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만의 시간
3부
7.
아침이라고 생각하고 눈을 떴을 때 시간은 12시가 넘어있었다. 이런, 젠장. 어제 잠이 안 올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잠을 얼마나 오랫동안 잤는지 모르겠다. 일어나기가 귀찮아, 핸드폰만 붙잡고 내내 침대에 누워있었다. 벽을 바라보는 자세로 누워있던 터라 몸이 뻐근해서 반대편으로 자세를 틀었다. 어젯밤, 잠들기 전에 종인이와 통화를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그 내용이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이다. 잠결에 한 통화도 아니었는데. 무거운 눈꺼풀을 느릿하게 깜빡였다. 머릿속은 새하얗다. 다른 건 모르겠고 일단, 김종인의 얼굴이 보고 싶었다.
“…….”
그 생각을 하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엉망으로 젖혀진 이불을 대충 정리해놓았다. 베개 위에 올려놓은 핸드폰을 들어 김종인에게 연락을 해볼까 하다가 오늘은 그냥 연락 없이 무작정 들이닥치는 것도 괜찮을 거란 생각에 다시 내려놓고 말았다. 연락 없이 가더라도 화를 내기는커녕 반겨줄 것이다. 종인이는 뭐하고 있을까? 이른 시간도 아니니, 지금까지 자고 있지는 않겠지? 자고 있으려나. 자고 있으면 저번처럼 몰래 가서 자는 얼굴이나 들여다보고 있어야겠다. 자고 있는 그 애의 모습을 떠올리니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져간다. 바보처럼 헤실헤실 웃다가, 조금이라도 더 빨리 가고 싶어서 얼른 화장실로 향했다.
一
머리 말릴 생각도 않고, 얼른 종인이네로 가려고 현관에 주저앉아 신발을 꿰어 신었다. 공복이라 배가 고팠지만 그거야 뭐, 그 애가 알아서 주린 배를 채워줄 거라 생각한다. 신발 끈을 묶으면서도 웃음이 새어나와서 어쩔 줄을 모르겠더라. 소파에 앉아 리모컨을 들고 있던 엄마가 나를 보며 이상한 눈초리로 훑는다.
“어디가?”
“종인이 집.”
“종인이 집?”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종인이 얼굴 못 본지 오래 됐다, 야.”
“…….”
“다음에 집에 한 번 데리고 와.. 아참, 혜인이는 요즘 뭐하고 지낸다니?”
“혜인 누나? 누나 요즘 복학 준비 중이라고 듣긴 했는데…, 나도 잘 모르겠다.”
“혜인이는 남자친구 생겼대?”
“몰라, 누나 요즘 바쁜 가봐. 나도 얼굴 못 본지 꽤 됐어.”
“그래…. 너 거기서 자고 올 거야?”
“봐서.”
아, 다 됐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이상 묻고 싶은 것이 없는지, 고개를 돌려 티비를 향해있는 엄마를 보며 다녀오겠습니다. 인사를 하며 집을 나섰다.
그러고 보니 혜인 누나 얼굴 본지도 꽤 된 것 같다. 예전엔 거의 매일 보다시피 했었는데. 오늘은 왠지 누나가 집에 있을 것 같기도 해서 옆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더 가볍다. 오랜만에 누나 얼굴도 보고 싶었다. 물론, 궁극적인 목적은 김종인 얼굴이지만.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산다는 게 과장된 말이 아니라서, 우리 집 현관을 나와 몇 걸음 걸었더니 벌써 김종인네 현관 앞이다. 딩동. 초인종을 꾸욱 눌렀더니, 우당탕탕 소리와 함께 벌컥 문이 열렸다.
“누구세요?”
열린 문틈 사이로 얼굴을 내민 것은 다름 아닌, 혜인 누나.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 반가워서 대답 대신 그냥 씨익 웃고 말았다. 누나가 놀란 눈을 하고서 나를 올려다본다. 이러고 있으니까 꼭, 열여덟으로 돌아 간 것 같다. 그 애 집에 우산을 돌려주려고 초인종을 눌렀을 때 문을 열고 나와, 멍하니 서 있는 나를 제일 먼저 반기던 누나의 얼굴이 겹쳤다.
깜빡깜빡. 답지 않게 놀라서 말이 없던 누나는 그러던 것도 잠시, 이내 다시 내게 시선을 주면서 환하게 웃는다. 그러면서 들어오라는 듯 내 팔을 잡아 집 안으로 이끌었다.
“야, 너 오랜만이다?”
그 말에 그냥 웃고 말았다. 굳이 대답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 나를 소파에 앉힌 누나는, 부엌으로 걸어갔고 냉장고에서 오렌지 주스를 꺼내는 걸 멍하니 바라보다가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김종인을 찾았다. 김종인은 어딜 간 건지, 자고 있는 건지, 아니면 꼭꼭 숨었는지 머리카락 한 올도 안 보인다.
“김종인 찾아?”
“네.”
“야, 너 너무한다. 나 오랜만에 봤는데 김종인 부터 찾고…. 이래서 키워봐야 아무 소용없다니까.”
“에이, 그런 거 아니에요.”
“김종인 요 앞에 잠시 친구 만나러 갔어. 좀만 기다리면 들어 올 거야, 아마.”
“아….”
고개를 끄덕였다. 누나는 오렌지 주스가 담긴 컵을 들고 와 내게 내민다. 그걸 받아들고 홀짝홀짝 마셨다. 마침 배고팠는데 잘 됐다 싶었다. 그런 내 옆에 자리를 잡고 앉은 누나가 리모컨을 들어 티비를 켰다. 이리저리 의미 없이 채널을 돌리던 누나가 갑자기 나를 돌아보며 묻는다.
“경수 너 살 찐 것 같다?”
“…네?”
오세훈이 요즘 만날 먹고 다닌다고 빵실빵실하다고 놀렸던 게 사실이었던 모양인지, 누나도 내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더니 얘가 살이 쪘나? 하며 고개를 갸우뚱한다. 으씨, 진짜 살이 찐 모양이다.
“요즘 살만 한 가보다, 살도 찌고…. 학교생활은 좀 어때, 할만 해?”
누나가 살쪄서 더 귀엽다며 볼 살을 잡아 늘어뜨린다. 아, 아파.
“그냥 뭐…. 재미로 다니진 않고, 그럭저럭 다닐 만 해요.”
누나에게 잡혔던 볼을 손으로 문질렀다. 손이 매운지, 아니면 세게 잡아 쥐었던 건지 꽤 아팠어. 내 말에 누나가 늙은이처럼 그게 무슨 소리냐며 내 팔을 툭 친다. 그래서 또 웃었다. 학교생활이 재밌어서 다니는 건 아니었으니까. 1학기 땐 새로운 환경, 새로운 사람들 속에서 생활하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2학기가 되니 익숙해 진 것도 없지 않아 있고, 또 날씨가 추워져서 그런 가 영 학교 다닐 맛이 안나.
“누나가 말했던 거 기억하지? 놀 수 있을 때 놀아야 돼.”
그 말에 또 웃었더니 대답은 않고, 웃는다고 또 맞았다. 헝.
“그나저나, 너넨 징하게 붙어 다닌다.”
“그러게요..”
“대학 가면서 인간관계 한 번은 정리 되는데, 옆집 살아서 그런가..”
“…인간관계 정리요?”
“뭐, 물론 너랑 종인이랑 정리 되면 너 못 봐서 아쉽겠지만…. 그냥, 좀 신기하잖아.”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누나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그냥 컵을 쥐고 입가로 가져갔다. 대학생활에 바쁘다보니 연락을 자주 못하게 되고, 그렇게 서서히 멀어지는 인간관계가 있었지만, 종인이가 거기에 포함될 거라고는 생각조차 못했었기 때문에. 당연히, 그 애와 멀어질 거란 상상은 해 본적도 없고, 하기도 싫다. 뜬금없는 누나의 말에 살짝 머리가 복잡해져 나름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나보다. 누나가 나를 보며 웃는다.
“뭘 그렇게 심각한 얼굴이냐. 그냥 궁금해서 한 번 던져본 것뿐인데….”
“아아..”
“아, 그나저나 김종인은 왜 이렇게 안와.. 올 때 맛있는 거 사오라고 협박까지 했는데 올 생각을 안 하네. 배고파 죽겠다. 경수 넌 밥 먹었어?”
“아뇨, 저도 밥 안 먹었어요.”
“헐…. 일어나자마자 온 거야? 김종인 보려고?”
“뭐, 꼭 그렇다기보다….”
누나가 놀란 표정으로 나를 본다. 그에, 괜히 민망해져서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다. 사실은 그게 맞는데, 누나는 사실을 몰라야 하니까. 변명을 찾는답시고 머리를 열심히 굴렸다. 그러자 떠오르는 생각은 아무것도 없다. 아, 나 진짜 머리 안 돌아간다. 왜 이럴 때마다 잔머리도 안 돌아가는 거지? 이건 진짜 누가 봐도 이상한 상황이잖아. 보통, 어떤 남자애가 친구 보려고 머리도 안 말리고, 밥도 안 먹고 뛰어와? 아…. 진짜, 말이 안 돼.
“걔한테 뭐 받을 거라도 있어?”
“네! 저번에 빌려준 책…! 받으러 왔어요.”
“아…, 그럼 굳이 종인이 안 보고 가도 되지 않나?”
“그 자식 얼굴 못 본지도 오래 돼서, 그냥 얼굴이나 한 번 보고 가려 구요….”
누나가 던진 말에 얼씨구나 맞장구를 쳤다. 아, 다행이다. 어설픈 변명에도 누나는 아무런 의심을 않고 그저 고개만 끄덕인다.
“아, 경수 넌 여자 친구 없어?”
“저, 저요?”
“그, 그래요 너, 너 말이에요. 내가 뭐 대단한 거 물어봤다고 또 말을 더듬고 그러냐. …귀엽게.”
살짝 누나의 눈치를 살폈더니, 누나는 티비에 시선을 고정하고서 대충 내게 물을 뿐이었다. 당황한 내 표정을 읽지 못한 것 같아서 정말, 다행이라고.
“없어요..”
“왜? 이렇게 귀여운 네가 왜 없어?!”
“글쎄요….”
“진짜 이해 안 된다. 너 같은 애가 여자 친구가 없다니. 와, 이건 진짜 말도 안 돼.”
칭찬인가? 칭찬이겠지? 칭찬인 것 같은데…. 어색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누나가 들고 있던 리모컨을 내려놓으며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그런데, 그 표정이 정말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이라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튀어나왔다.
“누나가 여자 소개 해 줄까?”
“네?”
진심으로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누나를 쳐다봤다. 아, 난감하다. 이 상황에서 거절하기도 좀 애매하고, 그렇다고 덜컥 알겠다고 하기도 좀 그렇다. 김종인이 알면 어떡해. 그 애가 알면 불같이 화를 낼 텐데.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고 빠르게 눈을 깜빡이는데, 갑자기 그 일이 생각이 난다. 전에, 소개팅을 거절하던 오세훈의 말이.
“예쁘고 착한 애 알고 있는데, 만나 볼래?”
“아, 아니에요. 전, 자연스러운 만남이 좋아서…그런 자리 부담스러워요.”
이야, 오세훈 대박. 네가 날 구했다. 넌 나의 구세주야.
“그럼 뭐, 할 수 없지….”
“누나, 죄송해요.”
“죄송하긴…. 나야, 안타까워서 그랬지. 나도, 네가 싫은데 억지로 하라고 하긴 싫으니까 신경 쓰지 마.”
나를 바라보던 누나가 미안한 표정을 짓는, 내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그러면서 씩 웃더니, 탁자위에 내려놓은 리모컨을 다시 잡으며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기 시작했다. 홈쇼핑, 음악 방송, 예능, 뉴스까지 마구 돌아간다.
“아, 진짜 볼 거 없다….”
“…….”
“뭐가 이러냐…, 아무튼 주말은 이래서 안 돼.”
마구잡이로 돌아가던 채널이 어느 딱 한 곳에 멈췄다.
“아참, 경수 넌 종인이한테 얘기 들은 거 있어?”
“무슨 얘기요?”
“김종인 요즘 뭐 있는 거 같던데.”
“…네?”
배가 고프다며 오른 손으로 배를 문지르던 누나가, 맛 집을 찾아가는 요리 프로에 흥미가 생긴 모양인지 입맛을 다시며 리모컨을 내려놓았다. 와, 맛있겠다. 김종인한테 저거 사오라고 할까. 의미 없는 말을 늘어놓는 누나의 목소리는 이미 안중에 없어진지 오래였다. 김종인 요즘 뭐 있는 거 같던데…. 그건 도대체, 무슨 뜻이냐고. 누나에게 묻고 싶었다. 별 뜻 없는 말일지 몰라도. 왠지 자꾸만 신경이 쓰여서.
“무슨 얘기요, 누나?”
그래서 다시 한 번 물었다. 누나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나를 보지도 않고 대충 말을 이어나간다.
“아, 너 몰랐나보네.”
“…….”
“김종인 여자 생긴 거.”
***
헐ㅇ0ㅇ!!!!!!!!!!!!!
분위기가 정말 개똥같이 흘러가네요..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최신 글
위/아래글
공지사항


인스티즈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