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 소랑
내 인생에 남자가 없진 않았다.
초등학교 때 내 손을 잡고 뒷 계단으로 끌고 가 수줍게 고백을 말하던 남자애가 끝인 게 함정이지만.
이 남자는 그 아이처럼 박력이 있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수줍음 따위도 없었다.
그 때부터였다. 같이 밥을 먹은 뒤로 자기 말론 우리가 인연이라며 매일을, 항상 나와 마주쳤다. 어딜가든. 항상.
마주칠 때마다 느낀 자그만 이 떨림은 나만 알고 있을 뿐, 넌 알지 못 할 거다.
아마도.
같이 먹을 친구가 없다며 나와 같이 밥을 먹어주고, 또 어느 날은 집 가는 방향이 같다며 매일 혼자서만 걷던 길을 나란히 발을 맞춰 걸어가고, 밤늦게 까지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날 보며 혼자 있으면 위험하다고 꾸벅 꾸벅 졸면서 까지 내 곁을 지켜 주었던 너.
그래, 아마 그 날 이었을 거다.
나의 새로운 처음을 앗아가 버린 그 날.
”왜 그렇게 뚱해있어.“
”...“
”응?“
아마도 저를 기다리는 동안 많이 피곤했었던 건지 그 요물조물한 입술사이가 살짝 벌려져 있는 체로 잠들어 버린 순영이 그 새를 못 참고 또 귀여운 짓을 벌여놓았다.
”너 지금 자다가 침 흘린 거 때문에 그렇지?“
”...아니거든요.“
아니긴 뭐가 아니야.
집 가는 길에 잠깐 들린 화장실에서 한동안 나오지 않은 널 보고 얼마나 귀여워 죽겠던지. 아마 제가 흘린 침 자국에 쪽팔려 허공에 주먹질을 해대고 있었을 거다.
화장실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마냥 해맑고 언제 피곤해 했던 적이 있었냐는 사람 마냥 실실 웃으며 나를 쫒아오던 그였건만, 화장실에서 나오고 나서는 시선을 땅에만 고정한 채 걷는 건지, 기는 건지도 모를 걸음걸이로 누가 봐도 나 쪽팔려요를 이마에 붙이고 걸어가는데 누가 몰라.
자꾸 올라가는 입 꼬리를 감추지 못하고 히죽히죽 웃다가 어느새 집 앞에 다다랐다.
혼자였을 땐 가장 멀게만 느껴지고, 저질 체력을 뒤로하고 뜀박질을 해서라도 저 대문을 열고 따뜻한 집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 했지만, 혼자가 아닌 둘이 된 지금은 가장 가깝게 느껴지는, 다가가기 싫은, 대문이었다.
마음 속 어딘가에 알지 못하는 서운함과 우울함이 스멀스멀 올라와 입 꼬리는 축 처진지 오래였다만, 뒤를 돌아 순영이를 쳐다보니 아까와 같은 포즈를 한 채 뚱해 있다.
다시 올라가 버리는 입 꼬리, 너무 가벼워 문제다.
”순영아, 나 들어간다?“
”..후“
”순영아?“
이제야 날 쳐다보는 그 눈빛, 아직도 튀어나와있는 그 입술이 너무 귀엽다. 귀여워 미칠 것 같다.
나도 모르게 올라가 버리는 한 손.
어느새 그 폭신한 머리에 사뿐히 앉아버린다.
”...귀여워.“
”...“
”귀여워, 순영아.“
천천히, 포근하게 쓰다듬는 내 손길이 좋았던 걸까, 아님 놀라 당황한 건가, 툭 튀어나온 입술이 다시금 벌려진다. 동시에 커지는 두 눈.
그렇게 한참을 마주 보며 웃었다. 알 수 없는 간질간질한 느낌과 함께.
그러다 갑자기 무언가 내 입술에 따뜻한 온기가 닿았다 떨어진다.
너무 순식간이라 무엇인지 보지도 못했다. 아, 입술이었던가.
”아, 어.. 저 그게..“
심장이 멎어 버린다. 이젠 내가 커진다, 두 눈이. 벌어진다, 두 입술이.
툭.
폭신한 그의 머리 위에 있던 내 손이 하염없이 떨어진다.
온 몸이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그 짧은 순간으로 인해 입혀지는 피해는 어마어마했다.
이내 잡혀지는 내 두볼.
따스한 그의 큰 손이 차가운 나의 두 볼을 감싸 안는다.
그러고선 이내 다시 닿아버린 입술.
쪽.
이번엔 닿아있는 시간이 조금 길었던 것도 같다.
그게 무엇인지 머릿속에 인식이 완료된 후에도 떨어지지 않았으니까.
눈을 뜨고도 꿈을 꾸는 것 같았다.
떨어지는 너의 얼굴, 다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이 방금 전까지 따뜻해 녹아버릴 것 같았던 내 입술을 강타한다.
”다음부턴 귀여운 짓 안 할래.
잘 가요. 누나. “
그 큰 손으로 나의 볼을 꾹 누르더니 이내 손마저 나에게서 떨어져 버린다.
그렇게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자연스럽게 물들어 버린다.
그렇게 너는, 나의 첫 입맞춤을 빼앗아가 버린다.
ㅡ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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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방탄 찐팬이 올린 위버스 글인데 읽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