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ㅇ씨, 일 안 하고 뭐해]
이번 달 카탈로그 디자인 수정 작업을 완료하고 동료가 메신저로 투덜거리는 걸 들어주고 있었을 뿐이다. 이태까지 점심도 굶고 내내 일했는데 아주 잠깐, 진짜 잠깐 메신저로 대화를 주고 받을 때 팀장한테 들킬 게 뭐람. 일할 땐 보지도 않으면서, 잠깐 한 눈 파는 순간만 잘 골라서 이렇게 사사건건 시비를 건다. 저기요, 저 계속 일 하고 있었거든요. 탁탁 메신저 창에 이렇게 쓰다가 다시 지웠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다섯글자를 적어 팀장에게 보냈다. 재수없는 놈, 매일 나한테만 시비야! 회장의 아들이라고 낙하선 타고 들어 온 팀장은 사내에서 회장 아들이 망나니다 라는 소문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성실히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해냈다. 그래서 난 팀장한테 대들 수 없다. 왜냐면 일도 잘 하고, 팀장이고, 회장 아들이고, …옳은 말만 하니까!
회사 브랜드 홈페이지를 둘러보고 있는데 옆에 앉은 회사 동료가 쿡, 쿡 내 팔뚝을 찔렀다. 슬쩍 고개를 돌려 왜요? 하고 물으니 오늘 커피 당번 ㅇㅇ씨 아니야? 하고 웃으며 말한다. 아, 맞다. 나 였지. 깜빡했네요 헤헤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탕비실에 들어가 종이컵을 꺼내 커피 믹스를 툭, 툭 털어 넣었다. 보글보글 끓고 있는 전기 포트를 들어 쪼르륵 적당량의 물을 쏟아 넣었다. 적갈색의 커피들을 쟁반 위에 놓고 탕비실을 나섰다. 팀장실을 먼저 들어갈까 하다가 가볍게 팀장실 앞을 지나갔다. 이게 내 소심한 복수라면 복수다. 식어빠진 커피나 드세요.
"ㅇㅇ씨, 땡큐. 잘 마실게. 근데 하나 남았네? 누구꺼야?"
"팀장님이요."
"뭐야, 팀장님 먼저 드리고 온 거 아냐? 식어버린 커피 가져다 드리면…성질 내실텐데."
"그걸 노린 거 예요. 괜히 저한테만 시비 걸잖아요."
"하긴, 팀장님 유난히 ㅇㅇ씨 한테만 엄하게 구니까. 더 식기 전에 가 봐."
회사 동료가 다 알겠다는 측은한 눈빛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덩그러니 식은 커피가 남은 쟁반을 들고 팀장실의 문을 똑, 똑 두드렸다. 잠잠하던 팀장실 안에서 곧 들어오세요 하는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끼익 문을 열고 들어가 꾸벅 인사를 하니 종이 뭉치들을 넘기고 있던 팀장이 눈빛으로 내 인사를 받아친다.
"무슨 일이예요? 또 일 안 하고 농땡이 치러 온 거면…."
"그런 거 아녜요. 커피요."
"고마워요. 아, 근데 왜 이렇게 커피가 식었죠?"
"전기 포트가 고장이 났나봐요."
"거짓말이 서투네요. 전 식은 커피는 못 마십니다."
삐질삐질. 식은 땀이 흘렀다. 아, 괜히 오기 부려서 팀장한테 덤볐나 싶었다. 슥 커피를 팀장 권지용 이라고 적혀진 네임판 뒤 쪽으로 밀어낸 팀장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순간 나도 모르게 지은 죄가 있어 팔을 들어 머리를 감쌌다. 그 상태로 얼마나 있었을까 하… 하고 팀장의 것으로 보이는 탄식 소리가 터졌다.
"ㅇㅇ씨, 지금 뭐하세요?"
"하, 하하… 하."
"아무리 ㅇㅇ씨가 못된 짓을 했어도 전 사내 폭력을 휘두르는 몰상식한 사람은 아녜요."
"모, 못된 짓 이라뇨. 하하…하."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속담이 생각났다. 아, 쪽팔려. 팔을 내리고 어색한 분위기에 슥슥 손바닥을 치마에 문질렀다. 팀장이 그런 나를 가만 쳐다보다 옷걸이에 걸어진 제 수트 자켓을 챙기곤 걸음을 옮겼다. 어디 가시게요? 하는 내 물음에 팀장이 젠틀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퇴근이요."
"벌써요? 그럼 저희는…."
"저랑 ㅇㅇ씨 빼고 다 퇴근합니다."
팀장실의 문을 열고 밖을 향해 말한 팀장이 나를 보고 얌체처럼 스윽 웃어보였다. 퇴근하라는 팀장의 말에 직원들이 재빨리 일어나 챙기며 내 눈치를 보다가 수고하세요 하고 슝슝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몇 분 사이에 썰물처럼 직원들이 사무실을 모두 빠져나갔다. 우리 팀 칼퇴근 하나는 정말 최고다. 그나저나 진짜… 나랑 이 팀장 빼고 다 간거야? 억울한 마음에 훽 팀장을 쏘아보니 팀장이 그런 나를 보며 어깨를 으쓱대며 말을 이었다.
"식어버린 커피 탓을 하세요."
"…커피 내일 다시 타드릴게요."
"아뇨, 전 지금 커피가 너무 마시고 싶네요."
"그럼, 지금 타드릴…."
팀장은 내가 생각한 것 보다 더 쪼잔하고 소심했다. 아니 고작 커피 한 잔 가지고 퇴근도 못 하게 해? 팀장 몫의 커피를 타기 위해 탕비실로 걸음을 옮기려 몸을 돌리는 순간 탁 하고 손목이 잡히는 느낌이 들었다. …어?! 그리고 휙 몸이 뒤로 이끌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갑자기 기우뚱 하는 몸을 주체할 수가 없어 그대로 뒤로 엎어지나 싶었는데 허리 부근에서 단단한 손이 날 받쳐주는 느낌이 들었다. 팀장이 힘을 주고 기우뚱 기울어졌던 내 몸을 원래대로 세워놓곤 손을 두 어번 탁탁 털더니 웃으며 내게 말했다.
"아니요. 커피 한 잔 사세요, 카페에서."
"아메리카노 한 잔이랑 모카 블랜디드 한 잔이요."
주문서를 받은 예쁜 직원이 꾸벅 인사를 하고는 테이블과 멀어진다. 아, 그러니까… 아메리카노가 만 원을 훌쩍 넘고, 모카 블랜디드는 또 얼마? …커피에 금가루를 발랐나. 비싸도 너무 비싸다. 고개를 푹 떨구고 괜히 앞에 있는 휴지 조각만 잘게 찢어대니 팀장이 머리 위에서 작게 웃어대는 소리가 들려온다.
"ㅇㅇ씨, 왜 그래요."
"네? …커피값이요, 왜 이렇게 비싸요? 여기 완전 바가지……."
"부담되요?"
"당연하죠. 아니, 팀장님한테 돈 쓰기가 절대 아깝다는 건 아니구요. 그냥 너무 비싸서… 삼만원도 넘을 것 같은데 이 가격이면 제가 일주일을…."
"제가 낼게요. 걱정마요."
"정말요?!"
"ㅇㅇ씨 너무 기뻐하는 거 아녜요? 귀엽네요."
예? 예? 예?? 팀장이 커피 값을 낸다는 황금같은 말에 순간 빠바밤 귓 가에서 천사들이 나팔부는 소리가 났었던 것 같았는데 귀엽다는 충격적인 말에 뿌부 하고 천사들이 나팔을 들고 힘 없이 내 귓가에서 멀어져 갔다. 그러니까. 팀장님은 이런 제가 귀엽다구요? 아니지. 이 휴지를 보고 귀엽다고 하는 거 일 수도 있고, 이 멋진 야경이 귀여운 것 일 수도 있다. 괜히 설레발 치는 것 같아 그냥 어색하게 하하 웃었더니 팀장이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내게 다시 물어왔다.
"ㅇㅇ씨 귀엽다고 칭찬해 준 건데 아무 반응도 없네요? 시시하게. 엄청 마음 졸이면서 한 말인데."
"네?"
"아니 왜 계속 놀라요. 무슨 말만 하면 네? 네?"
"자꾸 팀장님이 이상한 말씀만 하시니까 그렇죠…."
"이상한 말씀 아닌데.ㅇㅇ씨 정말 귀여워요. 나 ㅇㅇ씨 반응이 귀여워서 매일 트집 잡은건데, 몰랐어요?"
"……."
"생각보다 정말 많이 둔하네요."
팀장과 나 사이에 침묵이 감돌았다. 아니, 그런 말을 갑자기 하면 뭐라고 대답해요. 대답도 못 하고 우물쭈물 휴지만 만지작 거리고 있는데 아까 그 예쁜 종업원이 가까이 오더니 실례합니다 하고 고개를 꾸벅 숙인다. 나도 모르게 반가운 마음에 실례하세요, 실례하세요! 하고 소리치니 예쁜 종업원도, 팀장도 소리나게 풋 웃는다. 아, 창피하다. 호텔 이름이 수놓아진 하얀 천 조각을 놓고 그 위에 예쁜 잔을 올려 준 종업원이 좋은 시간 보내세요 하고 또 꾸벅 인사하고는 테이블에서 멀어졌다. 저렇게 하루 종일 허리 숙이면 허리 안 아플까? 또 잠시 허튼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팀장의 목소리가 귓 전에 울렸다.
"내가 불편해?"
"…예?"
"내가 많이 불편해서 그러는거야?"
"아니, 그것보다 반말을…."
"여기 회사 밖이니까 상관 없지 않나, 나 어차피 ㅇㅇ씨 보다 3살이나 많아."
"아… 네."
"나 회사에서 ㅇㅇ씨 한테 트집 잡는 것도, 이렇게 사적으로 나와서 커피 사주는 것도."
"……."
"다 ㅇㅇ씨 마음에 들어서 그러는건데. 정말 몰랐어?"
알리가 있겠나요. 매일 혼내고, 시비 걸고, 직원들 앞에서 창피나 주는데. 부담스럽게 날 바라보며 말 하길래 고개를 숙이고 차가운 블랜디드를 주욱 들이켰다. 아, 비싼 거라 그런지 맛은 굉장하네. 팀장은 나름대로 고백했다고 생각했던 건지 아무 말도 없이 블래드디만 쭉 쭉 빨아대는 나를 한참이나 바라본다. 일부러 부담스런 그 눈빛을 피해 더 고개를 푹 숙였다. 그만 좀 쳐다보세요, 권지용씨. 저 뚫어지겠어요.
* * *
뭐야?????? 끝이야???? 라고 생각하신다면 끝이 맞슴당ㅋ
그래도 2편이 있어여... 上편이랑 下편으로 나뉜 글이예요
사실 앞 부분 더 있었는데 자르고 자르다가 안 되겠다 싶어서 결국 2편으로 나누게 됐어여ㅜ
이해 해주세여...굽신굽신.....
며칠 만이져??ㅠㅠ....흑흑 보고싶었슴당
며칠 만에 나타난..제가..이런..똥..글을... 아아... 전 죽어야 되여 (x.x)물만두 듀금
모든 시리즈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최신 글
위/아래글
공지사항
없음

인스티즈앱 ![[지디망상] 너보다 좋은 것 上 | 인스티즈](http://file.instiz.net/data/cached_img/upload/f/e/6/fe6c70de3e6c3f2fc8f53f368f9583c5.jpg)
조인성은 나래바 초대 거절했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