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일이다. 어쩐 일로 하늘이 맑다. 겨울만 되면 우중충해지는 날씨에 나도 하루하루 우울하게 지냈는데,
그것도 벌써 삼 개월이 지났다.
내가 어느 정도 이곳에 적응할 때가 되었다는 의미였다.
우리 무슨 사이야? 00
_순니
휴학을 했다. 농사지을 때 씨를 뿌리듯 C만 열심히 받는 나에게 -그것보다 못하면 더 못했지 잘하지는 않았다.- 교수님께서는 내가 휴식이 필요하다고 하셨다. 나는 그걸 핑계로 휴학을 한 것뿐이다. 사실 지칠 대로 지친 건 맞긴 했다. 틈만 나면 수업 중에 옆자리에 앉아있는 민규에게 귀에 박히도록 자퇴하고 싶다, 라고 말했고, 민규는 질린다는 표정을 짓곤 했다. 내가 추욱 늘어져 있으면 민규는 가방에서 뜬금없이 사탕을 꺼내들었다. 항상 입에 사탕을 물려주는 김민규가 아니었으면 사실 이미 자퇴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민규는 내가 달콤한 걸 좋아하니까 그런 걸 들고 다니는 습관이 생긴 것이다. 특히 초콜릿 맛. 아무튼 나는 지쳤다는 걸 변명 삼아 대책도 없이 여행을 떠났다.
솔직해지자면 여행을 하고 나면 기분전환도 되고 내 인생에 전환점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사람은 모두에게나 인생의 전환점이 하나씩은 있다고 믿는 나였으니까.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말이 내게는 적용되지 않는 듯했다. 정말 재미없다. 그게 내가 나의 삶을 지칭하는 문장이었다. 그러니까, 이 우울한 어두운 날씨도, 적응되어버린 홈스테이 식구들도, 알아듣기 어려운, 하지만 익숙해진 언어도, 그리고 입에 맞지 않는 이곳의 음식들도 다 지루하다는 말이었다.
***
어쩐 일로 하늘이 맑다. 이곳은 겨울엔 항상 어둡고 눅눅한 기운이 돈다고 벤이 말해줬다. 음, 그러니까 맞겠지? 사실 영어를 잘 하는 편은 아니어서 제대로 알아들었는지는 알 수 없다. 아무튼 체감으론 눅눅하고 우중충하고, 그리고 사람을 더욱 우울하게 만드는 날씨였다. 그래서 날씨가 맑을 때면 내 기분도 조금은 설렌다. 혹시 오늘은 좀 특별한 일이 생길까, 하는 기대감이었다.
"Hey, Where are you going?"
얼마나 오랜만에 나가는지 모르겠다. 그걸 느낀 건 나뿐만은 아니었는지 홈스테이 식구 중 한 명인 지수가 내게 어딜 가냐고 물어온다. 아무리 내가 우울하게 있었다고 해도 설마 죽으러 나가겠니.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어오는 지수에게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웃으며 말했다.
"Ah, I'm just going outside."
"Alright, see ya"
지수는 뭐, 그래 네가 알아서 하겠지. 라는 표정을 하고 자신의 방으로 다시 들어간다.
***
옷도 완벽하고, 화장도 잘 됐고. 나는 오랜만에 기분 좋게 시내로 나왔다. 사람들도 날씨가 좋아서인지 많이 나와 있었다. 정말로 오랜만에 보는 풍경들에 나는 조금 기분이 좋아졌던 것 같다. 그런 내 눈에 보이는 어느 작은 카페. 개성도 없고, 예쁜 인테리어라고 장담할 순 없었지만 다른 건물들과 꽤 어우러지는 게 마음에 들어서 나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딸랑- 울리는 종소리에 내 마음은 울리고.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그 순간 남자와 눈이 마주친 내 마음은 두 번 울리고.
"찬아 주문 좀 받아줄래?"
"네-"
나의 귓가로 익숙한 언어가 들려왔다. 삼 개월 만에 처음 듣는 한국어였다. 아, 역시 한국인 맞구나.
"What would you like to order?"
"Um... chocolate frappes please."
찬이라고 했던 아이는 내 주문을 받고는 그 남자에게 다가갔다. 그 아이는 많이 어려 보였다. 고등학생 정도라고 나는 짐작했다.
그 아이에게 주문을 전달받는 그 남자는 눈꼬리가 조금 올라가있고, 하얗게 탈색된 머리가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내가 주문한 초콜릿 프라페를 만드는 손길이 능숙한 걸 보니 이곳의 점장쯤 되어 보였다.
Thank you. 나는 초콜릿 프라페를 받아들고는 창가 자리에 앉았다. 생각보다 내 취향인 음료가 마음에 들어서 나는 오랜만에 마음의 여유를 갖는다. 찐득한 초콜릿, 그 위에 올려져 있는 휘핑크림이 보기만 해도 달아서 괜스레 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혼자 흐뭇하게 빨대로 휘핑크림을 휘적거리다 이내 그 남자와 다시 눈이 마주친다. 혼자 바보같이 웃던 게 생각나서 결국 얼굴이 붉어진 채 나는 고개를 푹 숙인다.
그렇게 음료에 빨대를 꽂고 얼굴은 오른손에 둔 핸드폰에 고정시켰다. 혹여나 다시 눈이 마주치면 그때는 정말 창피해질 것 같아서 그랬다.
"날씨 너무 좋다···."
"그러게요."
좋은 날씨에 혼자 중얼거리던 나는 순간적으로 들려오는 낮은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고 가까이 다가온 그 남자와 눈이 확실하게 마주쳤다. 남자의 입에 걸려있는 부드러운 웃음이 창가에 내리쬐는 햇볕처럼 내 마음을 간지럽힌다. 하얗게 탈색된 머리는 햇볕에 의해 더욱 반짝이고, 그가 입은 흰 셔츠가 더욱 도드라지게 보였다.
"지갑, 두고 가셨어요."
"아··· 감사합니다."
"그럼 맛있게 드세요."
남자의 손에 들린 분홍 지갑이 건네지고 형식적인 대화가 끝이 난다. 여주는 저도 모르게 말을 꺼낸다. 스스로도 예상하지 못 했던 일이었다.
"저기···!"
"네?"
"이름, 이름 가르쳐 주세요."
조금은 급박한 듯이 저를 붙잡기에 남자는 무슨 일인가 의문을 가졌지만 여주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 이내 웃음을 내뱉는다. 열시 십분의 눈꼬리가 순하게 접힌다. 여주의 얼굴은 많이 당황한 듯 보였다. 저가 말하고는 당황했다, 라는 것을 보여주는 그런 표정을 짓는 여주가 재밌다고 남자는 생각한다.
"권순영,"
"···"
"제 이름, 권순영이에요."
모든 시리즈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최신 글
위/아래글
공지사항
없음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최신 글
위/아래글
현재글 [세븐틴/권순영] 우리 무슨 사이야? 00 11
9년 전공지사항
없음

인스티즈앱 ![[세븐틴/권순영] 우리 무슨 사이야? 00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6/08/12/4/6d5bd8e2602aad2ebf57b6b9f2ca3567.gif)
![[세븐틴/권순영] 우리 무슨 사이야? 00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6/06/22/0/d50ddbcca811b5038c9da3d0d2f86134.gif)

이광수 주우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