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락비/직경] 사과우유 1화 | 인스티즈](http://file.instiz.net/data/cached_img/upload/d/6/c/d6cee2d754336fa7051b5d51585076dd.jpg)
사과우유
“왜 사과우유는 없는거지?”
뭘 그렇게 골똘히 생각하는가 싶더니 한참만에 꺼낸 소리가 저거다.
나는 뭔 뚱딴지 같은 이야기인가 싶어 가만히 박경을 응시했다. 장난스럽게 말한 것 치고는 제법 표정이 진지하다.
“글쎄다. 딸기우유, 바나나우유, 커피우유, 초코우유는 있어도 사과우유는 없네.”
사과와 우유. 따로 놓고 보면 나쁘지 않은데 둘을 섞으면 어떨지 잘 모르겠다. 대충 생각해봐도 썩 잘 어울리는 조합은 아니다.
사과는 새콤하고 우유는 고소하니까. 만약 잘 어울렸다면 벌써 시중에는 사과우유가 유통되고도 남았겠지.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데 한참 진지 모드에 돌입해 있던 경이가 고개를 휙 들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결심했어! 난 사과우유를 만들거야.”
◈◈◈
박경이 이상하다. 보통 이상한 것도 아니고 엄청 이상하다.
맴맴맴 짝짓기에 열 올리는 매미들이 울부짖고 초록의 울창한 녹음이 가지마다 앞 다퉈 피어나는 지금은 여름. 원래대로라면 늦잠자고 있을 오늘 나는 경이와 함께 등교하고 있었다. 대한민국의 고등학생은 참으로 비참하다. 남들은 방학이라며 신나게 놀고 있는데 우리는 이른 아침부터 등교하고 자빠졌으니. 빌어먹을 스카이 서울, 토익, 토플.
노는 날 학교 나오는 것도 짜증나 죽겠는데 박경놈마저 내 심기를 자극한다. 열혈남아 낭랑 십팔 세 나 우지호. 정말이지 오늘 인내심 제대로 한번 테스트하는구나.
경이는 초등학교 때부터 어울려 놀았던 단짝이라면 단짝인, 웬수라면 웬수같은 녀석이었다. 남자 주제에 의외로 여자처럼 감수성이 민감하고 나무늘보 뺨치게 게으르고 무엇보다도 눈이 엄청 컸다. 가만히 있어도 눈이 튀어나올 것 같은데 크게 뜨면 진짜 쏟아 질것 같다.
그런 박경이 이상하게 요즘 따라 나를 살살 피한다. 벌써 한달 쯤 됐나? 워낙 눈치가 느려서 처음에는 박경이 나를 꺼리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어느틈에인가 혼자 몰래 하교를 하지 않나, 분명히 나를 봤음에도 인상도 하지 않고 쌩 피하지를 않나, 복도에서 마주치면 방향을 돌아서 가지를 않나, 별의 별 방법을 써가며 미꾸라지인 양 잘도 나를 피해 다니는 것이었다.
박경이 삐지는 일이야 한두 번이 아니라 별로 신경 쓰지 않았는데 의외로 장기전이 되자 나는 슬슬 기분이 더러워졌다. 유별나도 너무 유별나다. 보통은 내가 한수 접고 들어가서 몇 번 징그러운 애교 부리면 금방 풀렸는데, 지금은 그런 비장의 무기마저 통하지 않는다. 오히려 악효과였다. 나를 볼 때마다 얼굴이 새빨갛게 타올라서는 눈에 띌 정도로 딱딱 굳는 경이가 안쓰럽기도 했지만, 이내 그렇게까지 내가 싫은가 싶어 조금 우울해진다.
“박경.”
“…….”
“야, 내말 씹냐?”
“아니.”
어떻게든 경이와의 관계를 회복해보려고 나는 새벽 일찍부터 경이네 집 앞에서 잠복하다가, 평소 게으른 습관을 생각하면 너무나도 일찍 나오는 경이를 낚아채서 같이 등교하는 중이었다. 대놓고 내가 나타날 줄은 몰랐는지 낭패감으로 썩어가는 경이의 표정에 나는 또 기분이 팍 상해버렸다. 도대체 뭐가 문제냐고.
같이 등교하는 것도 오랜만이었다. 나는 어떻게든 경이에게 말을 붙이려고 노력하고 저 놈은 어떻게든 나를 무시하려고 안달이다. 침묵 아니면 단답형. 정말 환장하고 미치겠다.
“내 눈이나 보고 말하지?”
“싫은데.”
그리고 어째서인지 박경은 좀처럼 나와 눈을 마주치려고 하지 않았다. 나는 말할 때 아이컨택을 자주하는 편이라 상대방의 시선이 다른데 가있으면 답답해하는데, 경이는 그런 내 습성을 알면서도 저렇게 무시한다.
“너 대체 왜그러냐?”
나 몰라라 멀찌감치 나와 떨어져서 가는 박경의 등에 대고 내가 외쳤다. 낮게 가라앉은 내 목소리에서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한걸까? 경이가 어깨를 움찔 떨고 고개를 돌렸다.
초콜릿 같은 눈동자가 촉촉하게 젖어서 나를 보고 있다. 절대로 화가 난 사람의 눈은 아니다. 오히려 뭔가 끈적끈적하고도 간절한 염원이 가득 담긴 눈빛……. 그런 경이의 모습은 난생 처음이라 아무말도 못한 채 입만 뻐끔거렸다. 경이의 두 볼이 살짝 발그스름하게 달아오른 게 아닌가 싶을 즈음, 별안간 경이는 몸을 돌리고 미친듯이 학교로 뛰어갔다.
뭐, 뭐지 그 뜨거운 시선은.
나한테 불만있나?
***
“우지호 안녕.”
끝끝내 경이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채 터덜터덜 반에 도착했다. 어후. 푹푹 쏟아지는 한숨을 억지로 삼키는데 누군가 내게 인사를 건넸다.
“뭐?”
“같은 반 친구 이름은 좀 외우지 그래.”
빠르게 명찰로 시선을 돌리니 김유권이라고 적혀있다. 뭐가 좋은지 날보고 피식피식 기분 나쁘게 웃던 유권은 그럼 안녕, 하더니 손을 휘휘 젓고 사라진다. 이보세요 오늘 여름방학 보충 첫째날이거든요. 하루 만에, 그것도 방금 반에 도착한 날더러 반 애들 이름을 어떻게 다 외우라는 거야? 누구누구 있는지도 모르는데. 나는 기분이 잔뜩 상해서 놈이 사라진 복도 끝을 향해 으르렁대며 친절히 가운데 손을 들어주었다. 존나 열 받네.
“너 나랑 자리 바꿔.”
“어? 그치만 내가 먼저 왔는…….”
“친구야. 자리 좀 양보해주지 않으련?”
실실 웃는 입과 달리 얼음장처럼 차가운 내 눈동자에 녀석은 지레 겁먹고 울상인 채로 가방을 쌌다. 내 입으로 이런 말하기 참 거시기 하지만, 요즘 나는 키가 부쩍 크면서 덩치도 덩달아 커지고 눈도 날카롭게 찢어져서 인상이 매우 더럽, 아니아니 사납다. 전형적인 양아치 스타일이랄까. 때문에 웬만큼 담이 있지 않는 이상 대부분은 알아서 기가 죽는 편이다. 애교 철철 흐르고 자상하고 가슴이 따듯한 남자가 내 본모습이었으나 박경의 옆자리를 차지하려면 이 방법밖에는 없다.
“경아.”
“…….”
“경아, 경아, 경아.”
“…….”
“씹, 박경!”
씨발. 끝까지 박경은 내 말을 무시한다. 더럽고 치사해서! 콧김을 내뱉고 씩씩거려도 매정한 녀석은 내 쪽으로는 눈길 하나 주지 않는다. 한참을 내가 떽떽거리자 경이가 주섬주섬 책가방을 챙기기 시작했다. 자리를 옮기려는 심산이다. 나는 마음이 급해져서 필통을 가방에 쑤셔 넣고 있는 박경의 팔뚝을 잽싸게 낚아챘다.
“우리 사나이끼리 진지하게 얘기 어때? 으어아앙 경아 제발.”
예전에는 경이와 스킨십도 자주한 것 같은데 말이다. 오랜만에 녀석의 맨 팔뚝을 잡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그사이 피부가 좀 더 말랑말랑해지고 살도 빠졌는지 가늘기가 나무젓가락 수준이다. 나도 모르게 경이의 팔뚝을 엄지손으로 꾹꾹 누르면서 쓰다듬었다. 그러자 흠칫, 하고 다소 과할정도로 경이가 몸을 떤다.
“……고.”
“어?”
“놓으라고!”
기차 화통을 삶아 먹었나. 무슨 목소리가 이렇게 커? 화들짝 놀라 손을 놓치자 경이는 씩씩 거리면서 그러나 왠지 울 것 같은 얼굴로 책상을 뚫어버릴 듯이 쏘아보았다. 내..내가 뭐 죽을죄를 지었나요. 어쩔 줄 몰라 눈치만 살피다가 예전에 경이가 무심코 했던 말 중에 떠오르는 것 하나를 아무렇게나 내뱉었다.
“사과우유는 잘 되가?”
그 한마디에 놀랍게도 분노로 덜덜 떨고 얼마나 화가 났는지 귓불까지 새빨갛던 경이가 차츰 진정되기 시작했다. 그런 경이의 경이적인 변화에 나는 속으로 탄성을 질렀다. 경이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아니.”
그러고는 벌떡 일어났던 몸을 숙이고 얌전히 의자에 앉는다. 나는 그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사과우유라…….
♡클릭♡ |
눈치없는 우지호를 써보고 싶어서 이렇게 또 질렀습니다 ㅋㅋㅋ..*-_-* 그다지 길어질 내용은 아닌데 상중하, 로 할까 123으로 할까 하다가 분량이 어느정도 나올지 몰라 아라비아 숫자로 Go go... 1화라서 별 다른 내용이 없네요 ㅜㅜㅜ 어서 빨리 꽁냥ㅇ거리는 내용을 쓰고싶은데 벌써 열두시가 넘었어..으흐흫.흐흐흐흫... 내일뵈요 여러분! ^_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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