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많이 먹었다.
여주는 금방이라도 다 쏟아낼 것 같이 울렁이는 속을 몇 번이고 가라앉혔다.
침대에 누운 여주는 나가는 석진의 뒤로 손을 흔들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석진이 나갔고 문 밖으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점점 멀어지는 발자국 소리에 그제야 여주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그리고 화장실 문을 닫기도 전에 변기에 머리를 박고 속을 게워냈다. 들썩이는 몸에 장기가 뒤틀리는 느낌이었다.
다 걸러냈다고 생각했는데도 계속 나오는 토악질에 여주가 손이 하얘지도록 변기를 붙잡았다.
“하아….”
속을 게워내고 나니 좀 살 것 같았다. 힘겹게 팔을 뻗어 물을 내린 여주가 화장실 타일에 주저앉았다.
입을 헹구고 침대로 가야하는데, 머리는 그렇게 말하고 있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한참을 화장실에 앉아있던 여주가 몸을 일으켜 입을 헹구고 거울을 바라봤다. 거울 안으로 핼쑥한 제 얼굴이 보였다.
“다행이다. 반장이 없어서.”
거울을 보며 힘없이 웃고선 물을 틀어 다시 입을 헹구려 고개를 숙인 사이로 붉은 색이 섞여들었다.
여주의 손이 빠르게 물로 코와 입을 닦아냈다. 살과 물의 마찰음이 크게 울렸다.
하지만 세면대에는 여전히 붉은 색이 흐르고 있었다. 여주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쿨럭!”
코와 입에서 진한 피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한 손으로 막는 걸로는 안 돼 두 손으로 막아 봐도 역부족이었다.
다급히 수건을 갖다 댔지만 수건이 피로 젖어가고 있었다.
결국 여주의 손이 호출 벨을 눌렀다.
“진통제하고 수면제 놔드릴게요.”
“…네.”
호출로 달려온 의사와 간호사 덕에 무사히 응급치료를 끝낸 여주가 제 팔을 통해 들어오는 액체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다.
푹 쉬라는 말과 무슨 일 있으면 꼭 부르라는 말을 전하고 나가는 의사와 간호사의 모습을 끝으로 여주는 눈을 감았다.
밤이 가고 아침이 오고 있었다. 여주는 몽롱한 상태로 깨어날 수가 없었다.
꼭 무중력의 상태에서 둥실 떠 있는 기분이었다.
눈을 떠야하는 데 눈꺼풀이 무겁고 입을 떼고 싶은데 누군가 입술을 붙여 논 것 마냥 입술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그렇게 다시 정신이 꺼졌다.
여주는 다시 어딘지 모를 곳으로 끌려 들어갔다.
“아직 자네….”
석진이 모처럼 일찍 온 시간까지 여주는 눈을 뜨지 못했다.
파리해진 얼굴로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고 있는 여주의 모습에 석진은 문득 무서움을 느꼈다.
그가 조심스럽게 여주의 코 아래로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손가락 위로 숨결이 느껴졌다.
“자는 거구나….”
석진이 안도의 숨결처럼 중얼거렸다. 가만히 서 여주를 바라보던 석진이 간이의자를 끌어 여주의 옆에 앉았다.
그리고 한 번도 자세히 본 적 없던 여주의 얼굴을 하나하나 뜯어봤다.
이마가 둥글고 깨끗했다. 눈썹은 순하게 살짝 아래로 쳐져 있었고 가지런한 속눈썹은 길고 촘촘했다.
코는 미끄럼틀 같았고 입술은 저와 비슷하게 두툼했다. 석진이 저도 모르게 여주의 입술을 만지고 몸을 푸르르 떨었다.
혹시 누가 보기라도 한 거 아닌지 고개를 돌리던 때 병실 문이 조심스럽게 열렸다.
석진이 놀란 눈으로 문을 바라봤다.
“아, 친구 분.”
“안녕하세요.”
들어온 사람은 간호사였다. 석진이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하자 간호사가 여주와 석진을 번갈아 보더니 아랫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무언가 할 얘기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성급히 묻지 않았다. 그저 기다렸다.
제가 알아야 할 일이라면 말을 해줄 것이라 생각하며 조용히 간호사의 생각 정리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마침내 간호사가 생각을 정리했는지 입을 열었다.
“실례인 질문인 걸 알지만 여주씨와는 정확히 어떤 관계에요?”
“고등학교 동창이고 친구- 입니다.”
“단지 친구일 뿐인가요?”
“…네.”
석진은 간호사의 물음이 이해되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이기에 여주와의 관계를 물어보고 또 확인하는 것일까.
그가 얼굴 한가득 물음표를 띠고 간호사를 바라보자 잠시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던 간호사가 입을 열었다.
“여주씨의 상태가 친구분이 생각하는 것만큼 좋지 않아요.”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게 무슨…?”
“어젯밤에 한번 위험한 상황이 왔었어요.”
“…네?”
간호사의 말에 고장 난 테이프를 듣는 것처럼 느리게 늘여져 들려왔다. 귓가에 무겁게 내려앉는 말에 석진이 멍해졌다.
‘여주씨는 지금 길게 봐야 한 달이에요.’
‘온전한 정신으로 한 달을 말하는 게 아니에요.’
‘그 중 열흘은 잠에 빠져 지낼 거예요.’
‘물론 정신은 있어요. 어떤 말을 하면 듣기는 하지만 반응은 하지 못해요. 그리고 그 단계를 거치면 천천히 숨이 멈출 거예요.’
‘오늘은 수면제 때문에 자는 거니 큰 걱정은 말아요. 하지만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으세요.’
영화 속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하나도 실감나지 않는 말들이 귀를 파고 들었다.
귀를 파고든 말들은 녹아나지 않고 그대로 쌓여있었다. 그래서 더 영화 같았다.
…숨이 멈춘다.
죽는다.
다신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고,
이야길 나누지 못한다.
그렇게 생각하니 침대 위로 눈물이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생각했던 것보다 큰 충격이었다.
석진은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 위로 손을 덮었다.
'ㅁ'...나우이즈굿의 여주는 너무 씩씩해서 더 마음이 아픈거 같아여 8ㅁ8...
나 이런 찌통글 잘 모써....9ㅅ9
홍일점님 덕분에 제가 이런 분량 낭낭한 멋진 글을 써봅니당.....(웃음)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독자님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