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보고 싶었어
w.엔돌핀
꿈을 꿨다.
한 남자를 보았다. 키카 컸고, 선한 눈매에 웃을 때 감기는 눈이 참 예쁜 사람. 나에게 그런 웃음을 보낸 사람이 있었던가. 이제껏 살아온 삶 속에선 찾아볼 수 없는 아주 맑은 웃음이었다. 아, 나는 언제 그렇게 웃어봤더라.
불행이란, 교통사고로 다치거나 억울하게 범죄자 취급을 받는 일처럼 심각한 문제만은 아니다. 아끼다 처음으로 입은 새 옷에 흙탕물이 튀거나, 무심코 넘긴 책장에 손을 베이거나, 다 챙겼다고 생각했는데 휴대폰을 놓고 나온 것처럼, 아주 사소한 일들도 불행이란 이름으로 불리니까. 그렇게 가지각색의 불행 중 나는 중간 정도의 불행과 올해로 10년째 함께 하고 있다. 10살 무렵부터 시작된 부부싸움에 화분과 책꽂이가 엎어지면서 작고 약했던 내면은 움츠리다못해 제 모습을 감춰버렸고, 색을 잃어버린 채 텅 비어버린 마음은 눈빛으로도 티가 났다. 꼬맹이 시절 눈이 정말 초롱초롱하다며 이쁨을 받던 기억이 잘못되었나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반짝이던 눈망울은 초점 없이 어딘지 모를 곳을 향하고, 선생님도, 가수도, 한의사도, 작가도 되고싶어하던 꼬마는 모든 일에 의욕을 잃은 채 스스로를 갉아먹어가는 중이었다.
뭐? 겨우 부부싸움 때문에 사람이 싹 바뀌는 게 말이 돼?
아니, 싸움나서 날아온 물건에 맞아서 머리가 어떻게 됐다던가, 가정불화 때문에 왕따를 당했다던가 그런 것도 아닌데.
그건 니가 너무 나약해서 그런 거잖아. 극복하려는 노력도 안해봤으면서 징징대지마.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분명 존재할 테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부모라는 사람에게 들은 말이었으니, 타인의 시선에서는 이보다 더 독한 말들이 생각나겠지. 타인의 시선에서는 한없이 가벼울지 몰라도 자신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불행은, 이 세상에 차고 넘친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의 내 나이는 14살이었다. 그렇게 살기를 5년, 꿈과 희망이 넘치던 소녀는 노력없이 결과만 바라며 미래를 계획하기를 회피하는 아주 한심한 존재가 되어 있었다.
너는, 날 있는대로 바라봐줄까.
너무 지쳤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했다. 집을 떠나고 싶었지만, 다른 지방으로 골라 지원했던 대학마저 바람이 되어 손아귀에서 빠져나갔다. 재수를 하기도, 또 다른 일을 찾기도 질리고 힘들고 지쳐서, 자책하고 괴로워하기도 답답해서, 아무도 날 건드릴 수 없는 곳으로 가고 싶어졌다. 아프지 않게 죽을 수 있다면, 제발 누가 날 좀 데려가 달라고.
덩치에 맞지 않게 순수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던 그 사람이라면, 내가 숨쉬게 해줄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매일 꿈을 꾸려고 했다. 그 사람을 다시 보게 해달라고 자기 전마다 간절히 빌었다. 그러나 대부분은 꿈을 꾸지 못하거나, 기억도 나지 않는 개꿈만이 아침에 눈을 뜨면 떠오르곤 했다. 그래도 멈출 수는 없었다. 나에게 남은 마지막 희망이었으니까. 그 사람이 아니라면 굳이 살아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지 않을 정도로 삶에 대한 미련이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러기를 꼭 한 달,
스무 살이 되던 첫 날에, 그가 보였다.
안녕.
보고 싶었어.
살면서 누군가를 이토록 원한 적이 없었는데, 그 쪽이 처음인데. 드디어 만났네.
쌍커풀 없이도 커다란 눈. 그 눈 속에 담긴 나를 한 번, 여전히 밝게 빛나는 남자를 한 번,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내다 그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오래도록 쓰지 않아 조금은 어색한 근육을 끌어당겨 웃어보이자, 전에 보았던 맑은 웃음으로 화답하는 남자. 전보다 더 예쁘다. 호선을 그리던 남자의 입이 벌어졌고, 그 안에서 짧은 단어 몇 개가 흘러나왔다.
나도.
보고 싶었어.
![[방탄소년단/김태형] 안녕, 보고 싶었어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6/05/10/0/b2df3bfbd9034da0f2b17d48fba41b54.jpg)
처음 글 올려요...(두근두근)
태형이가 웃는 게 너무 예뻐서 쓴 글인데 사진 찾기가 어렵네요ㅠㅠ
이런 글은 처음이라 잘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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