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말이야···, 내가 너랑 눈이 마주쳤을 때, 그때부터였을까.
아니라면, 어디서부터 시작되어 온 걸까.
우리 무슨 사이야? 01
_순니
왜 그렇게 풀 죽어있어? 오랜만에 같은 한 식탁에 앉아 저녁을 먹는 지수가 나에게 물어왔다. 그런가? 나는 이내 내 표정을 자각하고는 입꼬리를 억지로 올린다. 아냐, 별일 없어. No, I'm not upset. Just tired. 이렇게 말하면 지수는 내 시무룩한 표정을 뚫어져라 응시한다.
"I'm really fine. Don't worry."
지수는 내 말에 알았다고 하고 더는 캐묻지 않았다. 사실 오늘 낮에 있었던 일 때문에 쪽팔려서 말 못하는 건데. 나는 최대한 괜찮다, 라는 표정을 짓는다. 지수가 웨지 감자 몇 개를 집어다 내게 건네줬다. 이곳에서 내 입맛에 맞는 음식 중 하나였다. 역시 홍지수. Thank you- 내 얼굴에 화색이 도는 걸 봤는지 지수는 맛있게 먹으라고 말 한 뒤 기타를 챙기곤 이 층에 있는 저의 방으로 돌아갔다.
홍지수, 조슈아. 내 바로 옆방을 사용하고 있는 식구였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차갑게 생긴 지수가 무서워서 친해지기 어려울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가끔 나오는 멍한 행동이라던지, 엄마같이 잘 챙겨주는 성격이라던지, 그런 지수 덕분에 나는 어렵지 않게 적응할 수 있었다. 지수는 내가 조슈아 대신 홍지수라고 부르는 게 맘에 들었다고 한다.
***
"으아, 배불러."
나는 부른 배를 통통 두드리며 침대에 드러눕는다. 침대의 매트리스가 푹 꺼졌다 다시 올라온다. 몸이 흔들흔들, 침대의 흔들림에 맞추어진다.
한참을 나른하게 누워있다가도 창문에 보이는 어둑어둑한 밤하늘에 나는 커튼을 쳤다. 음, 그러니까 권순영···. 내 주변에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특이한 이름이었다. 그래서 그 세 글자의 이름이 더욱 내 머릿속으로 꿰차고 들어왔다.
제 이름, 권순영이에요.
계속해서 생각나는 그 상황이 여주의 얼굴을 닳아 오르게 한다. 내가 왜 그랬지! 여주는 베개에 얼굴을 파묻는다.
설마 첫눈에 반했다던가···, 나는 이내 고개를 젓는다. 그저 그 날의 날씨가 너무 좋아서, 지루하던 일상에 조금 특별한 일이 생긴 거라서, 그런 일시적인 착각일 뿐이라고 나는 되새긴다. 그러니까 차라리 처음부터 권순영을 만나지 않았던 거로 하자.
내가 예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안 좋은 버릇이었다. 무엇인가 시작하기도 전에 포기하고, 끝을 생각해버리는 그런 버릇.
"여기까지 와서 복잡한 일 만들고 싶지도 않구···."
"너 또 그거 때문에 그렇게 멍청하게 행동하냐."
"···, 아냐 그런 거."
"아니긴."
머리가 꽤나 복잡해졌기에 나는 민규에게 전화를 걸었다. 뒤죽박죽 한 내 생각들을 차곡차곡 정리해 줄 수 있는 건 김민규밖에 없다고 생각해서 그랬다.
그러나 아무래도 많이 나올 것 같은 통화요금에 나는 전화를 어영부영 끝낼 수밖에 없었다. 나는 머리를 헝클고는 침대로 풀썩 누워버렸다. 내게 좋아한다는 감정은 너무 어려웠다.
-야, 김여주.
-문자 보내지 마라···. 누나 피곤하다.
-누나는 개뿔.
나태하게 할 일도 하지 않고 누워있는 나는 울리는 진동 소리에 핸드폰을 집어 들었고, 으, 김민규. 민규의 문자를 본 나는 앓는 소리를 낸다. 지수가 엄마라면 너는 내 아빠라도 되는 것처럼 행동한다니까.
나는 문자를 하는 김민규에게 빨리 자라고 말하며 답장을 받지 않겠다 으름장을 놨다. 그러나 민규는 한국은 아직 해가 쨍쨍한 대낮이라며 반박을 한다.
-네 마음대로 해.
-뭐를?
-너가 마음 가는 데로 하란 말이야. 그러려고 여행 간 거니까.
나는 그 마지막 문장을 보고는 눈을 몇 번이나 느릿하게 껌벅거렸다. 천천히 생각을 할 때면 나오는 내 습관이었다. 내 마음대로···. 나는 민규가 보낸 문자를 한참이나 보다가 고맙다고 답장했다. 핸드폰 화면이 어두워지자 불빛 하나 없는 내 방 안도 어두컴컴해졌다. 그 이후가 기억이 잘 나지 않는 게, 사실 그대로 눈을 감고 잠들어버린 것 같다.
***
날씨가 여전히 흐릿한 게, 역시 이곳의 날씨에 적응하는 건 어려울 거 같다고 생각한다. 여주는 추운 날씨에 와인색 목도리를 둘둘 목에 둘러매고는 밖으로 나간다. 금방 지수의 배웅을 받고 나오는 참이었다. 여주의 발걸음이 평소와는 조금 달라 보인다. 느긋한 건지, 혹은 불안한 것인지, 그게 좋은 의미에서인지는 아직 잘 모른다.
여주는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은 하늘을 바라본다. 아, 우산 안 챙겨왔다···. 그러나 다시 발걸음을 돌리지 않는다. 그때의 익숙한 길거리, 그러나 그때와는 다른 나쁜 날씨가 꽤 이질적이다. 사실은 꿈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여주가 발걸음을 멈춘 곳은 그 장소에 있던 작은 카페였다. 네 마음대로 하라는 거야. 민규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이른 아침이라 그랬는지, 혹은 주말이라 모두 잠에 빠져있는 것 인지, 길거리에는 아무도 없었고 카페는 문이 닫혀있었다. close. 크게 걸려있는 간판이 조금 미워지려는 듯 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다. 이렇게나 날씨가 변덕스러워서 이곳 사람들은 항상 우산을 가지고 다니거나 모자가 달린 옷들을 즐겨 입었다. 여주는 한 방울, 두 방울 내리는 빗물에 젖어 들어갔다. 이윽고 소나기가 내린다. 시원하게 내리는 빗줄기가 여주의 옷과 머리카락을 흠뻑 젖게 하고 빗물이 턱을 타고 뚝뚝 떨어져 내린다. 여주는 결국 다음에와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몸을 돌리려는 순간, 거세게 내리던 빗줄기가 멈춘다. 그러나 여주의 주변에서는 아직도 비가 내린다.
"우리 또 보네요."
"아···."
"감기들겠어요, 춥겠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요."
나긋나긋한 그 익숙한 목소리에 뒤를 돌아봤을 때, 그 남자는 우산을 내 위로 씌어주고 있었다. 우산의 자리가 부족한지 순영의 등이 빗방울에 의해 축축히 젖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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