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홍빈 나 그리고 김원식. 중학교 때부터 늘 붙어다녔던 셋이서 같은 학교에 합격해서 울고불고 난리쳤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학교 행사를 한다고 다들 들떠 있었다. 과마다 행사 일정이 다른지라 셋이 함께 있는 단톡에서는 그 얘기만 계속되고 있었다. 벌써 과 행사에 몇 번 참석했었던 이홍빈이나 김원식과는 달리 나는 아직 과 행사에 한 번도 참석한 적이 없었다. 그런 이유로 단톡방은, 과 행사에 벌써 참석했었던 이홍빈과 김원식이 오늘 처음으로 과 행사에 참석하는 나에게 이것저것 알려주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막 학교 앞 지하철 역에서 내렸을 때 이홍빈에게 전화가 왔다.
"웅, 왜?"
[우리가 뭐. 용건이 있어야 전화하는 사이야?]
어딘지 뾰로퉁한 목소리가 귀여워 푸흐흐- 웃으니 웃지 말라고 칭얼댄다.
[너 과 행사 안갔으면 좋겠어.]
"엥... 그게 뭐야... 나 아싸 되면 좋겠어? 안그래도 지금 과행사 많이 못 나갔는데."
[니가 너무 예뻐서 선배들이 너한테만 술 주면 어떡해?]
"어휴. 김원식이 들으면 진짜 팔불출이라고 구박하겠다."
[내가 팔불출이라서 그런게 아니라 진짜 니가 예뻐서 그래.]
어우 소름돋아. 친구로 2년, 그리고 나머지 시간을 연인으로 보낸 사이라지만 이런 낯간지러운 말들은 아직도 적응이 안된다. 얘는 이런 소리 하는 거 지겹지도 않나... 통화를 하는 중에 어느새 과행사 장소에 도착해 그만 끊어야겠다고 말했다. 이홍빈은 듣기만 해도 설레는 목소리로 이별빛- 하고 불렀다.
"응 홍빈아."
[술 많이 마시지 말고.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전화해. 데리러 갈게.]
"응응 알겠어."
[아.. 진짜 보내기 싫다... 전화 끊기 싫다...]
"끝나면 바로 전화 할게. 꼭꼭!!"
전화 끊기 싫다는 걸 어르고 달래 끊고서는 떨리는 마음으로 술집 안으로 들어갔다. 테이블을 기웃 기웃 쳐다보자 한 쪽에 의류학과라는 종이가 올려진 테이블이 있었다. 꽤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었는데 그 쪽으로 다가가자 시선이 집중되었다. 과대인 것 처럼 보이는 오빠가 처음 보는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반갑다는 듯이 손을 흔들었다. 어색하게 웃으며 그 쪽으로 다가가자 웃으며 등짝을 팡팡 때렸다. 으어억- 깜짝 놀라 이상한 소리를 내뱉자 옆에 있던 언니가 말렸다.
"이번에 처음 나오는거지? 나는 부과대 윤설희고 얘는 과대 이재환이야."
"아... 안녕하세요! 신입생 이별빛입니다!!"
자기소개를 하자 다 같이 박수를 쳐줬고 나는 대충 빈자리로 가서 앉았다. 테이블 끝 쪽 빈자리에 앉자 마자 앞에 앉은 분이 반갑다며 술을 따라 주었다. 으으... 술이라곤 홍빈이랑 원식이랑 치맥할 때 먹었던 맥주가 전부였기 때문에 소주를 보니 괜히 긴장됐다. 애들이 알려준대로 주량은 과일 1병이라고 거짓말 하고, 술을 조금씩만 마셨다. 예체능 계열이라 강권이 심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강권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술게임도 애들과 함께 미리 연습했던지라 무난하게 해나갈 수 있었다. 서로 자신을 소개하거나 얘기하는 게 많을 줄 알았는데... 정말 술게임만 해서 조금 당황스러웠다. 곧 2차로 옮긴다는 과대오빠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술게임만 하는 거라면 굳이 2차에 가야하나 싶었다. 주섬주섬 짐을 챙겨서 과대오빠에게 이만 가야겠다고 인사하고서는 밖으로 나왔다. 이홍빈에게 이제 집에 갈거라고 연락하니 볼 일 보느라고 근처라고 데리러 오겠다는 답장이 왔다. 거짓말. 나 기다리고 있었으면서. 술집 앞에서 괜히 웃으며 서있었는데 앞에서 누군가의 기척이 느껴졌다. 기척을 눈치채고 고개를 듦과 동시에 어깨에 묵직한 무게가 느껴졌다. 그리고 동시에 확 풍겨오는 술냄새-
"시은아..."
그리고 들려오는 낯선 이름.
혹시 차인건가... 어깨를 기대고 있는 이 사람에게 불쾌감보다는 안쓰러운 느낌이 먼저 들었다. 그 이후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이 사람을 그대로 두고 있는데 술집에서 과대오빠가 허겁지겁 나오는 게 보였다. 과대오빠는 웃으며 우리 둘의 사진을 찍었다. 당황한 나는 얼굴을 가릴 생각도 못하고 눈만 땡그랗게 뜨고 있었다.
"아 별빛 표정 좋고! 학연이형 얼굴도 다 나오고!"
과대오빠는 사진을 다 찍더니 그 사람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당황한 표정으로 서있는 나에게 말을 걸었다.
"아 이 형은 생활 디자인학과 다니는 복학생 차학연이야! 의류 복전해서 자주 보게 될텐데... 이렇게 취한 게 처음이라 신기해서!"
물어보지도 않은 말들을 쏟아 내고선 나중에 초상권 대신 이 형한테 밥을 사달라고 하라는 말만 남기고 그 사람과 함께 술집으로 다시 돌아갔다. 정말... 정말 이상한 사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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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차학연이 넘 죠습니다... 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