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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이 간질간질한 느낌에 눈을 떠보면 아직도 방안에는 햇빛이 가득하게 차서 눈부시다. 분명히 박지민이랑 죽먹고 약도 먹고 한 오후 2~3시쯤에 누워서 잔 거 같은데 아직도 낮이네.
두세시간정도밖에 안 잤나- 하는 생각으로 얼추 시간을 때려맞추고 있다가 내가 이렇게 빨리 잠에서 깨다니하는 감탄과 함께 내가 갑자기 왜 깼을까하고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제서야 내 등을 제 쪽으로 끌어안아 한쪽팔은 내 머리를 받치고선 나머지 제 손을 내 손에 포개고 끊임없이 꼼지락대는 박지민을 알아챘다.
맞다, 헐. 나 박지민이랑 같은 침대에서 잤다. - 일단 낮잠인거 같긴 하지만 - 아, 물론 정말 순수하게 잠만 잤다. 박지민이랑 같이 잔 적은 몇번 있다. 어렸을 때, 한 번 놀기 시작하면 끝날 줄 모르는 우리였기 때문에 밤새도록 같이 놀 때에는 늘 옆에 게임보드판이나 장난감을 두고 누가 먼저 잠든지도 모르게 밤을 보낸 적이 몇번 있다. 이런 경험을 살펴보았을 때 박지민과의 동침이 대수롭지 않아야 할 내가 이렇게 신경쓰는 이유는 바로 최근에 이루어진 동침이 게속해서 내 머릿속에 맴돌기 때문이다. (Feat. 불맠... ❀.(*´▽`*)❀...)
내가 자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제 마음대로 내 손가락 사이사이 자신의 손가락을 끼워보기도하고 내 손을 자신의 손등을 쓸기도 하며 마구 만져대다가 갑자기 꼼지락대기를 멈춘다. 곧이어 내 시야에서 박지민의 손이 사라지고 나의 뒷머리에서 그 온기가 느껴지기 시작한다.
뭔가, 지금 내가 깨어버리면 서로가 굉장히 부끄러울 거 같은 그런 예감..
여기저기 헝클어져있던 나의 머리를 모아 귀 뒤로 살짝 넘겨주며, 어느샌가 훅 다가와 내 목덜미에 자신의 얼굴을 묻고는 깊게 숨을 들이마신다.
흐읍...
내가 제일 예민하다고 자부할 수 있는 목덜미에 뜨뜻한 바람이 닿으니 절로 배에는 힘이 들어가고 자연스레 단전에서부터 깊은 호흡이 나오려고 한다. 하지만, 난 멋진 김탄소천재짱짱맨뿡뿡이니까 잘 참았지.
자네, 내적갈등이라고 아나. 그게 바로 내 육신과 정신의 상황이라네.
끝일 줄 알았던 고비였는데 그게 아니었다. 더욱 깊숙히 파고드는 박지민의 머리카락이 나를 사정없이 마구 간지럽혔다. 이번 껀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크허..."
하고 숨을 내뱉자, 방안은 고요에 휩싸였다. 꼼지락대기를 계속하던 박지민은 순간 얼음이 된 듯했다. 나도 마찬가지로 얼음이 되어버렸다.
젠장. 망했다. 어떻게 내뱉어도 저런 아저씨 같은 신음을 내냐고. 누가 보면 해장하러 국밥 한 사발 드링킹하고 뱉은 숨인줄 알겠다. 민망해서 낯짝을 들 수가 없네.
"..풉, 흐허허허헣"
뒤에서 박지민이 미친듯이 웃는다. 에레이.
발끝에서부터 열이 올라 지금 내 얼굴은 화끈화끈하다. 박지민이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 제 쪽으로 돌리려 한다. 지금 내 얼굴은 백퍼 홍당무가 되어 있을것이다. 박지민에게 이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가 않다. 쪽팔린다. 나를 돌리려 하는 박지민의 노력에 나 또한 안간힘으로 몸을 원상복구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역시 박지민이 근육을 키우더니 나보다는 힘이 셌나보다. 쳇, 결국에는 몸이 돌려져 박지민과 마주하게 되었다.
"...으어!"
예상보다 더 가까이 있는 박지민때문에 놀라서 또 이상한 소리를 내버렸다. 이제는 정말 안 될 거 같아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려버렸다. 그래, 요 낯짝이라도 가려버리자...하는 마음에 두눈을 내 손안에 묻고 고개를 숙인다. 그러면 박지민이 그 통통한 손으로 조심스럽게 내 손가락 하나하나를 떼어내려한다. 그럼 난 또 고개를 막 좌우로 흔들면서 철벽 수비를 했다.
"아이.. 가리지마."
"..안돼, 나 지금 얼굴 완전 빨개."
"빨개도 괜찮아."
"안돼, 내가 안 괜찮아. 나 지금 완전 못생겼을거야."
"아니야아.., ..귀여워."
귀엽다는 너의 말에 용기를 얻어서 손끝을 살짝 벌려 눈만 빼꼼 내밀어 너를 보았다.
응..? 왜 니 얼굴이 빨갛냐. 아직도 열이 안 내려갔나보네. 약 먹은지 얼마 안돼서 그런가. 걱정스러운 마음에 내 얼굴을 가리고 있던 손을 풀고 당장 너의 얼굴로 가져갔다. 한손은 이마를 짚고 나머지로는 손등으로 너의 볼에 아직도 열기가 남아있는지 확인했다.
"아픈 건 좀 어때? 아직 열이 좀 있네."
"다 나았어."
"거짓말 치지마, 열 올라서 얼굴이 이렇게 빨간데."
"그거 열 때문에 그런거 아닌데. 너 때문에 그런건데."
"어..?"
"너랑 이렇게 있으니깐"
"..."
"꼭 결혼한 거 같아서."
***
내가 잠들어 있는 동안 해가 지고 떴다고 했다. 분명 얼마 안 잔 거 같은데, 어째서 다음날이 되어있는거냐고. 박지민딴에는 나한테 감기를 옮긴것 같아 얼른 낫길 바라는 마음에서 푹 자게 놔두었다고 했다. 뭐, 어찌됐든 나쁠건 없다.
"딸, 날은 언제야?"
"무승 날? 뭥 행사 이써? (쿰척쿰척)"
.
.
.
지민이의 마지막 말을 이후로 더 부끄러워진 우리는(나만 부끄러웠을지도..) 꽤나 긴 시간을 말없이 서로 바라보았다.
우리가 결혼이라.. 지민이 말대로 이렇게 한 침대에서 아침을 맞으니 정말 부부가 된 것만 같다. 눈 감기 전까지 항상 함께 하고, 눈 뜨자마자 또 함께하고. 아마 지금 우리의 연애의 끝도 결혼으로 맺어지겠지. 우리도 언젠가는 부부가 될거야. 지민이랑 한 침대에서 같이 눈뜨고, 같은 욕실에서 씻고, 같은 식기구를 쓰고, 같은 현관에서 외출준비를 하고, 같은 쇼파에서 하루의 고단함을 풀고, 같은 침대에서 하루를 마무리하고.
것보다 아무래도 신혼이면 막 불타오르겠지..?
후.. 네, 맞아요. 저는 쓰레기입니다.
"여보야~"
으어, 박지민이 내 남편이라니 상상만해도 심장에 무리가 온다.
우린 언제쯤 결혼하게 될까? 우리가 대학을 졸업하고 난 후? 아님 우리가 취직하고 직장에서 조금 더 자리를 잡았을 때? 아무래도 그러면 서른은 넘기고 해야겠지? 우리 애기들도 분명히 귀여울거야. 지민이 닮은 딸 하나랑 아들 하나.. 얼마나 귀여울까..。゚゚(*´□`*。)°゚。 막 그 조막손으로 어마어마, 하면서 나 따라다니면 분명히 난 그 자리에서 숨지게될거야.
아가들아, 꼭 너네 아빠 닮아야 돼. 나 닮으면 안된다..
그렇게 김칫국을 김치독채로 들이키고 있을 때 문득 부엌에서 들려오는 시끌벅적한 두 아주머니의 목소리에 정신을 번쩍 차리고 아침 먹으러 가자 하고 지민이를 이끌고 방 밖으로 나섰다. 식구가 다 모인김에 그냥 지민이네 집에서 아침을 먹기로 한 우리였고, 내 옆엔 지민이, 앞엔 엄마가, 대각선에 아주머니가 앉으신 채로 아침식사가 시작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는 나에게 날이 언제냐고 물어보았고, 이게 방금의 상황이었다.
"너 뭐 아는거 있어? 냠냠쩝쩝.."
"어이구, 잘 먹네."
"아줌마, 누구 결혼해요?"
"응~ 그것도 두 집안에 아주 경사가 났단다"
누구지.. 저번에 사촌 언니가 남친 생겼다더니, 벌써 결혼하나.
"민경언니야?"
"어머, 민경이 결혼하니?"
..아니, 나도 모르니까 물어봤지. 도대체 누가 결혼한다는 거야...!!
"그럼 누군데요?"
"너네~^^"
"아, 진짜?"
아, 너네가 결혼하구나.
..?
"푸루후ㅍㅇ우푸푸푸풒ㅂ!!"
"뭐???!?!?!? 내가 잘못들은 거 아니지?! 너네??? 우리??!?"
"응! 너네! ㅎㅎ~ 박지민 군과 김탄소 양!"
"..아줌마, 전주에서 많이 힘드셨어요? 엄마가 많이 힘든가봐요, 그죠? 자꾸 이상한 소리를 하시네..ㅎㅎ"
"응? 무슨 이상한 소리? 너네 결혼하는 거 아냐? 둘이서 한 침대에서 막 부둥부둥 하더만~ 이제 결혼만 남은거 아냐?"
"아! 아줌마..!! 그건...!!"
"왜, 뭐? 할 말 없지~? 호호~"
아.. 진짜 돌아버리겠네....
이렇게 두 분이 호들갑 떠실까봐 사귀는 것도 말 안 한거였는데.. 아 진짜 미치겠다.. 아니, 박지민 이놈은 왜 옆에서 아무말도 안해? 여기가 무슨 태권도장이냐? 두 주먹은 왜 무릎위에 있는건데.. 허리는 또 왜 그렇게 꼿꼿하냐..
"..야, 너도 뭐라고 말 좀 해봐.."
"..예."
"제가, 탄소 열심히 먹여 살리겠습니다. 장모님!"
뭐니, 얘는.
헤헤 윙크 발쨔-!
이야..! 막장이구나! 얼씨구나..!!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