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연의 바다 中
나는 돌아다니기를 좋아했다. 1995년의 서울은 나에게 신기하기도 했고, 내가 다니던 학교 앞도 찾아갔었다. 1995년의 우리 학교 교복은 내가 입고있던 교복과 달랐다. 그래서 아주머니가 날 못알아보셨구나. 뜨거운 햇살이 비췄다. 내가 왔을 때는 6월 말이였는데. 벌써 7월 둘째 주나 되어버렸다. 뜨겁게 내리쬐는 햇빛을 보다가 걸음을 옮겼다. 오늘 내가 밖에 나온 이유는, 정국이 때문이였다. 도시락을 전해주라는 것이였다. 어두컴컴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아주머니께 흘려들은 얘기였는데. 정국이는 용접 일을 한다고 했다. 건물 안쪽으로 들어가니 불꽃이 파박, 하고 튀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정국이. 맞는 것 같은데.
"정국아! " "무슨 일로 왔어? " "도시락 때문에. 덥겠다. " 땀에 절은 채로 정국이 내게로 걸어왔다. 작업복 입고 있는 모습은 처음이다. 땀에 흠뻑 젖은 앞머리를 대충 손으로 털어낸 뒤 내 손에 들린 도시락을 쳐다보는 정국이였다. 아, 가져가. 도시락을 내미는 날 흘끗 쳐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던 정국이였다. "갈거야? " "어, 어. 가야지. " "점심 같이 먹고 가. " "도시락... 하나밖에 없는데? " "같이 먹자, 양 많아서 괜찮아. " 으, 응.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두컴컴한 건물에서 나와 햇빛이 내리쬐는 밖으로 나왔다. 으, 덥다. 안 그래도 땀에 절어있는 정국이 뜨거운 햇빛까지 견뎌야 한다는 생각에 흘끗, 쳐다봤지만 개의치 않다는 듯 두리번 거리는 정국이였다. 아, 저기다. 짤막하게 말 하던 정국에 응? 하고 묻자 내 손을 이끄는 그 손길에 난 그대로 따라갈 수 밖에 없었다. 걸음을 옮긴 곳은 한적한 공원이였다. 괜히 어색해져 계속해서 걷는 정국의 뒷 모습을 바라봤다. 동글동글한 뒷통수가, 퍽 귀여웠다. 빛을 받아 흰 색을 띄는 검은색 머리칼도. 작업복 지퍼를 반 씩이나 내려 안에 흰 티가 보이는 것도. "여기 앉아. " "고마워, 밥 먹어야지. 얼른! " 전정국은 말이 별로 없었다. 응, 하고 대답을 한번 할 바에는 고개를 한번 끄덕이는 게 다 였고. 나와 하는 대화는 더더욱이나 없었고. 이 정도로 말을 하는 건 장족의 발전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아, 뜨겁다. 잔디밭에 드러누운 채로 하늘을 올려다봤다. 내게 그대로 내리쬐는 햇빛에 눈살을 찌푸렸다. ... 밝다. 저 뜨거운 해가 금방이라도 날 삼킬 것 처럼 이글거리고 있었다. 어린 날의 나 처럼, 그 큰 파도가 날 삼켜버릴 것만 같이. * * * "오빠, 수영하러 가자. 빨리! " "기다려. 준비운동도 안하고, 그러다가 바다에 상어가 너 잡아먹는다? " "응응, 됐어! 나 이제 그런 거짓말도 안믿는다-! 오빠, 우리 내기하자. " "무슨 내기? " "저-기, 주황색! 저기까지 먼저 가는 사람이 이기는거야. 소원 들어주기. 알겠지? " 열 살. 가족끼리 간 여행이였다. 바다 여행. 나는 그 오빠의 작은 손을 꼭 잡고 있다가, 바다로 풍덩. 뛰어들었다. 잔잔하던 파도가 크게 일렁였다. 조심하라는 오빠의 말이 뒤에 오갔지만, 앞만 보고 수영했다. 수영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하지만, 열살의 내 기억에서는 최대한 잘 하고 있는 중이였다. 그 여름 날, 그 날은 왜 그렇게도 무모했는지. 왜 그걸 미처 몰랐는지. 중간 쯤 갔었나. 열 살의 여자아이의 키는 크지 않았다. 땅에 발이 떨어진 지 한참이였다. 허둥지둥 돌아가려고 하니, 자꾸 꼬르륵. 하고 깊이 빠지는 것이였다. 누군가가 자꾸 내 발을 이끄는 것 같았다. 정신이 혼미해졌다. 어지럽다. 눈이 감길 때 즈음에, 누군가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던 것 같기도 하다. 애절한 그 목소리로. 처절한 그 목소리로. 소독약 냄새가 코를 찔렀다. 춥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파도가 내 몸을 감싸안는 기분이였다. 냉기만이 날 휘감는 느낌. 김탄소 환자 일어났습니다!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사람들 틈에, 내 손을 꽉 쥐는 그 손길이 있었다. 엄마. 내 엄마. 나를 낳아준, 나의 엄마. 괜찮아, 괜찮아. 반쯤 감긴 눈으로 본 엄마의 모습은, 그 여린 어깨가 들썩였다. 아마 울고있는 거겠지. 나는 기억한다. 그 잠깐 새로 나와 마주친 그 눈동자 속에, 오롯이 나의 모습이 가득찬 그 눈동자 속이. 내가 아닌 공허함으로, 무력함으로 가득찼던 것을. 끊임없이 엄마는 말 했다. 괜찮아. 네 탓이 아니야. 그 때 나는 미처 몰랐지. 나를 구하려다 그 차가운 바다 속에 떠내려간 오빠를. 한없이 다정했던 내 오빠를. 어쩌면 그랬다. 괜찮아. 하고 건낸 그 말 속에는, 내가 아닌 오빠를 담고 있을 거라고. 크게 울렁이는 파도 속에 오빠는, 바다가 되었다. 영원히 잠식했다. 탄소야, 괜찮아. 다, 괜찮아. 아니, 엄마. 나는 안괜찮아. 엄마. 나는 살인자야. 나는, 오빠를. 열 살 무렵, 나의 바다를. *** 엄마는 괜찮지 않았다. 엄마, 내가 조금만 더 빨리 알았다면. 내가 현실을 조금만 더 일찍 직시했다면. 엄마는 괜찮았을까? 엄마, 나는... 텅 빈 눈동자로 내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 하는 엄마였다. 탄소야. 나는, 나는 네가. 응, 응. 엄마. 나 듣고있어. 사라지지마. 탄소야. 석진이처럼. 네가 한 게 아니니까. 너는, 너는 괜찮아. 그 때 엄마의 말을 더 귀기울여 들을 걸. 열 세살 무렵, 나는 엄마의 자살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공허함만을 담은 엄마의 눈은 감겨있었고. 방안에는 정체불명의 흰 가스만 가득했었다. 엄마, 나는 이제 혼자야. 나는 아무것도 없어. 오빠가 바다로 간 순간부터 난 혼자였는지도 몰라. ...엄마. 사라지지... 말았어야지. 그 거친 손으로 내 얼굴을 어루만지던 그 손길을. 아직 잊지 못 했는데. 열 세살. 고작 열 셋이였다. 구원의 손길이. 끊어졌다. 하나도 남김없이. *** "... 김탄소? " "... 아, 미안. 잠깐 졸았나봐. " 그 짧은 새로 꿈을 꿨나보다. 식은 땀을 뻘뻘 흘려댔다. 누가보면 내가 일 한 줄 알겠네. 괜히 어색해져 억지로 입꼬리를 당겼다.
"괜찮아? " "응. 괜찮아. " 괜찮지가 않아. "정말? " "... 응. " 아니. 식은 땀때문에 젖어버린 내 앞머리를 뒤로 쓸어넘겨주며 작은 미소를 짓는 정국을. 나는.
"... 그래. " *** 내가 전정국을 찾아간 이후로, 난 정국이와 많이 가까워졌다. 장난도 칠 수 있는 사이고. 오늘은 오랜만에 정국이가 휴가를 받은 날이였다. 놀러가자는 그 한마디에 난 당연히. 가야지. 하고 벌떡 일어섰다. 네 말인데, 내가 어떻게 거절해. 너라면 다 좋은데. 나는 안타깝게도. 전정국이 좋아졌다. 난 2017년에서 온 사람인데. 정국이 너는... 1995년의 열 여덟인데. 우리는 다른 사람인걸. 내 옆에서 웃고만 있는 정국이를 쳐다봤다. 지금은 즐겨도 될까? 지금 나는 1995년에 있으니까. 정국이는 나와 놀러가는 게 좋다고 했다. 나도 너랑 놀러가는 게 좋아. 이 문장 한 개를 애써 꾹꾹 눌러 참았다. 아직은. 좀만 더 아낄래. "어, 아이스크림! " "먹을래? " "응응. " 정국의 두 손에 받아들인 아이스크림 하나를 내게 건냈다. 고마워. 정국이는 더웠던 건지 그 날 처럼 땀에 젖은 앞머리를 고스란히 내놓은 채로 아이스크림 한 입을 먹었다. 많이 더워? 하며 그 앞머리를 뒤로 쓸어넘겼다. "어, 이거. " "응? " "위험한데. " 으응?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뭐가? 정국이 서투른 손길로 내 옆머리를 귀 뒤로 넘겨 쓸어넘겼다.
"이렇게 머리 쓸어넘기는 거. " "... ..." "나한테 위험한데. " 녹아내리려고 하잖아. 너한테. 이제 내 바다는, 나의 바다는 네가 돼버렸잖아. 정국아. *** 비 온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때문에 뭔가 이상했다. 이런 걸 센치해진다고 하나. 아주머니는 오늘 아들이 군대에서 제대를 한다고 마중을 나가신 지 오래다. 아마 밤 늦게 들어오실 것 같다고 했는데... 정국이도 일 나가버려서 집에는 나 혼자였다. 낮 동안에는 한참을 뒹굴거리다가, 정국이가 일이 끝나고 돌아올 시간이 됐다. 마중이라도 나가볼까, 생각하고서 현관문을 열고서 밖으로 뛰쳐나갔다. 우산을 챙길까, 했다가 정국이가 금방 올 것 같아 챙기지 않았다. 얇은 후드집업을 걸치고 후드를 뒤집어 썼다. 아까는 이렇게 비가 거세진 않았던 것 같은데. 점점 거세지는 것 같은 비에 걸음을 멈추었다. 어느새 비가 내 온 몸을 적셨다. 머리에서 물이 뚝뚝 떨어져내렬다. 이 쯤이면 올 시간도 됐는데, 왜 안오지? 걸어온 길을 다시 돌아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비를 맞아서 그런가. 머리가 띵하다. 어지럽다. 그 날 처럼. 바다에 빠져버린 그 날 처럼. 집으로 가는 길에 금방이라도 쓰러져버릴 것만 같았다. 안됀다. 안돼. 지금 내가 쓰러져버리면... 나를 향한 구원의 손길이 사라져버릴 것만 같다. 오빠, 오빠는 내 바다였지. 그런데 더 큰 바다가 있더라. 그 바다는 나의 조그만한 바다를 삼켜버렸어. 그리고 난 영원히 잠식했어. 이제야 수면 위로 뜰 것 같은데. 나는 더 이상, 버틸 수가 없다. 오빠, 오빠. 석진오빠.
"... 괜찮아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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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밝음이에용 ❤ 심연의 바다로 찾아왔습니당 ! 오늘 과거편도 다 풀었고, 이제 남은 건 하편이랑 번외밖에 없네요, 하 편에 나머지 이야기를 다 써야 하는데 다 쓸 수 있을 지 모르겠어요 ... ㅠㅠ 그래도 열심히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정국,,, 직진 정국,,, 사랑해요 전정국... 방탄 4관왕 축하해 너무 사랑해 ㅠ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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