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틀 연애 아니고 배틀 썸
셋 반 아닌 넷
내게는 어릴 적부터 나를 죽여버리는 습관이 있었다.
그 하고 싶던 말 한마디를 못해서 매일 밤 나는
나를 향해 칼끝을 겨누고 있었고
어릴 적부터 지속된 칼부림이 바뀌지 않을 명이라 여겼다.
너는 동생도 있으니깐 의젓하게 행동해야 해.
너는 부모님 속을 썩여서는 안돼.
여주 너는 이제 아기가 아니니깐 어리광 부리지 말 렴.
그렇게 동생이 태어난 그 해에, 나는 무려 6살을 맞은 어린 꼬마에 불과했다.
나를 보는 어른들은 하나같이 어린 내게 옥죄려 바빴고
그 현실을 맞닥뜨린 부모님은 아무것도 모를 그때의 내게
첫 번째 화살을 쏘시고야 마셨다.
"여주야 엄마 아빠가 없을 때는 여주 네가 동생 지켜야 돼.
우리 착한 여주 빨리 철들어야지."
과연 그날의 그 말이 날 향하던 마지막 사과였을까.
거짓말처럼 내게는 변화가 생겨버렸다.
날 향해있던 묵 진한 추가 너에게로 옮겨간 것.
또한 그 추의 이름은,
부모님이었다.
어릴 적부터 똘망거리는 그 두 개의 검은 달은 곱디고왔고,
하필이면 매번 너를 볼 때마다 역시 사랑받지 않을 수가 없구나- 하고 깨닫곤 했다.
너는 존재만으로 사랑받을 때
나는 착하다는 수식어로 널 향하던 손길을 구걸했다.
그 어린 마음에, 너를 쓰다듬는 따뜻한 손이
잠시라도 머뭇거리길 빌고 또 빌어 기도했다.
그 생각이 얼마나 비참한 지도 모르면서.
그렇게 유치원 졸업과 초등학교의 입학.
졸업과 입학이 있음에 감사했던 건 적어도 그때만큼은
날 위한 걸음을 할 것이란 걸 너무 일찍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네가 8살이 되던 해에, 나는 14살로 중학교를 입학했다.
우리 집 안에 장난감과 색연필로 가득할 동안
나는 혼자서 교복을 맞춰야 했고
그때마다 부모님께서 빈말로 던지시는 선의를 차마 수락할 수 없었다.
언제나 선의를 거절하기 바라시는 눈빛이 크셨으니깐.
그래야지 '의젓하고 착한 우리 딸'이라도 될 수 있었으니깐.
그렇게 어영부영 지새운 3년간의 봄은 추웠다.
어느새 발을 내딛는 곳에서 나의 17살을 만나버린 그때에는
나름 나 자신이 어느 정도의 무기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환하게 웃으며 무엇이든 남을 돕고 희생하며 웃긴 이야기를 늘 들려주는 아이.
이 프레임으로 살아간다면 그 누구도 날 내치지 않았기에
나의 망토라고 여겼다.
야 아까 내가 이것 좀 썼다?
김여주 나 이거 좀~
이번에도 핵심정리 복사본 믿는다?
그래.
이렇게만 하면 나를 좋아해 주겠지.
이렇게 내가 참는다면 착하다고 해주겠지.
이렇게 한다면, 부모님도 언젠가 내게 품을 내주시겠지.
자랑스러운 딸이라며 꼭 안아주실거야.
난 당신들을 믿어 의심치 않으니깐.
걔 그쯤 되면 호구 아냐?
사실 남의 얘기를 엿듣는 건 착한 아이에 어긋나는 행동이었다.
수년간 베풀어온 내게 처음으로 돌을 던지는 누군가가 생겨났고
그에 반박하기 위해 내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기 위해 고개를 돌리려 했다.
근데 그렇게 해오다가 갑자기 안 해주면
지금 곁에 있는 애들 다 떠날걸?
정확히는 곁에 있는 척하는 애들이지만.
하나 간과했다.
내 뒤에는 따가운 선인장이 있었기에 뒤를 돌아볼 수조차 없었던 사실이 그제야 크게 그림자로 비쳤다.
그 가시는 나를 계속 걸어가게 했고
덕분에 나는 매일 밤마다 나를 죽였다.
그 가시로, 칼로, 목줄로, 약으로, 총으로
때로는 목을 졸라서, 잠을 재워서, 식물로 가득한 곳에서.
그날의 두려움의 따라 아픔도 방법도 제각각이었다.
해가 바뀔수록 수위만 높아지는 요구에 버겁게 이뤄주는 등의 바보 같은 행동은 놓지를 못했다.
야, 김여주 너,
미친년처럼 너스레 떨지 마.
억지로 웃는 거 꼴보기 싫어.
나와는 말 한마디 섞지 않던 아이가,
매일 교실에서 잠만 자던 그 여자아이가.
화장실을 나서는 나에게 욕을 했다.
답답한 년이라며 눈을 흘기고선 가버렸다.
잠자코 듣고만 있던 나는 반박할 여지조차 없었다.
아무래도,
어쩌면 나 자신도 이 모습이 역겨웠던 건 아닐까.
그 아이의 말을 중점으로 하여 변한 거라곤 없었다.
나도 드라마틱한 결과를 기대했으나 현실은 언제나 차가운 봄날이었다.
아 조금의 변화라곤,
내가 적어내는 글 속에서만큼은 드디어 내 의견이란 것이 생겼다는 점.
나 역시 이중적인 인간임을 깊이 깨달아 가야 했다.
그래야 상처받지 않는다.
누군가는
빗방울이 거세게 몰아치는 밤을 두려워하고
또 누군가는
조용한 밤을 향해 있는 몸을 떨어버린다 하여
그런 나는
모두가 즐거워하는 꽃들 사이의 봄이,
너무나도 두렵다.
내게는 빗발치는 손가락들이
꼭 꽃들의 잔재인 것만 같아서
그런 봄날이 너무나 괴롭다.
내게는 손짓 한번 없던 그가
번뜩이는 눈으로 이리 오라,
달달한 향을 풍기고 있으니
사실 그 누구보다도 어렵다.
나는 무엇보다
숨을 쉬고 있음에,
내가 웃고 있음에,
즉 내가 살아있음에 버겁다.
내 생각으로 적은 첫 시의 제목은,
'고통'이다.
"이봐요 김여주씨!"
버럭 질러대는 큰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왜 소리를 치냐며 바득바득 우기려 했으나
그의 눈빛이 나를 걱정하는 부류였기에
튀어나오는 말을 꾹꾹 삼켜 버렸다.
"아니 무슨 생각을 하길래 사람이 불러도 대답 한 번 없어요?
혹시 어디 아파요?
병원 갈까?"
나는 과연 21번째 봄을 즐길 자격이 있을까.
아주 잠깐, 왔다가 흩뿌려지는 봄날처럼
이 역시 스치는 인연일까.
"아뇨. 아픈 거 아니고요.
어제까지만 해도 쌀쌀하던 그쪽이 하루아침 사이에 달라져서
좀 혼란스럽네요."
아.
외마디를 내뱉은 그의 표정은 연신 당혹스러워했다.
그거 하나 숨기지 못하는 사람인데,
내가 던진 말에 상처라도 입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떠나가시질 않았다.
"아 참 여주 씨가 어제 많이, 상처였나 봐요.
그건 진짜, 내가 다 미안해요."
"그래요. 그럼 미안하단 말이 끝이신 거죠?"
띄엄띄엄 뱉어내는 단어 하나하나가 나를 감싸고 돌려 했단 것 정도는
나라고 한들 모를 수가 없었다.
내가 아는 오늘의 당신은 다정한 사람이기에
상처받는 게 겁이 나 되려 상처를 주려 했다.
이렇게 못되고 고약한 나는,
아직도 사람을 만나기가 두렵다.
역시나 나는 아직 봄을 받아들일 준비가 덜 된 것인가,
입도 뻥긋 못하는 그이 모습이 내게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기회였다.
"더 이상 할 말 없으시면 먼저 일어날게요.
따지고 보면, 우리 아직 친한 사이 아니잖아요."
그는 나를 붙잡으려 하지도 않았고
그럴 생각조차 없어 보였다.
받아들이기도 벅찬 말들을 우타다 뱉어냈으니
누구라도 그랬으리라 생각한다.
무엇보다 우리는 어제 하루 동안 쉼 없이 마주쳤지만
만난 날로 따지면 이제 겨우 이틀째니깐.
내가 선을 그어두어야 그대가 이 숲으로 오지 않는다.
원우한테나 말 허심탄회하려 해도 그도 그의 세상이 있으니
이제는 또 놓아둬야겠지.
유일한 소꿉친구에게 짐이 된다는 게
사실 내게는 너무나도 죄스럽다.
그렇게 한 바퀴 두 바퀴, 집 근처 공원을 빙글빙글 걸으며
한숨만 던져내야 했다.
이렇게라도 해야지 살 것만 같았으니깐.
웃기다 정말,
사귀기라도 했나 썸을 타기라도 했나
아무것도 아닌 인연에 울적해지다니.
세상에 나 같은 머저리도 다 있네.
부정하려는 존재는 점점 더 짙어지고 있음을 느끼기에
체한 것 마냥 속이 갑갑하고 타들어갔다.
또 그는 나를 싫어하지 않을까.
겨우 이틀인데 왜 내게 다정한 걸까.
난 또 왜 그 말들에 속아넘어간 걸까.
그는 지금 상처받지는 않았을까.
무엇 하나도 예측할 수 없었기에 골머리를 앓았다.
연달아 울리는 알림과 익숙한 프로필 사진이
한 편으로 안심했고 한 편은 무서웠다.
이 사람을 또 내칠 수가 있을까 싶은
무서움이었다.
내 생각나면 그때는 꼭 전화던 문자던 톡이던 오후 2:56
뭐라도 연락 줘요. 오후 2:56
여주 씨는 선 긋더라도 내가 다가갈게요. 오후 2:57
무엇보다 아픈 게 아니라서 다행이네요. 오후 2:57
그럼 기다릴게요. 오후 2:57
한심하다.
고작 얕은 관계라 치부하던 인연에게
내가 제일 듣기 싫어하던 말을 던지고 왔으니.
이런 내 꼴이 한심했다.
| 더보기 안 누르면 성수부인. |
안녕하세요!! 수농이가 왔어요!! 오늘 드디어 여주의 과거가 밝혀 졌네요ㅎㅎ 음 사실 제게 여주는 되게 어두운 캐릭터 입니다. 저의 모습도, 지인의 모습도, 저희 가족들 모습도 모이고 모여 만들어진 캐릭터 같아요!! 아마 여주가 앞으로 과거를 많이 떠올릴 것 같아요! 극복하는 모습을 보시며 독자님들도 위로 받으셨으면 해요! 분량이 적어 보이는 건 기분탓이 아니라 진짜 같네요♥ 죄송해요♥ |
암호닉은 제일 최근에 올린 곳에 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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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종원셰프도 금수저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