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기 다 익었다.
정적 속에 정한이 웃으며 말했다. 따라 웃지도 못한 여주는 마저 식사를 이었다. 그날은 그렇게 하루가 끝났으며 다음 날 공대 뒷뜰 벤치, 시은과 앉아있는 여주는 시은에게 자세한 얘기는 하지도 못한 채 얼버무렸다.
“아익까 그게 뭔 말이냐고.”
“…아니! 잘 생각해보면… 어쩌면 전원우가 정한선배를 싫어하는게,”
…타당할지 모르겠다고.
여주가 우물쭈물거리며 말끝을 흐렸다. 시은은 순간 미간을 구기며 먹던 맥스봉을 거칠게 입안에 쑤셔넣었다. 여주는 그런 시은의 눈을 맞추다가 벤치에 고개를 젖혀 제 속도 모르고 푸르른 하늘을 바라보다 눈을 감았다. 동시에 시은의 큰 소리가 여주를 향했다.
“난 반대야!!”
“아 뭐래 또…”
“갑자기 전원우야? 왜?! 우리 정한선배랑 잘 가고 있었잖아!”
“…그게 아니라, 그냥 뭔가가 더 있을 것 같다는 거지..”
“야. 뭐가 있건 없건, 자고로 남자는 다정해야하는 거다? 츤데레? 그딴 건 고삐리때만 먹히는 거라고!”
“…목청도 좋다.”
“아니. 도대체 뭔데? 좀 정확하게 말해보던가-.”
“…뭔가 정확하게 말은 못하겠다고.. 본인한테도 선배한테도 묻기 어렵단 말이야.”
“야 그럼 어떻게 확인하게. 니가 그 둘의 최측근이라도 알어? 앙?”
“최측근…”
최측근?
“…나한테는 무슨 볼 일이..”
“일단 쭈욱, 들이키시죠. 날도 더워지는데.”
“..고마워. 맛있게 먹을게.”
정한과 함께 있지 않은 틈을타 지수를 포착한 여주는 바로 지수의 팔을 이끌곤 학교 근처 카페로 향했다. 지수에게 커피를 사먹인 여주는 지수가 커피를 몇모금 넘기자 그제서야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할 말이 있는 듯 눈을 반짝였고, 지수가 그런 여주의 모습에 웃음을 터뜨렸다.
“너무 볼 일 있다는 티 내는 거 아니야?”
“아, 좀 그런가요?”
“아니. 너무 솔직해서 좋긴 해?”
“그럼 됐죠 뭐.”
“이래서 애들이 빠졌나보구나?”
“뭘 빠져요?”
“니 매력에?”
“…뭘 그런 말을 서슴없이.”
“하고싶은 말이 뭔데?”
“…둘이 사이 안 좋은 거요.”
“들었어?”
“…대충요. 그래서 확실히 알고싶은데, 둘 중 누구한테도 묻기가 뭐해서요.”
…정말, 정한선배때문에 원우선배 누나가 그렇게 된 거, … 맞아요?
“…어, 늦었네?”
“아, 그냥 뭐… 이것 저것 하느라요.”
“저녁은?”
“아직요.”
“같이 먹으면 되겠다. 지금 막 먹으려던 참이었는데.”
“좋아요.”
가방을 방에 금방 내려놓은 뒤 나온 여주가 식탁에 앉아 젓가락을 들었다.
“씻고 먹을 걸 그랬나?”
“아뇨, 금방 먹고 씻으면 되죠.”
“오늘은 뭐했어?”
“그냥 수업 듣고, 시은이랑 얘기하고..”
“음-.”
“…선배랑 원우선배한테 묻기가 그래서,”
“…………..”
“오늘 지수선배한테 얘기 들었어요.”
“…………..”
“…부모님이 안 계신 원우선배한테 하나뿐인 누나랑 선배랑 사귄 거고,”
“…………..”
“...데이트하러 오는 와중에 그런 사고를 당한 건-,”
“그래 내 잘못은 아니지.”
“…………..”
“….난 죄책감이었고, 원우는 원망할 사람이 필요했어.”
“…………..”
“지금은, 죄책감 덜고 외면하는 중인데,”
…원우는 여전히 원망스럽겠지 내가.
정한이 씁쓸하게 웃으며 젓가락질을 이었다. 여주는 그런 정한을 바라보다 입을 꾹 다물었다. 정적이 잘 없던 집에 정적이 가라앉았다. 달그락거리는 식기 소리 위로, 여주가 나지막이 말했다.
“같이 슬퍼해야할 사람이 죄책감은, 좀 아닌 것 같아요.”
“…………..”
“그 날 데이트만 하지 않았더라면, 원우선배 누나를 부르지 않았더라면,”
“……………”
“후회는, 잠시뿐이어야했어요.”
“……………”
“돌려놔야죠.”
“……………”
“더 이상 오해가 길어지지 않게.”
“……………”
그럴 수 있을까.
“윤정한이랑 데이트는 잘 되냐?”
“선배는 저 보면 왜 꼬옥- 정한선배 얘기를 먼저 꺼내요?”
애증이예요?
학교 수업이 끝나고 나서 데이트가 잡힌 여주는 학교 근처 식당에서 원우와 마주보고 앉아있었고, 여주에게 정한의 얘기를 하자 여주가 피식 웃으며 답하곤 물을 따랐다. 순간 원우가 미간을 구겼다. 냉수를 벌컥벌컥 마시더니 입 주변을 닦았다.
“애증은 무슨. 증오지.”
“다 들었어요. 둘이 왜 그렇게 됐는지.”
“윤정한이 말하던?”
“아뇨. 제가 궁금해서 이리저리 캐물었죠. 둘의 최측근들한테.”
“그래서.”
“알잖아요. 정한선배 잘못 아니라는 거.”
“…………..”
“그만해요 이제.”
“..야. 다른 얘기하자.”
“그래요- 남의사정. 내가 관여할 건 아닌데-,”
정한선배 너무 미워하지 말라구요. 슬픈 건 같을테니까.
“…걔 편드냐?”
“뭘 편을 들어요. 따지고보면 전 누구의 편도 아니거든요.”
“내 편 해줘.”
“에? 제 눈엔 그냥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두 사람인,”
“아니 그거 말고.”
“………….”
“…그건 윤정한이랑 내 일이고,”
…너가 내 편 좀 해줬음 좋겠다 난.
“….이 사람 진짜. 연애 고프네?”
“뭐?”
“선배. 이거 끝나면 진지하게 연애 시작해요. 그럼 좀 나아질 거예요.”
“뭔. 장난해? 어이없네.”
“따악 지금 연애 고프네. 응?”
“됐다. 뭔 얘길하냐 너한테.”
음식 나왔습니다-. 여주가 음식 사진을 대충 찍고선 숟가락을 들어 밥을 비볐다. 와앙-. 한입 한입 먹어 그릇을 비워내는 여주를 바라보던 원우가 피식 웃었다.
“야. 우리 데이트야.”
“긍데요.”
“그렇게 왁왁 먹어도돼?”
“뭐 그렁거 저한테 기대하시능거 아니자나요.”
“기대하고싶은데.”
“하지마세요. 없으니까.”
“윤정한 앞에서도 그래?”
“아뇨.”
“왜.”
“몰라요.”
“난 편하고 윤정한은 아니야? 왜. 윤정한은 남자로 보여서?”
“아익 진짜. 그만해요. 예?”
“나도 좀 남자로 보지그래?”
“……………”
느릿하게 오물거리던 여주가 허리를 피곤 원우를 바라봤다. 입에 있는게 거진 사라졌을 때쯤, 원우를 향해 물으며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진심이세요?”
“그럼 거짓말일까봐?”
“저 좋아해요?”
“그럴 것 같아.”
“예?”
“반은 넘어갔어 너한테.”
“…진심이시네?”
“…아 몰라요. 나 안들은 걸로 칠래.”
“무슨 사람 고백을 안 들은 걸로 쳐. 떨리는 거 참고 겨우 말했는데.”
“에이, 안 떨던데.”
“티가 안나는 거야.”
“아 어쨌든요.”
“들은 거 맞아.”
“안 들었어요.”
“너 들었어.”
“아 몰라요.”
“일단 나도 반절 넘은 거니까, 풀로 채울 때까지-,”
“그거 꼭,”
“…………..”
“채울 거예요?”
“…………..”
“…………..”
“…내가 그렇게 싫냐?”
“…………..”
“…………..”
“…얼마나 봤다고. 싫은 게 아니라,”
“그럼 됐어.”
“굳이 선배가 마음고생하는 거-,”
“그건 내가 감수해야할 부분이야. 너가 신경쓸 부분도 아니고.”
“…………..”
“알아서 할게.”
밥이나 마저 먹자.
‘술 마시고 들어갈게요! 시은이랑요!’
“그래서. 대뜸 낮에 점심 먹으면서 고백 받았다는 거야?”
“… 반절 고백?”
“뭔.”
“하 나도 모르겠다.”
시은이 잔을 입에 털곤 인상을 찌푸린 채 안주를 집어먹으며 말했다.
“야, 솔직히 어? 윤정한 선배 걸고 넘어지면서 시비 걸 때부터 알아봤지. 안그래?”
“몰라.”
“뭘 자꾸 몰라. 아 됐고! 일단 넌 정한선배인거지?”
“…………..”
“에? 대답을 안해? 왜? 설마. 흔들려? 어?”
“아이씨. 흔들릴 게 뭐가 있어!! ...그냥 좀,”
착잡해서 그러지.
이후로 시은은 여주에게 너에겐 정한선배가 딱이다. 흔들리지 말아라. 와 같은 말들을 수십번 뱉어냈고, 여주는 그 잔소리를 들으며 술병을 비워댔다. 그렇게 새벽 1시가 되기 직전, 여주는 결국 중심을 잃었다. 혀가 꼬인 시은은 여주를 나무라다가 여주의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아익 얘 또 부재중, 쌓인 것 좀 봐.”
“….사랑하지, 나…”
“어어, 사랑하지. 아니 야. 정한선배도 너 사랑하는 것 같은데. 이정도 부재중이면..어,”
또 왔다.
“여ㅂ,”
-여주야 어디야? 너무 늦었는데 전화도 안 받고,
“저 시은인데요 선배!”
-…어 시은아. 여주 옆에 있어?
“네. 근데 애가 좀 많이 마셔서, 지금 학교 사거리 할맥이거든요?”
-…아, 그럼 내가 갈게. 그동안 같이 있어줄 수 있어?
“네, 여기 할맥 앞에서 기다릴게요!”
시은과의 통화를 끊은 정한은 소파에 앉아있다가 제 방에서 겉옷을 챙겨입고 나와 급히 집을 나섰다. 차에 올라탄 정한이 한숨을 푹 내쉬고, 초조한 듯 핸들 위 손가락을 탁탁 거렸다. 신호에 멈춰서 길거리를 누비는 술에 취한 사람들을 보면 더 짙은 한숨을 뱉었다.
골목에 들어가려다 많은 인파에 길가에 차를 세운 정한이 차에서 내리며 머리를 쓸어넘겼다. 한숨을 또 내쉬곤 할맥을 향해 걷던 정한이 가게 앞에 쪼그려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는 여주를 보고 단박에 달려갔다. 시은에게 고맙다며 살풋 웃으며 여주의 상태를 살폈다.
“여주야.”
“…어, 성배,”
“…많이마셨네. 시은아 가자. 기숙사까지 태워다 줄게.”
“어, 정말요? 감사합니다!”
“어쩌다가 이렇게 많이 마셨대?”
“아- 저너누 선배때문에 착잡해서~”
“…원우? 원우는 왜.”
“앟. 그른게 있어요. 나중에 얘 깨면 얘한테 물어봐여.”
“……………”
“제가 원래 이르케 취하지 안크든요,,”
“응 그럼. 알지.”
“….이래도 제가 조은가요.”
“그럼. 좋지.”
“…다행이네.”
여주의 필름이 끊겼다.
“……………”
요즘 술을 너무 자주 마시네. 더부룩한 속을 뒤로한채 헝클어진 머리를 뒤로 넘기며 몸을 일으켰다. 옷장에 딸린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곤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정리했다. 시간을 확인한 뒤 방문을 열었을 땐, 이미 선배는 수업을 가고 없는 모양이었다.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집 안, 부엌으로 가 냉장고 앞에 섰다.
‘일교시라 먼저 갈게. 일어나면 콩나물국 끓여놓은 거 먹어.’
“..아이 참.”
고마우면서도 밀려오는 미안함에 입을 다물었다. 미지근한 콩나물 국을 다시 데우고, 식탁에 앉아 휴대폰을 켰다. 휙휙 이리저리 헤엄치다 상단바에서 내려온 메신저에 눈이 위로 향했다. 원우선배의 전화였다.
“…뭔, 전화를…”
여보세요?
스피커로 돌리곤 숟가락으로 국을 휙휙 저어댔다.
-어디야?
“…집인데요?”
-오늘 몇교신데.
“두시 수업일 걸요. 왜요?”
-더 빨리 올 생각은 없어?
“...왜요?”
-점심 같이 먹게.
“…저 지금 먹고 있는데.”
-…애매하게 무슨 열한시에 밥을 먹어.
“방금 일어났고 지금 숙취로 콩나물국-,”
-숙취는 왜. 너 또 어제 술마셨어?
“아니 또는 왜 또며 무슨 상관이신데요-“
-어제 다 얘기한 것 같은데.
삑삑삑삑삑삑, 띠리릭-. 철컥.
“아니 그 얘기는 좀,”
-말했잖아.
-너한테 반절 넘어갔다니까.
“…………..”
“…………..”
아….
원우가 말한 순간 정한이 들어와 눈이 마주친 여주. 정한은 여주의 휴대폰을 바라보다 입꼬리를 잠시 내렸다가 금방 올리며 여주의 앞에 앉곤 말했다.
“통화중이야?”
“아, 네. 그렇긴 한데,”
-…윤정한?
“응. 난데.”
-..뭐야.
“여주가 혼자 밥 먹으면서 스피커로 통화하고 있어서. 본의아니게 다 들었네.”
-…………..
“여주 밥 먹는데 이제 그만 방해하고, 끊자.”
-야 니가 뭔데-,
뚝-.
“…………..”
“아, 집에 뭘 좀 두고가서 가지러 왔어.”
“…차가 있으니까 역시 왔다갔다 자유롭네요..”
“먹고 편하게 준비해. 나도 다음 수업 두시라 너랑 같이가면 돼.”
“아, 네.”
“근데 방금 원우가 너한테 고백한 거야?”
“예? 아뇨? 뭔 고백.”
“반절 넘어갔다던데.”
“에이 그게 무슨 고백이에요.”
“그럼 백퍼센트 넘어갔다고 하면 고백이야?”
“그건 고백이죠.”
“난 반절 아닌데.”
“네?”
“난 반절 아니고,”
나 백퍼센트 넘어갔어, 너한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