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지 않으실지도 모르겠지만 제가 지금 할 얘기는 모두 다 사실이예요.
사실 제가 아까 전에 주인님이 데려온 그 고양이예요."
"응? 뭐라고?"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말에 나도 모르게 속으로 생각했던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와버렸다.
그보다 주인이라니? 후- 후- 릴렉스. 심호흡 한 번 하고,
이성적으로 생각하자 김종인.
"다시 한 번 말해줄래요? 내가 지금 좀 피곤해서 잠깐 헛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
"헛소리가 아니라 정확하게 들으셨어요. 제가 아까 그 하얀고양이 맞아요. 골목길에서 울고 있는데
주인님이 여기로 데려오셨잖아요. 오빠가 주인 찾아줄게~ 하면서"
맞다. 정확하게 알고 있다. 내가 데려오긴 했는데... 난 분명 고양이를 데려왔거든?
근데 왜 지금 내 눈 앞엔 앞에서 보나 뒤에서 보나 옆에서 보나 어디서 보더라도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는
소년이 앉아있는건데? 잠깐. 그럼 나... 수컷고양이한테 오빠라고 한거야..? 생긴건 예쁘장하게 생겨서
당연히 암컷일 줄 알았는데..가 아니라!! 애초에 고양이가 사람으로 변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잖아?
소년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자꾸 정상적인 사고를 하기가 힘들어진다.
"아니 그게 맞긴 한데.. 그럼 지금 제 눈 앞에 보여야 하는건 그 쪽이 아니라 고양이여야 하거든요?
지금 나 꿈꾸는건가요? 어떻게 고양이가 사람이 돼요. 무슨 구미호도 아니고."
"어 음... 따지고 보면 구미호랑도 비슷하긴 한데..."
응? 그건 또 무슨소리?
"전 반은 고양이고 반은 인간이예요. 아.. 그게 아닌건가.. 어쨌든 인간은 아니예요.
굳이 말하자면 묘족(猫族)이라고 해야하려나"
"묘..족?"
"네. 저의 조상은 인간이 아닌 고양이예요. 그래서 저도 고양이구요. 해가 떠있는 낮에는 고양이의 모습을 하고
밤이 되어 12시인 자정이 지나면 인간의 모습으로 변했다가 동틀 무렵이 되면 다시 고양이의 모습으로 돌아가요"
"그럼 지금은 12시가 지나서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건가요?"
"네. 원래는 고양이였지만 점차 세월이 흐르면서 평범한 고양이와는 다르게 종족이 나뉘어 묘족(猫族)이
생겨났어요. 어릴 때는 완전한 고양이의 모습으로 지내다가 성장하면서 점점 인간의 모습을 닮아가요.
인간의 모습으로 있는 시간도 길어지구요. 그렇지만 성인이 되면 둘 중 하나의 삶을 버리고 하나의 삶을 택해야해요.
완전한 고양이가 되던가 아니면 고양이의 모습을 버리고 인간이 되어 인간사회에서 섞여 살거나."
"그럼 그 쪽은 어떻게 되는건데요?"
"저는 고양이의 삶 대신에 인간의 삶을 택했어요. 아직 성인이 되지 않아서 낮에는 고양이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리고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저 나름 이름도 있거든요? 그 쪽이란 호칭 대신에 이름을 불러주셨으면 좋겠는데.."
도저히 믿기 힘든 소리를 잘도 줄줄 내뱉는다. 이걸 진짜 믿어야 돼 말아야 돼? 심히 걱정된다.
그냥 미친 정신병자가 옷도 입지 않은 채 집으로 쳐들어와서 이상한 소리를 짓거려대는거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소년의 눈을 보면 아까 그 작고 귀여운 새하얀 털을 가진 아기고양이가 떠올라서 사고의 흐름을 방해한다.
"네? 아... 미안해요. 이름이 뭐죠?"
"경수예요. 도경수. 형아는 이름이 뭐예요?"
고양이가 인간같은 이름이 있다는 것도 신기한데 갑자기 나보고 '형아'란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내가 '오빠'인 줄 알았는데 이젠 '형아'가 됐다.
그나저나 형아... 귀여운데? '형'도 아니고 '형아'라니...
"아- 난 김종인이예요"
"헤헤- 그럼 종인형아라고 불러도 돼죠? 말 놓으세요 제가 더 어리잖아요."
웃을 때 눈꼬리가 아래로 내려가고 입꼬리는 귀엽게 말려 올라가 하트모양이 되는데 진짜 아까 본 고양이와 흡사하다.
정말 이 소년의 말대로 고양이가 사람으로 변한걸까?
왠지 소년의 표정을 보고 있자니 그대로 믿어야 할 것 같다-사실 믿음을 넘어서 이제 완벽하게 고양이가 소년이라고
일치시키고 있었다-.
"그래요. 그럼 말.. 놓는..다?"
오늘 처음 만나서-만난지 한 시간도 채 안된(사람으로 변한 모습은 본 지 한 시간도 되지 않았으니까)- 이 소년이
왜 이렇게 가깝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인데 말도 놓고 저렇게 헤헤거리며 웃는 모습을 보면 어쩐지 이 소년을 내 옆에서
떼어놓을 수 없을 것 같다.
"아무리 그래도 난 아직 그 쪽이 묘족? 이란걸 믿기 힘드네요"
"그 쪽이 아니라 경수요. 그리고 말 놓으랬잖아요 형.아."
"아.. 어쨌든 난 내 눈으로 직접 니가 고양이로 변하는 모습을 봐야 믿을 수 있을 것 같아.
이건 널 못믿어서 그런게 아니라 솔직히 누구라도 믿기 힘든 얘기잖아"
"이해해요. 저라도 그렇게 생각했을 거예요. 여태까지 만나왔던 사람들도 전부 믿지 못하고 날 쫓아냈거든요.
이렇게 내 얘기를 들어주고 나한테 따뜻하게 대해준 사람은 형아뿐이예요. 고마워요"
경수가 고맙단 말을 하며 웃는데 눈가를 찡긋거리는게 아까 고양이가 지었던 것과 심히 흡사하다.
"그럼 동틀때까지 내가 궁금한거 물어보면 좀 알려줄래?"
"대답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뭐든지요."
"낮에는 고양이잖아, 그럼 밤에는 사람이 되는데 어떻게 먹고 자고 해결하는거야? 옷은 없어?"
"낮엔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놀다가 밤이 되면 빈 건물이나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캄캄한 곳에서 보내요.
옷은 뭐... 낮에 입고 다닐 일이 없는데다 사람에서 고양이로 변하면 옷이 몸에 맞지 않으니 가지고 다닐 수도 없구요.
먹는건 형아처럼 나보고 귀엽다 해주는 사람들이 낮에 먹을거 줘서 밤엔 안먹어도 돼요.
고양이는 원래 많이 먹지 않으니까요."
"아.. 그럼 부모님은..?"
"부모님은... 계시지만 저는 지금 인간이 되기 위해 묘족의 전통방식대로 나름 수련중이라서 혼자 떠돌면서
뭐든 보고 익히고 있어요. 이제 얼마 안남았거든요. 완전한 인간이 되는 그 날이"
그렇게 말하는 경수는 어딘가 기대에 부푼 표정을 하며 반짝이는 눈을 빛내고 있었다.
"언제.. 인간이 되는데...?"
"돌아오는 제 생일. 스무살이 되는 제 생일이 지나면 전 인간이 돼요. 그럼 낮에 고양이로 변하는 일은 없겠죠"
"생일이... 언젠데..?"
"1월 12일이요. 내년 1월 12일이 되면 인간이 될 수 있어요"
"그렇구나... 정말 얼마 안남았네? 그때까지 어디 지낼 곳이라도 있어?"
생일이 지나면 인간이 된다는 얘기를 했을 때와는 다르게 표정이 시무룩해지더니 어깨가 추욱 쳐졌다.
마치 머리 위에 고양이 귀라도 달렸다면 귀 역시 추욱 가라앉아 있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계속 보다보니 정말 하는 짓도 그렇고 표정이나 몸짓에서 고양이와 같은 느낌이 뿜어져 나온다.
말투도 뭐랄까. 귀엽게 형아 하면서 얘기하긴 하지만 말투 자체가 약간 무심한듯 시크하면서 진짜 고양이같은 느낌을 준다.
"저기 그럼... 너만 괜찮다면 니 생일이 되는 그 날까지 우리 집에서 지낼래..?"
"ㅈ..정말 그래도 돼요?!"
말을 꺼내기 무섭게 경수가 눈을 빛내며 물어오더니
"고마워요 형아" 하며
갑작스레 다가와 두 팔로 날 껴안더니 내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부빗거리며 날 올려다본다.
이 포즈... 분명 낯설지 않은데말야...
경수는 고양이의 모습을 하고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나에게 안겨왔지만 난 어쩐지 얼굴을 붉히게 된다.
고양이를 껴안는거랑 다 벗고 흰 이불하나 두르고 있는 하얀 나신의 소년을 껴안는건 다르잖아..
"저기 있잖아... 고마우면 이제 그만 나 좀 놔줄래..? 내가 좀 피곤해서 얼른 씻고 한 숨 자야할 것 같아."
그러자 경수가 아차 하는 표정을 짓더니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간다.
"그럼 나 다시 고양이로 변하는거 어떻게 보려구요?"
"굳이 보지 않아도 될 것 같아. 뭐 오늘만 날도 아니고."
내 말에 경수는 또 감동이라도 받은 표정으로 날 쳐다본다.
"그럼 나 씻고 올게. 침대 가서 먼저 잘래?"
"가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얼른 씻고 오세요"
경수가 말을 마치더니 이불을 질질 끌고 방으로 들어간다.
그 사이에 얼른 대충 옷가지와 속옷, 수건을 챙겨 씻고 나와 시계를 보니 시간은 어느덧 새벽 세시.
머리를 털며 방으로 들어서자 경수가 침대 구석에서 이불을 칭칭감고 누워있다.
아까처럼 자는걸 깨울까봐 조심스럽게 불을 끄고 침대 한 쪽으로 들어서서 이불을 덥고 누웠더니
자는 줄 알았던 경수가 옆으로 바짝 붙어온다.
"아직 안잤어?"
"형아 기다린댔잖아요. 잘자요 형아."
"그래. 너도 잘자.."
"아 참. 참고로 말하자면 나 꼭 고양이 먹이가 아니어도 다 먹을 수 있어요. 굳이 고양이 우유나 분유도 필요 없구요,
통조림 없어도 돼요. 딱딱해서 소화안되고 매운 것만 아니면 되니까 식비는 신경쓰지 말아요. 그럼 진짜 잘자요 형아."
어둠 속에서 빛나던 경수의 눈이 감기고 이내 곧 나도 잠의 나락으로 빠져들었다.
커튼을 치지 않은 창문 사이로 아침햇살이 비춰오고 눈이 부셔 눈을 떴다가 나른한 느낌에 다시 눈을 감고 잠시
가만히 있었다. 눈을 떠 시계를 보니 7시 40분. 주말인데 늦게 잤음에도 불구하고 일찍 눈이 떠져버렸다.
혹시나 해서 옆자리로 시선을 옮기니 어제 옆에서 잠들었던 경수는 온데간데 없고 내가 데려온 흰색털을 가진
새끼고양이가 몸을 웅크리고 잠들어 있었다.
진짜 고양이었구나.
새삼 느끼게 되니 신기하다. 진짜 이런 일이 가능한건가 싶기도 하고 아직도 내가 꿈을 꾸는건 아닐까 싶어
양 볼을 꼬집어보기도 하고.
몸을 옆으로 돌려 고개를 팔에 괴고 고양이를 쳐다보는데 엄청 편해보인다.
괜히 귀여워서 코 끝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기도 하고 몸통을 쓰다듬기도 하자 고양이가 무심코 잠결에 앞 발을
들어올려 내 손가락에 턱- 올려놓는다.
하지 말라는건가 이거.
아아. 너무 귀엽다. 내가 언제부터 이런 새끼고양이를 좋아하게 된걸까.
난 분명 애완동물이라면 별 관심없던 인간이었는데.
경수가 단지 순도 100%의 고양이가 아니라서 그런걸까..
아님... 경수라서 좋아하게 된걸까.
상쾌한 아침의 시작이다. 앞으로 밤에만 인간으로 변할 이 당돌하지만 귀여운 새끼고양이 경수가 있어 생활의
즐거움이 늘어날 것 같다. 입가에 자꾸만 미소가 걸리는게 아빠미소라도 지을 기세라서 아침식사라도 차릴까 싶어
조심스레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서는데, 언제 일어났는지 모를 경수가 쪼르르 따라나오려다가 침대의 높이때문에
내려오지 못하고 낑낑대며 울음소리를 내길래 다시 되돌아가서 경수를 품에 안고 나왔다.
그러자 또 고개를 가슴에 부빗부빗하며 동그랗게 눈을 뜨고 날 올려다본다.
아무래도 이거... 경수의 전매특허이지 않을까 싶다.
그 뒤로 크게 달라질 일상은 없었다.
단지 회사일을 끝마치고 피곤에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오면 하루종일 집에서 티비를 보거나-리모컨으로 버튼 눌러서
채널 돌리는 법까지 세심하게 알려줬다- 낮잠을 자거나 준비해둔 먹이를 먹던 경수가 문 앞까지 쪼르르 달려나와
날 마중해준다는거?
그러면 난 경수를 안아들고 방으로 향해 침대에 내려놓고 옷을 갈아입고 목욕을 하고.
목욕을 할동안 경수는 방 침대에서 양 발을 가지런히 모으고 엎드려 내가 나오기만을 기다린다.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욕실에서 나오면 경수는 앙증맞은 다리로 벌떡 일어나 꼬리를 길게 세우고 살랑살랑 흔들어댄다.
나름의 애교를 부리는 것 같다.
그러면 나도 경수를 안아들고 쓰다듬어주며 주방으로 가 같이 저녁식사를 한다.
난 하얀 쌀밥. 경수는 하얀 우유.
식사를 하고난 뒤에는 거실 소파에 퍼질러 앉아 경수를 품에 안고 같이 티비를 보다가 12시가 되면 경수는
사람으로 변하고, 우리는 한두시간정도를 얘기하다가 침대에서 잠이든다.
경수는 우리 집에 온 첫날부터 늘 내 품에 파고들어 팔을 베고 잠이든다.
그렇게 일주일을 지내다보면 금요일 저녁이 찾아오고 주말엔 집에서 꼼짝않고 사람이 된 경수와 밤새 영화를 본다던가
얘기를 하며 회사를 나가느라 같이하지 못했던 시간을 충당했다.
내가 집에 있는 동안은 나에게서 떨어지는 일이 거의 없다.
경수는 일반 평범한 고양이가 아니라서 그런지 몸이 거의 자라지 않는다.
어차피 인간이 되어야 할 몸이라서 그런걸까. 몸집도 거의 그대로고 안았을 때 무게도 늘지 않았다.
또하나 알게 된 사실이 있다면, 경수가 내게 안겨 가슴에 얼굴을 부비며 날 올려다 보는 것은 경수가 기분이 좋을 때
나오는 하나의 습관이라는 것.
그만큼 우리는 더없이 가까워지고 있었고 서로의 마음 속에 큰 존재로 자리잡고 있었다.
12월이 거의 끝나가고 연말이 다가오면서 경수의 기분도 한층 업되었다.
그만큼 날씨도 추워져 이젠 사람으로 변하면 맨몸이 아닌 옷을 입도록 하기 위해 얼마 전엔 백화점에서 경수가 또래에
맞는 속옷과 옷 여러벌을 구입했다. 어차피 완전한 인간이 되면 꼭 필요한 것들이니까.
그래서 요즘엔 고양이로 변할 때를 제외하곤 밤이 되면 옷을 입는다.
이것도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꼭 지켜야하는 것들 중에 아주 사소한 부분.
경수는 서서히 인간으로서의 삶을 준비해가고 있었다.
"형아- 내일이 무슨 날인지 알아?"
"내일은 우리 경수가 생일이지~? 왜? 뭐 선물같은거 받고싶은거라도 있어?"
"으음.. 말하면 소원 들어줄래?"
"너 하는거 봐서.. 흐흐"
금요일 저녁이었다. 그리고 내일은 경수가 손꼽아 기다리던 그의 생일.
경수는 요즘들어 한참 하이텐션이었던 기분이 축 가라앉아 초조하기라도 한 듯 이리저리 거실을 배회했다.
"왜그래? 무슨 걱정이라도 있어?"
"으응.. 그건 아니고 그냥... 떨려서..."
"뭐가 떨린다고 그래. 니가 그렇게 손꼽아 기다려온 날인데. 형아도 옆에 같이 있잖아. 불안해하지마. 응?"
"그냥... 이젠 낮에도 사람의 모습으로 지내는거잖아... 앞으로 고양이의 모습으로 지낼 순 없으니까..."
"그래서 그렇게 걱정이야?"
시무룩해져 있던 경수가 내 품으로 안겨왔다.
"오늘은 이렇게 꼬옥 안고 자자 형아"
"그래 우리 경수. 이만 자자"
"응 형아도 잘자"
경수와 함께 침대에서 잠이 들었다.
아침이 되어 일어나보니 역시나 품엔 새끼고양이가.
오늘로써 고양이의 모습을 한 경수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왠지 기분이 이상하다.
그래서 하루종일 경수와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고 밥먹는 시간까지 꼬옥 붙어지냈다.
그리고 어김없이 자정은 찾아왔다.
"생일 축하해 경수야. 이제 고양이가 아닌 인간 도경수가 되는거구나? 근데 왜 이렇게 시무룩해있어"
"그냥... 긴장되서..."
"긴장하지 말고 평소처럼 행동해"
그 말을 마지막으로 둘 사이엔 아무런 대화도 없었다.
평소처럼 티비에서 해주는 심야영화를 보고 영화가 끝나면 채널을 돌리다 재방송으로 방영되고 있는 쇼프로를 보고.
쇼프로가 끝나면 다시 채널을 돌려 일주일 전에 해줬던 영화를 다시 보기도 하고.
"형아.. 몇 시야?"
"어? 4시 47분"
평소처럼 티비를 보며 시간을 죽이다보니 어느새 5시가 얼마 남지 않았다.
겨울이니까 해가 뜨려면 적어도 2시간 정도는 있어야한다.
결국 그렇게 해가 뜨기만을 기다리다가 우리는 졸음이 밀려와 서로의 어깨와 머리에 기댄 채 잠들어버리고 말았다.
겨울의 시린 아침햇살이 베란다를 통해 들어오고 소파에 앉아 잠들었던 찌뿌둥한 몸으로 인해 미간을 찌푸리며 눈을 떴다.
어깨에 실려있는 무게의 정체를 향해 시선을 아래로 돌리자 보이는 것은,
새끼고양이가 아닌 눈을 감기 전 마지막으로 보았던 경수의 모습 그대로였다.
이젠 밤 뿐만 아니라 낮에도 사람으로써 함께할 수 있다는 생각에 행복해져서 경수의 코 끝을 톡톡 두드리며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경수야- 일어나야지. 아침이야-"
"으응..."
경수가 양 손으로 눈을 비비더니 살며시 눈을 떴다.
깨어난 경수의 손을 잡고 방에 있는 거울 앞에 섰다.
"자 봐. 이젠 해가 떠도 달이 떠도 넌 인간 도경수야"
거울을 들여다 본 경수는 잠시 아무런 말이 없더니 이내 거울 속의 나를 향해 환하게 웃었다.
"인간으로써 맞는 첫번째 생일을 축하해 경수야."
경수가 뒤돌아서 나를 꼭 껴안았고 나도 그런 경수를 양 팔 가득 품에 안아 꽈악 안아주었다.
경수를 데리고 나와 거실 소파에 앉힌 후에 방에서 커다란 상자 하나를 가지고 나왔다.
"이게 뭐야?"
"생일선물. 한 번 풀어봐"
경수가 천천히 상자를 묶고 있는 리본을 풀고 뚜껑을 열자, 내가 하나하나 준비했던 숟가락과 젓가락, 밥공기, 칫솔,
잠옷 등의 생활용품이 보였다.
"이제 너 인간으로 살아야 하니까 꼭 필요할 것 같아서 준비했어. 맘에 들어?"
경수가 양 손에 숟가락과 젓가락을 하나씩 쥐고선 물기어린 눈으로 날 쳐다봤다.
"내 생에... 최고의 선물이야. 정말 고마워 형아..."
"에이~ 앞으로 이것보다 더 좋은 선물들 많이 해줄텐데 이런걸로 감동받으면 어떡해?"
"그래두.."
"그것보다 너 가지고 싶다고 한 거 있지 않았어? 뭔데? 무리한거 아니면 형아가 사줄게"
"음.. 가지고 싶은건 없고 소원은 있어"
"뭔데뭔데?"
"형아가... 나 사람이 될 때까지 같이 지내자고 했잖아... 그런데... 그냥 나 여기서 쭈욱 형아랑 같이 살면... 안돼?
내가아.. 형아 회사에 있는 동안 청소도 하고 빨래도 하고 밥도 할게. 응?"
경수가 애처로운 눈으로 날 쳐다보며 말한다. 확실히 어려서 그런가 걱정하나 해결되면 또 이 걱정 저 걱정이 늘어난다.
그것때문에 고민했을 경수가 귀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해서 품 안에 데려와 머리를 감싸고 꼬옥 안아주었다.
"그런 것 때문에 몇날며칠을 그렇게 고민한거야? 내가 널 어디로 보낸다구. 너 어디 갈 데라도 있어?
니가 간다고 해도 내가 못보내줘. 그러니까 그런 걱정하지 말고 지금처럼 앞으로도 계속 함께 지내면 되는거야.
풉- 그런데 니가 무슨 밥을 하고 빨래를 해... 하는 법은 알고?"
"이씨... 배우면 되잖아!!! 나 똑똑해!!! 배운건 안까먹는단말야- 그리고 고양이가 어떻게 밥을 하고 청소랑 빨래를
할 줄 알았겠어? 나 인간된 지 한시간도 안됐거든!! 이 아저씨야"
"ㅁ...뭐어?? 아저씨...?"
"그래 아저씨. 생각해보니까말야... 형아랑 나랑 열살이나 차이나잖아?? 난 이제 스무살, 형아는 서른.
그럼 아무래도 형아라고 부르기엔 좀 무리가 있는 것 같애."
"ㄱ..그렇다고 갑자기 형아에서 아저씨가 되는 게 어딨어.. 나 아직 만으로 스물 여덟이야.. 밖에 나가면
스물넷 정도로밖엔 안본다구.."
"흠- 그럼 형아 하는거 봐서 형아라고 부를지 아저씨라고 부를지 결정할게. 된거지 그럼?"
베시시 웃는 경수를 보니 뭐 아무렴 어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경수를 안고 데굴데굴 바닥을 굴렀다.
"귀엽다 우리 경수"
"뭐어? 잘 못들었어"
"귀엽다구"
"아아. 나도 사랑해 형아"
이로써 도경수의 전매특허 기술이 또 하나 늘어난 셈인가.
앞으론 밤에 침대에서 전처럼 조용히 손만 잡고 잠들 수 없을 것만 같은 위험한 기분이 든다.
"조심해라 경수야. 이 형아가 사실... 짐승이 될 수도 있어"
"응? 뭐라구?"
"아냐. 나도 사랑한다구"
경수의 눈을 마주보며 이마와 코 끝 그리고 마지막으로 입술에 촉-하고 베이비 키스를 해주었다.
그러자 경수가 베시시 웃더니 내 얼굴을 붙잡고 여기저기 사정없이 뽀뽀세례를 퍼붓는다.
아아. 행복해서 죽을 것 같다. 너도 그렇게 생각해 경수야?
그렇게 우리의 행복한 아침이 지나가고 있었다.
굉장히... 유치하네요....(눈물)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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