띵동-
'여보세요.'
곧 문이 열리고 찰나의 어색한 침묵이 흐른 후, 수연은 몸을 비켜 젖은 태연을 집으로 들였다. 둘은 헤어졌다. 태연은 수연이 그립기는 커녕피곤한 일도 줄었으니,가끔 들려오던투정마저 들리지 않으니, 꽤나 좋은 이별이라고 생각했다. 태연이 다른 사람과 키스하는 모습을 상상해봐도 수연은 아무렇지 않아졌고, 매일같이 부르던 애칭마저 어색해져 본명을 부를만큼 서로는 서로를 지워갔다. 하지만 비가 내리고 세상이 젖어가 기분마저 야릇해져갈땐, 혹은 마신 술에 취해 끓어오르는 성욕을 주체하지 못할 땐 태연은 습관처럼 수연을 찾았다. 그리고 수연도 기다렸다는 듯이, 태연을 받아들였다. 마치 오늘과 같이.
침묵은 이어졌다. 그저 말없이 서로에게 익숙한 침대에 누워 옷을 벗겼다. 키스를 하며 가슴을 만졌다. 나신의 수연은 여전히 아름다웠고, 그 몸에 태연은 아찔했다. 야릇한 신음소리는 태연을 더욱 아득하게 만들었고 둘은 여전히 사랑하는 사람들처럼 몸을 나누었다. 한참의 격렬한 행위에 떨어진 태연의 땀방울이 수연의 얼굴로 떨어졌다. 그 땀방울을 쫓던 태연의 눈은 수연의 눈으로 향했고 또 다시 어색한 침묵이 이어진다.
밤이 지나고 어색한 침묵 끝에 급하게 등을 맞대고 앉아 태연은 바닥에 떨어진 옷가지를 주워 급하게 단추를 채운다. 수연은 헛기침을 하며 태연을 향해 돌아볼 때를 기다리며 확신한다. 서로는 더 이상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다.다시는 보지 말아야겠다며 다짐을 하고선 한동안을 다시 모르는 사람처럼 지낸다. 하지만 비가오는 날이면, 혹은 술에 취한 날이면 태연은 다시 수연을 찾았다. 1년을 넘도록 마음은 서로를 잊었지만 몸은 서로를 잊지 못했다.
우주보다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너였는데 이젠 외로운 밤을 채워주는 그저그런 사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이제 서로는 완벽한 남남이 되었다. 비가 주륵주륵 내리는 날에도, 술에 취해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날에도 더 이상 내 몸은 너를 찾지 않는다. 가벼웠지만 끈질겼던 우리의 인연은 그렇게 끝이 났다. 나는 너에게서 그리고 너는 나에게서 완전히 벗어났다. 분명 더 이상 나는 너를 사랑하지 않는데,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았던 그런 완벽한 이별이였는데 왜 이제야 이렇게 슬프게 느껴지는 걸까.
잘 가라. 내가 사랑했던 사람아.
잘 가라. 나를 사랑해준 사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