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락비/직경] 하이스쿨 로맨스 | 인스티즈](http://file.instiz.net/data/cached_img/upload/6/8/5/685267d5f5cc22e19158a87df35e7cd4.gif)
“아아아아아아악!”
박경이 절규하면서 털썩 탁상 위로 엎어지자 열심히 딴 짓 하고 있던 지호가 슬그머니 고개를 들고 경이를 응시했다. 머리채까지 부여잡으며 절망하는 경이가, 솔직히 말하면 잘 이해 되지 않았다.
“뭘 그렇게 스트레스 받고 그러냐. 쉬엄쉬엄 해.”
“……씨! 너 같은 날라리가 우등생의 고통이 뭔지는 알겠냐!”
가시 돋친 경이의 대답에 지호의 코가 씰룩였다. 공부 안한다고 날라리라니. 묘하게 억울했지만 지호는 길길이 날뛰는 경이를 건드릴 만큼 배짱이 크지는 않았다. 저렇게 날카로울 때는 끽- 소리 안하고 가만히 있는 게 답이라는 걸 그동안의 경험으로 철저히 배웠던 것이다. 지호는 입술을 내민 채 뒷목만 만지작거렸다.
“하아. 정말 미쳤지. 내가 돌았던 게 틀림없어. 그동안 왜 펑펑 놀았을까? 하아, 하아아아, 하아아아아아.”
뭉크의 절규보다도 더 생생한 절망이 묻어나는 얼굴을 한 채 박경은 남은 문제집을 파르르르 넘겼다. 이걸 하루 만에 다 푼다는 건 IQ200이 와도, 서울대 교수가 와도, 아인슈타인의 할아버지가 와도 불가능해보였다. 아냐, 이대로 포기 할 수는 없어! 하지만, 하지만…… 시험이 내일이었다. 으아아악! 경이는 다시 절규하며 탁상위에 머리를 쾅쾅 박았다. 정말이지 일주일 전으로만 돌아갔으면 소원이 없을 거다. 박경은 털푸덕 주저앉아 엉엉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지호는 턱을 괴고 조울증 환자처럼 화를 냈다가 우울해졌다가 별 난리부르스를 추는 경이를 유심히 관찰했다. 경이는 전교 5등 안에 드는 TOP 우등생이었는데 애교가 많아 여선생님들에게 항상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체육을 제외한다면 수행평가도 모두 만점이었고 말썽 하나 없는 착실한 아이였던 것이다. 그에 반해 자신은 경이에 비하면 한참 모자란 그저 그런 평범한 학생이었다. 전교 꼴등의 문제아는 아니었지만 성적은 중하위권을 면치 못했으며, 수행평가는 까먹거나 기간을 어겨서 제출하는 게 다반사였다. 수업시간에 자주 졸고 가끔씩 혼도 나주고 하는, 한두 명 쯤 사라져도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할 흔한 학생.
그런 자신과 박경이 이토록 친해질 줄이야 과연 그 누가 알았을까. 우연치 않게 짝꿍이 되었을 때만 해도 범생이 녀석이라 재미없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말이다.
“박경. 그럴 시간에 책이나 보지? 안 그래도 시간 없잖아.”
“……으. 나도 알거든!”
충고 해줘도 지랄이야. 지호의 말에 눈을 부릅뜨고 책장을 찢을 기세로 넘긴 박경이 씩씩 거리며 연필을 고쳐 쥐었다. 화가 안 풀리는지 자국이 남을 정도로 꾹꾹 누르며 문제를 푼다. 지호는 경이가 쥔 짜리몽땅한 연필을 보다가, 그 옆에 있는 박경 필통을 가져왔다.
박경은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대세인 샤프를 안 쓰고 깎아 쓰는 연필을 애용했다. 전통적인 방식이 더 좋다나 뭐라나. 아무튼 연필 매니아인 건 틀림없었다. 오죽하면 생일선물로 연필을 선물해달라고 할까. 필통을 열어보니 역시 한가득 연필 투성이였다. 그런데 다들 심이 짧다. 공부도 안 되는데 경이 연필이나 깎아줘야지. 지호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커터칼을 꺼내서 탁상 귀퉁이에 대고 터프하게 연필을 깎아갔다.
박경과 친해진 뒤로 이렇게 앉아서 같이 공부를 하는 일이 잦아졌다. 아, 물론 그렇다고 지호가 공부를 하는 건 아니었다. 한 시간에 두세 문제만 풀고 딴 짓하기 바빴으니 말이다. 지호의 최고의 딴 짓거리로는 단연 박경의 연필을 깎아주기였다. 처음에는 아주 괴상망측한 모양으로 깎아서 경이의 속을 홀랑 뒤집더니 날이 갈수록 솜씨가 좋아져서 지금은 연필 깎기와 내기해도 될 정도다. 지호는 깎긴 연필을 보고 흡족하게 미소를 짓다가 다시 박경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짜증냈던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완전히 집중한 채로 문제를 풀고 있었다. 학구열로 반짝반짝 빛나는 경이는 사진이라도 찍어주고 싶을 정도로 예쁘다. 거시기 달린 남자에게 이런 말하기 좀 그렇지만, 그래도 예쁘다.
지호는 팔에 얼굴을 묻으며 몽롱한 눈으로 경이를 응시했다. 요즘 들어 녀석이 예뻐 보였다. 눈에 이상이 생겼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뇌가 미쳤거나. 그래도 경이가 예뻐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생김새가 여자처럼 여리여리한 것도 아닌데, 그냥 하는 짓이나 행동이 귀여웠다. 이렇게 가만히 보기만 해도 심장이 간질간질 해지는 것이 또라이처럼 흐흐- 웃음이 입술을 비집고 흘러나왔다.
솜사탕 같이 보들보들하고 푹신해 보이는 머리카락도, 탁구공만큼이나 커다란 눈도, 마음에 안 들면 씰룩이는 볼도 정말 귀엽고 깜찍했다. 지호는 뚫어져라 경이를 보며 망상에 잠겼다. 저렇게 박경을 보고 있으면 뭔가, 이상한 짓을 해버리고 싶었다. 이런 기분을 대체 무엇으로 설명해야 할지는 모르겠으나 정상이 아닌 것만은 분명했다. 지호는 뜨거운 한숨을 흘리다가 이내 고개를 젓고 다시 사각사각 연필을 깎기 시작했다.
“아.”
너무 박경에게 정신을 판 게 문제였을까. 지호는 그만 칼이 엇나가 연필이 아닌 자신의 손을 싹둑 베어버리고 말았다. 살점이 벌어지며 물감 같은 새빨간 피가 벙벙 흘러나왔다. 자기 피인데도 지호는 눈 하나 깜짝 안하고 옆집 불구경 하듯 멍하니 처다 보기만 한다. 뭐 볼게 있다고 이리저리 상처 난 곳을 뚫어져라 살핀다. 그러다가 한참 만에 하는 소리가 이거다.
“경아, 나 피나.”
딱 유치원생이 엄마한테 칭얼거리는 말투인데 어조는 무뚝뚝하기 그지없다. 뭔 개소리인가 싶어 오만상을 찡그리며 경이가 고개를 들자 지호가 기다렸다는 듯이 상처 난 손을 가져다 대었다. 코앞에 보이는 피에 경이가 입을 떠억 벌렸다. 이, 이게 뭐야!
“야 너 이거 왜이래?!”
빽- 하고 올라가는 고음에 지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피가 손가락을 타고 탁상 위로 뚝 뚝 떨어진다. 질겁한 경이는 벌떡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더니 뭘 하는지 퉁탕퉁탕 요상한 소리를 내다가 한참만에야 다시 나왔다. 서바이벌 게임이라도 했는지 그 짧은 시간에 옷이 흐트러져있고 머리카락이 엉망이다.
“손 대봐. 빨리 약 바르고 데일밴드 붙여야지.”
“데일밴드까지야.”
필요 없는데… 라는 말은 결국 지호의 입안에 맴도는 걸로 끝났다. 경이는 시험공부로 바쁜 와중에도 잔뜩 진지해져서는 조심조심 약을 짜서 살살 지호의 손끝에 바르고 있었다.
“나 오른손 안 다쳤는데.”
직접 약을 바를 수 있다는 무언의 의미가 내포된 말이었지만 경이는 지호의 말은 무시하기로 작정했는지 데일밴드까지 직접 붙이려고 하고 있었다. 모르겠다. 지호는 남자치고는 섬세하고 쓸데없이 착한 경이의 뒤통수만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아, 다됐다. 좀 조심해라. 운동 신경도 좋은 놈이.”
데일벤드에 어린아이들의 우상이라는 뽀로로와 친구들이 해맑게 웃고 있었다. 꼭 지 같은 것만 쓴다 싶어 비실비실 웃음을 흘리던 지호는 다시 커터칼을 집었다. 아직 연필을 다 깎지 않았다.
“야, 야! 다친 애가 뭘 또 깎는다고 그래.”
“겨우 손 베인 거 가지고 호들갑은.”
“그래도 안 돼. 내가 알아서 깎을 테니깐 넌 공부나 해라. 내일이 시험인데 도대체 자각은 있는 거냐?”
걱정에서 비난으로 말이 바뀐다. 시어머니 잔소리보다도 무서운 게 바로 박경의 잔소리다. 지호는 인상을 쓴 채로 계속 연필을 깎았다. 양보할 마음은 코딱지만큼도 없는 것 같다. 이건 엄연한 프라이버였다. 본인이 하겠다는데 박경이 하나하나 일일이 자신을 간섭할 필요는 없는 거다. 그런 신념으로 지호가 꿋꿋하게 연필을 깎으니 박경이 마음에 안 드는지 도끼눈이 돼서 노려본다.
“너 진짜 죽을래?”
또다시 빽- 하고 고음을 내지르며 경이가 손을 휘둘러 커터칼을 낚아채… 려고 했지만 반사 신경이 뛰어난 지호는 휙 하고 손을 피했다. 키부터 월등히 큰 지호였기 때문에 팔 길이 역시 지호의 압승이다. 아무리 뻗어도 손이 닿지 않자 자존심이 상했는지 경이의 눈초리가 한결 더 매서워졌다. 지호가 얄밉게 삐뚜름 미소를 짓자 성질머리 고약한 경이는 참지 못하고 일어나 탁상위로 올라섰다. 우지호 개자식, 감히 내 말을 무시해? 경이가 지호에게 거의 몸을 내던지다시피 하며 팔을 뻗었다.
“어, 어…….”
“으아아아아악!”
몸치로 유명한 경이답게 그대로 넘어졌지만 말이다. 착한 하체는 탁상에 고이 남아있는데 나쁜 상체가 지호를 이불처럼 덮으며 짓누르고 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지호의 몸이 완충제를 해서 어디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이거 너무… 쪽팔리다. 살짝 얼굴이 달아오른 채로 경이가 파드득 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볼도 화끈거리고 무엇보다도 손이 따갑다. 에? 손이 따가워?
“헉. 피, 난, 다.”
멀쩡한 줄 알았더니 엎어지면서 지호가 들고 있던 커터칼에 손바닥이 일자로 주욱 베였다. 지호새끼가 다쳤던 거보다 더 깊고 크다. 손이 절단 난 건 아니지만 상처를 눈으로 직접 목격하니 못 견디게 쓰렸다.
“아씨. 너 때문에 다쳤잖아.”
“그러게 누가 내 위로 올라타래?”
박경이 아무리 가볍다지만 그도 엄연한 고등학생 남성이다. 가슴에 가해진 둔탁한 충격에 지호가 미간에 주름을 잡으며 앞머리를 쓸어 올리자 어이없다는 듯한 경이의 음성이 귀에 파고들었다.
“입은 비뚤어져도 말은 똑바로 하랬다고 내가 언제 올라탔냐? 장난치다가 실수로 넘어 진거지. 누가 보면 내가 널 덮친 줄 알겠다?”
“덮친 거 맞잖아.”
뚱해서 내뱉으니까 경이의 눈이 튀어나올 듯이 화들짝 커진다. 이러다가 두들겨 맞겠다 싶어 지호는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너 손부터 치료해라. 내가 문제가 아니라, 네가 문제네.”
왜인지는 몰라도 (아마 화가 나서 그런 거겠지만) 불타는 고구마처럼 얼굴이 잔뜩 달아오른 채로 경이가 고개를 아래위로 끄덕인다. 그런 모습이 또 말 잘 듣는 착한 강아지 같아서 지호의 입가가 부드럽게 녹아내렸다.
“약은 여기 있고…….”
“나, 나도 할 수 있어!”
“내가 해줄게. 환자는 가만히 있어.”
“누구보고 환자래? 나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다니까.”
기꺼이 해주겠다니까 알아서 거부하신다. 완강한 박경의 태도에 심드렁해진 지호는 흥이 빠졌다는 듯 연고를 거의 던지면서 경이에게 건넸다. 싫다는 사람 대리고 억지로 할 성미는 아니다. 막상 혼자 하겠다고 했지만 알아서 하라는 듯 무심한 지호의 태도에 경이는 괜히 열이 올랐다. 그러나 다시 해달라고 하는 것도 꼴불견이라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묵묵히 연고를 받았다.
“풉, 뭐하냐.”
“시끄러.”
그저 손바닥 좀 그어졌을 뿐인데 왜 손 전체에 마비가 오는지 모르겠다. 어설프게 뚜껑을 열다보니 계속 손에서 툭툭 약이 떨어진다. 일분 넘게 그 짓을 반복하고 있자 자신을 지켜보던 우지호가 대놓고 비웃는다. 자존심에 제대로 스크래치다.
“내가 도와줄까?”
“…….”
능글맞게 묻는 지호를 누가 한 대 때려주면 속이 다 시원할 것 같다. 박경은 지호 쪽으로는 일절 눈길을 주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뚜껑 열기에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빌어먹을. 젠장. 아니 왜 이렇게 안 열리는 거야! 그까짓 연고 안 바르면 그만이지만 여기서 포기하면 정말 데미지 입은 자존심이 재생 불가능 할 지도 모른다. 이건 오기 싸움이었다. 한참을 박경이 낑낑대고 있으니까 지호가 웃음이 섞여 발음이 모호해진 언어를 내뱉는다.
“귀엽네.”
“…….”
쿵쾅, 하고 심장이 전기충격이라도 받은 듯 거세게 두근거렸다. 손이 굳고, 혀가 굳고, 몸이 굳어버린다. 일시정지라도 한 듯 멈춰있는 경이에게서 약을 빼앗은 지호가 아주 여유롭게 뚜껑을 열어 약을 짠다. 이어서 경이의 팔목을 낚아채 동그란 모양으로 물방울처럼 예쁘게 짠 약을 손바닥에 슥삭슥삭 발라줬다. 다소 무성의해 보일 정도로 거침없는 동작이지만, 상처 난 자리만 정확히 발라져있다.
“됐다. 어, 밴드는…….”
경이가 밴드를 더 가져왔나 싶어 주변을 두리번거리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하는 수 없지. 지호는 입맛을 다시며 자신의 손끝에 있던 밴드를 벗겨냈다. 급한 대로 이거라도 쓰는 수밖에.
“야, 이걸 왜 나한테… 너 쓰지.”
“괜찮아. 난 공부 안하니까 상관없지만 넌 연필 잡고 필기해야 되잖아. 그리고 난 양손잡이고.”
지호의 말에 경이의 얼굴이 감동이라도 받은 듯 뭉클해진다. 지호는 경이의 손에 자신의 피가 묻은 데일밴드를 붙여주었다. 아, 나 의사할까봐. 어쩜 상처도 이렇게 잘 처리 하냐. 지호는 때 아닌 자아자찬에 휩싸여 흡족하게 뽀로로 데일밴드를 바라보는데 경이가 흠흠, 하고 헛기침을 했다.
“짜식. 이, 이, 이번은 형님이 봐줬다.”
이쪽과는 눈도 안 마주한 채로 빠르게 말을 내뱉더니 푹 고개를 숙였다. 그러더니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꼼지락 꼼지락 손을 움직여 문제를 푼다. 그런 박경은 속마음이 곧이곧대로 들릴 만큼 순수하고 깨끗해서 지호는 허허, 하고 애매한 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예쁘다. 진자진짜 예쁘다. 대체 뭘 믿고 저런 깜찍한 짓만 골라서 하는 지 궁금할 정도였다.
“박경.”
“…….”
“공부 열심히 해.”
“…….”
묵묵부답이지만 싫지는 않았다. 지호는 원상태로 돌아가 팔에 얼굴을 묻은 채로 문제집에 파고들어 갈 듯 집중하는 경이를 응시했다. 좀 전과는 달리 녀석의 손바닥에는 앙증맞은 뽀로로 데일밴드가 붙어있다. 지호는 그만 푸하하- 하고 웃어버렸다.
“너 이번에 전교 1등하면 뽀뽀해줄게.”
“……뭐?”
놀란 듯한 경이의 음색에 지호는 간신히 자기가 뭐라고 말했는지 기억하는 정도였다. 정신이 나갔나보다, 드디어. 그러나 그닥 상관은 없을 거 같다. 지호는 실실 웃으며 잔뜩 당황해서 붉으락푸르락 해지는 경이의 얼굴을 감상했다. 헤, 하고 입을 벌리고 있는 경이는 뽀뽀를 퍼부어주고 싶을 만큼 사랑스럽고 또 귀여웠다. 왜 싫어? 짓궂은 지호의 눈빛에 뻣뻣하게 얼어붙던 경이는 이내 레이저가 안 나오는 게 이상할정도로 강렬한 눈동자로 지호를 노려봤다. 그걸 말로 하냐! 소름끼치게 싫어!
“튕기긴.”
지호가 허스키한 목소리로 읊조리자 이제 경이의 얼굴은 창백해지기까지 한다. 어버버 거리던 경이는 곧 상대할 가치도 없다고 여겼는지 다시 고개를 내리고 문제집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생각만큼 잘 안되는지 간간히 탁상을 주먹으로 쾅쾅 내리치긴 했지만 말이다. 경이를 보는 지호의 입가에는 여전히 봄햇살을 닮은 듯 투명한 미소가 가득했다.
***
드디어 해가 밝아오고 모든 학생들의 스트레스의 근원이 기말고사 날이 되었다. 그리고 박경은… 놀랍게도 18년 인생을 살아 온 것 중에서 가장, 최고로 시험을 잘 보았다. 전교2등과 평균차이가 무려 3점 이상이나 났다면 할말 다했다. 성적표에 All 1등급이 뜨자 믿을 수 없다는 듯 경이의 눈이 휘둥그레졌지만 이내 기쁨에 취해 창피한 것도 모르고 전교를 폴짝폴짝 뛰어다니며 미친놈 타이틀을 획득했다. 전교권에서 미끄러질 각오를 단단히 했는데 이런 행운이 찾아오다니. 하느님 아버지 완전 감사합니다!
우지호는? 지호는 나름 잘 본편이었다. 역대 시험 점수와 비교하면 말이다. 박경을 만난 이후 의도치 않아도 꾸준히 지호의 성적 그래프는 상향 선을 타고 있었으니 당연한 결과일지도. 지호는 벌써 한 시간째 성적표를 보여주며 자랑하는 박경을 보며 속으로 낮게 웃었다. 그렇게 좋냐?
…물론 충분히 좋아할 만 했다. 모의고사에 유난히 약한 경이는 수시로 대학 갈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꼭 그렇지 않더라도 내신은 졸업하고 나서도 평생 기록에 남아있으니 잘 보면 잘 볼수록 이득이었다. 한참 자랑하던 경이는 마치 철부지 자식을 보는듯한 지호의 시선에 눈썹을 꿈틀거렸다.
“뭐야? 왜 그런 눈으로 봐.”
“어, 그냥 기특해서?”
“……죽는다.”
박경이 위협적으로 으르렁거렸지만 그보다 머리통 하나는 더 큰 지호에게 먹힐 턱이 없었다. 차라리 고슴도치가 가시를 세우는 게 더 위협적이겠다. 지호는 여전히 입가에 미소를 걸치고 있다가 뭐가 떠올랐는지 아! 하면서 입을 열었다.
“내가 너 전교1등 하면 뽀뽀해준다고 하지 않았냐?”
“……언제?”
기가 차다는 경이의 음성에도 지호는 꿋꿋이 말했다. 아마 시험 전날이었을 걸.
“싫어. 완전 싫어. 토할 거야.”
“그래? 그럼 말고.”
될 대로 되라는 식이다. 의외로 우지호가 너무 쉽게 포기하자 경이가 움찔 몸을 떨었다. 솔직히 말하면, 전부 기억하고 있었다. 그 날 장소부터 시간, 날씨, 주변의 사물까지 아주 샅샅이 말이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지호의 말에 더 공부에 죽기 살기로 매달렸었다. 박경은 대굴대굴 눈을 굴려 창밖으로 축구하고 있는 애들을 내려다보는 지호를 응시했다. 이대로 넘어가면 진짜로 저 둔탱이는 묻어둔 채 끝낼 것이었다. 그, 그럼 안 되는데. 초조해져서 박경은 동동 발을 굴렸다.
“……는 뻥이지롱.”
“!”
뭔가 따듯하고 부드럽고 말캉거리는 것이 볼에 닿았다. 완전히 얼어붙어서 경이가 지호를 손가락질하자 지호가 입꼬리를 씨익 말아 올리며 대답한다.
“잘했으니까, 선물.”
“윽.”
그런 지호의 미소는 불가항력이다. 치명적이다. 불쌍할 정도로 귓불까지 새빨개진 박경을 보던 지호가 푸하하하하-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시원시원하고 다소 경박하기까지 한 그 웃음소리에 운동장에서 축구하던 애들도, 주변을 지나가던 사람들도, 옆 건물 창틀에 기대고 있던 선생님도, 모두 놀라 지호와 경이를 바라본다.
경이의 손바닥에 아직도 붙어있는 뽀로로 데일밴드가 햇살을 받고 환하게 빛났다.
작가의 말! 두구두구두구두구두구 |
♡ 사랑하는 암호닉 분들 ♡ 멜로디 / 망가리 / 마가레뜨 / 금귤 / 코너킥 / 쌀알 / 바나나 / 부스러기 미네랄 / 새주 / 설라 / 크림우유 / 쮸 / 탤탤 / 요플레 / 바지 / 떠불 헬리 / 치즈케잌 / 바케트 / 파인애플 / 막걸리 / 이불 / 뽀 / 쿠우 / 0201 김밥 / 떡덕후 / 순살치킨 / 백사자 / 시계 / 피치 / 열이
........저번 편과 극과 극인 직경이에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들 고데기 없이 잘 보셨을지 궁금궁금☞☜
추천해주시는 분들! 댓글 써주시는 분들! 읽어주신 분들! 안 읽어도 조회수 올려주신 분들! 모두들 짱짱 고맙습니다. *^---^*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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