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만의 시간
3부
4.
“나 왜 차였을까…?”
아, 짜증난다. 미간을 찌푸린 채 맘에 들지 않는다는 눈으로 맞은편에 앉은 변백현을 노려보았다. 내가 그러든가 말든가 상관없어 보이는 변백현은 땅이 꺼져라 깊은 한숨을 푹 내쉬더니 앞에 놓인 잔을 입으로 털어넣었다. 그걸 보고 있자니 짜증이 일어서 물을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라면을 먹고 소파에 앉아 종인이와 오랜만에 안락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중요한 건 있었다는 것이다. 있었다! 있었다고. …과거형이라는 거지. 티비에선 어느 채널이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소파에 드러눕듯이 앉아서 몸의 대화를…하려고 하고 있었다고. 그렇게 전초전을 벌이고 있었는데….
“뭐야... 변백현 차였다고 부른 거였어?”
“사실대로 말했으면 니가 왔겠냐.”
“아…난 또 뭐, 급한 일 있는 줄 알았잖아.”
오세훈의 호출로 꾸역꾸역 움직이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 도착했더니. 변백현은 이미 반쯤 취해서 넋을 놓고 있고, 박찬열은 살짝 취했는지 사람을 앞에 두고 시큰둥한 표정으로 핸드폰만 만지고 있다. 그래서 제일 멀쩡해 보이는 오세훈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더니 맞은편엔 변백현이 있네. 종인이는 찬열이 옆에 앉아 둘이서 도란도란 얘기를 나눈다. 무슨 얘긴지 듣고 싶었으나 주변 소음이 워낙 시끄러워서 잘 들리지 않았다.
“나 왜 차였을까….”
“저기요! 잔 두 개만 더 주세요.”
구간반복을 한 듯, 끊임없이 똑같은 말만 내뱉는 변백현을 뒤로하고 알바생에게 잔 두 개를 받아든 찬열이 내 앞에 하나, 종인이 앞에 하나를 둔다. 그에, 술 좀 따라달라고 잔을 들고 옆에 앉은 오세훈을 멀뚱히 쳐다보았다. 오세훈이 그런 나를 보고 혀를 차면서 한마디 한다. 어제도 술 마신 것 같더니만 오늘도 정신 못 차리고 이러고 있지? 도경수, 진짜 넌 안 될 새끼인 듯. 끊임없이 이어지는 잔소리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어서 따르라는 듯 세훈이를 재촉했다.
“너는 인마, 진짜….”
“아 오세훈 짜게 군다. 야, 그럴 거면 병 내놔. 나 박찬열한테 받을래.”
원래 오세훈이 이런 캐릭터가 아닌데. 술병에 빠져 죽든 말든 너는 너, 나는 나. 우린 남이다. 요런 마인드로 살아가던 놈이 이상하게 나만 챙기려고 든다. 전에 한번은 그런 적이 있었다. 넌 이상하게 손이 많이 간다며 내 머리를 쥐어박았었다.
오세훈이 도통 줄 생각을 않자, 녀석에게 들이 밀었던 잔을 돌려 박찬열에게 내밀었다. 그랬더니, 내내 핸드폰만 만져대던 박찬열이 멀뚱멀뚱 그걸 지켜보고만 있다.
“안 돼.”
“뭐가. 너마저 이러기냐?”
“나 김종인한테 욕먹어.”
“아씨….”
박찬열에게도 거절당했다. 그래서, 그 옆에 앉은 이 문제의 유일한 해결책인 종인이를 바라보았다. 나름대로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빛내며 한 번만 봐달라는 의미를 담아 그 애를 쳐다보았는데, 박찬열 옆에 앉아서 그런가, 내내 핸드폰을 손에서 놓질 않는 종인이가 시선을 내게로 돌리더니 단호하게 고개를 젓는다.
“안 돼. 물 마셔.”
“이거 봐, 이거 봐. 김종인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앉아있는데 무슨 봉변을 당하려고 너한테 술을 따라 주냐?”
“…….”
“너 어제도 마셨잖아... 근데 왜 이렇게 술을 마시려고 그래. 적당히 하자, 경수야.”
그러면서 내가 손에 꼭 쥐고 있던 잔까지 빼앗아 가버린다. 헐….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아쉬운 마음을 달랬다. 솔직히 말해서 술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지금도 하루라도 안마시면 입안에 가시가 돋아날 것 같아요. 하는 정도도 아니고. 그러면서 이상하게 아쉽고 그렇단 말이지.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종인이에게 빼앗긴 소주잔 대신 물 컵을 손에 쥐었다. 아씨, 물은 밍밍해서 싫은데…. 그걸 지켜보던 김종인이 나를 위해 음료수를 주문한다. 그 사소한 배려에 괜히 기분이 좋아져서 베실베실 웃었다.
“나 왜 차였을까…? 응? 왜 차였을까, 얘들아. 내가 뭐가 부족해서?!”
“너 차이는 거 한 두 번이냐…. 야, 근데 오늘은 차인 거 맞아? 전에는 지가 차놓고 차인 척 하더니만.”
변백현이 또 한잔을 들이키며 발음이 꼬여서는 똑같은 말을 했다. 이번에도 아무도 안받아주나 했는데, 안주를 집어먹던 찬열이가 아무렇지도 않게 녀석을 보고 말한다. 그에 변백현이 코를 훌쩍이며 고개를 끄덕끄덕. 아, 이번엔 정말 차인 게 맞는 거구나. 힘내라는 의미로 백현이 앞에 비어있는 잔에 소주를 따라 주었다.
“힘내. 너 이래놓고 또 얼마 안가서 새로운 여자 친구 만날 거잖아.”
수능을 마치고부터 본격적인 변백현의 화려한 연애가 시작되었었다. 만나고 헤어지고를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이젠 셀 수도 없다. 처음으로 실연을 당했을 때만 해도 우리의 반응이 이렇게 싸늘하지는 않았었다. 힘들어하는 변백현을 진심으로 위로해주며, 그 엄청난 술주정을 다 받아주었고, 너는 술값도 내지 말라고 우리가 다 사주겠다 했었고. 또, 한 명씩 돌아가며 변백현에게 밥을 사주곤 했었지. 그런데, 그 모든 것들을 비웃듯이 며칠 뒤 새로운 여자 친구가 생겼다며 기뻐하던 변백현의 모습에 우리는 할 말을 잃었었다. 그 뒤로는 뭐, 계속해서 그 과정의 반복만 있었고. 생략된 거라곤 우리의 진심어린 위로 정도…?
“너넨 내 맘도 이해 못해주고…존나 서러워서 진짜…. 니들이 연애를 알아?”
“…닥쳐.”
“존나 너무 한다. 니들 진짜….”
“야, 변백현 한 잔 더 먹여. 시끄러워 죽겠다.”
처음에는 그런 백현이를 이해해보려고 했었다. 그래, 변백현은 뜨겁게 타올랐다가 금방 식어버리는 불꽃같은 사랑을 추구하는 친구야. 모든 사람들의 연애방식이 똑같은 건 아니니까 이런 사람도 있을 수 있고, 저런 사람도 있을 수 있어. 만남이 짧았을지언정 있었던 사람의 빈자리는 크게 느껴질 거야.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티가 난다고 했었으니….
변백현은 그 노력들이 가상해서라도 적정선을 유지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뭐, 이거는 월말 행사처럼 끊임이 없는데다가, 짧게는 일주일 걸린 적도 있었고, 또 차인 게 아니라 지가 맘에 안 찬다고 차놓고서는 우리를 소환해서 주접을 떨어댔던 모든 전적 때문에 이제는 그런 노력도 할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 우리를 이렇게 만든 건 너야. 너라고. 너!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라서 맞은편의 변백현에게 소주병을 확 던져버릴까 하다가 참았다. 보아하니, 변백현 옆에 앉은 찬열이가 자연스럽게 뚜껑을 따놓고는 아예 병째로 백현이에게 건네고 있다. 근데 그걸 또 좋다고 받아 든다. 아이고, 백현아. 넌 언제쯤 정신 차릴까? 응?
“경수 너도 한 병 할래?”
“야, 너 아까 김종인 말 못 들었냐.”
조금은 한심한 눈으로 내게 소주병을 내미는 백현이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에, 오세훈이 오징어를 잘근잘근 씹으며 변백현을 타박한다.
“아, 나도 니들처럼 좀 오래 만나고… 그런 연애 하고 싶은데….”
한탄 섞인 녀석의 말에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난 왜 네 말이 진심 같지가 않지?”
오세훈이 또, 시큰둥하게 백현이를 향해 말을 던진다. 변백현이 발끈하며 오세훈을 노려본다. 세훈이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 참으로 웃긴 광경이자 익숙한 모습이다. 그 모습에 피실피실 웃음이 새어나왔다. 화가 난 백현이가 병나발을 불어 재끼는 걸 가만히 보고 있던 찬열이 그걸 제지하며 말한다.
“야 인마, 넌 대체…. 지금이 몇 번째냐? 어?”
“놔봐, 쫌.”
“너 실연당했다고 모이는 게 몇 번째냐고…. 이제는 위로해줄 말도 바닥났어.”
“위로는 무슨. 이 새끼 이래놓고 또 조만간 여자 친구 생겼다고 우리한테 자랑할게 분명해.”
세훈이의 말에 박찬열이 인상을 쓰며 오세훈을 노려본다. 그래도, 백현이를 가장 만만하게 보면서도 아직도 녀석을 걱정해주는 건 박찬열 밖에 없다. 중요한 건 변백현이 이 사실을 모른다는 게 문제지. 왜냐면, 찬열이가 세심하게 변백현을 신경써주는 모습은 녀석이 취했을 때뿐이었으니까.
“야, 나도 그러고 싶어! 나라고 안 그러고 싶겠냐? 근데 내가 찼냐? 내가 찼냐고!”
“아, 알겠으니까 술 좀 작작 마셔, 좀.”
“…시발, 니들은 내 맘 몰라..”
백현이의 주정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가 한숨을 푹 내쉬며 김종인을 눈으로 쫓았다. 버릇처럼, 종인이에게 시선이 자꾸만 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
신기하다. 김종인이 이렇게 가까이 있는데도, 멀리 있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 애의 집에서 나를 보고 웃어주고, 나만 바라보던 그 애가 사라진 것 같다. 지나친 비약일지도 모르겠지만 그 애는 나를, 그리고 우리를 앞에 두고도 핸드폰을 손에서 놓을 생각을 못하고 내내 액정만 바라보고 의미모를 웃음을 짓고 있었다. 내가 저를 쳐다보는 것도 모른 채. 그걸 멍하니 바라보다가 왠지 모를 씁쓸한 마음에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다. 요즘은 그 아이에 대해 모르는 것들이 많이 생겼다. 근 2년 정도의 연애를 하면서 김종인에 대해서는 거의 다 알고 있다고, 내가 그 애에 대해서 제일 잘 알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확신조차 못하겠다. 물론, 대학이 갈라지면서 생활하는 주변 환경이 바뀌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많아져 서로가 모르는 인간관계가 형성될 수밖에 없었지만. 언제까지고 고등학교 때처럼 다섯 명이 전부였던 그런 관계로 지낼 수는 없다는 걸 알고 있다. 그래도 섭섭한 건 섭섭한 거라고. 사춘기 청소년 같은 요즘의 감정변화가 익숙하지가 않다. 한 사람으로 인해 내 감정이 끝도 없이 하늘로 솟구쳤다가, 어느새 바닥으로 뚝 떨어지고 마는.
“아, 변백현 진짜. 좀 흘리지 말고 먹어!”
“왜 자꾸 나한테만 뭐라 그러냐고!”
“박찬열이 고생이 많다..”
“고생 많은 거 알면 좀 도와주던지….”
“내가 왜. 그 옆에 앉은 니 잘못이지. 난 도경수 보모 노릇하는 걸로도 족해.”
내 복잡한 마음과는 상관없이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녀석들 때문에, 숙이고 있던 고개를 다시 들었다. 살짝 웃음 짓다가 다시 한 번 종인이를 바라보았다. 내내 고개를 살짝 숙인 채 손에 쥔 핸드폰만 바라보던 녀석이 순간 고개를 들었다. 저를 보고 있던 나와 눈을 마주치고는 살짝 웃는다.
“…….”
너, 그대로지 종인아. 변함없이 그대로인 거, 맞지…?
“나 왜 또 차였냐고요….”
“아, 이 새끼 입 다물게 하는 방법 없냐?”
“변백현 때문에 미치겠다, 진짜.”
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 불안한 걸까….
“…….”
녀석이 다시 고개를 숙여 액정으로 시선을 고정시킨다. 씁쓸한 마음에, 김종인이 나를 바라보고 있지 않는 틈을 타, 오세훈 앞에 놓인 잔을 빼앗아 들었다. 그걸 한참을 쥐고 있었다. 잔에 담긴 찰랑이는 물결을 바라보다가 입으로 가져가지는 못하고 이내 빼앗기고 말았다. 누가 내 잔을 빼앗아 갔을까. 술은 입에 대지도 않았는데 취한 것 같았다. 풀린 눈을 하고서 고개를 들어 잔을 빼앗아간, 눈앞에 뻗어진 손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김종인이었다.
“…마시지 말라고 했지.”
“…….”
“쓰읍, 혼난다. 너.”
나는…, 어떻게 해야 돼, 종인아?
***
너만시 1부를 처음 연재할때만 하더라도, 더운 여름이었는데 벌써 11월이고 저는 3부를 연재하고 있네요^^;
시간이 참 빨리가는 걸 느낍니다. 올해 안에 너만시를 마무리짓는게 제 목표에요.
물론, 실천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되도록이면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노력하려고 힘쓰는 중입니다!
다음주면 수능이네요!
수험생 분들이 지금 이 글을 보실지는 의문이지만, 힘내시라는 말씀 꼭 전하고 싶어요ㅜㅜ!
열심히, 최선을 다하시면 꼭 원하는 결과 얻으실 수 있을거에요! 화이팅!!
그나저나, 엑소는 언제쯤 나오는 겁니까?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11월에는 볼 수 있는 거죠?
아... 기다리다 목 빠지겠네요 진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서 나와라!
소환!!!
댓글 언제나 감사한거 아시죠?ㅠㅠ 사랑해요!!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사랑해요!
핱트!!!!!!!!!!!!!!!!!!!!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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