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의사 너탄 X 다중인격 전정국
05
제4 인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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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정국씨에게도 기억이 없지만 나에게도 없다. 나의 부모님도 나의 사고에 대해 일절 말하지 않으셨고 사고는 강산중학교에서 당했다지만 내가 깨어났을때는 이미 서울에 있는 병원이었다. 내가 강산중학교에 다녔다는것도 부모님께 들었다. 그 시절 얘기는 그뿐이었다. 나도 처음엔 왜 중학교 친구들이 한명도 나에게 연락이 없을까 싶었지만 바쁜 재활치료와 서울적응에 차츰 잊혀져갔다. 그래서 나는 기억이 없다. 내가 왜 그 세월동안 잠들어 있어야만 했는지, 왜 나의 머리에는 큰 흉터가 남아야 했는지.
정국씨의 말을 듣는 순간 당혹함과 함께 기대감이 들었다. 혹시 나를 알고 있지않을까, 혹시 내가 무슨일을 당했는지 알 수 있지않을까. 하지만 그 기대감은 몇초만에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내가 무슨일을 당했는지 안다는건, 부모님도 말해주지 않았던 어두운 일을 다시 떠올린다는건 매우 두려운 일이었다. 두려움을 느낀 내가 내놓을 수 있는 최선의 답안은
"중요한 아이는 아닐거에요. 같은 중학교를 다녔긴 했지만 친하지는 않았을거에요. 그저 지나가는 친구였겠죠."
"..탄소씨."
"네."
"저희 저녁 같이 할까요?"
어느새 노을빛이 블라인드의 갈라진 틈으로 새어들어왓다. 주황색 빛이 내 앞에 서있는 정국씨의 얼굴에 물들었다. 그 물든 얼굴의 눈빛이 왠지 모르게 불안하고 슬퍼보여서 그의 말에 얕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국씨는 외투를 챙겨입고 문을 열고 나를 기다렸다. 정국씨의 옆에 섰다. 우리는 함께 검찰을 나섰다.
**
"걸어가요. 여기서 얼마 안되요."
"그래요."
정국씨와 이번에는 태형이에 대해 이야기 했다. 정국씨는 민윤기씨에 대해 이야기 할때와는 다르게 환한 얼굴로 태형이가 무척이나 좋다고 했다. 나오기만 하면 자신을 성격파탄자로 만드는 민윤기씨랑은 다르게 정말 천사같은 아이라고 말했다. 태형이는 나와도 걱정없는 인격이라고도 했다. 두말하면 잔소리였다. 태형이는 정말 이뻤고 순수한 아이였으니까.
태형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보니 어느새 정국씨가 말한 가게에 도착했다. 엥, 매운 짬뽕집..? 안타깝게도 나는 매운걸 정말 못먹는다. 그런 내가 저는 매운걸 정말 못먹으니 다른곳을 가는게 어떨까요? 라는 말을 할 겨를도 없이 정국씨는 살랑거리며 가게로 달려갔다. 저렇게 좋아하는데 제가 어찌 다른 것을 권하겠습니까, 예.
"아저씨, 저 왔어요!"
가게에 들어서면서 지금까지 들었던 목소리중 가장 하이톤의 목소리로 정국씨가 외쳤다. 그의 외침에 부엌에서 고개를 내밀고 대답해준 아저씨는 정말로 인상이 좋았다. 하얀색 앞치마를 두르시고 그 앞치마에 손을 닦으시며 환한 얼굴로 주방에서 나오셨다.
"오랜만이네, 정국아."
"바빴어요."
정국씨와 대화하는 동안 나는 그 옆에서 이러지도 못해 저러지도 못해 뻘쭘하게 서있는 내쪽으로 고개를 돌리신 아저씨에 흠칫했다. 하지만 곧바로 인사를 나누었다.
"아, 안녕하세요."
"누구신가, 정국이 여친?"
"예?! 아, 아니에요."
"아저씨도 참, 의사 선생님이세요."
"아, 우리 정국이 잘 부탁해요."
의사 선생님이라고만 했는데도 잘 부탁한다고 하는것 보니 정국씨의 상태를 아는 몇 안되는 사람들 중 한명인가보다. 원래 다중인격 환자들은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드러내서 좋은 것도 아니고 오히려 사람들이 피하고 겁을 내는 정신질환 중 하나이기 때문에 더더욱이 자신을 숨긴다.
"아저씨, 항상 먹던거로 두개."
"아가씨도 매운거 잘 먹는가? 정국이는 엄청 맵게 먹는데."
"아! 저는 그럼 조금 약하게.."
나의 말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다시 주방으로 들어가시는 아저씨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 정국씨의 부름에 그제서야 뒤를 돌아보았다. 어느새 자리를 잡고 앉아있었다. 오늘 점심(점심도 주치의 얘기로 먹는둥 마는둥 했지만) 이외에는 항상 병원밥을 먹었던 나였기에 바깥음식은 매우 오랜만이었다. 정국씨의 앞에 앉아 가방을 벗었다.
"여기 엄청 맛있어요. 입맛에 맞았으면 좋겠네요."
"자주 오시나봐요?"
"자그마치 9년 정도 단골이죠."
"헉, 그렇게 오래요?"
"아저씨도 항상 친절하시고요. 그리고 스트레스 받으면 매운게 짱....아, 그렇다고 오늘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는건 아니고요. 그..."
응? 그렇게 미안해할일이 아닌데. 충분히 이해한다. 낯선사람이 갑자기 자신의 비밀주치의가 되고 이미 짧은 시간동안 두번이나 다른 인격이 나왔으며 없던 기억도 떠올랐으니까. 신체적으로는 아니더라도 정신적으로는 충분히 너덜너덜 해졌을거다. 자신이 말실수를 했다고 생각하고 수습하려는 그에게 웃어보이며 괜찮다고 말했다.
"오늘 많은 일이 있었잖아요."
"탄소씨는 다 이해해주는것 같아서 너무 고마워요."
"그게 제 일인데요."
얼마 지나지 않아 정말로 코를 찌르는듯한 매운 향의 짬뽕이 나왔다. 하, 보기만 해도 침고이는 매울듯한 시뻘건 국물색깔에 말을 잃었다. 젓가락도 들지 못하는 내가 보이지도 않는지 정국씨는 짬뽕이 나오지마자 젓가락을 들고 짬뽕을 휘저었다. 그에 따라 마음을 가다듬고 젓가락을 들었다. 짬뽕을 휘젓자 쌓아진 해물과 야채들 위로 면이 올라오고, 매운 향이 더욱 강렬해져 아찔해졌다. 내가 이걸 먹을 수 있을까.
"탄소씨, 그렇게 매워요?"
"에?"
네라고 대답하려고 했었다. 매워서 발음도 잘 되지않았다. 한입먹자마자 강렬하게 혀를 치는 매운맛에 눈물이 핑 돌았었다. 하지만 맛있었다. 부정할 수 없이 맛있는 매운맛에 단무지로 버티며 몇입 더먹었다. 씁씁거리며 매움을 한창 표현할 쯤 정국씨가 맵냐고 물어왔다. 네, 무척 맵습니다.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입이 얼얼해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미 내 상태가 모든 걸 말해주는듯 했다.
"탄소씨 매운거 잘 못먹는구나. 내가 잘못했네."
미소를 지으며 휴지를 몇잘 뽑더니 내 얼굴의 땀을 닦아주려고 하는 그였다. 평소같으면 내가 하겠다고 했겠지만 매운맛에 정신이 없어 거절도 못했다. 그리고 정말 뜬끔없이 휴지로 조심스럽게 나의 땀을 닦아주는 그의 모습과 손길이 나의 기억을 불러일으켰다. 어떤 소년이 나에게 똑같이 땀을 닦아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웃고 있었고 나도 잘 느껴지진 않지만 웃고 있었던 것 같다. 더 이상 매운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정신이 멍해졌다. 방금 그건 뭐였을까, 언제의 기억일까.
"탄소씨 많이 매운가봐요.. 완전히 넋이 나갔어요."
"아, 이제 괜찮아요. 많이 맵네요. 이걸 어떻게 먹는지.."
이제는 정국씨가 아직도 휴지를 든 손을 공중에 둔 채 굳어버렸다. 또 무슨 기억이 나는걸까? 정국씨..?하며 그의 얼굴 앞에 손을 흔들었다.
"아, 미안해요. 무슨 말 하셨어요?"
"아니요, 아니요. 아무 말도 안했어요. 또 무슨 기억이 나신거에요?"
말없이 붕떠있는 팔을 거두며 고개를 끄덕이는 정국씨였다. 정국씨는 얼마 남지 않은 짬뽕국물을 그릇째 들이켰다. 또 스트레스 받았구나. 정국씨는 국물을 들이키곤 거의 다 비운 짬뽕 그릇을 소리나게 놓았다.
"자꾸 탄소씨가 보이네요. 그럴리가 없을텐데..."
또 그 기억속 나라는 존재가 있었나보다. 아까 내 기억속 그 소년이 정국씨였을까.. 두통이 오는것만 같았다.
"이제 들어가요. 오늘 피곤했을텐데.."
"하숙집 들어오셨다면서요. 같이 안가시고요?"
"저는 할 일이 남았어요."
"아, 네. 그럼 저 먼저 들어가있을게요."
옆에 두었던 가방을 다시 챙겼다. 메뉴판을 보며 짬뽕의 가격을 찾았다. 4500원 이구나. 오천원짜리 지폐를 꺼내려 가방을 뒤적거리던 행동이 정국씨에 의해 저지당했다.
"제가 낼게요. 그냥 들어가요."
"에? 그래도..미안해서 어떻게 그래요."
"우리 오래볼 사이잖아요. 언제든지 갚을 기회 있을거고 오히려 제가 신세질 일이 더 많을텐데요."
"아, 그럼 고맙게 잘 먹었어요."
나의 말에 정국씨가 웃었다. 밖은 완전히 어두워지고 내가 가게를 나올때까지 정국씨는 그 웃음과 함께 나를 보며 손을 흔들었다.
**
"탄소씨.."
잠을 설치고 겨우 눈을 붙였을쯤 나를 부르는 소리와 노크소리에 잠이 깼다. 사람이 잘때 깨우는것 만큼 짜증나는게 없다고.. 나는 떠지지 않는 눈을 겨우 뜨고 일으켜지지 않는 몸을 일으키고 비틀거리며 문쪽으로 걸어갔다. 가까워질수록 들리는 목소리는 점점더 선명해져 내 정신을 또렷하게 만들었다.
"정국씨?"
문을 열자 확실해진 그의 얼굴이었다. 빛 한줄기 없는 곳이었지만 어둠에 적응되어 흐릿하게 보이는 얼굴은 정국씨였다. 그리고 곧 풍겨오는 술냄새가 내코를 휘감았다. 회식이라도 한 모양이다.
"이제 들어오신 거에요? 빨리 씻고 자야죠."
"할말 있어요."
"뭔데요?"
"탄소씨 맞아요. 내 기억속에 그아이..갑자기 기억나는 추억마다 탄소씨가 있어."
왜 갑자기 반말...
"내가 탄소씨를 보면서 자꾸 웃어. 너무나도 행복하게, 근데 말이야.."
얘기 하다말고 갑자기 자신의 심장쪽을 문지른다. 풀린 눈이었고 힘없는 목소리였지만 눈은 확실하게 나를 보고있고 목소리는 진심을 담고있다.
"여기가 너무 아파."
툭, 그의 상반신이 나에게 기대져왔다. 그의 어깨를 잡았다. 내 환자가 아프다고 말한다. 자신도 모르는 기억이 자신을 아프게 한다고 말한다. 나는 그의 잡은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이미 잠들어버린 정국씨는 느끼지 못할 만큼 아주 작게. 내가 그를 토닥여준 이유는 의사였기 때문 뿐만이 아니라 나도 그랬기 때문이다. 아까 짬뽕집에서 없던 기억이 떠올랐을때 기억속 나도 웃고, 그 소년도 웃고 있었지만 현실 속 나는 마음이 너무 아팠다.
**
그를 옆방 침대에 데려다 주고 한숨을 푹쉬었다. 하루 사이에 이게 다 무슨일일까...쓰나미 처럼 뭔가 몰려오는 느낌이었다. 주치의로써 잘 하고 있는 것 같지도 않고 오히려 과거속 나라는 존재와 현실의 나라는 존재가 정국씨를 더 힘들게 하는것 같았다. 하지만 포기하곤 싶지않다. 내 환자다. 내 환자인 이상 주치의인 나는 책임을 져야했다. 그가 나의 원수든 나의 은인이든간에 상관없이 그를 책임져야했다. 일단 정국씨를 재워뒀으니 안심이었다. 내일 본격적으로 정국씨를 알아보고 잃어버린 기억도 조금씩 찾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에게 연결고리가 있었다면 그 연결고리는 과거에 있는것 같았다.
내방으로 돌아와 깨버린 잠을 다시 취하려 침대에 쓰러지듯 누웠다. 이불을 꿈틀거리며 데리고 와서 침대에 누운지 얼마되지않아 다시 방문이 두드려졌다. 하, 진짜 오늘 새벽은 자는거 포기해야하나. 짜증을 내며 문을 열었다. 또 정국씨였다. 설마 또 기억이 났다거나 술주정인가 싶어 그를 바라보는데 아니었다. 술냄새는 나지만 이건 정국씨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태형이나 윤기씨는 더더욱 아니었다.
"여기 주변에는.. 높은 건물은 없나보네요.."
공허한 눈빛, 힘없는 목소리, 딱딱하게 굳은 무표정이 나를 굳게 만들었다.
"누구세요?"
"곧 죽을 사람인데 이름 알려줄 이유가 없네요."
**
"사실 민윤기보다 저한테 더 위험한 인격이 하나있어요."
낮에 카페에서 나누던 얘기다. 민윤기씨의 이야기를 한창 하던중 정국씨가 말했다.
"잘 나오진 않는데요. 저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인격이요."
"네?"
"자살하려는 인격..."
**
"박지민 씨?"
**
급전개 또 오셨네 또 오셨어
마지막 인격이 나왔어요. 지민이었죠.
자살하려는 인격과 사람을 살해하려는 인격을 두고 정말 고민을 많이했는데
이미지와 전개상 자살하려는 인격이 더많은 힌트를 품고 있고 더 나아보여 자살하려는 인격으로 했어요.
마지막 대사는 탄소가 한거에요!
힘되는 댓글 정말 감사합니다..항상 사랑해요.
요즘 없는 연애세포를 깨우기 위해 로맨스 드라마를 많이 보고있어요. 더 좋은 스토리를 위해서!
암호닉 항상 편하게 댓글로 적어주세요.
다 확인하고 적어드리고 있습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암호닉 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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