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집 꽃돌이
청 춘 회 관
chapter 01
내 옆집에는 두 남자가 살고 있다.
그것도 모든 면이 전혀 다른 둘이.
오늘도 다른 날과 다름없이 아침 일찍 일어나……기는 개뿔. 오늘도 다른 날과 다름없이 늦잠을 잔 나는 허겁지겁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시발. 시발. 시발! 어제 밤에도 내 삶을 원천인 방탄남자단을 앓느라 새벽 3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에 잠에 들고 말았다. 잘려고 할 때면 '이름아 벌써 자게? 나 조금만 더 보다 자.' 라고 속삭이는 것만 같아 헤벌레 빙구 웃음을 지으며 또 다시 동영상만 들여다 보다 역시나 세상에나……. 이 놈의 주책! 이러다 취업이고 자시고 인생 종치겠다. 분명 출근은 8시인데, 지금 시각은 왜 7시 30분을 가르치고 있는 걸까. 화장실로 뛰어가다 의자에 부딪혀 차마 내뱉어 지지 못한 신음을 삼키고 발가락을 부여잡은 채 그 자리를 강시마냥 콩콩 뛰어댔다.
내 나이 스물 넷. 자취 중. 대학 등록금의 노예이자, 취업 준비생이다. 지금은 당장이 눈 앞의 큰 시련이신 등록금 마련을 위해 밤 낮 가리지 않고 알바를 뛰는 알바충이기도 하다.
아니, 지금 내가 이런 잡생각을 할 시간이 아닌데..! 칫솔을 물고 급하게 머리를 감기 시작했다. 칫솔 물고 있으랴, 머리 급하게 감느랴. 내 인생 최고의 시련은 성인이 된 게 아닐까, 라는 또 잡생각을 하게 만든다. 고딩 시절 엄마가 깨워주며 졸린 눈 뜨지도 못한 채, 엄마가 해준 밥 먹고, 엄마가 다려준 교복 입고……. (울컥) 알바 끝나고 나면 엄마한테 전화나 해야지. 물론 또 공부는 제대로 하고 있냐고 잔소리란 잔소리만 다 듣고 끊겠지만 말이다. 3분 컷으로 감은 머리를 수건으로 감싸고 다시 양치에 매진했다. 분노의 양치질이라고 들어는 봤는가? 마지막으로 혓바닥을 깨끗이 닦아준 후, 입을 헹구고 화장실을 벗어 날 수 있었다. 옷? 에라이, 몰라. 어제 입었던 거 입어야지. 모처럼 공강에 알바에 시달리는 내 모습이 안쓰럽기도 했다. 다른 애들은 남자친구랑 데이트도 하러 다니던데……. (2차 울컥) 머리도 제대로 말리지 못 하고 손에 잡히는 양말를 신고, 현관문으로 뛰어 가 신발을 구겨신은 후에야 집을 벗어 날 수 있었다.
" 아야! "
" ……아오. 힘 더럽게 쎄네. "
시발? 급하게 나오는 튀어 나오는 바람에 옆집에서 나오던 사람과 보기 좋게 부딪히고 말았다. 정확히 그 사람의 가슴팍과 내 이마가 부딪히긴 했는데……. 아니, 말을 저렇게 기분 더럽게 할 필요있나? 염병. (3차 울컥) 이마를 문지르며 그 잘난 얼굴을 보겠다고 눈을 부라리며 쳐다 본 그 얼굴은, 잘생겼다. 응. 잘생겼네. 내 옆집에 이런 사람이 살았었나? 의구심을 품을 새도 없이 잘생김에 넋을 놓고 보고 있었다. 그렇게 보고 있자니 머리는 까치 집마냥 방금 일어난 모습이 분명했다. 왼쪽 눈에 낀 눈꼽에. 삼선 슬리퍼도 모자라 목 부분이 다 늘어나 너덜거리는 티에 츄리닝 바지까지. 오 마이 갓이다, 오 마이 갓. 내가 알바에 늦은 것조차 자각하지 못한 채, 잘생긴 거 빼곤 내세울 것 없는 한 마디로 설명해, 백수. 그래, 백수. 옆집 백수를 보며 입을 떡 벌렸다.
" 뭘 봐. 사람을 쳤으면 사과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아침에 개념 말아 먹고 나왔냐? "
" ……예? "
" 사과 안 하냐고. 귀까지 먹었나. "
" 아, 예. 죄송합니다. "
사과하려고 했는데, 지가 몰아붙힌 거 1도 생각 안 나시나 봄. 그래서 나 딴에서도 기분이 나빠져 개 띠겁게 사과를 했지. 사과로 다가갈 리가 없는 내 사과가 역시나 마음에 들지 않은 건지 미간을 보기 좋게 구긴 남자는 나를 위아래로 훓었다. 흡사 '뭐야, 이 썅년은.' 이라는 눈빛으로. 나와 부딪히며 날라간 건지 웬 서류같은 봉지가 저 멀리 날라가 있는 걸 본 남자는 한숨을 깊이 내쉬다 그것을 주워 들어 먼지를 털며 다시 나를 노려보았다. 난 그 눈빛을 버텨낼 깡이 없기에 눈알을 도르륵 굴려댔다. 그런 상황에서 나를 구원해준 건 신명나게 울리는 내 전화벨 소리였다. 그 사람이 입을 열려는 타이밍과 동시에 울린 전화에 누군지 확인 할 겨를도 없이 받아 들었다.
" 여보세요? "
- 야, 이름아. 너 오늘 안 오는 거야? 언제 와?
" 헐? 맞다! 오빠 저 지금 가는 중이거든요?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
- 또 늦잠 잤구나. 빨리 와.
" 네네! 진짜 빨리 갈게요. 죄송해요!"
그 전화를 받자마자 내 앞에 있는 남자를 신경 쓸 겨를도 없이 꼭대기층에 자리한 엘레베이터에 아주 잠시 시선을 두고 바로 뒤돌아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뒤에서 중얼거리는 목소리를 모른 척한 채.
" 저 미친년이……. "
* * *
택시를 잡아 탄 덕에 정확히 8시 23분 컷을 찍었다. 같이 알바하는 오빠에게 고개를 조아려 사과를 전하자 사장님이 놀러 가셔서 없는 게 다행이라며 도로 예쁜 웃음을 짓고서 내 어깨를 다독였다. 역시 핸썸 가이. 스윗 가이. 유니폼을 갈아입고 일을 시작하는데 아직 이른 시간이라 손님들이 있을 리 만무했고, 휴대폰만 만지며 빈둥거리고 있을 즈음 집 앞에서 부집힌 그 남자가 생각났다. 근데 진짜 뭐지. 옆집 빈 집이었는데……. 요 며칠 사이 우당탕탕 거리고, 소란스러웠던 게 이사오느라 그랬던 건감? 그렇게 생각하고 넘겨버렸다. 내가 자취하고 있는 집은 내 입으로 말하긴 뭐하지만 좀 산다 싶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아파트 단지였다. 물론, 내 주제에 좀 좋은 집에 산다는 생각이 없지 않아 있지만? 우리 아버지께서 딸은 좋은 집에서 안전하게 살아야 한다며 사주신 집이라 정말 감사히 잘 살고 있다. 그 덕에 학비에 쪼달리고 있는 것에 눈물이 눈 앞을 가렸지만. 아니, 근데 도대체 그 백수같은 인간이 어떻게 옆집으로 이사를 왔을까. (머리 긁적)
" 오늘따라 되게 조용하네. "
" 그러게요. 이렇게 한가한 적이 있었나. "
" 뭐, 요즘 나라 꼴이 말이 아니잖아. 우리도 시위나 하러 다닐까? 장사도 안 되는데. "
" 사장님한테 그렇게 얘기하실 깡은 있고요?"
" 미안. "
오빠는 내 말에 무안한지 뒷머리를 매만지며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이름은, 김석진. 일명 어깨 오빠. 내가 그렇게 부르는 건 아니고 석진 오빠가 좋다며 매일같이 카페에 오는 고딩 무리가 있는데, 걔들이 오빨 어깨 오빠라고 부르곤 했다. 무리는 대략 다여섯명 정도 되는데 양아치 같은 기집애들이 야비하게 제일 싼! 아이스티 하나를 시켜놓고 자리를 잡고서 몇시간은 수다를 떨다가 가곤 했다. 오빠를 붙잡고 귀찮게 하는 건 잊지 않고.
딸랑ㅡ
잡생각을 하기도 잠시, 한동안 오지 않던 손님이 옴에 지루하던 참 반가운 종소리에 문을 쳐다보면, 시발. 세상은 참 좁기도 좁구나. 불과 몇분 전에 생각하고 있던, 아침에 마주쳤던 그 옆집 남자가 서있었다. 아침 그 상태 그대로. 설마 이 인간 나한테 사과 제대로 못 받았다고 따라온 거야? 눈동자가 미친듯이 돌아갔다. 이런 걸 동공지진이라고 했던가. 청소를 하던 오빠는 지금 내 상황조차 모르기에 '어서오세요~' 따위의 여유로운 말을 내뱉고 있었다. 시발. 시발. 시발! 어김없이 시발 삼창을 외치게 만드는 구나. 남자를 보자마자 카운터 밑으로 숨어버린 나를 아직 내 얼굴을 보지 못 한 건지 태연하게 카운터 앞까지 다가온 남자는 메뉴판을 올려다 보고서 턱을 매만지며 고민을 해대고 있었다.
" 음. 저는 딸기 라떼요. "
" ………. "
" ? 저기요. 거기서 뭐 하세요. "
" ㄸ, 딸기 라떼 하나 맞으시죠?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
" 계산은요. "
" ㄱ, 그…. 아아! 돈 올려놓고 가시면 제가 음료랑 잔 돈 같이 가져다 드릴게요! "
내 말에 표정은 차마 보지 못 했지만 '뭐야, 저 미친년은.' 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내가 생각해도 난 미친년이 분명 했으니까. 남자는 의아한 듯 카운터 위에 돈을 소리나게 올려놓고는 자리를 떠나는 소리가 들리자 그제야 숨을 훅 내쉬었다. 아니, 시발. 나 아직 마주칠 준비가 안 됐는데 마주치니까 이런 거 아니야! 난 진짜 잘못한 게 없는..데! 내가 쭈구려 앉아 있는 모습을 본 석진 오빠 또한 '뭐야, 저 정신나간 년은.' 이라는 표정으로 청소를 하다말고 내게로 다가왔다.
" 너 뭐 해? "
" 저기 오빠. 진짜 죄송한데 부탁 좀 들어주심 안 될까요? "
" 어엉? 말해 봐. 뭔데. "
" 방금 막 들어 온 손님이 딸기 라떼 주문하셨는데 정말 제가 피치 못할 사정ㅇ, "
" 여보세요? "
시발.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오빠 폰에 울리는 전화 소리에 오빠는 내게 기다려 보라는 손짓을 한 뒤 전화를 받으며 나갔다. ……. ………? 나가? 나갔다고? 점점 멀어져 가는 오빠 모습에 놀라 떠나는 님을 잡으려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버렸고.
" 쥐 새끼처럼 숨길래, 누군가 했더니 미친년이네. "
" ……아하하. 안녕하세요..? "
보기 좋게 그 남자와 눈이 아주 정확히 마주쳐 버렸다. 자리로 돌아간 줄 알았는데 그 자리에 그대로 서있었던 거다. 뭐 이런 씹 무서운 인간이 다 있어……. 쭈굴쭈굴 눈치만 보고 있다 눈도 마주치지 못 하고서 손만 괴롭히고 있었다. 남자는 고개를 푹 숙인 나에게 고개를 들이밀어 눈을 마주했다. 아니, 근데 이 싸람이..! 진짜 잘생겼다. 석진 오빠를 처음 봤을 때 내 인생 일대로 잘생긴 사람으로 손을 꼽았는데, 정말 미안하게도 이 사람한테 밀려날 것 같다. 아까와 다르게 눈꼽은 없었고 머리도 차분해져 있어서인지 더 잘생겨 보였다. 그런 내 머리를 아프지 않게 밀어 왔다.
" 사과 할 때는 적중히 하는 거다, 미친년? "
" ………. "
" 빨리 딸기 라떼나 내놔. "
그에 멍해있던 정신을 다 잡고 계산대 위에 있던 돈을 계산하고 정말 미친년처럼 버벅이며 딸기 라떼를 만들기 시작했다. 딸기 라떼 시발……. 세상, 참 좁다 진짜. 쪽팔리고 무안하고 너 혼자 다 해라 성이름. 세상에 이런 수치플이 어딨을까 싶다. 그냥 뻔뻔하게 얼굴 쳐 들고 있었어도 이 정도이진 않을 텐데. 뭐한다고 그렇게 숨어 버렸을까? 왜 살까? 딸기 라떼 만들면서 1년치 치룰 쪽팔림은 혼자 다한 것 같았다. 무슨 정신으로 만들었을 지 모를 딸기 라떼를 아직도 카운터에 서 뒷통수가 뚫어져라 바라보던 남자에게 건넸다.
" 고맙다, 미친년? "
그 말을 남기고 홀연히 떠나가버렸다. 저놈의 미친년 소리. 앞으로 만날 때마다 저렇게 부를 텐데, 훤히 보이는 내 미래에 한숨을 내쉬었다. 하야... 미친년 콤플렉스 생기겠네. (눈물)(머금) 아아. 주여……. 가다가 저 인간을 넘어트려 주세요! 빌고 빌었다. 막 전화를 끊난 건지 여전히 내 상황을 모르는 석진 오빠는 부탁할게 뭐였냐 물으며 사람 좋은 미소 짓고서 내게 다가왔다. 누가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데? 나 지금 뱉을 수 있을 것 같은데…….
* * *
……진짜네. 진짜 같이 사네.
내 옆집에는 두 남자가 살고 있다. 그것도 모든 면이 전혀 다른 둘이. 게다가 얼굴도 잘생긴 꽃돌이 둘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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