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지호가 떠난 지 벌써 5일이나 지났다. 우지호는 자신이 없으면 난 아무것도 못 하는 어린 꼬마아이 같다고 놀려댔지만 막상 우지호가 없으니 또 그렇지도 않다. 아침 밥도 잘 챙겨먹고, 집 정리도 깨끗하게 잘 했으며, 태일과의 관계도 어느정도 회복이 되었다. 오히려 내가 없는 우지호가 걱정이 되었다. 나 없다고 홍콩 가서 질질 짜고 있는 거 아냐? 피실 웃음이 세어나왔다. 우지호 처럼 하얀 그의 침대에 몸을 뉘었다. 오롯 우지호의 향만이 내 후각을 자극했다. 내가 과연 우지호 때문에 울게 될까. 아니, 울게 되면 안 된다. 안 울면 된다. 그리고 내가 이 내기에서 이기고, 우지호를 죽이면. 된다. 우지호를 죽인다는 생각에 온 몸이 짜릿해졌다. 눈을 감고 우지호가 내 밑에서 목이 졸려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꺽 꺽 대는 모습을 상상하다… 어제의 우지호가 겹쳐 생각났다. 아, 씨발.
지이잉 하고 베드 테이블 위에 올려 둔 휴대전화가 울렸다. 슬쩍 액정에 뜬 이름을 확인하니 이태일이다. 안 받아. 다시 침대 위로 누웠다. 지이잉 울리는 진동의 리듬에 맞춰 까닥 까닥 발을 움직였다. 우지호가 없는 하루하루가 너무 지루하게 흘러가는 것 같다. 옆에 있으면 죽이고 싶고, 시끄럽고, 귀찮지만 또 옆에 없으니 이렇게 허전하고 심심할 수가 없다. 그냥 옆에 있어서 날 지근지근 밟고, 날 밟고 웃는 우지호의 위를 내가 또 밟으며 승자의 웃음을 짓는 그런 끔찍한 하루하루가 더 나은 것 같기도. 어느새 전화의 진동이 끊겼다. 포기했나? 지잉 하고 문자가 도착함을 알리는 짧은 진동이 울렸다. 그럼 그렇지, 포기 할 이태일이 아니지. 느리게 몸을 움직여 휴대전화를 집어들고 문자를 확인 했다.
[전화 안 받으면 후회 할텐데]
[우지호에 관한 이야기임ㅋ 듣고 싶지? 전화ㄱㄱ]
이태일은 너무 날 잘 알아서 탈이다. 다시 이태일에게 전화를 걸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곧바로 건너편에서 여보세요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 무슨 이야기인데. ”
“ 급하긴. 듣고 싶으면 사무실로 와. ”
“ 그냥 전화로 해. ”
“ 그냥 사무실로 와. 올 때 여권이랑 짐 챙겨서 와. ”
“ 왜. ”
“ 홍콩 갈거야. 너랑 나, 그리고 경이. ”
이태일의 말을 끝으로 전화가 끊겼다. 박경은 왜 가는건데. 얼떨떨 하게 휴대폰을 쥐고 있다가 홀드키를 눌렀다. 화면이 까맣게 변했고, 그 화면 안에 멍한 표정으로 가만히 있는 내 얼굴이 보였다. 시팔… 얼굴 하나는 더럽게 잘 생겼네. 침대에서 일어나 캐리어에 잡하는 대로 옷을 넣었다. 아, 이거 우지호 팬티인데. …그러면 더더욱 넣어야지. 이것도 우지호 티셔츠 인데, 어 지방시네. 존나 입어야지. 이거 우지호 백팩인데, MCM? 존나 감사. 이거 한정판인 것 같던데. 짐을 다 챙기고 캐리어를 닫았다. 뭔가 우지호 옷만 가득 챙겨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평소에 지 옷도 못 만지게 하는데, 이럴 때 존나 입어야지 또 언제 입겠어. 서랍을 열어 여권을 꺼내고 신발을 신고, 집을 나섰다. 바깥 공기가 꽤 차서 두른 목도리에 코를 박았다. 아, 더럽게 춥다.
“ 뭐야, 이 새끼도 가? ”
“ 난 너랑 같이 가고 싶어서 가는 줄 아냐. ”
“ 둘이 그만 싸우고 티켓 받아. ”
먼저 태일의 방에 도착해 있던 박경이 내가 들어오자마자 삿대질을 하며 소리를 빽빽 질러댔다. 표지훈 가면 난 안 간다, 저 새끼 비행기에서 밀어버릴거다 부터 시작해서 별 별 욕을 다 하는 걸 그냥 무시했다. 비행기 티켓을 손에 받아들고 쇼파에 앉았다. 태일도 정 가운데에 앉아서 얌전히 앉아 있는 나와, 지랄을 해대는 박경을 쳐다봤다.
“ 우리가 홍콩에 가는 이유는. ”
“ ……. ”
“ 일이 잘 안 풀려서. ”
“ 뭐야, 장난해? 우지호가 직접 갔다며. ”
“ 우지호가 다쳤어. ”
아무렇지 않은 덤덤한 목소리로 말한 태일이 주머니를 뒤적여 꺼낸 담배를 입에 물었다. 라이터를 찾는 듯 제 주머니를 뒤적거리길래 내 자켓 주머니에 있는 은 색의 지포 라이터를 툭 이태일에게 던졌다. 태일이 땡큐 하며 라이터를 받아들고 칙, 칙 부싯돌을 돌려 제 입에 문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래서 어떻게 다친건데? 아까보다 사뭇 진지해진 박경이 태일에게 물었다.
“ 그거야 나도 모르지. 절대 실수는 용납하지 않던 녀석이. ”
“ 됐고, 일은 어떻게 됐는데? ”
“ 표지훈 독하네. 네 동료가 다쳤다는데. ”
“ 시꺼, 우지호 보다 일이 먼저야. ”
“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네. 일을 망친 건 아냐, 단지 그 쪽에서 마음이 변한건지, 속셈을 알아 챈 건지 돈을 먼저 달라 하더라고. ”
끙 앓는 소리를 내며 곤란한 표정을 한 태일에 반도 태우지 않은 담배를 투명색 재털이에 마구 비벼 껐다. 우지호 씨발새끼! 지원팀으로 해외로 나가는 게 마음에 안 드는건지, 다친 그가 걱정되어서 그런건지 박경이 제 머리를 헝클이며 홍콩에 있을 우지호를 향해 욕을 해댔다. …우지호가 다쳤다라니. 놀란 척 하지 않았을 뿐 사실 매우 놀랐다. 제 몸 관리는 철저히 하고, 현장에서 웬만한 상황이 아니면 먼저 나서질 않는 그런 우지호가 대체 어떤 일이 일어났길래 다쳤다는거야. 이태일이 손목에 채워진 시계를 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입을 열었다.
“ 자세한 이야기는 비행기 안에서 해줄게. 가자. ”
이태일이 방을 나서자 박경이 날 쏘아보며 뭐라뭐라 영어로 중얼 거렸다. 뭐, 새꺄. 영어 못 한다고 존나 무시하냐? 박경을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보이니 박경이 피실피실 웃으며 태일을 따라 방을 나갔다. 저 재수 없는 새끼가. 나도 자리를 털고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빠져나와 엘리베이터를 탔다. 5, 4, 3, 2, 1. 띵 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하고 건물 앞에 서 있는 까만 차에 올라탔다. 재효가 뒷 자석의 문을 열어주며 잘 다녀오십쇼 하고 인사하는길래 잘 있어 하고 인사하며 차에 올라탔다. 박경이 반 쯤 차에 몸을 들이밀다가 다시 고개를 빼꼼 차 밖으로 내밀어 재효에게 뭐라뭐라 말 한다. 그런 박경을 보며 재효가 까르르 웃다가 다시 정색을 했다. 박경은 쩝… 하고 아쉬운 소리를 내며 다시 차 안으로 몸을 들이 밀었다. 탁, 하고 문이 닫이는 소리와 함께 차가 부드럽게 출발했다.
“ 이번에 홍콩에 새로 자리잡은 작은 조직들이지. 하지만 그 조직 안에서 나오는 물량이 어마어마해서 무시 할 수 없는 그런 곳이라고 해. 그런 영악한 놈들하고 우린 지금 거래를 하고 있는거야. 그 쪽에서 GHB를 대량으로 생산하고 있어. 국내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GHB가 아니라, 좀 더 개선 된 약이야. ”
“ GHB면 데이트 레이프 드러그(date rape drug)잖아. 그걸 사서 뭐하게? 언제 우리 조직이 이렇게 불순한……. ”
“ 강간 목적으로 쓰려고 사는 게 아냐. 세세한 내용은 이 일에 관련된 애들한테만 해뒀으니까 넘어가고. 우리가 이번에 GHB를 대량으로 그들에게 구매하기러 했어. 근데 그 쪽에서 GHB를 거래하면서 우리를 소탕하자는 계획을 세웠나봐. ”
“ 잠깐, 그 정보는 어떻게 우리 귀에 들어오게 된건데? ”
우우웅 하고 미세하게 들리는 비행기의 모터 소리에 목소리가 묻일 정도로 조용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가고 있던 이태일을 박경이 막았다. 이태일이 표정을 구기며 자꾸 자신의 말을 막지 말라는 듯 박경의 뒷통수를 크게 한 대 때렸다. 박경이 씨발, 왜 때려! 하고 소리를 지르자 넌 그게 문제야. 하며 이태일이 다시 뻑 하고 박경의 뒷통수를 또 한 번 때렸다. 무지 아플거다, 병신아. 박경이 으으 하며 뒷통수를 벅벅 긁는 걸 보고 피식 웃었다. 이태일의 작은 체구에서 나오는 괴력은 믿기 힘들 정도였기 때문이다. 이태일이 말을 이으려고 입을 벌리는 순간 똑, 똑 하고 문을 두 어번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문 앞에 서 있던 직원들이 스튜어디스입니다 하고 이태일의 귀에 속삭였다.
“ 그럼 나 핫 초코 한 잔만. 단 걸 못 먹어서 머리가 아파. ”
“ 유딩도 아니고, 핫 초코. ”
어쩌라고. 귀 파는 시늉을 한 이태일이 붕 하고 손을 들어 올리길래 슥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 덕분에 퍽 하고 푹신한 의자를 친 이태일이 찌르르 울리는 손목을 잡으며 으으 하는 신음소리를 내뱉었다. 그러니까 그만 좀 때려, 새꺄. 이태일이 민망한 듯 큼큼 목을 가다듬었다. 그 사이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암갈색의 핫 초코가 이태일의 앞에 놓여졌다. 요새 항공사는 핫 초코 까지 준비하나…. 내 혼잣말을 들은 박 경이 킬킬 웃으며 말했다. 프레스티지석 이잖아.
“ 그 쪽에서 직원 관리를 잘 못 한 탓이지. 돈 주고 정보를 넘겼어, 우리 쪽 한테. 정보를 다 알아버렸으니 우리가 가만 있을 수는 없겠지? 우리가 반대로 소탕하자 하고 말을 했지. 그래서 우지호를 앞에 두고 믿을만한 녀석들을 보낸건데… 뒷 처리를 구리게 한 건지, 자세한 이유는 모르지만 1차로 만남을 가지고 있을 때 우지호가 타고 대기하고 있던 차에 누가 총질을 했어. 운전하던 애는 죽고, 우지호는 빠르게 피하긴 했지만 다쳤다고 하던데 얼마큼 다친건지는 나도 잘 몰라. 아마 우리 쪽에서 많은 부상자들이 생긴 것 같아서 직접 나 까지 나서서 지원해 주러 가는거야. ”
“ 뭐야, 존나 심각하잖아. ”
“ 그래서 빠르게 날아가고 있잖아. 잠이나 자 둬. 도착하면 새벽일거야. ”
말을 마친 이태일이 후후 핫 초코를 불다가 살짝 들이켰다. 박 경은 복잡한 얼굴로 등을 훽 돌려 버튼을 눌러 펼쳐진 좌석에 누워 눈을 감았다. 우웅… 미세하게 비행기가 움직이는 소리 외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언제나 자신이 하는 일은 성공한다며 자신만만해 하던 우지호가 다쳤고, 심지어 일을 망치기 까지 했다. 그럼에도 이태일의 표정은 덤덤하기만 했다. 2년 전에는 얼굴이 빨개지도록 화내고, 때리던 사람이 지금은 어쩜 저렇게 태평하기만 할까. 2년 전 일은 나였고, 현재의 일은 우지호이기 때문일까. …얼마나 다쳤을까. 죽진 않았으면 좋겠는데. 우지호는 내가 죽이고 싶은데. 눈 앞에 둥둥 떠오르는 우지호의 모습에 눈을 감았다. 하지만 눈을 감아도 떠오르는 건 우지호 였다. 망할 우지호. 살아만 있어라. 망쳐버린 거래도 걱정되지만 사실 제일 걱정 되는 건 우지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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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임당..신사임당ㅋ..ㅋㅋㅋㅋㅋㅋ
이번 편은 우죠 등장씬 없지만 우죠의 존재감이 겁나 크네여!!!!!
그리고 이번 편은 존나 재미없쪄!!!!!!내가 봐도 재미없쪄!!!!!!!!!
이번 편의 개그 코드는 이태일이 보스+담배도 피는 것ㅋ
아 그리고 GHB는 신종 마약이라고 하네여ㅇㅇ 미국에서는 데이트 강간이라고 불린다고 함
무색 무취이고 술에 타면 아무도 모른대여 취사량 이상 넣으면 정신을 잃고 쓰러져서 그 때 강간...한다고 하네요 약 목적이 원래 그런 거 인가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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