관으로 오시면 됩니다. 화이팅!"
예과 시절부터 봉사를 다니던 곳이라 이젠 지름길까지 빠삭하게 알정도로 익숙해진 마을이었지만 교수직에 오르고 나선 자주 오지 못했던 터라 오랜만에 볼 얼굴들을 떠올리며 검진을 준비해갔다.
근데, 왜 권교수가 내 옆에 있는거지?
"...권교수님, 왜 여기 계세,"
"누나!"
"어, 헐. 언제 이렇게 컸어!"
결국 제 의문은 해결되지 못한 채 훌쩍 커버린 아이에게 반가움을 표시했다.
"오, 누나 벌써 교수?"
"응, 좀 멋있냐? 저쪽 팔 줘. 피 뽑아야 돼. 대학은? 붙었어?"
"당연하죠- 전액 장학생!"
"장하다 내새끼."
아직 의학적 지식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던 예과시절, 선배들을 따라 무작정 왔던 제게 주어진 일은 과외였다.
한창 사춘기라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고있는 아이들의 비위를 맞춰가며 가르쳤던 게 엊그제 같은 데, 어느새 커버려 사회의 일원이 되어가는 모습을 보니 부모의 마음이 제 가슴 한켠을 파고들었다.
"형이 누나 보고싶다던데 불러올까요?"
"아, 성현이? 걔 서울로 취직하지 않았어?"
"주말엔 밭일 도와주러 와요. 누나, 피 다 뽑았는데."
"아아, 솜으로 누르고 있어. 옆으로 가세요-"
제가 맡은 파트를 다 끝내곤 옆으로 보내려 고개를 돌리자 쭉 찢어진 눈으로 제 자리를 노려보고 있는 그에 당황해 급히 시선을 내려 이미 다 정리되어있는 혈액키트를 괜히 만지작거렸다. ..좀 무섭다.
"아, 선생님 저 좀 아픈데.."
"원래 이럽니다."
입술을 쭉 내민 채 혈압체크기를 쭉 잡아당기는 그의 모습에 웃음이 새어나왔다.
"선생님들 점심 드세요-"
시골 마을의 할머니들께서 상다리 휘도록 차려진 음식들에 눈이 번쩍 뜨였다.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자 패딩모자를 덮어씌우곤 저를 지나쳐가는 그를 따라 맞은편에 앉아 수저를 들었다.
"..."
"..ㄱ,권교수님 드세요."
"괜찮습니다. 김교수님 드세요. 아까부터 보고 계시던데."
식성향도 비슷한지 자꾸만 반찬그릇 위에서 부딪히는 젓가락에도 피실피실 웃음이 제 입가를 맴돌았다.
순수한 웃음의 아이들도, 인자한 미소의 어르신들도 오랜만에 느끼는 따스함에 다들 함박웃음을 지으며 붉은 노을이 지는 하늘을 떠나보냈다.
***
"고생많으셨어요. 건배!"
식당 여기저기서 잔을 부딪히는 경쾌한 소리가 이어졌다. 이게 얼마만의 술인지, 소주잔을 가득 채운 술을 단번에 들이켰다.
목을 촉촉히 적시는 시원한 느낌에 크- 하는 추임새를 곁들이자 맞은편에서 건네는 날카로운 눈빛이 저를 향했다.
'잔 내려놔요.'
입 모양으로 벙긋거리는 그에 어느새 잔을 슬며시 내려놓으던 찰나 그의 옆에 딱 붙어 콧소리를 흘리고 있는 레지던트가 제 시야에 들어왔다. 제 마음을 확 덮어버리는 짜증이라는 감정에 결국 또 한번 제 잔을 비워냈고 권교수의 표정은 더욱 굳어졌다. 모르겠다, 마시고 죽자.
***
권교수 시점
"야야, 찬아. 나 쩌어기 소주 좀 갖다주라."
"교수님 많이 취하신 것 같은데 괜찮으시겠어요?"
"웅? 나 한개두 안 취했는데! 헤-"
마시지말라고 한 내 말은 다 무시하고 다 받아마시더니 어느새 붉은 볼을 띄운채 주정을 부리고 있는 그녀에 내 미간의 주름은 더욱 깊게 패였다. 하필 술주정이 애굔건지, 내 앞에선 보여주지도 않던 온갖 애교를 후배 앞에서 남발하고 있는 그녀를 보자니 무언가 부글부글 끓는 느낌에 잔을 비워냈다.
"빨리빨리, 갖다 줘어. 웅?"
"여깄습니다."
"..어? 감사합니다-"
굳은 얼굴로 술병을 건네자 병을 꼭 끌어 안은 채로 꾸벅 인사를 하는 그녀였다. 아 진짜, 귀엽긴 더럽게 귀엽다.
"술이다 술ㅅ, 어어. 줬다 뺏어가는 게 어딨어요!"
"여기요."
무슨 용기가 날 움직인 건진 모르겠지만 그녀의 팔목을 잡아 식당 앞에 널리 자리잡은 바닷가로 향했다.
"추워어.."
차가운 바닷바람을 대면하자 인상을 쓰며 내 품 속을 파고드는 그녀에 내 입꼬리는 제자리를 찾지 못한 채 씰룩거리기 시작했다.
"김교수 누가 그렇게 많이 마시랬습니까."
"아니이, 안 마시려고 했는데."
"뭐요, 자꾸 줘서 거절 못 했다고 하려는거면 그냥 안겨 있어요."
"그런 거 아닌데!"
내 품에 안긴 채로 올려다보며 말꼬리를 늘이는 그녀의 이마를 살짝 밀었다.
"그런 거 아니면, 뭡니까."
"그 권교수님 옆에 여자 레지가 막 자꾸, 막. 몰라요..나도 안 껴본 팔짱인데 막 끼고."
입을 삐죽내밀곤 불만을 토로하는 그녀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예뻐죽겠다, 진짜.
"술 진짜 쪼오끔 마셨으면서 취한 척 하면서 오빠오빠 거리고."
"아니, 권교수님은 왜 또 그걸 받아줘요? 그냥 무슨쌤하면 될 걸 굳-이 이름 다정하게 불러주고.."
"내 이름도 그렇게 안 불러줬으면서"
"김교수도 오빠라고 안 불러줬잖습니까."
정곡을 찌르는 내 말에 두 눈이 동그래졌다 이내 볼을 붉히며 배시시 웃다 가슴팍에 얼굴을 묻는 그녀였다.
"오빠-"
"네? 잘 안 들리는데."
"아아, 오빠아. 안 들려요? 응?"
눈이 휘어져라 웃는 그녀의 모습이 어두운 밤바다를 환히 비추었다.
"ㅇㅇ야."
"응?"
쪽-
"사랑해."
밤바다의 철썩이는 파도소리도, 식당 안에서 들려오는 시끌벅적한 이야기소리도, 갈매기의 울음소리도 모두 음소거 된 듯 고요해졌고 따스한 입맞춤이 그 정적을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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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는 권교수의 사랑고백.네 망했어요. 저도 알아요...쥬륵..뭐 맨날 질투하고 뽀뽀하고 레파토리가 똑같은 것 같지만 원래 연애 초반은 달달해야죠핳 사실 작가의 성격이 조금 들어간 것도 있긴해요....점점 서로에게 익숙해져가는 커플이네용뉴뉸 지금까진 썸같은 커플이였지만 이젠 점점 자기 감정도 표현하고 사랑한다는 말도 할 줄 알고 그런 걸 표현하고 싶었는데 네 보기좋게 망했어요껄껄... 오랜만에 올리는 건데 이런 똥같은 글이라 죄송해요..앞으로 더 노력하겠습니다!!!!!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